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63화 (63/197)

63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 >

사건 발발 30분 뒤.

학과장 최병호가 헐레벌떡 훈련장을 찾았다.

“정말이야? 정말로 A급 웨어 울프가 마법에 당해서 죽어있었다고?”

“예."

“어떻게 그런 일이!”

최병호의 표정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방금 전.

훈련장의 소식을 전달받은 최병호는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A급 몬스터가 소환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당혹스러운 소식인데, 그걸 처리한 상대가 마법사로 추정된다니. 도무지 보고받은 정보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서, 그는 한달음에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의 대장.

강화 전사 윤경호가 말했다.

“비상 신호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이후였습니다. 140구의 오크 사체와 1구의 A급 웨어 울프 사체.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 화염 마법에 당한 것처럼 새카맣게 불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도 A급 웨어 울프는 강화 전사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감식반을 불러서 사체를 확인한 결과 오라에 당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 마법사에게 당한 것이 확실합니다.”

“어허허.”

최병호의 손이 덜덜 떨렸다.

A급 몬스터.

그 괴물이 마법사에게 당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6서클, 6서클 마법사가 나타난 거야!’

확실했다.

A급 몬스터는 5서클 마법사가 떼로 몰려들어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웨어 울프의 외피를 새카맣게 불태웠다면, 이 세상의 마법사들이 그리도 간절하게 바라던 6서클 마법이 발현되었다는 뜻일 터. 최병호의 표정에 욕심이 떠올랐다. 윤경호의 가설이 정녕 사실이라면, 이건 마법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이다.

“6서클 마법사는 어디에 있지?”

“사실 마법사의 정체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윤경호도 미스터리였다.

현장에 도착한 윤경호는, 상황을 파악한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이 시스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스템 정보에 따르면 사용자는 1시간 30분 동안 D급 오크 50마리, C급 오크 전사 90마리, A급 웨어 울프 1마리를 소환했습니다. 실제로 처리한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중간에 마나 회복의 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사용자가 ‘시크릿 모드’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얼만큼의 몬스터를 소환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었지만, 어떤 사용자가 몬스터를 소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윤경호의 시선이 사체를 향했다.

A급 웨어 울프는, 그 자체만으로도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A급 웨어 울프가 소환된 것으로 보아, 사용자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스터키.

훈련장에서 난이도 제한을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사실 A급 몬스터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소환할 수 없다. 특수한 상황을 위해서 겨우 몇 마리만 배치한 상황이었고, A급 몬스터를 소환할 때는 충분한 경비 병력과 마스터키를 보유한 사람이 필요하다. 보통은 강화 전사가 ‘마스터(master)’의 자격을 증명할 때 A급 몬스터를 소환하고는 한다.

“혹시 우리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니야?”

우리.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을 뜻한다.

서울숲 아래.

A급의 샐러맨더가 서울숲의 모든 나무를 불태우면서, 그 아래 잠들어 있던 수많은 던전들의 입구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던전의 몬스터를 모두 소탕하였고, 그 위에 헌터 아카데미를 건설하면서 소멸하지 않은 던전을 훈련의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훈련용 몬스터의 육성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강화 전사에만 매달렸던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도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하였고 몬스터들의 2세대를 활용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몬스터 또한 동물(動物)이다. 먹이를 먹어 에너지를 충족하고, 교미를 하며, 새끼를 낳는다. 그 새끼를 한데 모아 우리를 만들었고, 그곳에 인공적인 던전을 형성해서 필요한 상황에 따라 훈련에 공급하는 것이 바로 훈련 시스템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수성전 훈련 때.

김무진은 ‘오크 우리’를 개방했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오크 우리와 연결된 게이트의 통로를 열어서 그들이 끊임없이 소환되도록 만든 것이다.

고로 우리에 이상이 생겼다면.

독방에 가두어진 A급 웨어 울프가 홀로 탈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닙니다. 우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결론이 간단해진다.

마스터키를 보유한 사람.

그중 한 명이 이 사건의 주인공일 터.

최병호가 흥분으로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너에게 이번 수사의 전권을 일임하겠다. 반드시, 반드시 이번 사건의 주인공을 찾아내도록.”

“예."

문책을 위함이 아니다.

마법사의 희망.

최병호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스터키.

마법사 중에서 그 키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총 5명이다.

3명은 학과장 최병호를 포함한 현재 아카데미 종사자인데, 나머지 2명의 신분이 조금 애매했다.

‘강민혁.’

처음에 그를 명단에 올렸다.

아카데미에서 상당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인데, 하필이면 사건 당시 강민혁의 알리바이가 불분명했다. 수업을 결석한 상황. 그래서 처음에는 강민혁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알리바이를 떠나서 강민혁의 힘으로는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민혁은 3서클 마법사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 속도인데, 설령 4서클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A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웨어 울프 사체에 남은 흔적은 분명히 우리가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6서클 마법의 위력이었어. 알리바이에 상관없이, 강민혁은 A급 몬스터를 처리할 능력이 없어.’

