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56화 (56/197)

56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6) >

총장실을 나오자 강민혁은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붉은 머리의 마법사.

바로 엘리샤였다.

“따라와. 할 얘기가 있어.”

그녀는 상당히 직설적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한적한 장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겨우 검 한 자루로 어떻게 웨어 울프들을 상대할 수 있었냐고. 살면서 그런 기술은 처음 봤어. 네 검에서 일어나는 이질적인 파동. 그게 웨어 울프들을 자극한 거지? 넌 겁도 없냐? 그 많은 웨어 울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혼자만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엘리샤.

사실 그녀는 세상일에 그리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강민혁의 활약은 CCTV 영상으로는 그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건 해리 윌슨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해리 윌슨은 3서클 마법사고, 그녀보다 아는 것이 적기 때문에 강민혁이 얼마나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클리스만은 괴물이야.’

전투 당시.

엘리샤는 강민혁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몬스터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마나의 파동도 색달랐지만,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텨내는 강민혁의 모습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골렘 슈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육체 능력. 분명히 마나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효과인 것 같은데, 엘리샤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서 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강민혁을 찾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엘리샤로서는, 강민혁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그걸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으흠. 내가 너무 무례했나. 하긴, 그게 네 비기라고 한다면 굳이 설명할 의무는 없지.”

생각보다 수긍이 빨랐다.

그러자, 그녀는 방법을 달리 제시했다.

“네 기술의 전부를 설명해달라고 말하지는 않을게. 그러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대강이라도 설명할 수는 없어? 난 궁금한 건 정말 못 참는단 말이야. 대신 너도 내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그래요?”

강민혁이 엘리샤의 표정을 살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전투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대단했는데, 생각보다는 단순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가성 거래라.’

마침 궁금한 게 있었다.

“3서클 마법으로 웨어 울프를 제압하던 방법. 그걸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저도 제가 사용하는 기술의 원리를 조금은 알려드릴게요. 싫으시다면 거래는 없던걸로 하고. 어떻게 할래요?”

엘리샤가 강민혁을 보고 감탄했듯.

강민혁도 엘리샤를 보며 감탄했다.

특히 3서클 마법으로 웨어 울프를 제압할 때는, 강민혁도 그 원리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파이어 버스트.”

화르르륵!

그건 분명히 3서클 마법이었다.

B급의 웨어 울프의 외피도 뚫지 못할 마법일 텐데, 폭발에 휩쓸린 웨어 울프는 속에서부터 불길을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건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엘리샤의 존재가 더 뇌리에 강하게 남았었던 것인데, 마침 그녀가 찾아와서 강민혁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아씨.”

엘리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민혁의 요구에 고민하던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잘 모릅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기술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저 또한 상황이 다르지 않으니까요.”

".........."

엘리샤가 고민에 빠졌다.

홍염(紅德)의 비기.

일인전승(一人傳承)으로 내려오는 기술의 일부를 알려주는 것은 못마땅한 일이었지만, 새로운 세상의 지식은 엘리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그만큼 강민혁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식에 대한 욕심이 곧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마법사로서,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알겠어. 네 거래를 승낙하지.”

자리를 옮겼다.

마법 훈련장에서 실험용 몬스터를 소환한 엘리샤는, 묶여있는 몬스터를 앞에 두고 설명했다.

“일단 내가 사용한 기술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해. 마나 명상을 통해 서클에 마나를 쌓을 때, 화(火) 속성으로만 형성된 서클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해. 이건 서클의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염 마법을 사용할 때 필요한 화속성 마나의 저장고라고 생각하면 돼. 일단 그 방법을 설명해줄게.”

상당히 특이한 이론이었다.

마나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화 속성만을 분리하는 것인데, 사실 이건 매우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화염의 속성은 파멸(破減)을 상징한다. 원소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고, 그걸 잘못 분리했다가는 마법사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엘리샤의 설명대로라면 위험 부담성 없이 화 속성 마나의 분리가 가능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지식에 귀가 열렸다

“화 속성의 서클을 형성하면 이제는 네가 원했던 기술의 응용이 가능해. 화 속성의 마나를 가루처럼 퍼트려서 상대가 흡입하게 만들고, 그 대상에게 화염 마법을 사용하면 체내에 흡입된 화 속성의 마나가 불길로 변하게 되는 거지. 상당히 변칙적인 기술이라서 외피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마나를 다루는데 능하다면 사실 방어가 간단한 방법이기도 해. 내부에 마나를 일으키면, 화 속성의 마나는 금방 사그라지고 말거든.”

직접 시험을 보여주었다.

묶여있는 몬스터에게 화 속성의 마나를 흡입시키고 마법을 사용하자, 이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간단하지?”

화 속성의 서클을 형성하는 것은 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엘리샤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홍염의 마법.

그게 일인전승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화 속성의 서클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기술 덕분이었다. 화 속성의 서클을 형성한 정도로는 큰 효과가 없기에, 엘리샤는 거래에 응할 수 있었다.

‘화 속성의 서클이라.’

재밌는 방법이었다.

