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16. 시련의 탑(2) >
심법(心法).
그것은 인위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나 그 자체의 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도하며, 마나가 인간의 육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말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신의 힘. 그래서 처음에 심법을 공부하는 사람의 경우, 추상적으로 풀어낸 심법의 운용 방법에 상당히 애를 먹는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나와 동화하며.
그들의 길을 인도한다.
마나의 재능이라는 것은 어쩌면, 타고난 육체를 떠나서 그것을 이해하는 정신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보여.’
마나의 흐름.
별처럼 반짝이는 마나들이 일정한 체계로 움직였다. 강민혁은 수도 없이 심법을 연마했던 사람이고, 그렇기에 추상적인 것에서 ‘체계’를 찾아내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이를 악물고 심법에 매달렸던 시간이, 강민혁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부여 했다.
마나가 움직였다.
공간 가득 차오른 마나가 일정의 체계를 보일 때마다, 마나가 일정한 형태로 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의 체계는 유성우다.’
예상과 같았다.
마나가 맞물리자 그것은 마나의 알갱이들을 수도 없이 뿌려댔다. 정말 유성우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마나의 알갱이가 추락하는 모습이 유성우와도 같았다. 그처럼 강민혁은 마나의 흐름만으로 어떤 형태가 형성될지 보였다. 마나의 파도가 일어났고, 마나의 산이 솟아났다.
반복되는 체계.
강민혁은 그것을 눈으로 익혔다.
‘형태는 각기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어. 그러나, 마나의 힘을 일점(一點)에 모으는 방법은 같아.’
형태가 변하기 직전.
자연의 마나들이 모여드는 특별한 체계가 있었다.
그건 마치 심법과 같았다.
심법도 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체계로 자신의 몸을 비운다.
“후우으.”
숨을 내뱉었다.
머리가 활짝 열리면서, 자신의 지식과 새로운 정보들을 조합시켰다.
수호문의 마나 심법.
처음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수호문의 선조가 그것을 강화 문명에 어울리도록 개발시켰다는 정도. 확실한 건 강화 문명 초기만 하더라도 ‘정신의 힘’을 다루는 마나 심법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마나의 체계가 증명되지 않았던 시점이고, 추상적인 이론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자유분방한 마나라 할지라도 체계는 존재하고, 그것을 알아만 낸다면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다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민혁은 수호문의 심법에 능통하기 때문에 마나의 흐름과 체계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새로운 형태의 심법’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떠올렸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마나의 흐름밖에 없었고, 강민혁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균열에서 일어나는 흐름에 따라 마나를 천천히 운용하였고, 아주 조심스럽게 마나를 ‘일 점’에 모으는 방법을 심법의 형태에 적용시켜서 사용했다.
그러자.
“....후으읍!”
화아아악-
감당할 수 없는 마나가 밀려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었던 강민혁의 모든 구멍이 확장되며, 강민혁은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숨이 막혔다.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럼에도 강민혁은 눈에 보이는 마나의 흐름을 심법에 적용시켰다. 그들을 진정시키며 단전으로 인도하려는 순간, 단전에서 격한 반발이 일었다. 강한 통증.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얼굴에, 강민혁은 단전은 지금의 방법으로 마나를 축적하는 것에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황급히 노선을 틀었다.
단전으로 향하던 마나가 자연스럽게 위로 솟아올랐고, 그 끝에는 심장에 형성된 서클이 있었다.
서클.
자연의 마나로 만든 고리.
그리고 생명력이 가장 활기차게 일어나는 심장에 있는 그것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마나가 들이닥쳤다.
콰콰콰콱.
“끄으으으윽."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강민혁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것도 아니야.’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마나 심법으로 유도하는 마나는 그 양이 적다. 마나 룸을 사용하더라도 그 수준은 인간의 육체로 버틸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마나는 겨우 1개의 서클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더구나 클리스만의 서클은, 그 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약했다.
결국.
“후욱, 후욱.”
푸스스스스.
마나가 흩어졌다.
모든 구멍을 활짝 열며, 받아들였던 마나를 배출해버렸다.
그러자 벌벌벌 떨리던 몸이 진정되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졌고, 당장 땅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돼.’
중심을 잃는다면.
차원의 미아가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강민혁은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충격을 받은 것과는 다르게 희열이 보였다.
‘마나의 흐름으로 이용한 심법은 분명히 가능했어.’
확실했다.
방금 사용한 심법으로 단전에 마나를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클은 분명히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수호문의 마나 심법이 단전에 특화된 방법이라면, 이것은 서클에 특화된 방법인 것이다.
고로.
‘현실에서 내 몸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건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이번 가설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강민혁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강민혁은 몸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마나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그것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보다 완성된 형태의 심법을 제작하도록.
단순히 시련의 공간에서 버텨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강민혁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아비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벌써 2시간이 지났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이미 포기한 듯한 휘하 마법사의 목소리만 보더라도,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안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루?
