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16. 시련의 탑(3) >
분뇌.
단어의 의미처럼 실제로 뇌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체는 강민혁 하나인데, 동시에 두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의식이 둘로 나누어지다니. 생존자들의 기록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어. 아니, 애초에 나처럼 오랜 시간 시련의 공간에 머문 사람도 없었어. 혹시 그로 인해 발생한 현상인가? 인간에게 정해진 압력의 수준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면서 초월한 정신력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몰라.’
‘주변의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마나의 흐름도 그대로지만, 내 내부에서만 변화가 생겼어. 그리고 육체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내게 해를 가하는 능력은 아니라는 뜻인가.’
각기 다른 생각.
하나의 생각은 분뇌 자체를 분석하고 있다면, 또 다른 생각은 주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혹시라도 몸에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머릿속이 뒤죽박죽 얽혔을 상황이다. 그런데 강민혁의 몸은, 지금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생소했다.
몸은 괜찮을지 몰라도, 강민혁의 정신은 크나큰 혼란에 빠졌다.
‘평생 나누어진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었다.
둘로 나누어진 의식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강민혁의 생각이 하나로 합쳐졌다. 분뇌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강민혁의 뇌가 발달하면서 초월(起越)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고, 원하는 상황에서만 의식을 둘로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한 사실을 반복 행위로 확인한 강민혁은, 걱정할 만한 변수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분뇌로 인한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상당한 메리트야. 더블 캐스팅의 경우 보통은 마나의 기억을 활용해서 사용하는데, 분뇌의 능력만 있으면 그러한 과정 없이 직접 캐스팅을 할 수 있어. 두 개의 생각으로 각기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는 거지. 그것 또한 더블 캐스팅과 능력은 같지만, 마법이 완성되는 속도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어.’
더블 캐스팅.
마법사가 동시에 다른 마법을 준비하는 것은 강력한 이점만큼이나 단점이 있다. 바로 마나의 기억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인해 캐스팅 속도가 느리다는 것. 그냥 사용할 경우 1분의 시간이 걸리는 마법이라면, 더블 캐스팅일 때는 1분 30초 정도가 걸린다. 물론 각각 사용했을 때 2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득이겠지만, 최초의 마법이 늦게 발현된다는 것은 엄연히 단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지의 힘으로 마법을 발현하는 마법사에게, 두 개의 의식이라는 것은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필연인가.’
시련의 탑.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강민혁은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막상 들어오니 시련의 탑에 적합한 몸이었다.
생소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마나의 흐름은 월하 심법을 낳았고.
남들이 시련이라고 부르는 압박은, 강민혁에게 분뇌라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였다.
필연.
강민혁은 절대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근거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걸 알아내야 해.’
강민혁은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클리스만이 지식을 준다고 해서 받아만 먹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에 따라 행동에 옮긴다. 그렇기에 적어도 자신의 성장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는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다.
점점 뇌에 가해지는 압박이 강해지는 상황에, 강민혁은 이제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가자.’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주변의 마나가 강민혁을 떠나보내기 싫다는 듯이 강하게 옭아맸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강민혁은 마나의 힘에 휩쓸리지 않았다.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 처음 들어갔던 통로로 향해 발을 내딛자, 처음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어둠이 강민혁을 덮쳤다.
화악-
핑-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정말 살아서 돌아왔구나.”
아비드.
그가 경악한 표정으로 강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스파크가 생존의 신호라고는 하나, 살아있다고 하기엔 강민혁이 안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다.
균열을 뚫고 나타난 강민혁의 모습에, 아비드의 표정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대체 어떻게 살아서 나온 거지?”
입이 바짝 말랐다.
몸이 떨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시련의 고통을 경험해본 아비드기에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놀랍게도 강민혁의 외형에는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나의 압력으로 인해 피부가 타들어 가거나 변형되는 현상이 있어야 하건만, 강민혁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클리스만, 시련의 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재차 물었다.
그러나 강민혁은 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아직 분뇌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어지러웠고, 동시에 육체가 비명을 질렀다.
푸스스스스.
“크윽.'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갔다.
시련의 공간에 오래 머물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민혁의 전신에 마나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생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마나 덕택이었다. 그것이 일순간 모두 빠져나가자, 강민혁은 강한 무력감을 느꼈다. 전신에 차오르던 충만한 힘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으로 인한 무력감 때문에 지금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만약 평소의 아비드였다면.
