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12. 마법의 선구자 >
뇌가 굳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일반 학생의 입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에, 김무진의 눈동자가 파도를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마나 동화를 직접 개발했다고?’
마나.
이 세상의 미스터리.
마나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열린 이후, 마법사들은 마법에 들어가는 마나 소모량을 낮추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래야만 했다. 서클에 있는 마나만으로는 장시간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마나의 비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뚜렷한 방법은 찾지 못했고, 결국 사람들은 그 문제를 ‘난제(難題)’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이 마법사들을 괴롭히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아무리 김무진이 강화 전사라고는 하나,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투자하는 마나에 비해 그 효율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강화 전사는 일말의 마나로도 오라를 형성할 수 있지만, 마법사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이러한 약점은 마법사들을 항상 괴롭혀오던 문제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네가 정말 마나 동화라는 기술을 발명해냈다면, 그건 마법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이다.”
현실을 부정했다.
마나 동화가 얼마나 대단한 이론인지.
김무진은 그러한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경악으로 얼룩진 눈으로 강민혁이 얼른 대답하길 바랐다.
그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법 학과생들의 경우에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처음 마법에 입문할 때.
조언이랍시고 그들이 듣는 말이 있다.
“정말 마법에 입문할 생각이라면 이것만은 기억해. 마법사가 세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5서클 이후의 미래가 없다는 것과 마나의 한계 때문이야. 네가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다 할지라도,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5서클이 끝인 데다 그 마법조차도 오래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이 세상의 재앙은 마법사를 배려해주지 않아. 무기만 있으면 끝까지 싸울 수 있는 강화 전사들과는 다르게, 너희는 마나가 동이 나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지킬 힘이 사라지게 돼.”
마법사.
그들이 저평가받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김무진의 발언은 그것을 지적하였고, 마법 학과생들의 시선이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정말일까.
마나 동화라는 기술이 실제로 개발되었고, 그 기술만 있다면 마나의 약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강민혁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마나 동화의 개발이 마법 학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학과생들이라면 몰라도, 마법 학술 대회에서 더블 캐스팅과 마법 형태 변화를 발표한 저의 발언은 그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을요."
".........."
안다.
그래서 되물었다.
정말 꿈의 기술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강민혁의 입으로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미치겠군.”
평가의 자리가 변했다.
수성전의 영상을 분석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너무 큰 사건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대체 강민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민혁.
수호문의 후계자.
분명히 강화 전사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가, 마법의 길을 걷자마자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로는 이 상황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강민혁이 마법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김무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철혈검이라고 불리는 그조차도, 강민혁 앞에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네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단언한다.
강민혁은 앞으로.
“너는 마법의 선구자(先驅者)가 되겠구나.”
수성전의 소식이 곧 학과에 전달되었다.
그러자 학과장 최병호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뭐어???!!”
마나 동화.
설명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단어.
최병호는 부랴부랴 학과장실로 복귀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민혁이 학과장실을 방문했다.
“아이고, 혁아. 훈련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니?”
“괜찮아요.”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
최병호가 호들갑을 떨었다.
최병호의 안내에 강민혁은 푹신한 소파에 앉았는데, 최병호는 늘 그렇듯 상석이 아니라 맞은 편에 앉았다. 볼 때마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장 정도의 신분이 학생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최병호는 강민혁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상하 관계가 무너진 상황.
최병호는 마치 본인이 아랫사람인 것처럼,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마나 동화에 성공했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마나 동화에 대한 말을 듣고, 최병호는 믿을 수가 없어서 수차례 볼을 꼬집었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그것들은 정말 대단한 발견이다.
특히 더블 캐스팅으로 인해 마법사의 위력이 강해졌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마나였다.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마나가 동이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최근에는 ‘조루 마법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더블 캐스팅으로 한 번에 화력이 확 타올랐다가, 금방 빌빌대는 마법사들을 비유한 단어였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 마법 학계는 마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강민혁이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강민혁이 말했다.
“예, 성공했습니다. 예전에 이학범 교수님을 통해 보고받으셨지 않습니까? 마법 학술 대회가 끝나고 이학범 교수님과 저는 마나 동화 연구를 시작했고, 최근에 완벽한 이론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아.”
최병호의 표정이 환해졌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신음 섞인 뜨거운 숨이 내뱉어질 정도였다.
그가 말했다.
“그걸 우리 아카데미에, 아니 내게만이라도 공개해줄 수 있나?”
중요한 문제다.
최병호도 엄연히 마법사다.
학과장으로서 학생들의 수준이 발전하길 바라지만, 그래도 가장 최우선은 자신의 발전이다.
최병호의 기대 어린 눈빛이 강민혁을 향했다.
처음 입학할 때는 근엄하게 학생들을 내려다보던 그가, 지금은 강아지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애초에 마법 학과의 지원을 받고 시작한 연구입니다. 학과장님뿐만 아니라, 마법 학과의 학생들에게도 ‘마나동화’를 최우선으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저는 학과장님과의 거래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게 학교 생활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약속한 대신, 저 또한 학과장님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역시.”
확.