이틀?
아니, 최소 한 달 이상이다.
어쩌면 자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경우 차원의 미아가 되었다고 간주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클리스만이라는 존재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아비드는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죽었겠지.’
아비드.
그 또한 시련의 탑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7서클의 경지에 올랐으나, 당시의 기억은 아비드에게도 매우 끔찍하였다. 강력한 압력이 전신을 짓이겨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호흡을 압박하는 마나에 아비드의 머리는 당장에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끝끝내 버텨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정신의 끈을 붙잡아낸 아비드는 균열 밖으로 나왔고, 그는 1년 뒤에 7서클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래서 확신했다.
클리스만은 이미 죽었으며, 그가 살아 돌아올 방법은 절대 없다고.
‘내가 미쳤지.’
후회되었다.
시련의 탑에 도전하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를 알고 있음에도, 그는 탑의 출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총장으로서 실격이다.
결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아비드가, 클리스만이라는 어린아이를 죽음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총장의 위치에서 항상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어야만 하는데, 그는 잠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미안하다.”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다.
이만 자리를 떠나려는 그때, 균열 안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파파팟.
“초, 총장님?!”
“설마.”
아비드의 눈이 커졌다.
분명했다.
균열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는 아직 안에서 사람이 ‘생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차원의 미아가 된 것과는 다른 의미다. 온전한 정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온전한 정신으로.’
가설일 뿐이다.
균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깥에서 절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비드는 스파크가 일어난 순간부터 클리스만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무려 2시간이 지났다. 그 안에 폐인이 돼서 돌아온 사람들은 많았지만, 2시간이 지나도 차원의 미아가 되지 않은 케이스는 한 번도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정신이 버틴다 할지라도 육체부터 갈기갈기 찢겨나가야 정상이었다.
“클리스만, 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아비드.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이며 영국 최상위 계층인 그조차도, 클리스만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배경 하나.
딱, 그것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마나의 흐름에 푹 빠져서 오랜 시간을 보낸 강민혁은, 결국 마나의 흐름을 이용한 심법을 완성시켰다.
‘성공했어.’
마나 심법.
수호문의 심법과는 달랐다.
수호문의 심법은 단전이 중심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강민혁이 만들어낸 심법은 폐쇄적인 성향이 있었다. 서클이라는 순수한 마나의 집합체와 심장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없으면, 마나는 절대 일 점에 모이지 않았다. 고로 서클을 사용하는 마법사에게는 효과적인 심법이나, 강화 전사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완성된 심법.
아직 현실에서의 몸으로 직접 실험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은 먼저 심법에 이름을 붙였다.
‘월하(月下) 심법으로 하자.’
마나의 유성우.
눈앞에서 쏟아져 내리는 마나의 빛깔이 마치 달빛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심법의 완성에 과도한 심력을 쏟았기 때문일까.
월하 심법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민혁은 슬슬 몸에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게 생존자들이 말한 압력인가?’
세상의 변화.
그로부터 밀려드는 압력이 강민혁을 덮쳤다. 육체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클리스만의 육체는 여전히 생기(生氣)를 보여주었으나,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초기 증상이다.’
증상의 단계.
생존자들은 말했다.
현기증을 느끼고.
시야가 흐릿해지며.
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오고.
어느 순간부터는 뇌가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그리고 머릿속에 일어나는 압력이 절정에 달하고 귀에서 머리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이 일어날 때, 그때는 무조건 탈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게 생존자들이 생각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조금만 버티고 나온 사람들은 증상의 끝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생존자 중에 압력이 절정에 달하는 그 이상의 증상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후의 기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폐인이 되었다고 예상했다. 완전히 미쳐버린 폐인들은 본인들의 경험을 말해줄 수 없으니 말이다.
“후욱, 후욱.”
숨을 골랐다.
일단 버텼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버텨내고, 마지막 마지노선에 도달할 즈음에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시련의 탑은 머물고 있는 시간에 따라 정신의 힘이 강해진다. 그리고 차원의 균열이 이전에 들어왔던 사람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기에, 강민혁으로서는 최대한 버텨야만 했다.
현기증이 일어나는 머리.
흐릿해지는 시야.
이어서 뇌가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생존자의 증언에는 없었던 새로운 현상도 동시에 일어났다.
".........?"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열렸고, 뇌의 주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신의 확장.
누군가가 뇌를 주무르는 듯한 매우 생소한 느낌이 살아나더니, 강민혁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세상이 둘로 나뉘었다.
퍽!
의식이 쪼개졌다.
뇌의 과부하?
아니 다.
강민혁은 아직 멀쩡했다.
외관이나, 내부 모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만.
“...이게 대체.”
분뇌(分腦).
강민혁의 머리가, 동시에 두 개의 사고를 수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