그렇다면 딱 한명.

공교롭게도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아카데미를 방문한 상태였다.

윤경호가 말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 아무리 아니라고 하셔도, 상황이 유재명 대마법사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재명.

마법 학과가 배출해낸 최고의 재능.

아카데미를 다닐 당시에도 천재라고 불리던 유재명은, 졸업 이후 서른 초반의 나이에 5서클의 경지에 오르는 경악스러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마법 학과의 명예 교수로 선정됨과 동시에 마스터키와 같은 상당한 권한을 부여 받았고, 아직도 아카데미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벌써 마흔 초반.

10년 동안 5서클의 경지에 머무른 유재명이라면, 현재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쾅!

“내가 아니라니까! 나도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했다는 그 녀석의 낯짝 좀 확인하고 싶다.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얼마나 6서클 마법에 목을 매는지, 그것이 내게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유재명이 책상을 내리쳤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빛이, 격정적인 감정을 내비쳤다.

안다.

윤경호도 유재명이 6서클 마법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황상 범인은 그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마스터키를 보유한 사람 중에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유재명 대마법사님 밖에 없는데, 만약 대마법사님이 하셨다면 굳이 이번 일을 감출 이유가 없겠지요. 마법사가 A급 몬스터를 처리했다는 것. 그것은 마법사에게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이니까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그래서 나 말고 의심되는 사람이 있나?”

“죄송합니다만, 없습니다. 있었다면 유재명 대마법사님을 이렇게 붙잡고 늘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유재명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진심으로 답답한 모양인지, 무엇이든지 도와줄 테니 얼른 그 범인을 찾으라고 닦달했다.

‘유재명은 아니야.’

처음에는 유재명을 의심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진실을 감출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유재명의 반응에서 6서클 마법에 대한 간절함이 보였다. 사건이 발발하자마자 한달음에 뛰어온 사람이다. 정말 6서클 마법으로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했냐고 재차 되묻던 유재명의 모습은, 이번 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만약 본인이 범인이고 이번 일을 감추고자 했다면, 대단한 연기자가 아닌 이상에야 6서클 마법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알겠습니다. 일단 결과가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유일하게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

유재명조차도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사실상 의심될 만한 인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이런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도 왜 자취를 감춘 거야?’

답답했다.

마스터키.

결정적인 단서 덕에 금방 찾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재명.

조사를 받고 나온 그는 분통을 터트렸다.

“대체 누구지? 누가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린 거지?”

그 소식은 그에게 엄청난 희망이었다.

6서클 마법.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유재명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아카데미의 명예 교수라는 직책은 다른 단체들과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었고, 그는 6서클 마법의 단서를 찾고자 수년의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알아낸 것은 전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유재명의 도움을 받아 5서클 마법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건 유재명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분명히 6서클 마법이었어. 그 정도의 마법이 아니고서야, A급 웨어 울프를 새카맣게 불태우는 것은 불가능해.’

꽈악.

그가 심장을 움켜잡았다.

그의 심장.

그 주변에는 현재 6개의 고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그는 정말 천재였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5년 전에 6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심장에는 6개의 서클이 있었으나, 알고 있는 마법이라고는 5서클이 한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마법 학과를 방문했던 이유가, 현재 마법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강민혁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강민혁.

대학자(大學者)라고 불리는 그의 능력이라면, 6서클 마법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실마리보다는, 6서클 마법을 알고 있는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필요했다.

‘내가 직접 알아보자.’

몸이 달아올랐다.

윤경호는 능력이 없는 인물이 아니지만, 그의 수사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여유가 남아있질 않았다.

단서는 똑같다.

마스터키.

그는 가장 먼저 강민혁을 찾았다.

그리고, 그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제가 했습니다.”

“뭐라고?”

“마스터키를 분실했거나, 누구를 빌려준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했습니다.”

".........?!"

눈을 부릅떴다.

순간 사고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강민혁을 찾은 이유.

혹시 그의 마스터키를 다른 사람이 이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 또한 겨우 17살에 불과한 강민혁이 A급 웨어 울프를 쓰러트렸을 거라는 가능성은 애초에 배제했는데,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해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기는 하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화악-

히공에 흩뿌려지는 마나.

강민혁이 캐스팅을 진행하는 모습에, 유재명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폭발(爆發).’

등급 외 마법.

시동어를 외치진 않았다.

마법의 힘이 강민혁 앞에 한데 모이는 상황에, 유재명이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강하게 응축된 마나.

그것은 5서클을 넘어서는 힘이었다.

유재명은 안목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마나의 양과 넘실거리는 힘만 보더라도, 그것이 5서클을 넘어서는 마법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버, 벌써 6서클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아닙니다. 아직 6서클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는 마법을 개발했을 뿐입니다. 물론 6서클 마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바라는, 6서클의 세계를 말이죠.”

처음이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민혁이 일으킨 ‘폭발’의 힘을 확인한 이상, 강민혁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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