최병호가 강민혁의 손을 움켜잡았다.
감격에 차오른 표정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표현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있어. 민혁이 널 처음 보았을 때, 마법 학과의 보배임을 한 번에 알아보았지.”
피식, 웃었다.
첫 만남.
그때만 하더라도, 수호문의 출신인 강민혁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계산기를 두드리던 최병호가 있었다.
절대 이렇게 살갑지 않았던 그가, 과거의 기억을 미화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말만 해.”
계산이 빠른 사람은 상대하기 편하다.
주도권을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이상,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것이다.
“세계 마법 연합에게 연락을 돌려주세요. 제가 마나 동화를 발명해냈으니, 그걸 확인하고 싶다면 내일 점심까지 이곳으로 모두 모이라고. 그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계획의 일부.
지금부터는 판을 주도할 차례다.
난리가 났다
최병호가 열심히 연락을 돌리자, 전 세계의 마법 연합들이 경악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입니까?”
“소모 마나량을 감소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요?”
“당장 가겠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
그리고 여러 마탑들.
각자의 나라에서 강대한 세력을 일군 그들과 비교하면, 마법 학과 최병호의 이름값은 정말 보잘것이 없다. 최병호는 정치를 잘해서 학과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지, 마법사로서 뛰어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연락을 받은 사람들은 최병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병호가 강민혁의 대변인임을 알기에, 그들은 당장 떠날 채비를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마법 세력들.
그들 중에는 명망 높은 대마법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 마법 협회의 존 웨슬리와 같은 인물도, 전화 한 통에 마법 학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 학과의 한 강당.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묘한 기대감으로 차올라 있었다. 강민혁이라는 어린 학생의 요구에 먼 걸음을 달려온 것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나 동화.
마법사의 난제를 해결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한국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할지라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다.
“마나 동화라는 기술이 정말 가능한 걸까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성공시킨 강민혁이에요. 이미 선례가 있는 이상, 그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요.”
속닥이는 사람들.
그들은 진위 여부를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강민혁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뜻 받아들기에는 이번 발견은 그 무게가 대단했다.
그때였다.
강민혁이 나타나자, 소란스러웠던 강당이 깊은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제 연락에 이렇게 한달음에 찾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전합니다. 저는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의 1학년생인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짝짝짝.
짝짝짝.
박수가 나왔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강민혁이라는 이름에, 마법 학계의 명사(名士)라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쳤다.
“일단 마나 동화를 설명하기 전에, 제가 생각하는 방향성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마법 학술 대회에서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발표한 것처럼, 제가 알아낸 지식을 독점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마법 학계의 부흥입니다. 고로 마나 동화를, 아무런 대가 없이 여러분들에게 공개하겠습니다.”
"헉."
“무료로 공개한다고?”
“대체 왜?”
웅성웅성.
사람들이 당황했다.
마나 동화.
그건 억만금을 받아낼 수 있는 기술이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지식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한다면, 수천억의 돈을 그냥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강민혁에게 이제 돈은 큰 의미가 없었다. 붉은 마나석의 비밀을 알아낸 이후, 강민혁은 금전적인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무료로 풀었다.
이로 인해 보일 사람들의 반응.
이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였다.
‘마법 학술 대회로 나는 유명세를 얻었어.’
첫 번째 단계.
사람들에게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공개한 대가로, 사람들은 강민혁의 이름을 주목하였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가능했다.
만약 강민혁이 이름 모를 평범한 학과생이었다면, 마나 동화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헛소리로 치부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을 경악에 빠트린 선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구심은 가지되 차마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엉덩이가 무거운 마법 학계의 명사들이 대거 움직였다.
이게 두 번째 단계다.
마법 학계의 명사들이 강민혁의 의도대로 움직인 순간부터, 강민혁은 보다 확실한 발언권을 얻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는 어떤 말을 하든, 마법 학계는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식을 가지고 강경하게 나가야 하나, 아니면 대가성 거래를 해야 하나.
아니다.
강민혁은 힘이 없다.
그래서 무료로 지식을 공개함으로써 분란은 일으키지 않되, 그 안에는 치명적인 독을 풀었다.
‘나는 마법 학계의 성역(聖域)이 될 것이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
대단한 기술들의 발명으로, 전 세계 마법 연합은 욕심은 있지만 강민혁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잘못 건드린다면, 다른 세력의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런 아슬아슬한 힘의 경계선에서, 강민혁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더 대단한 지식들.
마법 학계를 발전시킬 새로운 발견들.
아기새처럼 자신에게 지식을 공급받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강민혁이 새로운 마탑을 건설하고 지식을 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마법 학계의 판도가 바뀌겠지.’
자신과 타협하든.
자신에게 가담하든.
아니면 자신에게 돌아서든.
마법 학계가, 자신의 마탑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강민혁은 상당히 대담하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마법 학계가 100년간 쌓은 탑을 무너트리고자 했다.
강민혁이 웃었다.
“지금부터 마나 동화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이건 독이다.
하지만 아직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욕망이 있는 인간이라면 꿀떡꿀떡 삼킬 수밖에 없는 독.
강민혁의 설명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