65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3) >
마법 학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강타했다.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의 출신인 유재명이 6서클의 경지에 올랐다.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린 것이 바로 그 증거이며, 유재명은 그간 미지의 영역이라 불리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A급.
그 단어에는 마법사들의 한(恨)이 담겼다.
마법사들 또한 헌터의 한 갈래이며 이 세상의 수호를 맡는 사람들이지만, A급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간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그런데 유재명의 행보는 그러한 판을 뒤집었다. 당연히 잔뜩 흥분한 세계 마법 연합의 마법사들이,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한국으로 향했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
6서클 마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유재명이 정말 미지의 영역을 개척했다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입을 추진할 것이다.
헌터 아카데미의 야외 훈련장.
마법 시연회를 앞두고, 수많은 단체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웅성웅성.
“정말 6서클 마법을 개발했을까요?”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유재명 정도의 인물이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커요. 유재명은 서른 초반에 5서클에 오른 천재 마법사예요. 그때로부터 10년이나 흘렀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죠.”
“제발, 제발 사실이기를.”
마법사들의 눈빛에는 ‘희망’이 보였다.
6서클 마법.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유재명을 영입할 수 있는 단체는 제한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100년의 마법 역사가 흐르는 동안, 6서클 마법은 미지의 영역이라 불렸다. 처음에는 마법 문명이 발달되지 않아서 개발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지식의 답보 상태가 이어지면서 마법사들은 6서클 마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한 의문이 마법사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모두에게 6서클 마법이 공개되진 않을지라도, 미지의 영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 마법사들에게 증명하는 자리가 될 터.
다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유재명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입장하십니다.”
짝짝짝-
짝짝짝-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재명은 그러한 상황에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는 6서클 마법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막막한 현실의 벽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굴을 보면 알만한 마법사들 앞에서, 6서클 마법의 탄생을 증명하는 시연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어.’
그날 저녁.
유재명이 결단을 내린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학범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유재명은, 강민혁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 이학범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아직은 강민혁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합니다. 워낙 특별한 배경을 타고 나기도 했고, 대단한 지식을 공개하는 그의 행보는 정상적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강민혁은 ‘마법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겁니다. 만약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강민혁이 내민 손을 잡는다면,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물론이고 마법 학계 전체가 발전할 겁니다.”
솔직한 평가였다.
굳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학범은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그에 유재명은 결단을 내렸다.
사실 처음부터 마음이 기울었는지도 모른다.
6서클 마법이라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유재명은 리스크를 안아도 된다는 조금의 확신이 필요했다.
이학범의 말.
그것이 ‘아주 조금의 확신’을 주었고, 유재명은 강민혁의 마음이 달라질까 봐 저녁에 바로 연락했다.
그리고 지금.
유재명이 사람들 앞에 섰다.
“지금부터 6서클 마법 시연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르르륵.
바로 앞.
A급 웨어 울프가 포박되어 있는 채로 마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A급 웨어 울프를 향했다. 만약 A급 웨어 울프에게 마법이 통한다면, 그것은 6서클의 마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되는 일일 터. 기대감에 차오르는 사람들의 시선에, 유재명은 천천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윽고.
“익스플로전 (Explosion).”
펑!
콰콰쾅!
강력한 폭발!
그 엄청난 화력에 A급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질렀다. 한 방에 죽지는 않았으나, 타닥타닥 타오르는 피부와 축 처진 머리는 충격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5서클 마법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위력.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짝짝짝-
“정말이었어!”
“이게 바로 6서클 마법의 위력이구나!”
“유재명 대마법사님, 당신이 성공했습니다.”
격렬한 찬사.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유재명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강민혁.’
6서클.
강민혁이 알려준 마법은 평범한 6서클이 아니다. 무려 상급 6서클 마법이었고, 그로 인한 파괴력은 유재명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토록 대단한 지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진정한 마법사라면, 강민혁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마나의 서약.
제약이 걸렸다는 사실을 떠나, 유재명은 강민혁의 지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양질의 지식을 제공해준다면, 유재명은 기꺼이 충성을 바칠 의향이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유재명.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를 원하는 수많은 명사들이 서로 앞다투어 유재명의 앞으로 달려왔다.
유재명의 발표.
그로 인해 각 마법 연합이 발칵 뒤집혔다.
6서클의 탄생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동시에 마법 학계의 판을 바꾸었다.
영국 마법 협회의 협회장.
웨인 번즈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로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다니. 한국의 마법 학과 출신들이 제대로 사고를 치고 있어.”
“그것도 보통의 6서클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맞은편.
존 웨슬리가 답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강력한 폭발!
사람들이 6서클의 위력을 10이라고 예상했다면, 유재명이 보여준 마법의 위력은 무려 15에 달했다. 상급 마법의 위력! 마법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재명의 회유 가능성은?”
