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 14. 뒤바뀐 재능(2) >
다음 날.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지금부터 각자 개별 훈련실로 들어가서 마나 룸 훈련을 시작한다. 최소 출력은 3단계고, 누누이 말하는데 천금 같은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말도록. 평민들은 평생 마나 룸에 발을 들일 기회조차 누리지 못하는데, 너희들에게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니 마나 룸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너희가 마법적인 성취를 얻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삑-
훈련실의 문이 열렸다.
익숙한 상황에, 강민혁은 그중 하나를 택해 들어갔다.
‘마나룸.’
익숙했다.
처음에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최근에는 매일 반복하는 훈련이다 보니 정겨울 정도였다. 강민혁은 곧바로 마법진 중앙에 앉았다. 순도 높은 마나가 집중되는 자리. 강민혁은 가부좌를 틀었고, 본격적으로 심법을 운용해서 마나를 마법진으로 흘려보냈다.
화악.
우우우웅.
밝은 불빛이 일었다.
예민하게 돋아오른 감각에, 마나의 충만함이 느껴졌다.
“흐읍.”
산소가 과하게 공급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압력에 강민혁의 얼굴이 붉어졌고, 앉아있는 자세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전에는 마나 룸의 압력을 버티지 못했다. 약하디약한 클리스만의 서클은 빨아들였던 마나를 전부 토해내 버렸고, 강민혁은 더 이상 훈련을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강민혁은 서클이 아니라 단전에 마나의 힘을 집중시켰다. 심법을 운용하여 마나가 단전으로 향하도록 길을 열자, 놀랍게도 숨을 압박하던 마나의 힘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숨을 고르게 내뱉었다.
마나가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단전은 힘의 중심. 단전이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넘쳐흐른 마나로 인해 내부가 붕괴한다.’
이건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확인해야만 했다.
클리스만의 육체가 정말 ‘수호문의 심법’이 말하는 재능이라면, 반드시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천천히.’
단전으로 향하는 마나들.
그 마나들을 이용해서 혈관의 불순물을 제거하였다.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할 탁한 마나는, 불순물과 같이 피부 바깥으로 표출하였다. 단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는 제한적이다. 기존의 마나와 조화롭게 융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순수한 마나만을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스으으으.
강민혁의 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불순물 섞인 마나가 기체로 변하며, 탁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동시에 피부에서도 검은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집중력을 흩트리는 외부적인 요인이 많았으나, 강민혁은 무아지경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다.
‘마나가 들어오도록, 단전을 개방한다.’
개방.
단전이 열렸다.
혈관을 타고 이동하면서 걸러진 마나가,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처럼 단전을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콸콸콸.
“크윽."
이를 악물었다.
격하게 일어나는 통증에, 강민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실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시도는 강민혁의 세상에서도 있었다. 심법에 내제되어 있는 동화(同化)의 능력은 가끔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을 시도한 사람들은 모두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외부의 마나. 그건 정제된 강화액의 마나와는 다르다. 어떨 때는 거칠고, 어떨 때는 부드럽고, 어떨 때는 차가우며, 어떨 때는 뜨겁다. 일반적인 단전으로는 절대 외부의 마나를 감당할 수 없으며, 그래서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금지가 되었다.
그래서 강화 전사들은 규칙을 내세웠다.
1. 강화는 정제된 강화액을 통해 진행한다.
2. 강화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량을, 일정한 주기로 주입한다.
강화 전사들.
그들이 괜히 시간을 두고 강화를 시도하는 게 아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통제되지 않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강민혁도 사정은 같았다.
너덜너덜 걸레짝 같은 강민혁의 단전으로 마나를 유도했다면, 강민혁의 내부는 찢겨나갔을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
불규칙한 외부의 마나를 직접 받아들였다는 선례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클리스만의 육체는 달랐다.
화악.
꿀럭꿀럭.
몸이 요동쳤다.
밝게 빛나는 빛이, 강민혁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클리스만의 재능은 진짜였다.
강하게 몰아치는 마나의 파도에도, 클리스만의 단전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을 자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나가 모두 가라앉자, 강민혁의 안광이 번뜩였다.
‘아.’
그 순간 확신했다.
단전에서 찰랑이는 마나.
강화액을 수십 번을 주입해야 얻을 수 있는 양에, 강민혁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말했다.
“클리스만, 너도 너와 맞지 않은 세상에서 태어났구나.”
자신과 같다.
강민혁과 클리스만.
둘은, 서로의 세상에서 필요한 재능을 타고 났다.
며칠간.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훈련에 전념했다.
수호문의 심법을 운용해서 체내의 마나를 안정시키고, 육체적인 훈련을 통해 강화된 신체를 단련시켰다.
그런 과정에서 강민혁이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클리스만은 검사(劍士)였어. 그것도 작은 검이 아니라, 두 손으로 쓰는 큰 검을 사용하는 검사.’
