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11. 수성전 (3) >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파이어 버스트의 열기가 아직 채 가라앉기도 전에, 더블 캐스팅으로 하나의 마법이 더 완성되었다.
“파이어 웨이브(Fire Wave).”
화르르륵.
화염의 파도.
옥상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물결이, 그대로 지상에 있는 오크들을 덮쳤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끄에에엑!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2서클 마법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강민혁의 마법은 차원이 달랐다. C급은 4서클, D급은 3서클 마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마법 세계의 공식이다. 그런데 지금 강민혁이 4서클에 버금가는 화력의 마법을 사용하니, 대부분 D급의 오크들로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새카맣게 타 들어가는 피부. 픽픽 쓰러지는 오크들의 모습에, 이장후를 비롯한 강화 전사들은 여유를 되찾았다.
“공격해!”
“죽어!”
서걱!
반격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상황이 널널 해지자, 강화 전사들의 오러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오크들의 머리를 무차별적으로 베어버렸다. 대혼란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화염에 타오르는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오크들의 학살이 벌어지고. 게이트에서 나타난 오크들의 숫자는 무려 백 마리에 달했지만, 그런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쪽 진지는 단 한 마리의 오크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역시 엘리트들이라는 건가.’
강민혁이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오크들을 막아내는 검술 학과생들의 모습에, 새삼 그들이 달리 보였다.
검술 학과.
명칭을 ‘검술’로 통합하기는 했지만, 검술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무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강화 전사에 특화된 재능을 말한다. 검술 학과에서 평균의 실력을 갖춘 이장후조차도, 일반인 출신 헌터들과 비교했을 때는 재능이 뛰어난 편이다. 그걸 증명하듯, 검술 학과생들은 오크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선전 덕분에, 애초에 지금과 같은 판을 만들 수가 있었다.
옥상은 평화로웠다.
지상에서 그려지는 지옥도와는 다르게, 강민혁은 검술 학과생들의 희생으로 시간과 공간적인 여유를 얻었다.
화악-
다시 흩뿌려지는 마나.
이번 수성전에서 강민혁의 역할은 명확하다.
딜러.
오크들의 씨가 마를 때까지, 폭발적인 화력을 계속해서 뿜어낼 것이다.
“파이어 버스터.”
쾅!
화르르르륵.
옥상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정상훈이 보조하고, 강민혁이 마무리하고.
그러한 모습에 밑에 있던 검술 학과생들이 감탄한 표정을 보였다. 그만큼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마법사가 보일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는데, 강민혁과 정상훈의 호흡은 대단했다. 특히 강민혁의 마법. 1학년 학과생이 3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화르르르르륵.
활활 타오르는 대지.
오크들이 분노에 차오른 눈빛으로 옥상을 올려다보았으나, 그들에게는 강민혁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비행 능력이 없는 그들에게는 너무 높은 위치인 데다,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려고 해도 강화 전사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완벽했다.
강민혁은 수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었다.
강화 전사들이 앞에서 막아서고, 마법사들이 안전한 상태에서 딜을 넣고.
적어도 ‘뛰어난 마법사’라는 전제만 갖추어진다면, 이러한 이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눈에 띄게 줄어드는 오크들.
그리고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북쪽의 현장은,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교수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강민혁이 3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자리에 앉아 흥미롭게 영상을 지켜보던 백동석 교수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벌떡!
“파, 파이어 버스트라니.”
당황스러웠다.
전에 강민혁이 2서클 마법사임을 밝힐 당시, 백동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도 강민혁의 성장에 경악했었다. 강민혁은 분명히 입학 할 때만 하더라도 1서클 마법사였는데, 지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3서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해 보았지만, 영상에서의 강민혁은 강력한 3서클 마법으로 오크들을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었다.
“백동석 교수님. 강민혁이 원래 3서클 마법사였습니까?”
김무진이었다.
김무진도 상당히 당황한 모양인지, 그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보였다.
“아니요. 아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얼마 전에 2서클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는데, 지금은 3서클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무진 교수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서클의 형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몇 개월 만에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짧은 시간에 강화액을 과다하게 투입할 경우, 아직 단련되지 않은 인간의 육체는 그대로 붕괴하고 맙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현실을 부정하는 그의 모습에, 김무진의 시선이 모니터에 고정되었다.
“...저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강민혁을 실제로 본 경험이 있습니다. 무투 대회에 출전했던 강민혁은, 마법사로서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마법 학과에 입학해서야 마법을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천재는 상식의 영역을 벗어난다지만, 강민혁의 성장은 천재라는 단어조차로도 설명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충격에 빠졌다.
영상을 보는 교수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그들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민혁의 마법은, 백동석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번 수성전의 상대로 오크가 선정된 것은, 현재 마법 학과생들의 마법으로는 다소 버거운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D급의 오크를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이 서로의 힘을 합칠 필요성이 있죠. 그런데 보십시오. 강민혁의 마법에 D급의 오크들이 그야말로 학살을 당하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3서클 마법을 버텨내야 할 C급의 오크 전사도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C=4서클.
그건 공식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전투 끝에 내린 결론.
