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43화 (43/197)

43화.  <11. 수성전 (4) >

남쪽 방향.

그곳에 투입된 3조의 멤버들은, 시작부터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았다.

크아아악!

“이런!”

“따라가!”

남쪽에는 2개의 길목이 있다.

그래서 당연히 양쪽에 4명씩 강화 전사를 배치하고, 중앙에 있는 건물에서 마법사가 상황에 따라 양쪽을 모두 커버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경험이 떨어졌고, 현실이 계산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게이트에서 나타난 오크들.

그들이 계획과는 다르게, 대다수가 오른쪽 방향을 공격한 것이다.

크아아악!

“제길!”

그때부터 남쪽은 혼란에 빠졌다.

오른쪽을 도와주기 위해서 자리를 이탈하는 바람에, 남쪽의 학생들은 수성의 이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노출되어버린 상황. 그들은 정신없이 달려드는 오크들을 상대했다. 전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마주하는 적을 상대할 뿐이고, 죽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발악했다.

“윈드 커터(Wind Cuttur)."

사사삭!

옥상에서 마법사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그러나 2서클 마법 하나만으로는, D급 이상의 오크들에게 타격을 입히기엔 힘들었다.

기껏해야 몇 마리가 다치는 정도.

마법사는 강민혁처럼 강력한 화력을 선보일 수 없었고, 전투 내내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법사란 그렇다.

한 명보다는 두 명.

두 명보다는 세 명이 시너지를 발휘한다.

아무리 수성전에 이점이 있다지만, 겨우 ‘2서클 마법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위태로운 상황.

그럼에도 남쪽의 학생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강화 전사의 저력 덕분이었다.

푸학!

화르르르르륵!

“물러나지 마!”

남쪽의 리더.

송기백이라는 학생이, 오러를 강력하게 일으키며 오크를 베어버렸다.

그는 검술 학과에서 이장후보다 뛰어난 실력의 검사로 인정받는다. 그를 필두로 학생들이 고군분투하였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베고 또 베고. 정신없이 오크들을 상대하다 보니, 정말 다행히도 남쪽의 학생들은 오크들을 뒤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뒤가 안전했다.

적어도 사방에서 공격받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수성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많이 남은 시간.

치열한 혈투가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부상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경비 병력을 투입시키기 위해서, 교수들은 남쪽 학생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였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남쪽 학생들.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투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냈지만, 마지막 10분에 그 불길이 약해지고 말았다.

체력의 한계.

50분을 버텼으면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다.

북쪽보다는 몬스터의 숫자가 현저히 적다고는 하나, 그들은 시작부터 너무 어려운 싸움을 했다.

퍽!

“커억.”

한 학생이 오크의 발길질에 맞았다.

그가 바닥을 나뒹굴자, 대열에 생긴 공백으로 오크들이 밀려 들어왔다.

게이트에서 더 이상의 오크는 소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아 있는 오크들을 처리할 힘이 없었고, 옥상 위에 있는 마법사는 마나를 모두 사용하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굴렀다. 어떻게 도와주고 싶었지만, 옥상에서 내려와 싸우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위기.

남쪽의 방어 라인이 무너지려는 순간.

오크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격해!”

“와아아아아아!”

북쪽 학생들.

그들이 도착했다.

정확히 세 조로 인원을 나눈 그들은, 남쪽에 도착하자마자 오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남쪽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체력이 떨어진 것은 같았지만, 그렇다고 동료의 위험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오크의 소환이 끊긴 상황에서, 북쪽 학생들의 도움은 희망의 불길을 살렸다.

서걱!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오크.

이장후는 몸만 남은 몸통을 그대로 걷어차더니, 피로로 얼룩진 송기백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괜찮기 한데, 북쪽은 어떻게 했어?”

송기백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이장후.

그는 북쪽으로 간 멤버다.

그런데 아직 수성전의 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수성이 아니라, 소탕에 성공한 게 아닐까.

그러나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북쪽에 마법사 1명, 강화 전사가 8명이나 더 갔다지만, 북쪽은 커버해야 할 범위도 넓을뿐더러 오크의 숫자도 많다고 했다. 남쪽보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더 좋지 않았지, 벌써 북쪽의 상황을 정리하고 다른 쪽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이장후가 피식, 웃었다.

본인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남쪽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북쪽은 이미 상황을 모두 정리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중에 확인해 봐. 북쪽에는 우리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진짜 마법사’가 있었거든.”

훈련이 끝나면.

던전 탐사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훈련 영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장후는 입 아프게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모두가 본인이 받은 충격을 경험하길 바랐다.

삐익-

훈련이 종료되었다.

수성전을 성공리에 마친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김무진이 상황을 정리했다.

“총 10개의 조가 수성전을 진행하였고, 그중 3개의 조가 부상자가 발생해서 도중에 수성전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5개의 조는 길목이 뚫림으로써 수성 실패. 1조와 3조만이 수성전 임무에 성공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려 여덟 개의 조가 수성에 실패했다.

참담한 성적에 고개를 숙인 학생들과는 다르게, 1조의 학생들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김무진을 보았다.

‘우리가 1등이겠지.’

확신했다.

