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57화 (57/197)

57화.  < 16. 시련의 탑 >

시련의 탑.

가장 최근에 탑에 도전한 사람은 1년 6개월 전, 브래드 하그리브스(Brad Hargreaves)라는 사람이었다.

당시 영국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던 그는, 8서클의 벽을 앞두고 시련의 탑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때만 하더라도 시련의 탑은 폐쇄되지 않았다. 게이트 사건 발발 이후 시련의 탑 통과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시련의 강도가 강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안의 상황을 증명해줄 사람이 모두 폐인이 되어 돌아오다 보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시련의 과실은 달콤하다.

폐쇄라는 선택은 도무지 택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간 도전자들이 실패 한 이유가 그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브래드 하그리브스만큼은 시련을 통과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브래드 하그리브스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련의 탑에 진입했다.

그리고 시련의 1시간.

보통 시련은 1시간 안에 끝난다.

그건 그만큼 시련이 짧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균열 안과 밖의 시간이 다름을 말한다.

"시련의 탑. 그 안에 형성된 공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그 안에서 보낸 10시간이 현실에서는 1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10초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인간의 육체로 버틸 수 있는 것은 현실에서의 1시간이 한계고, 그 이상 시련의 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차원의 미아가 되었거나 아니면 폐인이 되는 것이다.”

생존자의 증언.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겁에 질려 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탑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겨우 5분.

브래드 하그리브스가 탑에 도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로 세상에 나타났다.

“히, 히히.”

넋을 잃은 얼굴.

표정과는 따로 노는 웃음.

겨우 20살의 나이에 7서클을 형성하면서 영국 최고의 재능이라 불렸던 그가, 탑의 시련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것은 당시 마법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브래드 하그리브스의 정신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고, 마나 룸 훈련도 5단계로 진행할 만큼 단단한 의지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 브래드 하그리브스가 겨우 5분 만에 폐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때 확신했다.

“브래드 하그리브스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천재였다. 그의 모든 행보는 세상의 상식을 벗어났으며, 그의 성장에 사람들은 그보다 뛰어난 사람은 존재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그런 브래드 하그리브스조차도 시련의 탑에 무너졌다면, 더 이상 시련의 탑은 마법사를 성장시키는 기연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고로 현 시간부로 전 세계 시련의 탑은 폐쇄 조치를 내리도록 하겠다.”

타당한 판단이었다.

시련의 탑은 그렇게 폐쇄되었다.

이후에도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은 있었다.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한다. 브래드 하그리브스라는 선례가 있음에도 몰래 시련의 탑에 도전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도전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고?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래드 하그리브스의 도전이 마지막으로 남은 공식적인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번 도전 또한,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아비드의 권한으로 진행되는 비공식적인 도전이었다.

“충분히 고민했나?”

아비드.

그가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아비드는 이게 얼마나 미친 결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강민혁은 겨우 1서클 마법사다. 육체적으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정신의 세계에서 1서클 밖에 이루지 못한 사람이 시련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비드는 강민혁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건 강민혁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의 특별함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택한 사람.

선택이라는 단어가 맞는지도 모르겠으나, 평범하지 않음을 알기에 시련의 재앙을 허락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풀숲이 우거진 금지(禁地).

그 중심에 시련의 탑이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사실 ‘건축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차원의 균열이 바깥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봉인하고 있는 것일 뿐,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발을 들이면, 멋대로 나갈 수 없는 그런 세계.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준비됐습니다.”

“알겠다.”

아비드가 길을 열었다.

다시 의사를 묻지는 않았으나, 시련의 탑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민혁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차원에 휩쓸리는 순간, 네 정신은 길을 잃게 될 테니까.”

마지막 말.

그 말을 끝으로, 강민혁은 시련의 어둠에 잠식되었다.

화악-

의식이 확장되었다.

시련의 탑에 발을 들인 순간, 자신이 서있는 땅을 제외하고는 온 세상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쿠구구구구구궁-

굉음이 들렸다

그러다, 마치 빅뱅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거대한 어둠이 강민혁을 덮쳤다.

팟!

세상이 변했다.

분명 방금까지는 상식적인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식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서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문득, 생존자의 말이 떠올랐다.

“탑의 시련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도전자에게 강력한 압력을 선사한다. 육체를 짓누르고, 정신을 압박하는 극한의 고통. 인간이 참을 수 없는 종류의 압력에 결국 인간의 정신은 붕괴하고 만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상의 변화가, 강민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파바바박.