그렇다면 오크 전사는 강민혁의 마법을 버텨내야 할 텐데, 비명을 꽥꽥 지를 뿐 전혀 반항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알 수 있는 사실.
강민혁의 마법은 3서클이나, 그 위력은 4서클에 버금간다는 것이다.
“...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3조의 전술에 감탄했다.
하지만 한 길목에 몬스터를 집중시킨 것은 패착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상식 밖.
교수들의 상식으로도 강민혁은 설명할 수 없다.
그때, 김무진이 말했다.
“어찌됐든 간에 강민혁은 ‘합동 훈련’의 수준을 벗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정도의 화력을 갖추고 있다면, 몬스터를 한 길목에 집중시킨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민혁은 대단하다.
인정한다.
그의 활약 덕분에, 백 마리에 달하던 몬스터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문제는.
“게이트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입니다. 우리는 ‘오크 우리’에서 배출되는 오크가 40분 동안은 일정 숫자를 유지하도록 설정했기때문에, 아무리 많은 오크를 죽였다 할지라도 위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강민혁의 마나가 다 떨어진다면, 그때부터 위기는 시작될 겁니다. 강민혁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나, 그와 같은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니까요.”
벌써 6번째 마법.
[쾅!]
[화르르르르르륵!]
비명을 지르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김무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곧이다.
강민혁의 마나가 동이 나는 순간, 3조의 위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상했다.
벌써 처리한 오크만 오십 마리 정도.
그런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오크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하나의 가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숫자가 유지되도록 설정되어있는 건가.’
그것밖에 없었다.
백 마리면 학생들의 힘으로 간신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인데, 게이트는 그 이상의 몬스터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밸런스가 무너지는 수준. 강민혁의 마법이 중단되는 순간, 체력적으로 고갈이 심할 강화 전사들로서는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마법이 중단될 가능성은 없어.’
마나 룸.
그 훈련의 효과는 정말 탁월했다.
남들은 고가의 물품이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상급의 마나석을 매일 6개나 사용하니, 강민혁의 서클에는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방대한 양의 마나가 축적되어 있었다. 옆에 있는 정상훈과 비교하면 가히 대해라 칭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3서클 마법을 벌써 6번이나 사용한 상황이었지만, 아직 강민혁의 서클에는 상당한 양의 마나가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나 동화.
강민혁은 마법을 사용함에 있어 온전히 본인의 마나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자연의 마나를 빨아들임으로써, 절반의 소모만으로 3서클의 마법을 구현해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마법사가 장기전에 약하다는 것인데, 강민혁은 그러한 상식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파이어 버스트, 파이어 웨이브.”
쾅!
화륵, 화르르르륵!
마법이 계속해서 발현되었다.
교수들이 놀라건 말건, 강민혁은 강력한 화력으로 전장의 밸런스를 맞추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분명히 강화 전사가 이 세상의 주류이지만, 지금은 마치 마법사가 주류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매우 특별한 케이스였다.
만약 강민혁과 똑같은 3서클 마법사를 데려와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출할 수는 없다. 마법의 위력이 차이가 나는 데다, 그들은 마법을 조금만 사용해도 마나가 동이 날 것이며, 캐스팅 속도도 평균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건 마법사라는 포지션의 대단함이 아니라, 그냥 강민혁이 대단한 것이다.
괴물.
강민혁의 활약은 상식을 무너트렸다.
강화 전사들의 활약도 분명히 대단했지만, 지금만큼은 강민혁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쾅.
화르르르르륵!
강민혁의 마법이 다시 한번 작렬하는 순간, 더 이상 게이트로부터 오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40분.
그 시간이 지난 것이다.
교수들은 40분 동안 오크를 소환하면, 남은 20분의 시간 동안 남아 있는 오크들과 사투를 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오크들이 추가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남아 있는 오크들은 순식간에 학살을 당했다. 강민혁의 지원과 강화 전사들의 무력이 한데 어우러지자, 개개인이 강하지 않은 오크 무리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푸확!
끼에에엑!
팔이 날아간 오크가 비명을 질렀다.
길게 이어진 전투에 이장후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버텨냈다는 사실에 표정은 희열로 차올랐다.
강화 전사.
그들은 본인들이 어째서 주류인지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지원이 있었다고 한들, 40분의 시간 동안 버텨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마지막.
드디어 딱 한 마리 남은 오크마저 처리했을 때,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털썩!
“끄, 끝났어!”
“후욱, 후욱.”
학생들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몸을 경직시키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강민혁은 쉬지 않았다.
강민혁은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곧바로 옥상에서 내려오더니,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이장후에게 말했다.
“가자.”
“어, 어딜?”
“어디긴. 다른 방향을 도와주러 가야지.”
북쪽의 임무는 끝났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한쪽만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방향에서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
아직 10분이 남은 상황.
“지금부터 병력을 세개로 나누자.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딱 10분만 더 고생하면, 너희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이장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도저히 힘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강민혁의 말에,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래, 하자.’
복종을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 두 번의 경험.
강민혁과 있었던 순간들의 기억에, 이장후는 이제 진심으로 강민혁에게 복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