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2) >
사건 직후.
몸을 잠시 피한 강민혁은 생각을 정리했다.
‘등급 외 마법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었다.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기 전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자신의 ‘검’이 마법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6서클의 위력을 뿜어내는 등급 외 마법이라면 강화 전사들도 무시할 수 없을 터. 강민혁은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손에 쥐었다.
시련의 공간.
그곳에서 확인한 마나의 흐름은 총 다섯 가지였다.
[폭발]
[유성우]
[태산]
[지진]
[해일]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등급 외 마법들의 능력은 시련의 공간에서 보았던 현상과 비슷할 터. 강민혁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머릿속에 정리해두었다. 마나 소모량이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은 마법사로서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다. 지금 당장은 월하 심법과 마나 룸을 최대한 활용해서, 네 개의 서클에 많은 양의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리가 끝났다.
이제는 상황을 해결할 차례였다.
‘A급 웨어 울프를 소환한 것은 우발적인 선택이었어.’
A급.
그것의 상징성은 크다.
강민혁은 A급 몬스터에게 동료가 다쳐서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았고, 검을 버리고 전향한 마법의 세계는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항상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순간을 바라왔다. 그러한 감정은 클리스만의 육체로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면서 더욱 강해졌고,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 행할 수밖에 없었다.
무모했다.
누가 목숨을 걸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민혁은 일말의 가능성에 목숨을 바쳤다.
강민혁의 삶이 그러했다.
철창에 갇혀서 몬스터와 싸울 때, 그러한 상황을 의도한 아버지에게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강민혁을 낭떠러지에 떨어트렸다.
강민혁에게 훈련이란 온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사를 걸어왔던 순간들의 기억에, 강민혁은 ‘훈련’에 불과한 상황에서 목숨을 거는 결단을 내렸다.
죽으면 죽는 것이다.
하지만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순간, 강민혁의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난 강해.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수 있어.”
확신.
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강민혁은 그 차오르는 희열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은, 강민혁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선사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스터키.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흔적이 남았다.
언제고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혀질 터.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마법사로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그러한 업적은 후일 마탑을 건설할 때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테지만, 흥분을 가라앉힌 강민혁은 다르게 생각했다.
‘최상의 타이밍은 아니야.’
4서클 마법사.
아직 6서클의 근처도 가보지 못한 마법사가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면, 많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등급 외 마법.
서클 강화 등등.
주절주절 떠들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의 상식을 과도하게 넘어설 경우, 강민혁은 최초의 업적을 이루었다는 영광과 동시에 많은 의문으로 인해 구석에 몰릴 확률이 높다.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같다. 강민혁이 6서클의 마법사라면 단번에 납득할 것을, 4서클이기 때문에 날파리들이 붙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전부 무시하고 공개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힘을 드러내되, 내가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는 것은 곤란해.’
최초.
강민혁의 시작은 마법이 아니다.
강화 전사였고,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강민혁이 최초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 한다면, 분명히 일부의 사람들은 강민혁에게 강한 악의를 느낄 것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꾸준하게 마법을 익혀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최초의 업적을 이룬다면 인정하고 받아 들이겠지만, 강민혁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사람들의 반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강민혁은 연구 발표에 항상 이학범을 대동했다.
이학범이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존재가 연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강민혁에 대한 반발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번 달에 나는 내 힘을 드러낼 자리가 마련돼. 그러니 지금은 최초의 타이틀을 내주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자.’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유재명에게 힘을 공개한 이유였다.
“왜지? 왜 사람들에게 너의 업적을 공개하지 않고, 내게만 사실을 밝히는 거지?”
유재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강민혁은 소문대로 괴물 같은 녀석이었으나, 상황을 되돌아보니 강한 의문이 생겨났다.
‘대체 왜.’
강민혁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냥 본인이 했다고 공개해서 명예를 독식하면 될 일을, 굳이 둘만 있는 자리에서 사실을 밝혔다.
강민혁이 말했다.
“저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간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와 같은 기술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은 지식들이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방금 사용한 마법과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그토록 바라는 6서클 마법 같은 것들이요.”
꿀꺽.
유재명이 침을 삼켰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마탑을 건설할 생각이고, 마탑의 목적은 마법의 발전과 이 세상에서 몬스터를 완전히 멸하는 것입니다. 만약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마탑의 일원으로 소속돼서 저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마나의 서약’을 하신다면, 저 또한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바라는 6서클 마법의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나아가, 때가 되면 그 이상의 정보도 드릴 생각입니다."
유재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황이 머릿속에 정리되질 않았다.
겨우 17살.
1학년 학과생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마나의 서약이라니.’
마나의 서약(管約).
