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11. 수성전(2) - 유료 연재 시작 >
게이트.
그것을 재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차원의 균열이 일으키는 변화무쌍함 때문이었다.
“게이트는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는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일 뿐, 던전과는 달리 ‘하나의 통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최초로 게이트 현상이 포착되는 지점. 그곳에서부터 약 1km 반경으로 어디에서든 게이트가 생성될 수 있기 때문에, 수성전의 범위는 위험 지역을 모두 포함한다.”
1km.
그 범위가 기준점이 된 이유였다.
던전과 같이 한 지점에서 게이트가 생성된다면 그곳만 공략하면 되지만, 게이트의 경우에는 일정한 패턴이 없어서 1km 범위를 완전히 포위해야만 한다. 그래서 수성전이라는 초동조치가 생긴 것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골든 타임(Golden Time)의 시간을 약 15분 정도로 설정하였다.
최초 게이트 현상 포착 이후, 인근에 위치한 헌터를 소집하는 시간 5분.
그리고 헌터들이 모여서 1km 반경으로 방어 라인을 형성하는 시간이 10분.
이렇게 15분의 시간이 흐르면 적게는 한두 개, 많게는 수십 개의 게이트가 몬스터들을 토해낸다.
그나마 15분의 딜레이가 있는 게이트는 대응이 쉬운 편이지만, 가끔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레드 게이트라는 종류도 있다. 그것은 국가적 재앙으로 선정되었으며, 레드 게이트에서는 보통 A급 몬스터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그때는 인근 헌터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헌터가 모두 소집된다.
상황 발생.
아카데미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통로를 통해, 오크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륵.
취익.
오크들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낯선 환경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게이트를 통해 속속들이 나타나는 오크들. 짧은 시간에 오크들이 벌써 시야를 가득 메우는 모습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장후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이게 게이트구나.’
난생처음 보았다.
이론적으로야 질리도록 공부했던 분야이지만, 게이트를 실제로 보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헌터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 아카데미생에 불과한 이장후에게는 낯선 세계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강민혁의 명령에 따라 방어 라인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괜히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크들이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여줄까.’
북쪽.
이쪽에는 가장 많은 몬스터들이 출몰한다고 했다.
당연히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많은데, 강민혁은 적절한 분배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북쪽의 통로는 총 다섯 개가 있어. 두 개는 길목이 좁아서 차를 이용해서 막으면 되고, 다른 두 개는 ‘게릴라 부대’라고 명명한 3명의 강화 전사를 각각 배치할 거야. 게릴라 부대는 절대 정면에서 싸우지 마. 혹시라도 본인들이 담당한 길목으로 진입하는 오크가 있을 경우 기습으로 처리하고, 만약 감당하지 못할 적이 나타나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해. 그리고 정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리 지급받은 마법 폭탄을 이용해서 양쪽 건물을 폭발시켜버려.”
마법 폭탄.
겨우 17살의 학생들에게, 위험천만한 무기가 쥐어졌다.
건물의 폭파는 최우선 선택지가 아니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건물을 폭발시켜버린다면, 인간들이 살아갈 건물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마지막 보루.
강민혁의 설명에, 이장후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럼 가장 큰 통로에 모든 병력을 배치시키겠다는 건데, 오크들이 어떻게 그리로 오리라고 확신해?”
당연한 질문이었다.
양쪽에 낮은 건물이 있는 그 길목이 수비에 용이하다는 사실은 동의하지만, 오크가 의도대로 따라주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강민혁이 제시한 방법은 간단했다. 오크들이 원하는 것이 피와 살육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충족시켜주면 된다는 것이다.
“시작해.”
쫘악.
투두두둑.
강민혁의 명령에 이장후를 비롯한 검술 학과의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찢었다. 그건 바로 수혈팩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챙겨둔 것을, 그들은 오크들을 유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바닥에 쏟아지는 다량의 피들. 그 피들이 풍겨대는 비릿한 향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오크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크르르륵!
캬악!
번들거리는 살의.
강민혁의 의도는 통했다.
이장후는 그에 안도하면서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오크들의 모습에 식은땀으로 젖은 손으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강민혁의 지시는 간결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석이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방어 라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크아아악!
취익!
일제히 달려드는 오크들.
선공은 4층 건물 위에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세례.
강민혁과 정상훈이 동시에 사용한 마법에, 화끈한 불길이 타오르며 그대로 오크를 덮쳤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악!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대여섯 마리의 오크가 불길에 휩싸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었다. 기어코 지척에 도달한 오크들. 선두에 위치한 강화 전사들이 오러를 뿜어내는 순간, 오크와 강화 전사들이 한데 뒤얽혔다.
크아아악!
“죽여!”
서걱!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장후의 검이 번뜩이면서 오크의 가슴팍을 갈랐고, 오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그대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재성이 오크의 도끼를 막았다. 강민혁은 이번 전투에서 강화 전사들을 2인 1조로 형성하였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 등을 맡길 동료가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푹! 퍽퍽!
오크의 몸에 검이 꽂혔다.
