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10. 비주류의 현실(3)
꼴찌 팀은 개인의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꼴찌 팀의 검술 학과생들은 이장후 일행과 실력이 비슷한 수준이었고, 마법 학과생인 엄효섭은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1인분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서로 호흡을 잘 맞추었다면 1시간 내에 충분히 던전을 클리어했겠지만, 던전에 미리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서 그들의 문제점이 시작부터 드러났다.
[“앗, 뜨거!”]
[“야, 방해되니까 마법 사용하지 마. 어차피 네 도움이 없더라도, 던전 클리어는 문제없어.”]
엄효섭이 리자드맨을 견제하기 위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사의 포지션에서 적절한 대응을 한 것이었는데, 검술 학과생들은 열기가 조금 전해진 것만으로도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부터 엄효섭은 잔뜩 위축되었다. 나름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하면 검술 학과생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통에 멍하니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사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검술 학과생들이 자신한 것처럼, 그들은 엄효섭의 도움이 없더라도 충분히 리자드맨을 제압했다.
문제는 사냥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발생했다.
[“여기가 어디지?”]
[“길을 잃은 건가?”]
던전은 기본적으로 미궁처럼 형성되어 있다.
무턱대고 이동했다간 막다른 길에 막힐 가능성이 있기에, 보통은 주변의 흔적을 파악하고 최대한 옳은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꼴찌 팀은 그러한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 무턱대고 걸음을 옮기면서 마주하는 적들을 상대했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다른 팀보다 탐사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마지막.
엄효섭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 20마리의 리자드맨 무리를 만났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막아!”]
[“이익!”]
20마리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
급작스럽게 벌어진 전투에 그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미끈거리는 점액질로 물리 피해를 감소시키는 리자드맨의 특성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검술 학과생들의 자존심은 엄효섭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리자드맨을 만날 때마다 발목이 붙잡힌 꼴찌 팀은,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결국 엄효섭의 도움 없이 던전을 클리어했다.
대단한 일이었다.
검술 학과생들은, 적어도 본인들만의 힘으로 던전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1시간 30분.
영상의 시청이 끝나자, 김무진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꼴찌 팀의 판단은 최악이었다. 던전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마법사는 파티에서 없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리자드맨이 강한 상대는 아니라고는 하나, 이따위 방식으로 던전 공략에 나섰다간 혹시 모를 변수에 당할지도 모른다. 최상의 방법으로 공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쥐고 있는 힘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꼴찌 팀의 경우에는, 이후 수업에서 어떤 성적을 받든 간에 F등급을 책정하도록 하겠다.”
“아!”
“교수님!”
해당 영상의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김무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들은 시선을 피하며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머저리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몇몇 학생들의 경우에는, 수업의 성적이 아니라 마법 학과생들과의 관계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애초에 마법 학과생들과 같이 파티를 이루는 것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불만인 것이다.
이해한다.
마법사가 없어도, 던전 공략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수업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가능의 여부가 아니라 효율을 따지는 것이다.
“방금의 영상은 헌터가 기피해야 할 최악의 선택지였다. 그럼 지금부터는, 1등의 영상을 보겠다.”
1등.
김무진도 궁금했다.
이장후 일행의 실력으로, 어떻게 가장 빨리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는지.
스크린 화면에 떠오른 영상에, 김무진은 곧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동일했다.
이장후 일행은 강민혁의 마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강민혁의 말에 대립 구도가 정리되었다.
[“··················하지만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잖아? 이번 합동 수업이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만, 그게 성적을 포기할 정도의 이유는 아니잖아.”]
이후부터 사냥의 속도는 빨랐다.
강민혁이 점액질을 태우면, 이장후 일행의 실력으로 리자드맨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강민혁이 나섰다.
[“이 앞으로는 리자드맨이 이동한 흔적이 드물어. 보스 스테이지에 많은 숫자의 리자드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마 막다른 길이 형성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이동하자.”]
판단은 옳았다.
왼쪽에는 막다른 길이 있었고, 대부분의 파티는 왼쪽을 택함으로써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효율적으로 리자드맨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점액질을 태우는 것이 우선이야. 먼저 공격을 당하더라도,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리자드맨의 공격을 막아. 그리고 내가 화염 마법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우면 그때부터 반격을 시작해. 던전에서의 사냥은 항상 위험의 연속이야. 언제 어디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체력 소모는 지양해야만 해.”]
강민혁의 조언이 적절하게 작용했다.
이장후 일행의 실력이 대단히 특출난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과의 호흡으로 인해 리자드맨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점액질이 모두 타버린 리자드맨. 그들은 이장후 일행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강민혁이 상황에 따라 마법적인 지원을 해주다 보니, 다수의 리자드맨을 처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장후가 리더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장후 일행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리더 강민혁.
