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13.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3) >
“설마...최광일이 진 거야?”
불신으로 얼룩진 음성.
결투를 지켜보던 검술 학과생들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최광일.
검술 학과 1학년생들 중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엘리트가, 지금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했다.
사고가 멈추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아직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료팀!”
정적을 깬 것은 바로 김무진이었다.
김무진의 다급한 음성에 옆에서 대기하던 의료팀이 뛰어왔다. 마법 면역 보호구 덕분에 최광일의 피부가 직접적으로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새카맣게 타버린 옷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그의 충격이 대단했음을 보여주었다. 숨을 간신히 헐떡이고 있는 최광일. 초점이 흐릿한 그의 눈동자에, 의료팀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검술 학과생의 부상.
참 낯선 광경이었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생사 결투에서 최광일이 다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가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었다.
간혹 부상을 당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최광일의 수준은 아니었다. 최광일은 라이트닝 쇼크를 맞았고, 파이어 랜스에 휩쓸렸으며, 마지막 파이어 볼트의 마나 폭발로 큰 데미지를 입었다. 단단한 강화 전사의 외피로도 버틸 수 없는 데미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광일이 폭발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마나로 본인의 몸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쇼크입니다. 충격이 심해서 잠시 요양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부상은 아닙니다.”
“하아.”
“다행이다.”
의료팀의 말에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들은 문득, 예전에 건의되었던 안건이 떠올랐다.
“생사 결투에 사용되는 강화 전사들의 마법 보호구가 너무 부실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마법에 제대로 적중당할 경우,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마법 보호구 투자에 관련된 안건은 무산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화 전사들이 마법 학과생들에게 호락호락 당할 일이 없다는 것. 실제로 100년의 역사 동안 그런 일은 많지 않았기에, 지금의 마법 보호구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2서클 정도의 위력으로는 데미지가 크지 않은 데다, 강화 전사의 외피는 그 자체로도 단단하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마법 보호구의 부실함이 왜 거론되었는지,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는 최광일의 모습이 그걸 증명했다.
최광일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충분한 치료를 위한 조치였는데, 학생들은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강민혁은 최광일과 근접한 상황에서 파이어 볼트를 터트렸어. 그런데 어떻게 강민혁만 무사할 수 있지? 실드(shield)와 같은 방어 마법을 사용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미스터리였다.
강민혁이 어떻게 이겼는지.
그리고 마지막 폭발에서 강민혁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
이 대결은 시작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투성이었다.
확실한 사실은.
“결투 끝. 승자는 마법 학과의 강민혁.”
강민혁이 승리했다는 것.
훈련장에서 내려가는 강민혁의 뒷모습을, 검술 학과생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 결과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훈련이 종료되었다.
이전에도 그랬듯, 김무진은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학생의 영상을 설명해줄 의무가 있었다.
“지금부터 최광일과 강민혁의 영상을 보여주겠다.”
팟.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번 생사 결투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강민혁의 영상. 검술 학과생은 물론이고, 마법 학과생들도 이번 영상만큼은 집중해서 보았다. 강민혁의 특별함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라이트닝 쇼크.”]
[찌지지직!]
“강민혁의 선택은 상당히 영리했다.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최광일을 일격에 적중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파이어 볼로 일부러 최광일의 방향을 유도했다. 왼쪽에서 날아오는 공격. 최광일로서는 당연히 반대 방향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고, 라이트닝 쇼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강민혁의 함정이 시작되었다. 최광일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지.”
학생들이 넋을 잃었다.
실제로 볼 때는 그냥 마법을 빠르게 사용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상황이 달리 보였다.
강민혁의 모든 선택은 철저한 계산 하에 이루어졌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상대가 자신의 공격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대와 주변의 상황을 예상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였다. 급박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최광일은 최선의 선택을 내렸으나, 그것은 오히려 예상하기 쉬운 선택이기도 했다.
상대의 최선을 공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싸움의 기본’ 중 하나이니 말이다.
“와."
“캐스팅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
“1서클 마법을 캐스팅하는 데 3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은 최상급 마법의 존재도, 서클의 상관관계라는 이론도 모른다.
강민혁이 빛의 속도로 캐스팅을 끝내는 모습이, 그들로서는 다른 세상의 기술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파이어 랜스가 작렬한 이후, 최광일이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가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이었다. 근접전에서 마법사가 약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강민혁은 어떻게 최광일의 일격을 피했으며, 파이어 볼트의 마나 폭발에서 혼자만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윽고 그 진실이 드러났다.
[홱!]
간발의 차이.
공격을 피한 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었다.
강민혁의 차분한 시선.
