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3) >
수호검법.
그것은 단순히 ‘검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나를 동반했을 때 나타나는 수호검법의 특성이야말로, 수호검법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화악-
감민혁을 중심으로 마나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내부에서 수호문의 심법을 사용하였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마나의 흐름이 검에서 표출되었다. 은은하게 일어나는 마나. 활활 타오르는 강(强)의 기운이 아니라, 부드럽게 흘러가는 유(柔)의 기운이 강민혁의 전신을 뒤덮었다.
캬우우우우-
캬악!
웨어 울프들이 성벽을 넘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다.
적의로 넘실거리는 눈빛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경비병들이 아니라 강민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온다!’
타다다닥!
다수의 웨어 울프.
그들이 일제히 강민혁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도중에 차징을 당하고, 마법에 맞았으며, 수십 발의 확실히 전신에 박혔지만, 그들의 시선은 강민혁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수호검법의 효과였다. 수호검법의 오라는 묘한 파동을 일으키는데, 이 파동은 몬스터들로 하여금 강한 적의를 이끌어낸다.
전장의 한복판.
공간이 분리되었다.
몬스터들의 의식 속에는 강민혁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위험은 강민혁 홀로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캬악!
지척에 도달한 웨어 울프.
그의 팔뚝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강민혁의 얼굴을 할퀴었다.
카앙-!
간발의 차이였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뒤늦게 도착한 웨어 울프들의 공격이 연달아서 강민혁에게 작렬했다.
캉!
카카카캉!
불꽃이 튀었다.
강민혁의 사방에서 웨어 울프의 공격이 쇄도했다. 정면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쳐냈더니 바로 옆에서 웨어 울프가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그의 이빨을 막아내는 사이에 하늘 위에서 서늘한 기운이 덮쳤다. 웨어 울프의 머리를 뛰어넘어서 공격하는 또 다른 웨어 울프. 붉게 물든 그들의 눈빛은 어떻게든 강민혁을 죽여버리겠다는 강한 살의를 보였다.
‘수호검법 수비초식.’
확!
전반부 초식.
강민혁이 웨어 울프의 공격을 흘려보냈고, 동시에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간결하게 휘둘렀다.
푸확!
피가 튀었다.
B급의 웨어 울프가 끄르륵 피가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다른 웨어 울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정신없는 공방이었다.
가장 앞에서.
강민혁은 혼자만의 힘으로 웨어 울프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상황이었지만, 강민혁의 눈빛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강민혁은 익숙했다.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가장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후계자의 숙명이었다.
강민혁의 아버지.
강덕철은 ‘레드 게이트’가 발발되었을 때, 홀로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막아냈었다.
그는 단순히 수호문의 문주라서 수호검이라 불린 게 아니라, 그 자격을 증명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수호검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희망. 만약 서울에 대재앙이 닥친다면, 한국의 국민들은 수호검이 나타나 가장 최전방에서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줄 거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포기했다.
강덕철이 강조하는 후계자의 능력이란, 단순히 지도력을 떠나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사지(死地)의 가장 앞.
그곳에서 강하지 않은 자는, 수호문의 이름을 달고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서걱!
웨어 울프의 머리를 베었다.
숨이 차올랐고, 피비린내는 이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량의 피를 뒤집어썼다. 웨어 울프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강민혁은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히죽.
‘좋네.’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수호검법이 자신의 의도대로 발현되는 상황에 기뻐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동료의 부상.
그건 강민혁의 마나가 수호검법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제대로 된 수호검법이었다면 데스 나이트는 동료를 보지 않았을 테고, 부상을 당할 일도 절대 없었을 것이다.
‘클리스만.’
푸확!
웨어 울프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뒤로 또 다른 웨어 울프가 달려들었지만, 강민혁은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버텼다.
‘내가 너의 몸으로 행하는 경험들. 이것을 똑똑히 기억해둬. 네가 앞으로 강해지길 바란다면, 지금부터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 네 궁극적인 목표가 될 테니까.’
수호보법을 밟았다.
뒤로 물러나되.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튀어나가되.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수호검법과 수호보법은 자리를 지키고, 내 뒤에 있는 동료들을 지키는 방법.
캬악!
캭!
강민혁으로부터 타오르는 오라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웨어 울프 무리를 정면으로 맞이했다.
강민혁의 도움을 받았던 학생.
해리 윌슨(Harry Wilson)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제길.”
그린 드래곤 훈련.
숱하게 진행했던 훈련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발발한 상황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막상 본인의 목숨이 진짜로 위태로워지자 평정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악취를 풍겨대는 괴물. A급의 웨어 울프는, 이전에 상대했던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했다.
덜덜덜.
몸이 떨렸다.
