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13.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 >
생사 결투.
처음 합동 수업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 가장 많은 논란이 있었던 훈련이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1대1 대결.
사실상 강화 전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캐스팅에 최소 몇십 초의 시간이 걸리는 마법사와, 그 시간이면 수백 미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파하는 강화 전사와의 싸움은 애초에 성사될 리가 없다. 그래서 초창기만 하더라도 생사 결투는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헌터 아카데미의 초대 총장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마법사에게 불리한 싸움이고, 강화 전사가 마법사의 천적(天敵)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생사 결투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화 전사는 마법사를,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아직 실수가 용납되는 아카데미에서 상대해보아야만, 후일 바깥세상에서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대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매번 쉬운 싸움이란 없습니다. 마법 학과생들에게 가혹한 말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합니다.”
모두가 안다.
마법사의 불리함을.
하지만 총장의 의견은 타당한 부분이 있었고, 결국 생사 결투는 합동 수업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1대1 대련의 성향을 보이는 훈련에 ‘생사 결투’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최대한 실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번 훈련의 경우에는 제한을 걸지 않았다. 상대를 베어도 되고, 강력한 화염 마법으로 불태워도 된다. 목숨이 걸린 싸움이라는 설정을 밑에 깔아놓은 만큼, 강화 전사와 마법사는 승리를 위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용납된다.
다만.
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강화 전사의 경우에는 마법 면역 보호구를 착용해서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입으면 자동으로 패배 처리를 하였고, 마법사는 칼에 베인다 할지라도 실제 출혈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련용 무기를 강화 전사에게 지급하였다. 실제 목숨을 거는 위험은 없겠지만, 공격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생사 결투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고 처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훈련 며칠 전.
마법 학과생들은 불안에 떨었다.
훈련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으나, 100년이 흐른 지금 훈련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절대 이길 수 없어.”
한 학과생이 했던 말.
헌터 아카데미의 총장은 생사 결투를 통해 마법사가 천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방법 따위는 세상에 없었다. 간혹 뱀의 먹잇감인 개구리가 상대를 잡아먹는 현상이 벌어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관계에서는 성립되지 않았다.
100년.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생사 결투.
강화 전사가 다치는 경우는 있어도, 헌터 아카데미 역사상 마법사가 승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양쪽 위치로.”
“위치로.”
김무진의 차가운 음성에, 가장 먼저 생사 결투의 대상자로 선택된 마법 학과의 이정민은 지정된 위치로 걸음을 옮겼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식은땀이 흥건하게 손바닥을 적셨고, 입은 바짝 말랐다.
“후욱, 후욱.”
그의 상대는 이정민이 직접 골랐다. 그건 마법사에게 허락되는 두 개의 특혜 중 하나였는데, 제일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긴장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 이정민에게 호명되었다는 사실에, 상대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춘식아, 네가 만만하게 보였나 보다.”
“큭큭큭큭, 우리 춘식이가 만만하게 생기긴 했지.”
“혹시 마법사에게 지고 내려오는 건 아니지?”
훈련장 아래.
이정민의 상대인 김춘식의 친구로 보이는 학생들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검술 학과만의 분위기였다.
마법 학과가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검술 학과에게 마법사와의 대결은 승리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법사와의 대결에서 가장 먼저 호명된 사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만만하게 보인다는 것. 김춘식의 얼굴이, 들끓는 분노로 인해 붉게 얼룩졌다.
빠득.
“내가 만만하게 보인다 이거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제일 만만해 보여서 택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강화 전사인 그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섭다.
검술 학과생들과의 싸움에서, 마법 학과생이 다쳤다는 소문은 이제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흔하다.
몸의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만약 그냥 결투가 시작되었다면, 그리고 이게 실전이었다면, 이정민의 머리는 단번에 날아갔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훈련에는 마법사를 위한 두 번째 특혜가 있었다.
바로 선공권.
검술 학과생은, 마법사가 먼저 선공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시작.”
김무진의 신호가 떨어졌다.
이정민은 과호흡이 올 것 같은 호흡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곧바로 캐스팅에 들어갔다.
‘침착해.’
불리한 싸움.
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본인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쓰러트려야 하지 않겠는가. 선공의 마법 제한은 2서클. 이정민은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르르륵.
붉게 타오르는 불길.
화염이 구의 형태를 형성하자, 이정민이 버럭 소리쳤다.
“파이어 볼.”
화아악!
대기가 타올랐다.
이정민이 사용한 회심의 일격이 김춘식에게 작렬하려는 순간, 김춘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펑!
화르르르륵!
".........?"
