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 12. 마법의 선구자(2) >
발표는 끝났다.
독일 마법 협회의 일원인 마르코 도슨은, 강당을 나와서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대가 변했구나.”
강민혁의 발표는 진짜였다.
강민혁은 수많은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나 동화의 이론을 증명했고, 발표가 모두 끝났을 때 열화와 같은 박수 세례가 터져나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0년간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마나의 비밀을, 겨우 17살에 불과한 강민혁이 증명한 것이다. 몇몇 의심병자들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탄탄한 이론은 조금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완벽했다.
확신에 차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강민혁의 모습에, 마르코 도슨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마법의 신(神)처럼 보였어.’
“...강민혁, 그는 정말 무서운 녀석이야.”
“강민혁이요?”
마르코 도슨의 중얼거림에, 이번 한국행을 따라온 그의 제자인 케빈 라이트(Kevin Wright)가 불쑥 끼어들었다.
“강민혁의 재능이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는 진정한 마법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는 모두 마법 학계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엄청난 발견인데,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개했잖아요. 자신의 방향성은 마법 학계의 부흥이라니. 정말 멋있지 않아요?”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강민혁의 선택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마르코 도슨이 살아온 세월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는 거야.”
“왜요?”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에서 발표한 직후, 마법 학과에 1년간 남겠다고 선포하면서 그를 원하는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을 만들었어. 우리 독일 마법 협회도 마찬가지였지. 강민혁이 탐나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확신도 없어.”
마르코 도슨.
그는 강민혁의 영입에 제일 적극적이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의 생각이 조금은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마나 동화를 무료로 발표하는 행보를 보여주었어. 다들 강민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더군. 이해해. 그만큼 마나 동화는 대단한 발견이니까. 문제는 이번 발표에 참석한 사람들이 마법 학계에서 모두 알만한 명사들이라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는 알아?”
“...잘 모르겠어요.”
“마법 학계에서 강민혁의 발언에 힘이 생겼다는 거야. 그가 오라고 하면 우리는 가야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들어줄 수밖에 없어. 왜냐고? 그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거든. 시대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강민혁과 협력할 수밖에 없어.”
화륵.
불의 원소를 일으켰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하아.”
담배가 썼다.
강민혁을 영입하기에는, 그가 생각보다 빠르게 거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강민혁은 본인의 지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공공재(公共財)로 취급하겠다고 말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을 알아본 이상, 마법 학계의 사람들은 절대 강민혁을 해할 수 없어. 그랬다간 난리가 나겠지. 대단한 학자가 나타났는데, 그를 해하는 것은 지식을 갈망하는 마법사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일 테니까. 적어도 강민혁이 특정 세력에 포함되지 않는 한, 강민혁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돼. 그게 문제인 거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
참 애매했다.
강민혁 개인의 힘이 대단한 건 아닌데,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력의 싸움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마르코 도슨의 시선이 케빈 라이트를 향했다.
“넌 강민혁이 겨우 17살의 어린 아이로 보여?”
".........."
대답하지 못했다.
강민혁은 아직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발표와 행보는 17살의 나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부터 강민혁은 절대적인 갑(甲)임과 동시에 마법의 선구자가 되었어. 고로 판이 바뀌겠지. 세계 마법 연합과 소수의 세력이 주도하던 판이, 일개 개인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될 거야. 웃기지 않아? 100년의 마법 역사가, 이렇게 일순간 큰 변화를 맞이한다는 게?”
마르코 도슨이 낄낄 웃었다.
약간 실성한 듯, 그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자존심을 버려. 우리는 강민혁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그의 곁에 남아야 하니까.”
발표는 대단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민혁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 뒤.
그곳에는 이학범이 있었다.
마나 동화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그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그림자가 보였다.
“정말 대단한 발표였어. 우리가, 아니 네가 마법 학계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 거야.”
네가.
그 단어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마나 동화의 자료를 받고, 그간 정말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학자로서의 이학범. 지도자로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자 이학범은 그 열정과 노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법을 연구하다 보니 알겠더군. 내가 연구의 세부적인 것들을 조율하지만, 결국 연구의 완성은 너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래서 참 씁쓸해.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할지라도, 마나 동화를 비롯한 대단한 연구들은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완성될 거야. 하지만 민혁이 네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면, 예전과 똑같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화려한 무대 뒤.
그곳에서 이학범은 자괴감에 빠졌다.