“사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재명은 발표 이후에, 수많은 단체에서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지만 정치적인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재명은 방랑벽(放浪病)이 있는 인물입니다. 어디에 소속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쩌면 중립적인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지도 모릅니다.”
“6서클 마법이 탄생했는데 그걸 알아낼 방법이 없다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유재명을 회유하지 못한 것은 희소식이 아니나, 그래도 다른 세력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도 유재명의 영입에 만전을 기하도록.”
“알겠습니다.”
다른 세력도 마찬가지다.
유재명이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의 영입전에서 물러나려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6서클의 마법.
그것의 가치는 목숨을 걸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우려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뭐지?”
“유재명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과의 만남은 극도로 꺼리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청하는 마법사들은 거절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표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 유재명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유재명이 적극적으로 세력 형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6서클에 매료된 마법사들이 자발적으로 유재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흐음.”
세력 형성.
위험한 일이다.
6서클 마법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A급 몬스터라는 마법사의 한계를 무너트렸다는 것.
유재명이 보여준 행보는 단순히 개인의 강함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마법의 힘 그 자체를 증명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세력을 형성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재명을 중심으로 마법 학계의 판도를 바꿀, 새로운 세력이 탄생할지도 모르겠군.”
표정이 굳었다.
영국 마법 연합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최초의 6서클 마법사라는 상징성은, 이미 마법 학계의 성역(聖域)이 되어버렸다.
한참 유재명으로 시끄러울 그 시각.
강민혁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6서클 마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정녕 스승님이신 겁니까?”
바로 정상훈이었다.
마법 시연회.
그것이 끝나고, 마법 학과의 학생들에게 이런 소문이 퍼졌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후학(後學) 양성에 적극적이신 분이라, 개인적인 가르침을 청해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벌써 소문을 들은 마법사들이, 유재명 대마법사님을 매일 같이 찾아가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재명.
무려 6서클 대마법사가 개인적인 가르침을 준다는데, 강해지길 바라는 정상훈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유재명에게 6서클의 실마리라도 조금 얻어보고자 찾아갔는데, 유재명의 대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네가 정상훈이구나. 넌 내게 가르침을 받을 게 없어. 내가 발표한 6서클 마법도 사실, 강민혁에게 배운 것이거든.”
강민혁은 유재명에게 딱 한 명에게만 진실을 말할 것을 허락했다.
그 사람이 바로 정상훈이었고, 유재명의 대답을 듣고서 정상훈은 충격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스승님이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다고?’
강민혁.
대단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동급생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서 강민혁의 천재성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나이를 떠나 ‘스승의 자질’도 있는 사람이다. 강민혁의 카리스마는 정상훈의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들었고, 정상훈은 강민혁의 곁에서 차근차근 성장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6서클 마법이라니.
아무리 강민혁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정상훈이라지만, 이건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대체 스승님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양파와도 같은 사람이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를 개발한 것으로도 모자라, 벌써 3서클의 경지에 올랐다.
그 외에도 강민혁의 곁에 있다 보면 충격적인 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단다. 이건 전에 보여주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었다. 마법 학계의 명사들이 찬양하는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은, 대마법사 유재명이 아니라 강민혁인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강민혁을 찾았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물어보는 모습에,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들었나 보군.”
“..정말 사실이었군요.”
“내가 예전에 너에게 말했었지. 네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강해지고 싶다면,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나에게 있을 거라고. 앞으로도 내가 직접 제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너 하나뿐일 것이다. 그러니 너라는 사람이, 정상훈이라는 마법사는 반드시 훌륭한 마법사여야만 한다.”
서로의 목적.
둘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강민혁은 정상훈의 재능을 받아들였고, 정상훈은 지금 이 순간 신뢰가 다시 한번 확고해졌다.
스승.
그 단어가 점차 심장에 각인되었다.
시작은 거래였으나, 정상훈은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이라는 존재를 진짜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강민혁 정도의 지식이라면, 사실 자신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자로 받아들일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자신을 선택해주었다.
강민혁은 유재명 대마법사에게도 ‘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
정상훈은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는 강민혁이 무엇을 시키든 간에, 강민혁의 말이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이다.
정상훈에게 있어 강민혁은 이제 하늘이었고, 강민혁이야말로 가문을 부흥시켜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제 된 건가.’
믿음.
서로 간의 믿음이 생겼다.
이전까지는 ‘거래’라는 시작점에 소극적으로 가르쳤다면, 이제는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훈.
이제 그라는 원석을 깎아낼 차례다.
밝게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었을 그때, 정상훈의 이름은 유재명과 같이 강민혁을 밝혀줄 것이다.
“따라와.”
“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 공간.
그곳에는 정상훈으로서는 난생처음 접하는 세상이 있었다.
“이곳을 나는 마나 룸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네가 훈련하게 될 공간이기도 하지.”
신세계.
정상훈의 상식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