위치가 바뀌었다.
이장후 일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파티의 리더는 분명히 강민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국 보스 스테이지도 마무리한 상황에, 김무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벽해.”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철혈검이라고 부르는 김무진이,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검술 학과생들로서는 상당히 낯설었다.
“과연 1등 팀의 호흡은 다르군. 1등 팀은 던전 사냥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우고 공략하는 방법은 아주 훌륭했고,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적절한 연계를 통해서 빠른 시간 내에 던전을 공략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강민혁의 역할이 아주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옳은 길을 찾고, 리자드맨의 공략법을 제시했으며, 강민혁이 찾은 정확한 정보들로 인해 1등 팀은 조금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게, 합동 수업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다.”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강민혁.
그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검술 학과생들이 수백 명 있는 자리에서, 김무진이 지금 마법 학과생을 칭찬하고 있었다.
던전에서의 활약?
인정한다.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강민혁은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검술 학과생들로서는, 김무진이 칭찬하는 대상이 강민혁이라는 사실에 배알이 꼴렸다.
‘강민혁의 활약이 뛰어났던 것은 인정해. 하지만 결국 리자드맨 무리를 처리한 건 이장후 일행이었잖아. 그들의 무력이 없었다면, 강민혁이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무용지물이었을 거야.’
이례적인 상황.
마법 학과생이 합동 수업에서 칭찬을 받는 경우는 없기에, 검술 학과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1등 팀의 탐사 영상은 교보재로 삼겠다. 앞으로 3일의 시간을 줄 테니, 너희들은 1등 팀의 사냥법이 왜 이상적인 결과인지를 레포트로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기억해라. 헌터는 결국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강화 전사, 마법사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야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김무진이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불만이 팽배하게 차오르는 모습에서,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였다.
“그럼 1일 차 합동 수업을 종료하겠다.”
수업이 끝났다.
굳이 학생들의 불만은 해결하지 않았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차이.
그것은 교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이 시대가 낳은 현실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마법 학과생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강민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칭찬을 받았으나, 다른 학생들도 강민혁과 같은 입장은 아니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정말 마법사는 필요가 없나 봐.’
‘검술 학과생들은 우리 없이도 리자드맨을 처리했어.’
C급 던전.
아직 마법 학과생들에게는 높은 벽이다.
그런데 같은 또래의 검술 학과생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로서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비주류의 현실.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한 현실이, 이번 합동 수업을 통해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검술 학과생들은 강했다. 마법사의 도움은 그들에게 사냥을 조금 더 편하게 해주는 보조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사냥을 주도하는 것은 바로 강화 전사들이었다.
입맛이 썼다.
학과로 복귀하는 길에, 학생들은 웃는 얼굴을 보이지 못했다.
그건 정상훈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학과 수석에 빛나는 그조차도, 이번 합동 수업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분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강민혁이 다가와 말했다.
“당연한 결과야. 아직 2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네가, 던전 탐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
강민혁의 말은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이해한다.
강민혁은 검사였던 사람이고, 지금은 마법사다.
두 세계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
“마법사의 강점은 던전과 같이 변수가 많은 공간에서는 발휘되지 않아. 강화 전사가 주가 되고, 마법사가 보조적인 수단이 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지. 그게 현실이야. 현실을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야.”
“하지만 검술 학과 녀석들의 태도를 봤잖아요. 그들은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아요.”
“그게 뭐가 중요해?”
“예?”
강민혁이 정상훈을 보았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그게 현시대의 흐름이고,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가 아니라 강화 전사를 택하는 것만 보아도 마법사는 어딜 가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우리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주류의 사람들은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겠지.”
비참한 현실이다.
마법사들은 그렇게, 강화 전사들의 차가운 시선 아래 본인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남들의 생각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너무 초라하잖아. 그러니 보여주자고. 던전 사냥에서야 그들이 활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다음 차례인 수성전에서는 달라.”
수성전.
자리를 지키고, 적의 공격을 막는 행위.
강민혁이 말했다.
“너와 나, 이렇게 둘이서 같은 구역을 막자. 수성(守城)에서만큼은, 마법사라는 존재가 가치가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자고.”
강민혁.
그는 리더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수호문에 있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던 것처럼, 강민혁을 바라보는 정상훈의 눈빛이 변했다.
불안한 현실.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는 비주류의 길.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정상훈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민혁의 흔들림 없는 음성은 단단한 버팀목이 되었다.
‘스승님을 따라가다 보면,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어.’
서로의 목표를 위해 형성된 관계.
하지만 지금은, 인간적으로도 강민혁에게 끌리는 정상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