강민혁의 상태를 눈치채고 기다려주었겠지만, 지금의 아비드는 충격을 받아서 그러지 못했다.
다시 물으려는 모습에, 휘하의 마법사가 말했다.
“잠시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군. 이곳에서의 시간과 클리스만이 겪은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비드는 기다렸다.
강민혁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정신을 되찾았고, 아비드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틀이 지났다. 보통은 2시간만 지나도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공간에서, 너는 무려 이틀이나 있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리고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시련의 고통을 버틸 수 있었지?”
밀려드는 물음들.
그러나 강민혁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비드의 표정.
이해는 한다.
그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얻어낸 결과물이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답해줄 의무는 없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시련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압력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지금이었습니다.”
거짓을 더한 대답.
아비드는 믿는 기색이 아니었지만, 강민혁이 말해줄 수 있는 대답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게, 제가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틀 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아비드의 입김이 있었던 모양인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분뇌의 능력이 현실에서도 적용되는가야.’
분뇌.
의식의 양분은 마법사를 위한 능력이다. 강화 전사로서도 활용성이 많겠지만, 마법사로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클리스만의 육체보다는 강민혁에게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강민혁은 빨리 현실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래서 클리스만이 준비해둔 마법 지식을 익히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쉬웠었나?’
뜻밖의 성과였다.
지식의 습득.
그것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빨라졌다.
강민혁은 원래부터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다. 머리가 좋기 때문에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공부한 것을 기억하고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그때와는 두뇌의 능력이 완전히 달라졌다.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지식들. 예전에는 10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5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겨우 2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설마 정신력이 향상하면서 두뇌 능력도 같이 향상된 건가.’
이에 대해서는 앞선 사례가 있었다.
정신력의 향상으로 다들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지만, 이 정도로 극적인 결과물을 얻은 사람은 없었다.
겪었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4서클 마법을 거의 익힌 강민혁은, 일부러 마지막 남은 하나의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
‘조금 더 확인해보자.’
마법 도서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두뇌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상급 5서클 마법]
[상급 6서클 마법]
상위 등급의 마법서.
그것들을 꺼냈다.
마법은 서클이 향상될수록 그 체계와 방식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강민혁이 빙의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는데, 4서클 마법보다 상위 마법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락.
책장을 넘겼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복잡한 체계가 눈에 보였지만, 책장을 넘김에 있어 망설이는 기색은 없었다.
만약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최상급 마법이 아닐지라도, 5서클과 6서클 마법을 익히는 데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점점 빙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길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도서관 폐관 시간이 되었을 즈음, 강민혁은 책장을 덮었다.
“...확실해. 내 두뇌 능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어.”
머릿속에 둥둥 떠 있는 지식들.
상급 5서클 마법과 6서클 마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었다.
어느 정도는 두뇌 능력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실 강민혁은 이보다도 빠르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양쪽에 책을 펴놓고 동시에 읽더라도, 분뇌를 사용한 뇌는 머릿속으로 빨려드는 지식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뇌를 두 개로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의 양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뇌로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을 다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건 눈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기괴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분뇌의 능력은 생각보다 많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마법사로서는 엄청난 축복이야.’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몸으로는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일지라도, 그게 클리스만의 몸에 귀속된다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분뇌가 간절한 건 현실에서의 나니까.’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현실.
이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차례다.
창밖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침의 소란스러움과 창밖에서 내리쬐는 햇볕.
살짝 차가움이 감도는 공기에,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후우.”
긴장되었다.
분뇌의 능력.
이곳에서는 영향이 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혼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클리스만의 뇌 자체가 발달하였던 것이라면, 시련의 탑에서 얻은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강민혁은 클리스만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 아니다. 클리스만을 강해지게 하겠다는 목적은 그대로이나, 그래도 가장 최우선은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다.
넓은 마당.
높은 담벼락으로 외부와 차단되어있는 공간에서, 강민혁은 분뇌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아.’
쪼개지는 의식.
그리고 곧이어, 강민혁의 양손에서 마법이 피어올랐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화르르륵.
찌지직.
의도는 성공했다.
분뇌.
차원 너머에서 얻은 능력이, 현실에서도 적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