일어나서 전투에 가담해야 하지만, 놀람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A급 웨어 울프를 처리한 것으로도 모자라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클리스만이라고?”
경악했다.
클리스만.
그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이름이다.
역사상 제일의 열등생.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역사를 통틀어 1서클 마법사가 입학한 경우는 없는데, 클리스만은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말이 많았다. 클리스만이 어떻게 입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클리스만을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는 여러 소문들. 아카데미 내에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클리스만은 철저하게 아카데미에서 부정 받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지금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앞에 나섰다.
그것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한자루의 검으로 웨어 울프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검.
이 세상에서 외면당한 무기.
A급 몬스터의 외피를 잘라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무기인데, 클리스만의 손에서는 웨어 울프의 외피가 쩍쩍 갈라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성벽에 올라서는 웨어 울프들이 모두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장관이었다.
강민혁이 아니었다면 학살이 벌어질 상황이었는데, 개인의 능력이 그런 참극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여성이었다.
붉게 자라난 머리를 치렁치렁 허리까지 길렀는데, 그녀를 발견한 해리 윌슨의 눈동자가 커졌다.
“엘리샤(Elisha) 선배님!”
엘리샤.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4학년생으로서, 현재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마법사.
홍염(紅德)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그녀의 등장에, 해리 윌슨의 표정은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
“저게 대체 뭐야?”
엘리샤의 시선.
그 끝에는 강민혁이 있었다.
C-1 구역이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지원을 왔는데, 그녀의 앞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그게 웨어 울프가 방어벽을 뚫었는데, 클리스만이 나서서 웨어 울프를 막았어요. 아참, 클리스만이 누군지 모르시겠구나. 클리스만은 저랑 같은 1학년 동급생인데, 1서클 마법사여서 아카데미의 열등생으로 유명한 녀석이에요. 그, 그런데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횡설수설했다.
당황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해리 윌슨의 모습에, 엘리샤는 고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혼자서 막았다고?’
웨어 울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1학년생의 실력으로는 과한 상대지만, 그렇다고 해리 윌슨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강민혁이 직접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서걱!
하늘로 솟구치는 웨어 울프의 머리.
다수의 웨어 울프를 상대하면서도, 강민혁은 물러나기는커녕 꾸역꾸역 웨어 울프를 처리하고 있었다.
황당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몬스터부터 처리하자.’
화르륵.
홍염의 마법사.
그녀의 양손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캐스팅을 마쳤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마력에, 그녀가 소리쳤다.
“비켜!”
강민혁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마법은 강력한 폭발력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아군 또한 위험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냥 사용해!”
강민혁은 엘리샤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나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웨어 울프들.
엘리샤의 마법이 그들에게 강한 피해를 입힌다 할지라도, 자신이 비키면 분명히 뒤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았다. 강민혁의 고집에, 엘리샤의 표정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이런 미친 새끼.”
이를 악물었다.
그녀도 강민혁의 의도를 알아채고, 하는 수 없이 마법을 발현시켰다.
‘최대한 저 녀석을 피해서 사용하자.’
“익스 플로전(Explosion).”
6서클 화염 마법.
붉은 기운이 마법으로 화하는 순간, 전방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순간 강한 바람이 성벽 위를 휘몰아쳤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웨어 울프들을 덮쳤고, 성벽의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덕분에 많은 숫자의 웨어 울프도 그에 딸려갔다. 지금은 성벽의 상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성벽은 형상 기억 마법으로 복구하면 그만이기에, 엘리샤는 최우선으로 몬스터의 척살에 집중하였다.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강민혁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강민혁이 연기를 뚫고 나타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웨어 울프의 목을 베었다.
‘이것 봐라?’
이상했다
아무리 강민혁을 피해서 마법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강민혁은 분명히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강민혁은 멀쩡했다.
오히려 상대가 흔들리는 틈을 노리는 모습에, 엘리샤는 재차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캐논(Fire Cannon)."
펑!
화르르르륵!
5서클 화염 마법.
붉게 타오르는 화염이 적들에게 작렬하는 순간, 엘리샤는 강민혁이 보여주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
그건 찰나의 움직임이었다.
강민혁은 마치 마법이 떨어질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순간적으로 그 위치에서 벗어나더니,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로 본인의 몸을 보호하였다. 말이야 쉽지, 그건 정말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예민한 감각.
강민혁은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엘리샤의 마법을 포착하고 보법으로 피하며 대응했다.
최전방.
그곳에서 버티다 보면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그건 단순히 적의 공격뿐만 아니라, 적을 처리하기 위한 아군의 공격도 포함된다. 그래서 아군의 공격을 피해내는 것도 후계자 훈련에 있었다.
엘리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엘리샤가 해리 윌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쟤 대체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