1조의 학생들은 미리 사전에 얘기해서 검술 학과의 엘리트들만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강민혁이 사용한 전술처럼 ‘수혈팩’을 사용하는 등의 상당히 체계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완벽하게 수성에 성공하였다. 그러니 자신들이 1위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사실 오크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1시간 동안 버터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수성전의 1위는 바로 3조다.”

“예?”

1조의 리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3조가 1위입니까? 저희도 부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수성을 마쳤습니다. 3조도 저희와 다르지 않을 텐데, 왜 3조를 1위로 선정하신 겁니까?”

타당한 의견이었다.

리더의 말에 1조의 조원들도 동조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등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그 결과에서 순위가 나누어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너희는 수성에 성공했고, 3조는 ‘소탕’에 성공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너희도 알고 있을 텐데.”

“...소탕이라고요?”

1조의 리더가 당황했다.

소탕.

예상치도 못한 단어다.

이번 훈련은 수성만 해도 대단한 것인데, 3조는 소탕을 했다는 말인가.

“그래, 소탕. 3조는 1시간이 되기 전에 오크를 모두 소탕하였다. 수성전의 임무가 민간인의 보호를 위해 일정 구역으로 몬스터를 통과시키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오크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다. 3조는 수성뿐만 아니라, 소탕의 임무도 완벽히 성공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3조가 소탕에 성공했다면, 이번 수성전 훈련에서 3조가 1위로 선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직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들.

실제로 영상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눈빛들에, 김무진이 말했다.

“직접 봐야 납득할 수 있겠다는 눈빛들이군. 그럼 이번에는, 1위의 영상을 먼저 보여주도록 하겠다."

팟.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1시간 동안, 학과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법사.

그들도 엄연히 헌터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위력적이기에, 현역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은 마법사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검술 학과는 왜 이렇게까지 마법 학과를 배척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어른들로부터 내려온 인식 때문이었다.

마법사는 약하다.

마법사는 미래가 없다.

마법사는 강화 전사보다 밑이다.

어른들이, 사회가 꾸준히 떠들어대는 말들로 인해,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보는 마법사도 편견과 다르지 않았다. 아직 낮은 서클의 마법사는 효율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벌써부터 강한 무력을 선보이는 자신들에 비해 하찮게만 보였다. 저들이 강해져서 3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된다면, 그때는 마법사도 나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3서클에 오를 정도면,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더욱 강력한 헌터가 될 것이다.

점점 벌어지는 차이.

마법사가 평생 을의 위치에 있음을 알기에, 검술 학과생들은 마법 학과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고, 인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3조의 수성전 영상은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쾅!]

[화르르르르르륵!]

강민혁이 사용하는 마법.

강력한 불길이 오크들을 덮치자, 수많은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건 검술 학과생들이 익히 알고 있던 마법의 위력이 아니었다. 아카데미라는 제한적인 그들의 세상에서는 2서클 마법, 강해봤자 3서클 마법이 전부였는데, 4서클의 위력을 뿜어내는 마법을 보자 넋을 잃고 말았다.

3서클.

강민혁이 어떻게 3서클의 경지에 올라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이러한 활약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검술 학과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법사는 가능성이 있다.

6서클 이후의 마법이 발명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은 분명히 헌터의 한 갈래로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영상이 끝났다.

마지막 오크마저 쓰러지는 모습에, 방금까지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던 1조의 리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웃긴 것은 충격을 받은 사람이 검술 학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법에 대해 더 잘 아는 만큼, 마법 학과생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부릅뜬 눈으로 강민혁을 보았다.

김무진이 말했다.

“사실 3조의 결과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인원을 분배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선택이 좋기는 했지만, 강민혁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오크들을 절대 소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말을 끊었다.

김무진의 시선이 강민혁에서 멈추더니, 고민하는 듯 묘한 눈빛을 보였다.

그로서는 궁금했다.

강민혁이 어떻게 3서클을 마법을 사용했는지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민혁.”

“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괜찮겠나?”

“예, 하셔도 괜찮습니다.”

강민혁은 천재다.

뛰어난 재능 덕분에 3서클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절대 해소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그건 마법사 전체의 문제점이고, 마법사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부분이다.

“너는 이번 수성전에서 3서클 마법을 무려 16회나 사용했다. 그전에 사용한 2서클 마법도 포함 시킨다면, 1시간 동안 20회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지. 이는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마법사의 서클에는 한계가 있고, 아무리 많은 양의 약물을 투여했다 할지라도 3서클 마법사는 절대 10회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모두의 시선이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맞는 말이다.

강민혁과 같은 조였던 이장후 일행조차도, 끊임없이 사용되던 마법에 의문을 가졌었다.

대체 어떻게?

모두가 해명을 바랐다.

그리고 강민혁은,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마나 동화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마나 동화? 그게 무엇이지?”

“자연의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의 소모 마나량을 줄여주는 방법입니다.”

“...?!"

김무진의 눈이 커졌다.

마나 동화라니.

처음 듣는 기술이었다.

“그런 기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강화 전사라 할지라도, 마법사의 세계에 대해서 모르지 않다. 만약 그런 기술이 있었다면, 나 또한 마나 동화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마나 동화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강민혁이 김무진을 올려다보았다.

의심과 경악으로 얼룩진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며, 강민혁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릴 폭탄을 떨어트렸다.

“마나 동화는 제가 만들어낸 기술이니까요.”

쇼타임.

강민혁은, 합동 수업의 주인공이 되길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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