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38화 (38/197)

38화.  10. 비주류의 현실(2)

현세대.

몬스터가 나타나고 강화 문명이 꽃을 피우면서, 강화 전사들은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올랐다.

그래서 검술 학과 선배들은 1학년생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내렸다.

“합동 수업에서 똑똑히 보여줘.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상하 관계를. 지금이야 같은 학과생의 입장이지만, 사회에 나가면 강화 전사는 마법사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어. 너희와 마법 학과의 녀석들은, 출발 지점과 종착지가 엄연히 다르다는 뜻이지.”

합동 수업.

처음에 수업이 건의되었을 때, 그 취지는 정말 좋았다.

검술 학과와 마법 학과의 학생들이 미리 호흡을 맞춤으로써, 헌터로서의 기반을 닦는 아주 유용한 수업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위치가 나뉘면서, 검술 학과생들에게 합동 수업은 ‘훈계의 시간’으로 변했다.

마법사.

그들이 을(乙)의 위치임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도록, 강화와 마법의 차이를 보여주는 그런 시간.

이장후의 표정이 굳었다.

강민혁의 지적에,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우리도 알고 있었어.”

리자드맨의 특성.

사실 잘 알지 못했다.

던전에 대해서는 바로 직전에 알려줘서 정보를 알아볼 충분한 시간이 없기도 했고, 리자드맨 정도라면 크게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굳이 마법사와 협력할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라가 일렁이는 검으로 리자드맨을 도륙하는 순간, 마법사가 할 일이라고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는 것뿐이다.

같은 나이.

같은 노력.

비슷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성장했지만, 서로가 택한 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힘의 차이는 크다.

그러나 강민혁은 달랐다.

강민혁에게, 이장후 일행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조금도 선사하지 못했다.

‘수호문의 후계자로 있었을 때, 정말 많은 토벌에 나섰었지.’

리자드맨뿐만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를 상대했다.

그래서 강민혁은 웬만한 몬스터들의 특성이나, 그들을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너희들이 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해.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도 검을 포기한 케이스는 이례적이었고, 당시에 여러 마법 단체들이 내 선택을 들먹이며 마법의 가능성을 말했으니까. 하지만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잖아? 이번 합동 수업이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만, 그게 성적을 포기할 정도의 이유는 아니잖아.”

정곡을 찔렀다.

이장후를 비롯해서, 도재성과 장기용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점수.

중요하다.

검술 학과는 마법 학과와는 다르게 학과생이 정말 많다. 비주류는 세상의 무시를 받는다면, 주류는 너무 많은 관심에 경쟁이 치열하다. 수많은 강화 전사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길 희망하는 이장후 일행으로서는, 당연히 이번 합동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획득하길 바라고 있다.

강민혁은 그걸 지적했다.

단순히 마법사를 배척하기 위해서, 효율적인 공략 방법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멍청하다고 말이다.

“어떻게 하지?”

“·········아씨.”

이장후 일행이 흔들렸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 정도로 강민혁이 제시한 방법은 매력적이었다. 강민혁이 먼저 선공으로 리자드맨의 점액질을 태운다면, 굳이 급소를 노리는 방법이 아닐지라도 리자드맨의 사냥 시간이 대폭 감소할 것이다. 검술 학과의 1학년생은 천 명이 넘는다. 이번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그 치열한 경쟁 체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음을 뜻한다.

자존심과 실리.

두 가지의 감정이 충돌했다.

그들로서는 강민혁이라는 존재가 달갑지 않았지만, 그건 실리를 포기할 만큼의 악의는 아니었다.

도재성이 말했다.

“그냥 강민혁 말대로 하자. 화염 마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잖아. 어차피 앞으로 할 일도 많은데, 여기에서 발목을 잡힐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해.”

그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발언에, 이장후도 굳었던 표정을 풀며 어색하게 말했다.

“그래, 그러자.”

던전에 진입한 지 겨우 10분 정도 지난 시각.

