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15. 마법사들의 생존 방식(2) >
“왔다!”
“준비해!”
성벽 위.
가장 앞에서 몬스터의 진입을 대비하던 경비병들이, 들고 있던 방패에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그리고 웨어 울프가 착지하는 순간.
대장으로 보이는 경비병이 소리쳤다.
“차징(charging)!”
“차징!”
화악-
방패에서 세찬 빛이 일어났다. 그것은 일반 방패가 아니라 마법의 힘을 부여한 아티팩트였다. 그 안에 깃든 강력한 힘이 방패에서 휘몰아치더니, 그대로 웨어 울프를 들이받았다.
콰앙!
캬아아악!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나갔다. 차징의 목적은 상대에게 물리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뒤로 밀어내는 것에 있다. 지금 위치한 곳은 성벽 위. 낭떠러지 밑으로 밀려난 웨어 울프는 그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A급의 웨어 울프라 할지라도, 특별한 비행 능력이 없는 이상 중력의 힘을 거스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준비해!”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이후부터 계속해서 웨어 울프들이 성벽 위로 진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캬악!
퍽!
“크악!”
웨어 울프의 공격에 경비병이 나가떨어졌다. 차징으로 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웨어 울프들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마법사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경비병들을 앞에 내세운 것처럼, 성벽 위에는 여러 방어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목표를 포착]
[발사!]
파파파파팍!
크에엑!
마법 석궁.
아티팩트의 일종인 마법 석궁에서 발사된 수십 발의 화살이 웨어 울프의 몸에 박혔다. 그것은 터렛(turret) 형태의 방어 장치였다. 성벽 위에서 일정 선을 넘어서는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 자동으로 타겟을 포착하는 방식. 수십 개의 터렛에서 발사되는 화살이 웨어 울프를 공격했다.
그리고.
“라이트닝 블레이드(Lightning Blade)!”
“록 캐논(Rock Cannon)!"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찌지지직
콰앙!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는 마법들.
경비병이 다칠 것을 염려해서 화염 마법은 자제하고, 최대한 위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였다. 학생들의 대응은 잘 훈련된 체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전에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고,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캐스팅을 진행했다.
성벽 위에서의 싸움은 격렬했다.
뚫리지 않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동족 수백의 목숨을 대가로 성벽 위로 올라온 웨어 울프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차징!”
“차지잉!”
다시 한번 사용되는 방패 공격.
경비병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그 순간, A급의 웨어 울프 한 마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대를 놓쳤다.
마법 석궁이 일제히 A급 웨어 울프에게 집중되자, 웨어 울프의 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웨어 울프는 이족 보행의 몬스터다. 인간과 늑대를 섞어놓은 듯했던 모습이, 완전히 짐승의 것으로 변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으악!"
"악!"
강력한 피어(fear) 공격에 일부 마법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웨어 울프에게 작렬한 화살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대부분의 화살은 크게 부풀은 털에 막히는 것으로 끝났고, 몇 발의 화살이 살을 파고들기는 했지만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틈.
길이 열렸다.
견고했던 성벽 위의 방어 체계가 무너지며, 웨어 울프가 빠르게 한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썅!”
마법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는 클리스만의 동급생.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해서 대응해보려고 했지만, 웨어 울프가 코앞에 들이닥치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불안감. 3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자신이 마법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웨어 울프에게는 타격이 없을 거란 생각에 손이 떨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게이트.
현실에 재앙이 닥칠 때마다 항상 사망자는 발생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풀리는 순간, 이상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카앙!
“정신 차려!”
클리스만.
마법사인 그가, 검을 들고 웨어 울프를 막아섰다.
캬악!
웨어 울프가 분노했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강민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거대한 손톱을 연속해서 휘둘렀다.
카앙!
카카카캉!
스파크가 튀었다.
검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에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강민혁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통한다.’
검에서 피어오른 오라.
강화 문명의 기술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발현되었다. 덕분에 강민혁의 검은 웨어 울프의 공격을 막아서고도 부러지지 않았다. 충격으로 얼룩진 동급생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붙었지만, 강민혁은 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훅!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공격!
강민혁은 간발의 차이로 웨어 울프의 공격을 피해내며, 오라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화르르륵.
서걱!
캬아아아아악!
웨어 울프가 비명을 질러댔다. 강민혁의 검에서 표출된 오라가, 웨어 울프의 단단한 외피를 갈라버린 것이다. 그러자 강민혁의 눈빛이 확신으로 변했다. 자신의 세상에서도 A급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오라가 필요하다. 만약 클리스만의 오라가 먹히지 않았다면 웨어 울프를 쓰러트릴 방법이 없었을 텐데, 놀랍게도 클리스만의 오라는 A급 몬스터를 상대로 먹혔다.
황당한 일이다.
벌써부터 이런 위력을 보이다니.
하지만 감상에 빠질 겨를도 없이, 웨어 울프와 강민혁의 몸이 뒤얽혔다.
퍽!
“크윽."
웨어 울프가 그대로 강민혁을 들이받았다.
강력한 충격이 머리를 뒤흔듦과 동시에, 웨어 울프는 거대한 아가리를 쫙 벌려 강민혁을 물어뜯었다.
