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4) >
강민혁의 시선이 바삐 움직였다.
자신의 틈을 노리는 웨어 울프의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오라를 일으킨 검으로 상대를 베었다.
서걱!
크아아악!
생각한 것 그대로의 상황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웨어 울프의 공격은 한발 빠른 강민혁의 대응에 실패로 돌아갔고, 오라는 적당한 강도와 스피드로 웨어 울프의 사지를 갈랐다. 조금의 이질감도 없는 상황. 오히려 완벽한 결과에, 강민혁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뭐지?’
클리스만.
그는 나이가 어리고, 마나로 인한 육체적인 단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상식적인 상황이었다면 강민혁의 생각과는 다르게 육체 반응이 조금씩은 늦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리스만의 육체는 강민혁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화액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으로 쌓은 마나는 A급 몬스터를 베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고, 클리스만의 육체는 강민혁이 바라는 만큼의 힘과 스피드를 표출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불가능하다.
아무리 강민혁의 ‘의식’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나, 육체 반응은 확실히 상식을 넘어섰다.
푹!
끄르르르륵.
턱밑을 찌르는 검에 웨어 울프가 피거품을 물었다.
조금이라도 반응 속도가 늦었다면 어깨가 물어뜯겼겠지만, 웨어 울프는 의도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 클리스만의 육체는 훈련의 기간과 나이를 뛰어넘었다. 클리스만의 수준에서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능력이었고, 마치 바짝 말랐던 스펀지가 다시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순간순간마다 능력치가 상승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나의 재능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재능은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넌 정말 미스터리한 존재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제는 이해하길 포기했다.
끊임없이 클리스만에 대해서 알아갈 생각이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식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클리스만은 천재다.
강화 전사로서 타고난 육체.
그게 끝이다.
현재의 강민혁으로서는, 그 이상의 가설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준호, 그 이상이야.’
강민혁은 평생을 살면서, 이준호보다 뛰어난 재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아버지인 강덕철도 마찬가지다.
강덕철은 대단한 강자이지만, 단순히 재능만 비교하자면 절대 이준호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클리스만은 이준호조차도 넘어서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나의 재능, 육체적인 능력. 무엇하나 빠질 것이 없었다. 자신이 조금만 단련시켰음에도 이런 능력을 보여줄 정도라면, 충분한 시간과 몸을 다루는 능력을 갖춘 클리스만은 후일 괴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부럽군.’
진심이었다.
A급 몬스터.
사람들은 그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느냐, 쓰러트릴 수 없느냐를 두고 헌터의 가능성을 측정한다.
그들이 강하기 때문에?
맞다.
A급 몬스터는 가장 위협적인 적이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A급 몬스터는 상위 포식자이나, 그렇다고 개체수가 적은 몬스터가 아니다. 헌터로서 일하다 보면 숱하게 보게 되는 종류의 몬스터고, 그래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지 못하는 헌터는 인정받지 못한다.
수십, 수백 마리의 A급 몬스터.
그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A급 몬스터에게 상처도 주지 못하는 헌터가 인정받을 리가 있겠는가.
6서클의 벽에 막힌 마법사가.
그리고 마나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강민혁이.
강화 문명의 세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A급이라는 기준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리스만은 다르다.
그의 차고 넘치는 가능성은, 강민혁으로서도 그 끝을 예상할 수 없었다.
‘확실한건.’
카앙!
수호검법의 수비 초식이 발휘되었다. 웨어 울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단단한 마나는 강민혁이 받을 충격을 완화 시켜주었다.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아무리 성벽 위라는 좁은 공간이라고는 하나, 강민혁의 ‘경험’과 클리스만의 ‘육체적인 재능’은 A급 몬스터가 포함된 적들을 단 한 마리도 뒤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이게 만약 현실에서 자신의 몸이라면 정말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클리스만의 육체를 주도하는 강민혁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클리스만, 넌 더 이상 약하지 않아.’
서걱!
날아가는 웨어 울프의 머리.
성벽 위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에픽 몬스터.
그것은 재앙이었다.
수천 마리의 웨어 울프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힘으로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성벽을 넘지 못했을 텐데, 웨어 울프 로드의 버프를 받아 결국 성벽을 넘어섰다. 웬만한 국가는 그대로 몰락해버렸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게이트였지만,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과연.
영국의 중심이라고 할만 했다.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으나, 성벽 위에서 웨어 울프를 완전히 몰아내며 결국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씨 블라스트(Sea Blaster).”
화아악-
콸콸콸콸!
또 다른 대마법사가 등장해 사용한 7서클 마법에, 엄청난 위력의 해일이 그대로 웨어 울프 무리를 휩쓸었다. 성벽 위에서 자비 없이 폭격하는 마법. 마법사가 왜 수성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지를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강화 문명의 마법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 세상 마법사들의 위력은 상식을 초월한다는 점이었다.
쿵!
쿠르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도 게이트는 닫히지 않았다.
‘결국 웨어 울프 로드를 처리해야 해.’
강민혁이 피를 털어내며 성벽 너머를 보았다.
가장 최후방에 위치한 웨어 울프 로드.
에픽 몬스터가 무서운 점은, 그 자체의 위력을 떠나서 그가 죽지 않으면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고로 지금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왕실 마법 아카데미 사람들의 체력과 마나가 떨어지는 시기가 올 테고, 그때는 주도권이 웨어 울프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마법사들은 무리하게 로드를 공격하지 않았다.