몸의 근육.
그리고 손의 굳은살.
클리스만의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알게 되었다.
클리스만은 약하디약한 서클을 가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이는 클리스만의 메시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의 힘은 마법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검을 들고 몬스터와 싸우던 그 시절, 로브를 펄럭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선택받은 자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클리스만이 했던 말.
그는 검을 들고 몬스터와 싸웠다고 말했다.
그게 강민혁과 같은 강화 전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야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 단전에 마나를 채워 넣었지만, 처음에만 하더라도 클리스만의 몸은 매우 깨끗했다. 검술을 익혔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초췌한 얼굴에 나약한 신체 상태. 사실 금세 육체 강화에 적응하는 클리스만의 몸에, 어쩌면 지금의 상태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잡했다.
클리스만의 과거는, 알면 알수록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확실한 건 클리스만은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있었고, 자신으로 인해 진짜 재능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호문의 기술들. 너라면 충분히 터득할 수 있을 거야.’
숙소에 도착하고.
강민혁은 클리스만에게 남길 글을 작성했다.
[지금부터 너에게 가르칠 것은 총 세 가지다. 수호문의 심법으로 육체를 효율적으로 단련하는 방법, 살육이 아니라 지키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수호 검법, 그리고 모든 움직임에 활용시킬 수 있는 수호 보법. 일단 이 세 가지를 꾸준히 익힌다면 분명히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수호문의 기본.
강민혁은 그것을 써 내려갔다.
후계자만이 알고 있는 수호문의 비기도 있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과유불급.
이제 막 강화 전사로서 걸음마를 땐 클리스만에게는, 그 눈높이에 맞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자 문득 웃겼다.
마치 자신의 모습에서, 클리스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너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클리스만.
그는 강민혁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마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만약 그러한 도움이 아니었다면, 강민혁은 절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성장은 클리스만의 도움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강민혁 또한 클리스만에게 똑같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느 정도 하루 목표치를 전부 작성했을 때.
강민혁은 펜을 내려놓고, 책상 한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차례인가.”
클리스만의 지식.
이번 빙의도 어김없이, 클리스만은 강민혁에게 필요한 지식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클리스만이 준비한 지식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최상급 4서클 마법]
강민혁은 3서클을 형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클리스만은 벌써부터 4서클 마법을 배울 날을 준비할 것을 닦달했다. 확실히 4서클 마법은 지금 배울 필요성이 있었다. 언제 4서클을 형성할지 모르는 데다, 4서클의 마법 체계는 3서클보다도 더욱 복잡했다. 미리 시간을 투자해서 터득한다면, 절대 나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실 이 마법을 확인하고 강민혁은 경악했다.
[일루전 (illusion)]
일반적으로 알려진 원소 마법의 한 갈래가 아니다.
환상, 환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일루전은 본인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일루전은 서클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1서클 마법사도 본인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환상이 본격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은 3서클부터다. 3서클 마법사의 일루전은 개별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다. 그것은 본래 마법의 25퍼센트 정도의 위력이며, 서클이 상승할수록 25퍼센트 단위로 위력이 상승한다. 4서클부터는 일루전의 형태 변화, 5서클부터는 일루전의 더블 캐스팅, 6서클부터는 온전한 위력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7서클 이상은 단계별로 일루전의 숫자를 늘리는 게 가능하다.]
처음 일루전에 대해 읽었을 때.
강민혁은 두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런 마법이 있다니.
2000년의 마법 문명이라고는 하나, 설마 이런 대단한 효과를 가진 마법까지 만들어냈을 줄은 몰랐다.
일루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환상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마법사의 장단점을 동시에 해결하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함을 선사하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강민혁은 아카데미 마법 도서관에서 일루전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마법을 터득함에 있어 도움이 되는 부연 설명을 찾아 보기 위함이었는데, 놀랍게도 일루전에 관련된 지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최상급 마법이라는 분류가 있지만 희귀해서 찾아볼 수 없는 게 아니라, 2000년의 마법 문명을 이룬 이 세상에서도 일루전이라는 마법 자체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다. 동명의 환상 마법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루전의 효과와는 완전히 달랐다.
‘클리스만, 넌 대체..........'
의문이 피어올랐다.
클리스만.
그의 행동은 많은 의문이 따라붙는다.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강민혁으로서는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현실에 충실할뿐.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훈련에 전념했고, 아카데미가 끝나면 마법 지식을 익히는 삶을 반복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이번에도 빙의 시간은 제법 길었다.
반복되는 하루.
그러던 어느 날, 클리스만으로서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삐이이이이이익-
[비상! 비상!]
[코드 레드 발동! 코드 레드 발동!]
[왕실 마법 아카데미 인근에서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무장을 갖추고, 신속하게 작전명 ‘그린 드래곤(Green Dragon)’의 대응 체계를 갖추길 바랍니다.]
비상 사태.
그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