강민혁의 세상에서도 도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험자들이 모두 죽어나가며 결국 사장되었다.

괜찮은 거래였다.

화 속성의 서클을 활용하면 화염 마법의 위력이 상승하는 데다, 변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얻었다. 처음 엘리샤의 태도는 무례했지만, 그녀는 상당히 합리적인 거래 태도를 보여주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수호 검법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고, 제가 어떻게 초인의 육체 능력을 보여주었는지 설명해드릴게요. 인간의 몸에는 단전이라는 곳이 있어요. 마나 명상과 같은 방법으로 마나를 몸에 축적할 때, 서클이 아니라 단전에 마나를 보내면서 인간의 육체를 강화시키는 거죠. 그 방법은.......................... 이러한 방식으로, 저는 보통의 인간보다는 조금 우월한 능력을 얻을 수 있었어요.”

설명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강민혁이 말한 지식.

그건 정말 강화 문명의 기본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는 강민혁과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없다.

매우 기본적인 이론을 설명했을 뿐, 심법의 체계와 같은 ‘진짜 중요한 정보’들을 생략해서 말했다.

양심에 찔리진 않았다.

엘리샤도 자신과 다르지 않을 터.

서로 말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정보를 내놓았을 뿐, 진짜 중요한 정보를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오마이 갓.”

엘리샤.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와,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어? 너 진짜 천재구나?”

강민혁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마법 문명 세상의 지식이 강화 문명에서 고차원의 지식이었던 것처럼, 이쪽 세상도 다르지 않다.

강화 문명.

그것의 일부는, 엘리샤에게 있어 신세계였다.

일상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게이트의 여파는 모두 정리되었고, 학생들은 제 자리로 돌아서 본인의 역할대로 수업을 받았다.

‘기분이 이상하네.’

수업을 받는 학생들.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아직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도 없는 어린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린 드래곤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노련한 마법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상당한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겪어왔던 세월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일까. 실전 수업만 겪어도 벌벌 떨었던 강화 문명의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삶과 죽음에 조금은 익숙한 것 같았다.

특히.

‘다들 근접전에 능숙했어.’

강민혁은 다른 구역의 CCTV 영상을 보았다.

이 구역과 마찬가지로 성벽을 넘어온 웨어 울프들이 있었는데, 고학년의 마법사들이 그들을 단번에 제압하였다. 웨어 울프가 코앞에서 달려드는데도 당황하지 않았고, 무빙 캐스팅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런 과정에서 강민혁도 모르는 여러 기술들이 사용되었다.

워 메이지.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아직 상상 속의 일이, 이쪽 세상에서는 이미 실현되어있는 것 같았다.

“오늘의 수업은.........."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게 들을 이유가 없는 수업이라, 강민혁은 시선을 내려 책상 위에 있는 ‘기간트의 역사’라는 책을 보았다.

[기간트의 제작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피를 물려받은 알렉세이 레미조프(Aleksei Remizov)라는 인물이다. 몬스터의 출현으로 국가를 잃은 그는, 오로지 몬스터의 척살을 위해 기간트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렇게 제작된 기간트는 현재 힘을 비교하는 척도가 되었다. 얼마나 강력한 기간트와 대마법사를 보유했느냐에 따라 힘을 인정받는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기간트를 제작하는 방법은 특급 기밀로 취급한다. 마나석의 배치와 광물의 종류, 표면에 새겨넣는 마법진에 따라 기간트의 위력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더 고급 제작 기술일수록 그 가치를 인정 받는다.]

기간트.

강민혁을 충격에 빠트린 마법 문명의 정수.

기간트의 경우에는, 상당한 발전을 이룬 이 세상에서도 고급 기술로 취급하고 있었다.

일반 단체에서는 제작할 기술이 없어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왕실 마법 아카데미 정도되는 세력이 2~3기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것도 표면적으로 알려진 사실일 뿐이지, 진짜로는 어느 정도의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기간트의 힘은 진짜다.

강민혁이 목격한 정도의 힘이라면, 강화 문명에서도 그 힘은 분명히 먹힌다.

‘내 힘으로 기간트의 제작 방법을 알아낼 방도는 없어. 각 단체에서도 기밀로 취급하는 기술을, 1학년 학과생에 불과한 내게 알려줄리는 없을 테니까. 일단 기간트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자. 클리스만이 내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내게는 너무 과분한 기술 이기도 해.’

생각을 정리했다.

이후부터는 다시 반복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에 나가서 클리스만의 지식을 습득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클리스만에게 가르칠 지식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러한 일정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내가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기자.’

이번 빙의.

강민혁을 중심으로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다.

클리스만의 영혼이 어떠한 상태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길 필요성이 있었다. 혹시라도 클리스만의 영혼이 다른 곳에 있거나, 아니면 의식의 저편에 잠들어 있는 상태라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식을 습득하기만 할 때는 그 중요성을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진즉에 필요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업 도중에 그린 드래곤 상황이 발생..........]

글을 써 내려가는 강민혁.

그렇게 정신없는 나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아비드와 약속한 날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