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11. 수성전
2주간 진행되는 합동 수업은, 하나의 훈련이 끝나고 나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교육을 진행한다.
복습 과정을 맡은 백동석 교수.
그에게 있어, 강민혁의 영상은 매우 훌륭한 교보재였다.
“이번 합동 수업을 앞두고 몇몇 학생들은 내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교수님,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마법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보통은 다들 착각하지. 강화 전사가 앞에서 막아서고, 마법사가 뒤에서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라고 말이야.”
실전 경험이 없는 마법사들.
그들은 열이면 열, 백동석과 같은 말을 한다.
“그건 틀렸다. 던전과 같이 변수가 많고 협소한 공간에서, 마법사는 주도적인 입장이 아니라 강화 전사의 힘을 부각시킬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왜냐고? 협소한 공간에서는 아군을 피해서 적만을 타격하는 것이 힘들뿐더러, 캐스팅에 필요한 시간과 공간적인 여유가 없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공격 마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보조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이다. 물론 상황적인 제한들을 넘어서는 실력이 있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야.”
삑-
영상을 재생시켰다.
백동석이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본인의 설명과 강민혁의 활약상이 완벽하게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리자드맨과의 전투.
강민혁이 선공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워버렸다. 이후 강민혁은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범위가 넓지 않은 마법으로 리자드맨을 공격했다. 격렬한 전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는 포지션이었고, 덕분에 이장후 일행은 수비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완벽한 보조.
강민혁의 마법이 발휘될 때마다, 백동석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 영상을 봐라. 마법사가 할 수 있는, 마법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강민혁이 보여주었다. 화염 마법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우고, 전투 도중에는 보조적인 포지션으로 강화 전사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 만약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이 있다면, 강민혁의 모습이 실전 마법의 교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야말로 극찬이었다.
백동석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강민혁을 칭찬했고, 3일간 진행된 복습 과정에서 강민혁의 영상을 매일 재생시켜주었다. 그만큼 강민혁의 플레이는 마법사로서 부족한 부분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며칠 전이었다면.
강민혁에 대한 시기심에, 몇몇 학생들은 지금의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검술 학과라는 공공의 적이 생겨나면서, 수업을 듣는 마법 학과생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혹시 따로 영상을 받아갈 수 있을까요?”
적극적인 학습 태도.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그들은, 검술 학과와의 합동 수업으로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도 아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였을까.
처음에는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접근하지 않던 학생들이, 은근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민혁아, 리자드맨의 점액질이 공략 포인트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혹시 주로 읽는 몬스터 백과사전이 따로 있어?”
“합동 수업에서 정말 대단하던데.”
“이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지?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태도가 한순간에 변했다.
절박함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적당한 선에서 대응해주었다.
이해한다.
그들이 왜 자신을 배척했으며, 자신을 어째서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비주류 학문을 배우면서 겪었던 지난 서러움들이, 수호문의 출신이었던 강민혁에 대한 벽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그 정도.
강민혁은 그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강민혁의 아버지는 말했었다.
“되도록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맺되, 내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게 대할 필요성이 있다.”
선을 그었다.
강민혁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정상훈 정도.
그나마 김창수가 무리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절대 과한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깨닫는다.
강민혁에게 잘해야만, 본인 또한 ‘울타리’에 포함될 수 있음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은 본능적으로 본인의 세력을 형성하는 방법을 행하고 있었다.
며칠 뒤.
헌터 아카데미에서 가장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Z구역에서, 두 번째 과정인 수성전이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
김무진이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던전과 게이트는 다르다. 던전은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략할 수 있다면, 게이트는 갑작스럽게 생성되는 만큼 변수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수성전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다.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생성될지 모른다. 만약 시가지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생성된다면, 주변에 있는 헌터들은 소집 명령을 받고 수성전을 준비해야 한다.”
Z구역은 여러 형태의 시가지 훈련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도시를 모델로 한 훈련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김무진이 설명을 덧붙였다.
“게이트의 지속 시간은 약 1시간 내외. 보통 게이트가 생성될 경우, 1차 저지 병력이 게이트를 기점으로 1km 반경을 완벽하게 포위한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퍼지는 몬스터들을 저지함으로써, 게이트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를 막아낸다. 이것을 우리는 초동 조치라고 부른다. 이후 해당 구역의 헌터 부대가 출동해서 몬스터들을 소탕하는데, 우리는 소탕이 아니라 수성의 임무를 훈련할 예정이다.”
수성.
매우 중요한 단어다.
자리를 지키고 막아내는 것.
초동 조치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피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초동 조치에 성공하면 민간인의 피해는 적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지 예상할 수 없다.
“수성전의 포인트는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로는 빠르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방어 라인을 형성하는 것. 미리 자리를 선점하는 것은 수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지형지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몬스터를 통과시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두 번째로는 적절한 인원의 분배.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적절하게 인원을 배치하지 않을 경우 세 방향을 막더라도 나머지 한 방향이 뚫릴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수성전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간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헌터는 민간인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며, 몬스터의 소탕은 수성전에서 진행할 임무가 아니다. 우리가 버티면서 몬스터들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막는다면, 민간인들은 대피하고 그 이후에 소탕 작전이 시작된다.”