‘노리는 수가 있는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는 세상보다도 오랜 시간 몬스터와 싸웠던 이 세상의 사람들이, 에픽 몬스터의 특성을 놓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성벽 위에서 엄청난 마나가 휘몰아쳤다.
“서먼 기간트(summon Gigant)."
화아아악-
바람이 휘몰아쳤다.
마나가 일순간에 성벽 위로 집중되더니, 아공간이 쩍 열리며 난생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고렘?’
분명했다.
그것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생명체인 고렘(golem)이었다.
강민혁의 세상에 있는 것과는 그 크기와 마력의 양이 완전히 달랐지만, 기간트라고 불린 괴물은 고렘의 특성을 하고 있었다. 특수한 광물로 만들어진 몸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그 크기는 거의 10M에 달했고, 머리에는 황소의 뿔과 양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 었었다.
쿵.
기간트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퍼억-
콰콰콰콰쾅!
그대로 전방에 있는 웨어 울프들이 단번에 휩쓸렸다.
그 강력한 위력에, 강민혁은 넋을 잃었다.
‘이게 고렘이라고?’
자신의 기억과는 달랐다.
자신의 세상에서 고렘은 아직 완벽하게 개발되지 않았고, AI 로봇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모습처럼 겨우 몇 가지 행동 명령어를 실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고렘은 달랐다. 기간트가 뿜어내는 막대한 양의 마력에, 강민혁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래?”
바로 옆.
고개를 돌리자, 엘리샤가 강민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이상한 표정은 뭐야? 기간트 처음 봐?”
클리스만의 세상.
마법 문명이 발달한 이 세상에서 육체를 단련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렘의 발명은 마법 문명의 판도를 바꾸었다.”
고렘.
마법 생명체의 종류는 다양하다.
인간과 비슷한 사이즈를 하고 있는 병사 고렘도 있고, 마법사들이 직접 탑승해서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슈트 형태의 고렘도 있다. 그러나 이 고렘 기술력의 꽃이라고 불리는 집합체는, 바로 엄청난 크기와 마력을 자랑하는 전투용 병기 기간트였다.
기간트.
그것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적 자원과 광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들여서라도 기간트를 제작할 만큼, 기간트는 사람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바로 지금처럼.
콰앙!
기간트가 웨어 울프들을 짓밟았다. 그중에는 A급의 웨어 울프도 있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웨어 울프는 기간트가 뿜어내는 강력한 마력에 그대로 짓이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는 기간트. 그건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도끼날에서 일어나는 마력이 주변의 몬스터들을 덮쳤다.
콰콰콰콰쾅!
기간트는 재앙이었다.
매우 특수한 광물인 오리하르콘과 수천 개의 마나석을 만들어낸 집합체.
그리고 이 괴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동력(兵士)을 주입해야만 한다.
화아아악-
성벽 위.
수십 명의 마법사가 마나 링크를 통해 기간트에게 마력을 주입하였다. 그 많은 인원으로도 기간트를 오래 지속시킬 수는 없겠지만, 기간트의 힘은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에픽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무기. 기간트가, 몬스터들을 뚫고 웨어 울프 로드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플라이(fly).”
“플라이.”
마법사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껏 성벽 위에서 수성에 전념하던 그들이, 기간트를 따라서 웨어 울프 로드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웨어 울프 로드를 공격하였다.
기간트의 강력한 힘이 웨어 울프 로드를 강타하였고, 하늘에서는 마법사들의 마법이 웨어 울프 로드에게 떨어졌다. 웨어 울프 로드의 반항은 격렬했다. 본인이 어째서 에픽 몬스터인지를 증명하듯, 그의 강력한 발톱 공격은 기간트의 단단한 몸체조차도 크게 찌그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플레어(Flare).”
“파이어 레인(Fire Rain).”
화르르륵!
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사들의 마법에 웨어 울프 로드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기간트에게 발이 완전히 묶여버렸고, 그렇게 시간을 버는 사이에 마법사들이 천천히 로드의 체력을 깎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땅이 흔들렸고, 하늘이 분노했다.
하지만 머리 위로 떨어지는 기간트의 도끼에, 결국 웨어 울프 로드로서도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치지지지직.
게이트가 일그러졌다.
로드의 죽음을 증명하듯 점점 사라지는 암흑의 통로에, 강민혁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이 세상의 저력이구나.’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법사들.
근접전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힘으로, 대체 어떻게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일까.
클리스만의 세상은 2000년의 역사 동안 본인들만의 생존 방식을 구축하였다. 유리한 고지를 철저하게 활용해서 적의 숫자를 줄이고, 근접에서 싸우는 경우에는 기간트와 같은 마법 인공물을 앞에 내세웠다. 그러한 과정에서, 검을 휘두르는 전사들의 힘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야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강민혁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이번 전투를 통해서 완전히 사라졌다.
‘마법사들은 강해.’
그들의 선택은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강화 문명을 배제한 것은, 그래도 될 만큼의 충분한 힘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삐이이이이익-
[코드 레드 종료, 코드 레드 종료]
[그린 드래곤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상황 종료.
강민혁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투를 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격렬한 전투로 인해 엄청난 피로감이 그의 몸을 덮쳤다.
그런데 이상했다.
전투가 끝났음에도 너무나도 고요한 상황에, 강민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
강민혁이 기간트의 등장에 넋을 잃은 것처럼, C-1 구역의 사람들은 강민혁의 활약에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