강화 전사들은 본인들의 무력을 표출하며, 파도처럼 밀려드는 오크들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하늘에 흩뿌려지는 피.
피가 비처럼 후드득 떨어졌지만, 강화 전사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후욱, 후욱.”
이장후의 숨이 거칠어졌다.
겨우 몇 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숨이 차오를 정도로 오크와의 전투는 격렬했다.
그러자 마법 폭탄이 아쉬웠다.
조마다 4개의 폭탄이 보급되었는데, 그걸 사용한다면 오크들을 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했어.’
마법 폭탄.
그것의 위력은 3서클 마법보다 강한 정도.
만약 네 개의 폭탄을 동시에 터트린다면 10마리 이상의 오크를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세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잠깐 숨을 돌리는 정도. 그래서 강민혁은 제한적인 마법 폭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법 폭탄은 적을 처리하는 용도가 아니야. 마법 폭탄의 숫자는 제한적이고, 마법 폭탄은 특수한 마나 파동으로 인해 건물 파괴에 더 특화되어 있어. 그것을 이용해서 몬스터들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수성전의 임무를 기억할 필요성이 있어. 몬스터들을 1km 반경 밖으로 통과시키지 않는 것. 고로 마법 폭탄은 수비적인 임무에 사용해야 해.”
마법 폭탄은 희소성이 크다.
많이 보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강민혁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마법 폭탄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아마 다른 조들.
그들은 마법 폭탄을 공격적으로 사용할 활용성이 크다.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계획을 듣기도 했지만, 이장후는 이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강민혁의 말이 맞을 거야.’
던전 탐사.
강민혁은 그곳에서 맹목적인 믿음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마법 폭탄을 후방에 배치하는 대신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금이야!”
약 10분 정도 흐른 시간.
밀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이장후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4층 건물에 있던 강민혁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륵!
강하게 타오르는 불길.
그것의 목표는 바로 길목 한가운데 있는 가스차였다.
수성전의 기본은 지형지물의 활용이다.
그래서 가스차를 몬스터들이 지나갈 길목에 배치했고, 그것은 곧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펑!
퍼퍼퍼퍼펑!
쿠르르릉.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오크들이 폭발에 휩쓸리며, 새카맣게 타버린 오크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총과 같은 화기들은 몬스터들에 잘 통하지 않는다. 급소를 관통해도 몬스터가 죽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않지만, 화력을 이용한 폭발은 지금도 사용되는 수단이다. 한차례 폭발이 휩쓸면서 오크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문제는 아직 게이트가 닫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오크들.
이장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길.’
전략은 좋았다.
피를 이용해서 한곳에 몬스터를 집중시킨 것은 적절했으나, 그걸 감당할 만한 전력이 없었다.
더 큰 화력.
지금은, 그런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강민혁은 건물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행형 몬스터는 없어. 전부 오크들이고, 그렇다면 4층 건물 옥상은 적으로부터 안전해.’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오크가 출몰될 거란 정보를 받았지만, 강민혁은 실전처럼 상황을 충분히 지켜보길 택했다.
변수는 없었다.
D급의 오크나, C급의 오크 전사는 4층 건물 옥상을 올라갈 만한 능력이 없다. 그건 상당히 희소식이었다. 강화 전사일 때는 몰랐지만, 마법사에게 ‘안전한 지역’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상훈아.”
“예."
“지금부터 준비해.”
확-
히공에 마나를 흩뿌렸다.
동시에 서클을 활성화시키면서, 자연의 마나와 자신의 마나를 ‘동화’시켰다.
‘강화 전사들이 버티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강한 화력을 사용해서 오크의 숫자를 줄여야 해.’
2서클?
아니다.
그 정도의 마법으로는 오크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다.
그래서 곧바로 3서클 마법을 준비했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지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정쩡한 대응은 독이 된다.
할 거라면 확실하게.
강민혁은 결단을 내렸다.
이번 훈련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화아악.
붉게 올라오는 마나들.
그것이 3서클 화염 마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3서클 마법이 아니다.
서클 강화로 인해 위력이 상승하였고, 최상급 3서클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그 위력은 4서클에 버금간다.
그리고.
“윈드 피스트.”
위이잉.
정상훈이 판을 만들었다.
바람의 주먹으로 인해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쳤고, 이것은 화염 마법의 좋은 장작이 될 것이다.
화룡점정.
강민혁이 마침내 캐스팅을 끝냈다.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화염의 폭발.
붉은 마나가 오크 무리에게 작렬하는 순간, 강한 열기가 폭발하였다.
쾅!
화르르르르르륵!
엄청난 폭발이었다.
아카데미생 수준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열기가 그대로 주변의 오크들을 휩쓸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
마법의 위력에, 지상에 있던 검술 학과생들이 옥상을 쳐다보았다.
“이, 이게 뭐야?”
“방금 위에서 파이어 버스트를 사용한 거야?”
4서클에 버금가는 위력.
방금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은, ‘아카데미 수준’에서는 강화 전사들조차도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