그들은 의도치 않게, 강민혁을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황이 변했다.

강민혁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합류하자, 사냥 속도는 이전과 비교될 정도로 눈에 띄게 빨라졌다.

“파이어 볼.”

펑!

화르르르륵!

강민혁의 선공(先攻).

이후 곧바로 이장후 일행이 리자드맨에게 달려들었다. 괴성을 지르는 리자드맨은 격렬하게 저항하였지만, 점액질이 완전히 타버린 그들의 피부로는 오러를 버텨낼 수 없었다. 두부가 썰리듯 가볍게 동강이 나버리는 육체에, 리자드맨은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차례로 무너졌다.

그리고.

“라이트닝(Lightning)!”

빠지지직!

강민혁은 적절한 타이밍에 파티원들을 지원해주었다.

본인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었지만,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호흡에 사냥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던전 깊숙이 진입하던 도중, 강민혁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잠깐!”

“왜?”

강민혁이 바닥을 살폈다.

리자드맨이 탈피한 흔적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데다, 점액질의 양도 과도하게 많았다.

발이 푹푹 박힐 정도.

강민혁은 점액질의 색깔과 양을 꼼꼼하게 확인하더니, 일행을 돌아보며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이 공간에서 리자드맨의 대대적인 탈피가 진행되었어. 보통 리자드맨은 1마리의 동족이 탈피를 시작하면, 최소 3마리의 리자드맨이 그 주변을 지켜. 탈피한 흔적과 점액질의 양을 보았을 때, 이 주변에 최소 20마리의 리자드맨 무리가 있을 확률이 높아.”

“확실해? 내 감각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데.”

장기용이었다.

강화 전사는 오감(五感)이 발달했다.

본인의 청각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강민혁의 조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희들이 내가 아는 지식에 반박할 타당한 의견이 있다면, 나도 별말 없이 너희를 따라가겠어. 하지만 그냥 부정하고 싶은 거라면 다시 생각해. 준비하고 싸우는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니까.”

“·········.”

고민은 짧았다.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에, 그들은 곧 벌어질 전투를 대비해서 주변을 충분히 확인하면서 전진했다.

그리고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어둠 깊숙이.

횃불이 닿지 않는 공간에 움츠려 있던 리자드맨들이,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강민혁의 경험은 틀리지 않아.’

그들은, 강민혁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잠깐의 휴식 시간.

이장후는 검을 닦아내며, 강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대체 왜 포기했을까.’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였다.

어떤 사람들은 강민혁이 후계자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정말 멋모르는 소리다.

적어도 강민혁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안다.

강민혁이 얼마나 대단한 검사였는지를 말이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전국의 강화 전사들이 참여한 무투 대회에서, 강민혁은 오로지 검술만으로 그들을 모두 무너트렸어.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지. 저런 대단한 재능이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마법을 택하는 건, 검술을 갈고 닦는 우리 세대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어.’

한때 이장후 나이대의 우상이었던 사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강민혁에게 배반자의 낙인이 찍히며 인식은 좋지 않게 변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때의 모습이 보였다.

마법사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강민혁의 존재감은 밝게 빛났다.

‘결국 본인만이 그 정답을 알겠지.’

휴식이 끝났다.

이장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마무리하자.”

합동 수업.

그건 학생들에게 친절한 시스템이 아니다.

학생들을 던전에 몰아넣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안전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경비팀이 투입되겠지만, 그 사이 학생들이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는다.

몬스터가 출몰하며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의 죽음은 이제 일상과도 같았으니까.

합동 수업은 그런 차가운 현실을 부각시킴으로써, 학생들을 진짜 헌터로 단련시키고자 한다.

마지막 보스 스테이지를 앞둔 상황에, 강민혁이 말했다.

“앞에 약 20마리의 리자드맨이 있는 것으로 추정돼. 그리고 처음에 교수가 던전에 대해 설명했던 것을 참고하면, 그중에는 C급의 리자드맨 전사도 있을 테고. 어떻게 할래? 정면에서 부딪치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안전하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공략하는 방법도 있어.”