그것이 끝까지 최광일의 공격을 주시하였고,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파이어 볼트를 형성하였다. 과도한 형태 변화로 마나 폭발의 기미가 보이는 그것은, 최광일에게 닿자마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거의 3서클에 달하는 위력.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로 강민혁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가 정확히 보였다.
“어?”
[확!]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강민혁이 최광일의 옷을 잡아채서 끌어당김과 동시에, 바로 그의 뒤로 몸을 피했다.
찰나의 순간.
강민혁은 마나 폭발과 자신의 사이에, 최광일이라는 고기 방패를 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최광일은 본능적으로 마나 폭발에서 버티기 위해 마나를 끌어 올렸고, 그러한 노력이 조금의 열기도 강민혁에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강민혁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그을림만으로 마나 폭발을 버틸 수 있었다.
김무진이 말했다.
“사실 나도 이 상황을 보고 매우 놀랐다. 강민혁은 당연히 실드 마법과 같은 방어 수단으로 본인의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최광일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으로 본인의 몸을 보호하였다. 나는 강민혁이 우리에게 ‘실전 마법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감탄했다.
김무진은 폭발 당시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챘으나, 강민혁의 방법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담한 선택이었다.
바로 앞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당황한 최광일을 고기 방패로 사용하다니.
그건 마법사라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은 강민혁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법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상대가 근접했을 경우, 근접전에 약한 마법사로서는 더 이상 대항할 수 없을 거라는 나약한 생각. 그건 언제고 마법사를 죽음에 몰아넣을 매우 치명적인 실수다. 마법 학과생들은 오늘 강민혁이 보여준 모습을 기억해라. 마법사는 멀리서 마법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직접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 편견에 얽매이지 않은 사고가, 마법사로서 불가능했던 일들을 해결해줄 것이다.”
늘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항상 생사 결투를 진행하다 보면, 마법이 실패하자마자 결투를 포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었다.
그리고 오늘.
강민혁이 마법사의 이상을 보여주었다.
김무진의 시선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강민혁을 향했다.
“강민혁. 내가 보았던 수많은 마법 학과생들 중에, 단언컨대 오늘 네가 보여준 모습이 가장 최고였다.”
진심 어린 말.
합동 수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강민혁은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주인공으로 남았다.
이번 결투.
김무진은 강민혁을 보고 마법사의 이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강민혁은 최광일이라는 쉽지 않은 상대를 두고, 본인의 전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다.
‘이겼어.’
생사 결투.
강화 전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지만, 강민혁은 마법사의 특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를 지목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 보통은 본인의 성향에 맞는, 그래도 조금은 만만한 상대를 고르라는 의미에서 있는 것인데, 강민혁은 최광일을 선택함으로써 특혜를 날렸다.
그리고 선공권.
선공권의 특혜는 활용하되, 강민혁은 대신 무빙 캐스팅을 사용하지 않는 제약을 걸었다.
‘이번 결투의 의미는 커.’
결투는 격렬했다.
최광일은 끝까지 반격을 해왔으나, 강민혁은 자체 리미트를 해제하지 않은 채로 최광일을 제압하였다. 움직인 것이라고는 마지막 공격을 피한 정도. 가만히 서서 최광일 정도 되는 강자를 쓰러트렸다는 것은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수호문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강민혁은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결투를 통해 강민혁은 마법사의 가능성을 보았다.
할 수 있다.
지금은 겨우 3서클이다.
앞으로 4서클, 5서클, 그리고 미지의 6서클까지.
강화 전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마법을 익히고 무빙 캐스팅까지 사용한다면, 1대1 대결이라 할지라도 강화 전사들은 감히 강민혁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법 학계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1대1에서 강한 마법사란, 현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아.”
얼굴이 상기되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서 멈추어졌던 시간이, 이제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모자라.’
갈증이 일었다.
발전했다고 해서, 강민혁은 만족하지 못했다.
강민혁이 살아왔던 세상은 넓다.
대해(大海)와도 같은 그 세상에서, 강민혁의 성취는 절대 대단하지 않았다.
현재 수호문의 후계자.
이준호.
그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강민혁의 능력은 아직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더 노력하자.’
본인을 채찍질했다.
성취감이 가득 차오르는 지금, 강민혁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을 더욱 담금질했다.
언제고.
자신의 기준에서조차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리라.
강민혁은 훈련이 끝나고 피곤할 법도 하건만, 쉬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마나 룸 훈련을 진행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성장의 원동력은, 단순히 클리스만의 지식 덕분만은 아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클리스만과 약속한 날이 되었다.
그런데.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허름한 방 안.
그곳에는 클리스만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