아니, 뜯기기 전에 강민혁이 빠르게 대응했다.
퍽!
오라를 두른 주먹으로 턱을 가격했고, 반격해오는 웨어 울프의 공격을 고개를 숙이는 동작으로 피했다. 그리고 번뜩이는 검. 오라의 잔영이 웨어 울프의 복부를 지나가자, 살이 쩍하고 갈라졌다.
푸슈숙.
피가 튀었다.
그때였다.
웨어 울프의 발이, 그대로 강민혁의 복부에 작렬했다.
퍽!
콰다당!
크르르르륵.
웨어 울프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강민혁의 반격은 찰나의 틈을 노리는 매우 훌륭한 공격이었지만, A급 웨어 울프는 단순히 외피만 단단한 것이 아니다. 느리지만 점점 치유되는 상처 부위. A급의 몬스터들은 확실하게 끝내지 않는 이상, 끝까지 달려드는 성향이 있다.
확실히 강했다.
복부에서부터 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강민혁의 얼굴엔 오히려 웃음이 피어올랐다.
“킥, 킥킥.”
웃겼다.
A급 몬스터.
현실에서 강민혁은 그들을 상대로 절망을 맛보았다.
그런데 웃긴 것은 겨우 며칠 훈련한 클리스만의 육체는, 그들을 쓰러트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지난 세월이 허무해질 정도였다.
꽈악.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내 공격이 먹힌다면.’
타닥.
바닥을 박차는 웨어 울프.
그의 모습에, 강민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승산은 충분히 있다.’
화륵.
불타오르는 오라.
강민혁이, 정면에서 웨어 울프를 맞받아쳤다.
흐릿한 기억.
그건 강민혁으로서는 잊고 싶은 순간이었다.
촤악!
A급 몬스터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그의 공격에 동료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지는 동료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후계자로서 살았던 강민혁의 인생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아.’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나의 재능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아무리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애써 외면했다. 친구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따랐고, 여러 무투 대회에서 수상한 기록은 후계자로서 남을 명분을 주었다. 그러나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탓에 동료가 다치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 강민혁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난 수호문을 맡을 자격이 없어.’
마나.
중요한 재능이다.
수호문의 비기는 마나를 기반으로 하기에, 강민혁에게는 결국 넘어설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어릴 때야 괜찮았다.
그때는 마나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의 약점은 두드러졌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에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고, 그럼에도 자신을 따라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결국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그 날.
강민혁은 다시 검을 잡을 날이 찾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의 검에서 강한 오라가 표출되었다.
서걱!
캬아아아악!
웨어 울프가 괴성을 질렀다. 웨어 울프는 빠르고 강했지만, 그만큼 강민혁의 대응도 빠르고 강했다. 잊고 있었던 나날들의 감각이 몸에서 살아났다. A급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칼이 강민혁에게 쥐어진 이상, 강민혁은 이 싸움에서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마나의 재능을 바탕으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듯이, 자신도 반드시 승리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푹!
복부를 갈랐다.
웨어 울프가 팔을 휘두르는 모습에, 강민혁은 오히려 품 안으로 파고들며 검을 위로 힘껏 베었다.
촤악!
크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
후두둑 떨어지는 피의 비에, 강민혁의 표정이 희열로 차올랐다.
‘통해, 통한다고!’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바랐던가.
자신의 오라가 A급 몬스터들에게도 통했다면, 강민혁은 결코 검을 버리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통한다.
평생을 검에 바쳤던 자신의 육체는 간절한 바람을 외면했으나, 겨우 며칠. 클리스만이 직접 훈련한 기간을 합쳐도 두 달도 되지 않는 이 몸뚱이는, 강화 전사로서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달랐다.
자신이 기억하는 오라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민혁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캉!
카카카캉!
격렬하게 격돌했다.
웨어 울프와 강민혁이 바로 근접해서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에, 주변에 있는 동급생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공방을 주고받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섣불리 마법을 사용했다간 강민혁이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그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결국.
서걱!
강민혁의 검이 웨어 울프의 가슴팍을 베었다.
웨어 울프가 힘을 잃고 뒤로 물러나는 그 순간, 강민혁은 앞으로 달려들며 상대의 목을 베었다.
푸확!
허공에 흩뿌려지는 피.
아무리 재생 능력이 뛰어난 웨어 울프라지만, 목이 날아가고도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비틀.
쿵!
웨어 울프가 쓰러졌다.
강민혁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핏물을 그대로 맞으며,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후욱, 후욱.”
지친 것이 아니다.
다만 기쁠 뿐이다.
이게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만, 간접 체험을 한 것만으로도 강민혁은 기뻤다.
“또 올라온다!”
“제길!”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웨어 울프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고, 그들은 로드의 버프를 받아 성벽 위로 올라왔다.
강민혁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앞에서 막겠습니다.”
특정 인물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이 구역 모두에게 하는 말.
강민혁은 또다시 올라오는 웨어 울프들의 모습에, 검에서 오라를 일으켰다.
지금부터는.
‘수호검법.’
지키는 검을 사용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