두 가지의 선택지.

보통은 후자를 택한다.

사냥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위험천만한 시험을 안전하게 끝낼 방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C급 리자드맨 전사의 경우에는, 2서클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이어 볼 정도로는 타지 않는 점액질을 보유하고 있기에, 사냥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냥 정면으로 부딪치자.”

이장후 일행은 전자를 택했다.

그건 상당히 위험천만한 선택이었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택의 이유를 증명해냈다.

끼에에에엑!

서걱!

리자드맨을 도륙하는 이장후 일행.

그들의 전투는 격렬했다. 혼자서 6마리 이상의 리자드맨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강력한 전투력을 선보였다. 오라가 번뜩일 때마다 사지가 절단당하는 리자드맨. 강민혁이 화염 마법으로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기어코 그 많던 리자드맨을 모두 쓰러트렸다.

그리고 마지막.

리자드맨 전사마저도 목을 날린 이장후가, 녹색 피로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강민혁에게 말했다.

“고생했어.”

그 모습에, 강민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마법사.

만약 3서클 마법사들이 나섰다면, 3명의 인원만으로 리자드맨 20마리를 도륙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3서클이면 그래도 마법사로서 인정을 받는 단계임에도, 이 전투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장후 일행의 실력이 검술 학과에서는 평균이라는 거지.’

수많은 검술 학과생들.

그들 중 한 명에 불과한 이장후 일행은, 리자드맨 20마리를 정면에서 도륙하는 무력을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강화 전사가 각광받는 이유.

그 진실이, 이번 합동 수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던전 공략이 끝났다.

이장후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검술 학과의 교수 김무진은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던전 클리어까지 40분 걸렸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가장 빨랐다.”

이장후, 도재성, 장기용.

검술 학과에서 그저 그런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1위라는 기록을 세운 상황에, 김무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민혁을 향했다.

‘강민혁 덕분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리자드맨 던전.

사전에 던전의 난이도를 책정한 결과, 1학년 학생들의 수준이라면 약 1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장후 일행은 무려 20분이나 단축하였다. 곧이어 검술 학과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학생들의 파티가 차례로 던전 공략을 마쳤지만, 그들의 기록이 45분 이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장후 일행의 기록은 매우 대단했다.

먼저 끝낸 파티는 휴식을 취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몸에 있는 점액질을 털어냈고, 바닥에 앉아 숨 가빴던 던전에서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는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몇몇 학생들이 던전에서 부상을 당했고, 사망까지 직결되지는 않았으나 경비 팀이 투입되어서 해당 던전의 탐사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탐사를 마친 팀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파티는 무려 1시간 30분의 시간이 걸리고서야 던전 공략을 성공했다.

합동 수업의 첫 단계.

던전 탐사가 끝났다.

김무진은 앞으로 나서더니,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다행히도 아무런 사망자 없이 훈련을 끝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너희들이 마냥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만약 정상적으로 탐사를 진행했다면 1시간 이내에 던전의 공략을 마쳤어야만 한다. 그런데 1시간 이상이 걸린 팀이 무려 절반 이상인 데다, 참담하게도 1시간 30분이나 소모한 팀도 있었다. 만약 너희가 이따위의 상태로 헌터를 희망한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있지만, 그만큼 실력이 없는 헌터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수히 많이 죽어 나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김무진의 음성은 차가웠다.

한때 철혈검(鐵血劍)이라고도 불렸던 검술의 고수인 그는, 옆에 서 있는 조교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스크린을 세팅하였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스크린이 배치되자, 김무진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1등과 꼴등의 던전 탐사 영상을 확인하도록 하겠다. 이번 영상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틀린 것인지를 충분히 공부하기를 바란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차가운 바깥세상에서 너희들의 구명줄이 될 것이다.”

팟.

화면을 켰다.

그 시작은, 1시간 30분이나 걸린 꼴찌 팀의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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