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13.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2) >
강민혁은 처음부터 누구를 상대할지 정해두었다.
‘최광일.’
검술 학과 1학년 최고의 실력자.
마법 학과에서 정상훈을 천재라고 부른다면, 검술 학과에는 바로 최광일이 있다. 수성전 당시에도 홀로 수십 마리의 오크를 도륙했던 최광일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B급 몬스터의 토벌 경험도 있다고 했다. 강민혁에게 열등감을 내비치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게 진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강민혁은 그런 상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최광일을 택했다.
“괜찮겠어?”
김무진이었다.
검술 학과의 열등생과 마법 학과의 우등생이 붙어도, 검술 학과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 최광일이라는 실력자를 택하니, 강민혁이라 할지라도 걱정이 먼저 앞섰다.
“괜찮습니다.”
강민혁은 담담했다.
최광일.
아카데미라는 세상 안에서는 그의 이름값을 높이 평가하지만, 사실 강민혁에게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수호문.
그곳에는 괴물들이 산다.
아버지인 강덕철은 세상이 알아주는 실력자이며, 자신과 같은 시기에 훈련을 받았던 친구들만 하더라도 A급 몬스터 토벌에 성공하였다. 그게 강민혁이 살아온 세상이다.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최광일을 엄청난 재능인 것처럼 떠받들지만, 강민혁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딱 적당히 뛰어난 정도.
진짜 천재들은, 최광일의 수준에서 논할 수 없다.
‘최광일 정도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마법사로서 나는 강화 전사 앞에서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어.’
탁.
최광일이 훈련장으로 올라왔다.
지금의 상황이 황당한 모양인지, 그의 웃음이 비틀렸다.
“날 선택하다니.”
수성전.
그곳에서의 패배는 인정한다.
강민혁은 뛰어났고, 소탕이라는 완벽한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사 결투는 다른 문제다. 수성전은 마법사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라면, 생사 결투는 마법사를 지켜주는 지형적인 이점이 조금도 없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다. 강민혁은 똑똑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호명했다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꽉.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자세를 낮추며, 강민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곧 그 선택을 후회하게 해주지.”
“시작!”
김무진의 신호.
그것이 떨어짐과 동시에, 최광일이 곧바로 땅을 박찼다.
팟.
최광일.
그가, 강민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통의 결투 양상은 스피드가 느렸다.
검술 학과생들은 자신만만했다.
캐스팅을 끝까지 보고 피하더라도, 마법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설마 마법에 적중되어도 2서클의 데미지는 크지 않다 보니, 그들은 여유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광일은 달랐다.
그는 시작부터 전력을 다했다.
‘넌 단 한번도 마법을 성공시키지 못할 거야.’
타닥.
빠른 움직임.
처음부터 좌표 계산이 힘들도록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최광일 정도라면 강민혁을 가볍게 발라버릴 수 있는 실력자인데, 그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의외라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강민혁이 항상 1위를 차지하던 그때, 2위의 자리에는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최광일이 있었다.
사삭.
빨랐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마법 학과생들의 동체 시력으로는, 최광일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강민혁의 시선이 정확히 최광일을 포착했다.
그러자 마나가 일순간 붉게 타올랐다.
“파이어 볼.”
화르르륵!
불길이 일었다.
강민혁의 마법은 그대로 최광일을 덮쳤다. 그것도 최광일이 움직이는 방향까지 예상한 공격. 순간 최광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예 좌표가 엇나갈 줄 알았는데, 강민혁의 마법은 정확했다.
‘그래도 강화 전사 출신이라 이건가.’
하지만.
“겨우 이걸로는 안 돼.”
홱!
퍼엉!
간발의 차이로 최광일이 마법을 피했다. 좌표 계산은 정확하였으나, 그렇다고 최광일이 마법에 적중당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리에서 일어나는 마나. 최광일의 몸이 인간의 속도를 넘어서더니 마법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 그의 앞에 강력한 전기 다발이 일어났다.
“라이트닝 쇼크.”
찌지직.
“크윽!”
전기 다발이 그대로 최광일을 덮쳤다.
절묘한 연계 공격.
파이어 볼을 피하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최광일로서는, 라이트닝 쇼크는 피할 수가 없었다.
‘더블 캐스팅이구나!’
잠시 간과했다.
선공은 하나의 마법으로 제한한다는 규칙이 없다.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룰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이었고, 최광일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예상했다고 해도 이번 공격은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이어 볼로 방향을 유도하고 라이트닝 쇼크로 공격. 파이어 볼이 허초라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둘의 연계 공격은 절묘하게 최광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허나.
빠득.
최광일은 라이트닝 쇼크에 쓰러지지 않았다.
체내의 마나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체내로 파고드는 전기로부터 몸을 보호하였다.
강화 전사.
그들이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마법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끝이다.’
확!
최광일이 땅을 박찼다.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으로 2번의 마법을 사용하였다. 이제는 다음 마법까지 딜레이가 있을 터. 크게 부풀어 오른 다리가 순식간에 강민혁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건 인간의 스피드가 아니었다. 강화액으로 단련된 초인. 최광일은 강민혁에게 5초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끝났다.
상식적으로는 그래야 맞다.
그런데 앞으로 달려나가던 최광일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록.”
퍽!
"..........?!"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정확히 시야의 사각지대.
발밑이 보이지 않을 그 타이밍에, 바닥에서 툭 튀어나온 바위가 최광일의 발에 걸렸다.