이정민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다급하게 김춘식을 찾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어떻게든 선공을 적중시켰어야 유리하게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는데, 움직이는 적을 맞추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 평소보다 느리게 진행되는 캐스팅에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도 잠시, 눈앞에 툭 튀어나온 존재에 이정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병신.”
퍽!
“억!"
콰당!
이정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칼에 베인 것이 아니다.
김춘식은 마법을 피한 뒤에 사각지대를 공략하였고, 그냥 이정민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꺼억, 꺼억.........."
이정민이 복부를 움켜잡았다.
입에서 진득한 침이 뚝뚝 떨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은 이미 대항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상대 지목권.
선공권.
마법사의 특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법이 무조건 적중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음 캐스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1대1 대결에서 마법사가 우위를 차지하기에는, 마법사의 발목을 붙잡는 단점들이 너무나도 컸다.
슥-
김춘식이 대련용 칼을 이정민의 목에 겨누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전투 불능의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실격 사유.
김춘식의 시선이 김무진을 향하자, 김무진은 더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결투 끝. 승자는 검술 학과의 김춘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일방적인 승리.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검술 학과생들에게 다가가며 웃어 보이는 김춘식의 모습에, 마법 학과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역시나.
이번 훈련은 그들에게 재앙이었다.
이후의 상황은 이정민과 다르지 않았다.
나름 마법을 적중시키는 학생도 있었지만, 검술 학과생은 화염을 뚫고 나타나 그대로 마법 학과생을 베어버렸다. 2서클 마법. 겨우 그 정도의 파괴력으로는 검술 학과생을 단번에 제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발악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마법 학과생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마법 학과생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결투의 성향을 보이는 듯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도살장의 돼지처럼 차례를 기다렸다.
참 안쓰러웠다.
합동 수업이라는 것은, 마법사에게 현실의 차가움을 알려주었다.
“다음은 강민혁.”
강민혁.
그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검술 학과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드디어 강민혁이네.”
“오오.”
“어떤 애를 지목하려나.”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강민혁이 합동 수업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검술 학과생들은 강민혁을 상대하기를 바랐다.
강민혁이 3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선공의 제한은 2서클이고, 이건 강화 전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강민혁을 상대하는 사람은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다. 합동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서, 강민혁을 쓰러트림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강민혁의 지목을 기다리던 학생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자기 PR해도 되겠습니까?”
“미친 새끼.”
“자기 PR이래.”
검술 학과 자리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무진과 강민혁이 특별하게 제지를 하지 않자,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 이름은 유정현이고 발이 아주 느려. 힘으로 승부하는 타입이라서, 마법사가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일 거야. 왜냐면 마법을 사용하는 족족 맞을 확률이 높거든. 기껏 선공했더니 휙휙 피해버리는 다른 녀석들보다는, 그나마 내가 상대하기 편하지 않겠어?”
자기 PR.
보통은 자신을 어필하는 것을 뜻한다면, 유정현은 자신을 깎아내림으로써 선택받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정현을 시작으로 다른 학생들도 나섰다.
“유정현은 마법 몇 방으로 쓰러질 녀석이 아니야. 그러니까 날 선택하는 게 어때? 특별히 마법을 3번 사용할 때까지 공격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마법을 캐스팅하면 돼. 물론 마법을 적중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겠지만, 그래도 3번이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저도.........."
검술 학과만 재밌는 상황이었다.
김무진도 그 행태에 표정이 찌푸려졌으나, 가만히 있는 강민혁의 반응에 굳이 나서지는 않았다.
강민혁이 씰룩, 웃었다.
“아주 재밌나 보네.”
웃겼다.
검술 학과생들의 반응은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장후 일행이나, 수성전의 멤버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강민혁을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열등감에 찌든 열등감 덩어리들. 그들은 강민혁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떻게든 처참하게 무너트리고자 했다.
그게 눈에 보였다.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강민혁을 깔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강민혁에 대한 열등감이 드러났다.
강민혁이 말했다.
“본인들의 입으로 본인이 얼마나 모자란 녀석인지를 증명했으니, 굳이 상대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상대할 사람은 정했어. 이게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천적을 상대해볼 수 있는 안전한 훈련이라면, 덜떨어진 녀석들이 아니라 실력자를 상대해야 지 않겠어?”
“이 새끼가.”
“와, 건방진 것 봐.”
검술 학과생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존심을 벅벅 긁는 행동에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 같았지만, 김무진의 존재가 그들을 억제했다.
점점 달아오르는 분위기.
강민혁의 시선이 한 사내를 향했다.
“저는 최광일을 상대하길 원합니다.”
최광일.
그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검술 학과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술 학과 1학년 수석.
지난 수성전 훈련에서 1조의 리더이기도 했던 사람이, 바로 최광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