몬스터의 등장.
재앙이 닥치고 백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인간들은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체계적인 구조를 형성했다.
수성전은 그 일부였다.
사실 몬스터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소탕전보다 더 요구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이번 합동 수업에서는 수성전에 무려 1주일의 시간을 부여하였다. 그만큼 수성전은 충분한 훈련이 필요한 임무였다.
김무진이 말했다.
“그럼 수성전을 진행할 조를 발표하도록 하겠다.”
조에 대해서는 이미 언질을 받았다.
희망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조로 묶어주었기 때문에, 강민혁과 정상훈은 같은 조에 소속될 수 있었다.
[3조]
강민혁의 조였다.
한 조마다 마법사 5명과 강화 전사 40명이 배치되었다.
던전 탐사 때와는 다르게 스케일이 매우 커졌는데, 이게 보통 수성전을 진행하는 최소한의 인원이었다.
3조의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Z-3구역을 맡은 담당관이 상황을 부여했다.
“이번에 게이트를 통해 출몰한 몬스터는 D등급의 오크입니다. C등급의 오크 전사도 포함되어 있으며, 게이트의 형성 시간은 약 1시간. 그 시간 안에 오크를 모두 토벌하거나, 1km 반경 밖으로 몬스터를 통과시키지 않으면 수성에 성공합니다. 참고로 북쪽에는 다른 방향보다 2배 이상의 몬스터가 투입될 예정이니, 이를 감안해서 인원을 배치하시면 됩니다.”
나름 친절한 설명이었다.
실전은 이와 같지 않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이 수성전에 경험이 없음을 배려해주었다.
검술 학과생 한 명이 대표로 나섰다.
“아무래도 북쪽에 많은 인원을 투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나머지 세 방향을 막아도 한쪽이 뚫리면 말짱 도루묵이잖아. 북쪽에 마법사 2명에 강화 전사 16명을 투입하고, 나머지 방향에 각각 마법사 1명과 강화 전사 8명으로 방어 라인을 형성하자. 나는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괜찮네.”
“그럼 북쪽에 지원할 사람?”
북쪽.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다칠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강민혁이 나섰다.
“나와 상훈이가 북쪽으로 갈게.”
“그럼 마법사는 끝.”
이제 남은 것은 강화 전사.
그런데 처음에는 눈치를 보던 그들이, 강민혁이 간다고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나도 북쪽으로 갈게.”
“나도.”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지.”
그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이장후 일행.
그들은 강민혁의 조에 자진해서 포함되었고, 강민혁이 북쪽으로 간다고 하자마자 따라서 지원했다.
사실 그들은 지난 수업으로 인해 강민혁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었다. 강민혁이 아니었다면 절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이장후 일행이, 김무진의 말처럼 강민혁의 도움으로 1위를 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순간을 떠올린 그들은, 이번에도 강민혁의 덕을 보려고 일부러 3조에 자진해서 포함되었다. 그러니, 북쪽으로 가겠다는 강민혁의 말에 당연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수성전 3조.
이 조에 포함된 이들은 대체적으로 강민혁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마법 학과에서 보낸 명단을 확인하고 대부분 다른 조를 택했다.
인원 배치는 끝났다.
곧바로 3조의 학생들은 본인의 위치로 걸음을 옮겼고, 북쪽으로 이동하자 시가지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도시의 풍경.
강민혁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나쁘지 않네. 건물의 배치가 방어 라인을 형성하기에 용이한데다,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가 오크라면 건물 위로 넘어갈 위험성은 없어. 뚫려 있는 공간만 막는다면 수성에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지.’
강민혁은 이 상황이 익숙했다.
수호문에서 토벌과 수성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수성이라는 상황이 크게 낯설지가 않았다.
그걸 알았던 걸까.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3조 학생들 중에, 이장후가 대표로 나섰다.
“강민혁.”
“왜?”
“네가 리더를 맡는 게 어때?”
의외였다.
리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이 강한 검술 학과생이 마법사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그들은 확신했다.
저번 던전 사냥으로, 적어도 강민혁의 경험은 진짜라고.
이번에도 강민혁의 말을 따르는 것으로 좋은 점수를 얻고자 했다.
‘귀엽네.’
상대의 의도가 보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저들은 비주류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점수를 위해서 자존심을 버린 케이스가 아니던가.
현실에 순응하는 것.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고, 저들의 선택을 나쁘게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이장후가 말했다.
“저번 훈련에서 느꼈어.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너는, 다른 학과생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네가 리더를 맡는다면, 약속하는데 네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게. 일부러 수성 훈련을 망칠 만큼, 우리가 그렇게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거든.”
솔직하게 의도를 밝혔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강민혁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민혁이 나머지 학생들을 보았다.
“너희들도 같은 생각이야?”
“응.”
“우리도 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판은 깔렸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강민혁은 발을 빼는 사람이 아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럼 내가 리더를 맡도록 하지.”
그리고 10분 뒤.
강민혁의 명령에 따라 준비를 마치자, 드디어 수성전 훈련이 시작되었다.
[균열 확장]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납니다.]
활짝 열린 게이트.
그곳에서부터, 수많은 오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