그건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명칭이지, 실제로는 마나의 족쇄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그 발견은 우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떤 마법사가 동료 마법사의 탈진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서클에 자신의 마나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동료 마법사의 몸을 회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악재(惡災)로 작용했다. 몸과 맞지 않은 마나. 그게 강제로 주입되면서 동료 마법사의 심장을 터트려버리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마나 링크는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기술인데, 그걸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용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당시의 사건은 마나의 족쇄라는 기술을 낳았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큼의 마나를 상대의 서클에 심어놓고, 원할 때 터트릴 수 있는 강한 족쇄.
그 양이 적어서 심장을 터트릴 정도는 아니지만, 마나로 인한 폭발은 서클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린다. 그래서 한때 마법사들은 마나의 족쇄로 거래하는 방법이 남발되었지만, 그게 마법사들의 세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강민혁은 그런 위험한 기술을 거론한 것이다.
“저는 지금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힘’을 주려고 합니다. 사실 제게 굳이 필요한 거래는 아닙니다. 아까도 보았듯이, 제가 사용한 마법은 이미 유재명 대마법사님의 경지를 넘어섰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신다면 저는 앞으로 유재명 대마법사님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사람들 앞에 나서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사람이 저라고 밝히겠습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의 힘과 명성이 제게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이학범.
정상훈.
그들은 금제를 가하지 않았다.
왜냐고?
이학범은 학자다.
학문을 추구하는 그들은, 실질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지식의 원천이 자신이라는 사실만 심어줘도 충분하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밖에 없기에, 그는 배신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상훈.
그는 제자다.
후일 정상훈을 앞에 내세웠을 때, 금제를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재명은 다르다.
6서클 마법사.
그에게 6서클의 마법을 알려주는 것은, 실질적으로 힘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하다.
금제를 걸만한 타당한 명분이 있고, 그 정도 조건이 아니라면 정보를 줄 이유가 없기도 했다.
‘유재명의 명성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가 제안을 허락한다면.
강민혁은 유재명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다.
유재명은 A급 몬스터를 본인이 쓰러트렸다고 밝히고, 그가 최초의 6서클 마법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강민혁이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유재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법을 수련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6서클의 경지에 오른다면 사람들은 희망이 생겨난다. 유재명처럼 6서클에 오를 수 있다. 강민혁이라는 뜬금없는 존재는 반발을 일으키겠지만, 유재명은 그와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학범은 학자들을.
정상훈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유재명은 힘을 원하는 기존의 마법사들을.
강민혁은 세 명의 인물을 내세워서 그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강민혁이 세 인물 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새로운 마탑은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유재명이 고민에 빠졌다.
그는 진정한 마법사다.
6서클.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대가로 강민혁에게 마법사의 생명을 맡기는 것은, 섣불리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다.
100년의 역사.
마법 문명이 발전하면서, 6서클은 꿈의 경지라고 불렸다.
그런데 최초로 그것에 닿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유재명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제안.
문제는 강민혁은 본인의 말대로 아쉬울 게 없었다.
일단, 유재명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다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딱 하루, 하루가 지나면 저는 제가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렸다고 밝힐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그날 저녁.
유재명은 날이 밝기도 전에, 강민혁에게 굴복했다.
유재명과의 거래를 끝내고.
강민혁은 고영철을 만났다.
“상황은 어때?”
“나쁘지 않아. 자금이 넉넉한 것도 있지만, 강민혁이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말하니까 따르는 친구들이 많더라고.”
고영철.
그는 강민혁의 부탁을 받아 정보부대를 창설했다.
이전에는 특별함 움직임이 없었다.
일단 믿을만한 사람들을 모아서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강민혁이 최우선으로 강조한 붉은 마나석을 사들이는 데 전념했다. 그로 인해 현재 시장에 나온 붉은 마나석은 대부분 고영철이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붉은 마나석이 나오더라도 고영철에게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 과정에서 잡음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뛰어난 능력자였다.
수호문이라는 거대한 단체에서, 고영철을 차기 정보부대 대장으로 선임하려던 것은 혈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한 거야?”
탁.
고영철이 서류 뭉치를 건넸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프로필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법사라는 것.
그것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마법사들의 상세 정보였다.
“희망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지. 나는 지금부터 명분이 있는 인물을 내세워,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누어줄 생각이야.”
“재밌는 일을 벌이는 모양이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고영철이 피식, 웃었다.
강민혁이 예전과는 다르게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고영철에게 강한 원동력을 부여했다.
“그나저나 며칠 뒤에 있을 어머니 기일에 참석할 거야?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어머니의 기일.
그때, 수호문은 대대적으로 토벌을 진행한다.
미제(未濟)로 남은 난이도 높은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수호문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린다.
안다.
그것이 바로 강민혁의 뒤로 물러난 이유였다.
강민혁은 최초의 상징을 포기하고.
“당연히 가야지. 내 어머니의 기일이잖아.”
강화 전사.
그리고 마법사.
양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힘을 증명 받을 것이다.
그것이 강화 전사 출신이라서 생기는 편견, 그리고 강화 전사들이 마법사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