이번 연구에 대단한 역할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에 불과했다.
참담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을 선사했다.
“부정하지 않을게요. 연구에 필요한 결정적인 자료를 제가 제공한 것은 맞지만, 제가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학범 교수님이 필요해요.”
“...내가 왜 필요하지? 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너의 연구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많을 텐데.”
“이학범 교수님. 본인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수많은 교수들.
그중에서 강민혁은 이학범을 선택했다.
왜일까?
그가 대단한 학자라서?
아니다.
열망과 노력은 대단하나, 이학범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와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의 학자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강민혁은 이학범이라는 사람을 원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학범 교수님은 마법 학계의 부흥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던 마탑 생활을 청산하고 마법 학과에 들어오셨고,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마법 학계에 도움이 될만한 연구를 진행하셨어요. 저는 그런 이학범 교수님의 모습에 반했어요. 누가 연구를 주도적으로 완성 시켰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와 이학범 교수님이 같이 이룬 결과고, 이학범 교수님의 그 순수한 열정이 후일 마탑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킬 거라 생각해요.”
마탑.
마법사들의 보금자리.
그건 단순히 ‘힘’을 위한 세력이 아니다.
강민혁은 항상 정답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아기새마냥 지식을 받아먹는 그림을 바라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해내는 힘도 필요하다.
이학범은 그 힘의 원동력이 될 것이고, 강민혁의 마탑에 소속되는 사람들은 강민혁의 지식과 이학범의 열의에 스스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게 강민혁이 바라는 이상적인 마탑의 모습이었다. 이학범의 명성이 이제는 필요 없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와 같이 연구를 행하는 이유다.
먼 미래.
몬스터들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강민혁은 단단한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
이학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
연구에서 대단한 성과를 얻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로 인한 마법 학계의 부흥이었을까.
후자다.
마법이 무시를 받는 이 세상에, 이학범은 크지는 않지만 자신의 힘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웃음이 나왔다.
연구에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지만, 강민혁이 자신이라는 사람을 바란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면 됐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부흥시킬 인물이고, 자신은 그를 도와줄 것이다.
바라보는 길이 같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강민혁을 위해 일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이학범.
훗날 마법 학계의 대부(代父)라고 불릴 사나이.
그는 그렇게 강민혁의 곁에서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수성전 이후.
마법 학과에서 강민혁의 위상이 달라졌다.
합동 수업은 마법 학과생들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유명한 수업인데, 강민혁은 오히려 주인공이 되었다.
“수성전 영상 봤어?”
“강민혁 개쩔던데.”
"강민혁은 마법의 천재야. 벌써 3서클을 형성하고, 마나 동화를 개발해냈잖아. 사실 처음에는 강민혁이 도피성 입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마나 동화.
아무런 대가 없이 대단한 지식을 공개하면서, 마법 학과의 학생들은 강민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학기 초반.
강민혁은 양쪽 모두 소속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법 학과의 우상이 되었다.
그렇게 마법 학과에서 인정을 받는 것과는 달리, 검술 학과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검술 학과 역사상 마법 학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건 검술 학과의 굴욕이고, 우리는 이를 반드시 만회해야만 해. 그러니 마지막 ‘생사 결투’에서는 검술 학과의 저력을 마법 학과 녀석들에게 보여주자고.”
검술 학과에서 퍼지고 있는 말이다.
그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강민혁에게 1등의 영광을 빼앗겼다.
물론 1등 조에는 이장후 일행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래서 검술 학과생들이 마지막 생사 결투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생사 결투는 양쪽의 학과생들이 나와서 겨루는 무대. 어떤 학생이 강민혁의 상대로 선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3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마법사에게 패배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럴 일은 벌어질 리 없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
누가 1대1에 강한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은가.
마지막 합동 수업.
수성전이 마법사를 위한 무대였다면, 생사 결투는 일방적으로 강화 전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무대다.
강민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소문에, 강민혁의 신경도 예민하게 변했다.
‘내가 강화 전사를 이길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차라리 검을 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지만, 마법사로서의 강민혁은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겨야만 해. 마법사로서의 가능성. 클리스만의 지식이라는 특혜를 받아놓고도 검술 학과 1학년생에게 패배한다면, 강화 전사를 상대하는 상황에서 나는 매번 약자일 수밖에 없어.’
의욕이 불타올랐다.
강민혁은 이번 기회가,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며칠 뒤.
모두가 기다리던, 생사 결투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