하늘로 추정되는 곳이 파랗게 물들었다. 빠르게 떨어지는 마나의 추락이 유성우의 형상으로 변했고, 땅이 들썩이더니 마나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눈이 팽팽 돌았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아니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세상이었다. 환영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세상.

이곳은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시련의 탑에서 버티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인간의 정신력은 강해진다고 했어. 그리고 정신력에 따라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달콤함 과실에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고.’

바로 뒤.

조금만 걸어가면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

정말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폐인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다.

성과를 얻으려고 버티다가 정신이 먼저 붕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차원의 흐름에 휩쓸려서 차원의 미아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압력을 버텨내는 힘과 본인을 절제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안에서는 겨우 티끌만 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깥세상에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종류의 기연이 되었다.

강민혁은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이와 같은 상식이 무너진 세상에서 보여주는 용기는, 용기가 아니라 객기라 표현하는 것이니 말이다.

쿠쿠쿠쿠쿠쿵.

공간이 일그러졌다.

땅바닥이 일어나며 불쑥 초록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건 순식간에 강민혁을 작은 점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산을 형성하였다. 그처럼 공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였다. 강민혁이 서 있는 그 자리만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 다른 공간은 그러지 않았다.

공간의 중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강한 압력이 되어 강민혁에게 밀려들었다.

드드드드.

‘이상해.’

의문이 들었다.

시련의 탑 경험자들이 쓴 글에 의하면, 그들은 시련 초반부터 강한 압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건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종류의 압력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련의 공간은 도전자에게 강력한 압력을 선사하며, 그 압력에 정신이 붕괴하기 전에 도망쳐 나와야만 한다.”

압력.

누누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발을 들은 대가로, 그 안에서는 계속 압력에 시달린다고 했다. 예외는 없었다. 시련을 통과한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압력의 고통에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했고, 그러한 사람들의 의견이 모여 ‘상식’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강민혁 또한 압력을 예상했다.

그런데.

‘...나는 왜 압력이 느껴지지 않지?’

뒤늦게 알았다.

자신의 몸은 압력을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말하는 현상이, 강민혁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시련의 탑은 게임의 퀘스트 같은 것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마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들이 ‘하나의 체계’를 만들었을 뿐이다.

탑의 공간이 어떻고, 탑의 압력이 어떤 수준이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지. 그것은 신이 정답을 제시해준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도전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어서 알아낸 정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진실이라고 볼 수 없었고, 변수가 일어날 때면 어김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은 있었다.

시련의 압력은 대단히 강한 것이고, 그 압력에 도전자들은 시작부터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압력이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평온해.’

이상했다.

사람들이 강조하던 압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강민혁의 육체는 평온하게 주변의 흐름을 받아들였다. 안정적이었다. 숱하게 읽었던 경험과는 다른 현상에, 강민혁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지?’

자신의 정신력이 강해서?

아니다.

그것 때문일 리는 없다.

시련의 탑에 도전한 사람 중에는 고서클 마법사들이 많다. 그 정도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텐데,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의 정신력이 더 강해서 버틴다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 아니면 단순히 이 세상과 체질이 맞아서? 정말 그런 황당할 정도로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강민혁은 의도와 우연이 맞아들어가는 순간을 믿지 않는다.

이건 필연(必然)이다.

우연히 상황이 들어맞은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을 터.

강민혁은 주변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련의 압력은 강해지고, 그 압력을 버텨낼수록 인간의 정신력 또한 강해진다.

“후우.”

숨을 골랐다.

일단은 천천히.

압력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지금은 천천히 주변을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강민혁은 처음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주변을 보았고, 주변은 수많은 변화로 강민혁의 눈을 어지럽혔다.

얼마나 지켜보았을까.

순간 강민혁의 눈빛이 변했다.

“...어?"

마나의 흐름.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일정하게 움직이는 체계가 보였다.

정말 황당한 주장일 수도 있겠지만 강민혁은 그게 수호문의 심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세상이 인간의 육체라고 비유한다면, 저런 방식의 흐름은 마나를 유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생각이라는 것은 그 처음이 어렵다. 이전에 는 세상의 변화를 단순하게 바라보았다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움직이는 마나의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변화하는 세상.

강민혁은 가만히, 그 세상의 흐름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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