만약 평소였다면 바위를 가볍게 피했을 것이다. 초인의 반응 속도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이번에는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 그것이 자신의 반응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는 생각에, 최광일은 순간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설마.’
라이트닝 쇼크.
그건 함정이었다.
몸을 마비시켜서, 반응 속도를 느리게 하려는 속셈.
의도는 통했고 최광일의 전진은 저지되었다.
균형을 잡지 못해서 잠시 휘청거리는 그때, 최광일이 고개를 듦과 동시에 강력한 빛이 터졌다.
“플래시(flash)!”
번쩍!
"악!"
머리가 팽 돌았다.
강렬한 빛.
플래시는 공격력이 없는 마법이었지만,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으면 시야가 잠시 멀어버린다.
그리고.
퍽!
머리를 때리는 둔탁한 충격.
그게 1서클 마법 ‘록’을 활용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최광일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가.’
농락.
지금은, 그렇게 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강민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쇼크.
록.
플래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계 공격은, 모두 강민혁의 철저한 계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첫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강화 전사.
그들의 육체적인 능력은 대단하다. 특히 최광일 정도 되는 실력자가 방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파이어 볼의 적중을 바라는 것은 과한 기대다. 그래서 강민혁은 의도적으로 파이어 볼을 허초로 사용하였다.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넣으려는 의도. 최광일은 선공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서 두 번째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렇게 라이트닝 쇼크에 맞았다.
최광일의 생각은 맞았다.
굳이 라이트닝 쇼크를 택한 것은, 데미지가 크지 않더라도 ‘마비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강화 전사는 2서클 마법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아.’
마법의 위력이 3서클에 버금가도 그것은 똑같다.
최광일은 표정을 잠시 일그러트릴 뿐, 금방 회복하고서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차례로 이어진 마법.
록.
플래시.
록.
그건 대단한 마법들이 아니다.
겨우 1서클 마법에 불과하고, 서클의 상관관계와 기본 원소 마법임을 생각하면 오래 걸려도 3초 이상 걸리지 않는 마법들.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은 최광일의 발을 묶는데 매우 적절하였다. 하나하나를 따지자면 대단한 수는 아니지만, 그게 한데 모여 최광일의 발을 묶었다.
‘내게는 3서클 마법을 캐스팅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 하나의 목표.
선공에서부터 1서클 마법으로 상대의 발을 묶은 이유는,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화악-
마나가 흩뿌려졌다.
강민혁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마나의 체계를 갖추며 3서클 마법을 형성하였다.
“파이어 랜스(Fire Lance).”
화르르륵.
3서클 마법 중 가장 강력한 마법.
창의 형태를 한 불길이 타올랐다.
이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을 통해서 한쪽에서는 1서클 자잘한 마법으로 최광일을 견제하면서, 나머지 한쪽으로는 파이어 랜스를 캐스팅 하였다. 강민혁도 아직 3서클 마법사다 보니 서클의 상관관계를 파이어 랜스에 적용할 수 없었지만, 짤짤이로 벌어들인 시간이면 캐스팅을 마칠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완벽한 판.
파이어 랜스가 그대로 최광일에게 작렬했다.
콰앙!
화륵 화르르르르륵!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최광일이 착용한 마법 면역 보호구로도 보호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4서클에 버금가는 위력.
제아무리 강화 전사라 할지라도, 아직 1학년에 불과한 수준의 강화 전사가 버텨낼 공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확!
“이 개새끼가!”
최광일이 화염을 뚫고 나타났다.
수석은 역시 수석이었다.
마법에 적중당하기 직전.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시야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마나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였고, 스텝을 밟아 위험 지역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충격은 대단했다. 겉옷이 까맣게 타버렸고, 속이 매스꺼울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는 회심의 일격을 사용했다.
그것이 먹히지 않았다면, 승산은 자신에게 있는 것일 터.
마나를 최대한으로 활성화시키자, 최광일이 어느새 강민혁의 앞에 도달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젠 진짜 끝이다.’
승리를 확신한 최광일이 강민혁을 베어버리려는 순간, 최광일이 눈을 부릅떴다.
".........?!"
찰나의 시간.
최광일의 시야에 두 가지의 사실이 보였다.
첫 번째는 강민혁이 이제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민혁은 처음에 위치한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치 내 대응을 예상했다는 눈빛이야.’
소름 돋을 정도로 침착한 눈빛.
강화 전사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마법사에게 접근하기만 한다면, 무조건 승부가 끝났다는 생각.
그건 착각이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고, 강민혁은 옆으로 몸을 비트는 간단한 동작으로 최광일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최광일의 가슴이 열렸다.
그 넓은 가슴팍을 향해, 강민혁은 마나를 일으켰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1서클 화염 마법.
그러나 그건 모두가 아는 파이어 볼트의 형태를 하지 않았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화염.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이 요동치는 그 화염은, 강민혁이 발표했던 ‘마법의 형태 변화’를 사용한 것이었다.
‘제길.’
최광일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파이어 볼트가 최광일에게 작렬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퍼엉!
화르르르르르르륵!
연기가 매캐하게 올라왔다.
밖에서 지켜보던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
당황한 눈동자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열심히 움직이던 그때, 연기가 가라앉으며 주변의 상황이 보였다.
“아."
탄식을 터트리는 검술 학과생.
연기의 사이로, 바닥에 쓰러진 최광일과 그를 내려다보는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