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10. 비주류의 현실
마법 학과 수석에 빛나는 정상훈.
그에게 가장 어려운 수업은 무엇일까?
이학범의 기초 이론? 백동석의 실전 수업?
아니다.
정상훈은 단언컨대, 자신의 앞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변하는 강민혁의 수업이 가장 어렵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걸 봐. 더블 캐스팅은 마나의 기억을 이용하는 방법이야. 네가 반복적으로 사용한 마법이 마나에 선명하게 남아서, 복잡한 과정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마나의 기억만을 믿어서는 안 돼. 결국 캐스팅을 완성하는 사람은 본인이고, 서클의 마나를 맹렬히 회전시키면서 캐스팅을 진행한다면 더블 캐스팅을 빠르게 끝낼 수 있어.”
“마법이란, 체내의 마나를 외부로 표출해서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해. 그런데 만약 이때 자연의 마나를 같이 사용할 수 있으면 어떻겠어? 체내의 마나를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마법을 형성하는 최소한의 마나를 충족할 수 있겠지? 그러니 오늘부터 넌 마나에 동화하는 방법을 연습해.”
숨이 턱 막혔다.
마나를 맹렬히 회전시켜서 캐스팅을 빠르게 하는 것과 자연의 마나에 동화하는 등의 방법은, 정상훈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질문이 많았다. 마법사는 항상 탐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정상훈은 본인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강민혁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강민혁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결국 그의 말이 옳다는 결론을 내릴 때마다, 정상훈은 강민혁을 더 이상 동급생으로 볼 수 없었다.
‘·········강민혁은 괴물이야.’
동시에 확신했다.
강민혁을 따르다 보면, 언제고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만 하더라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던 사이.
지금은 사제의 연을 맺었지만, 사실 둘의 관계는 아직도 신뢰를 보일 만큼 깊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강민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관계는, 오히려 인간적인 관계보다 더 끈끈하지.’
강민혁이 원하는 것.
강민혁은 정상훈이 잘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건 마탑 건설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마탑이라는 것은 마탑주를 따르는 신봉자들의 세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탑주가 뛰어난 마법사라면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낄 것이고, 뛰어난 학자라면 마탑에서 마법을 배우길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
뛰어난 마법사이자 학자.
동시에 뛰어난 ‘스승’이기까지 한다면, 강민혁의 마탑은 마법사들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을 것이다.
‘정상훈의 성장이 내 지도력을 증명하게 될 거야.’
정상훈.
그가 뛰어난 마법사로 성장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민혁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것의 임팩트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민혁은 정상훈에게 엄격했고, 동급생의 사이가 아니라 철저하게 스승의 입장에서 대했다.
정상훈은 그에 군말 없이 따랐다.
가르침이 실제로 효과가 있기도 했고, 강민혁이 정상훈에게 바라는 것처럼 장상훈도 강민혁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성장과 가문의 부흥. 강민혁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정상훈은 강민혁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를 알게 되었다.
상부상조하는 관계.
깊은 신뢰는 없지만,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점이 있는 관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내게 힘이 있는 이상, 이 관계를 끊어낼 선택권은 정상훈에게 없어.’
“상훈아.”
“예.”
정상훈의 태도는 공손했다.
동급생이 아니라 스승으로서 대하는 모습에, 강민혁이 말했다.
“오늘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새겨넣어. 나에게 마법을 배우는 이상, 앞으로 세상에 알려진 상식과는 많이 다른 길을 걷게 될 거야.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내가 말하는 지식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처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완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해. 그렇게 네가 나의 지식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그때는 넌 분명히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마음이 울렸다.
왠지 모르게 결연해지는 마음에, 정상훈이 강인한 의지를 보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스승.
정상훈은, 이제 강민혁 앞에서 고개 숙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며칠 뒤.
드디어 합동 수업 날이 밝았다.
평소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학생들을 두고, 백동석 교수가 말했다.
“며칠 전에도 얘기했지만, 오늘부터 2주일간 검술 학과와의 합동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2주간의 과정은 첫 번째 단계로는 던전 탐사, 두 번째 단계로는 수성전(守城戰), 세 번째 단계로는 생사 결투가 있다. 모든 단계는 성적에 따라 점수를 책정할 것이며,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은 학과 결산 때 그 점수를 반영하도록 하겠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실전 수업의 분위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들은 수업 자체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검술 학과 학생들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엿보였다.
‘안쓰럽네.’
백동석이 쓰게 웃었다.
학생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검술 학과와 마법 학과의 관계에서, 검술 학과는 절대적인 갑(甲)이다. 헌터 아카데미의 총장도 노골적으로 검술 학과를 지지해주기 때문에, 합동 수업에서 사고가 발생할지라도 검술 학과가 피해를 입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마법 학과의 학생이 합동 수업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지면서, 마법 학과 학생들은 이 합동 수업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문이 마냥 거짓도 아니다.
실제로 마법 학과의 학생이 다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걱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너희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잘 안다. 하지만 검술 학과와의 합동 수업은, 마법사로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험난한 사회에 나간다면, 너희들은 마법사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강화 전사와의 공생(共生)은 마법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고, 그것을 미리 예습하기 위해서 합동 수업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많이 배우도록. 검술 학과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너희들은 마법사로서 제 역할을 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그래야, 너희가 마법 학과를 졸업하고도 마법사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비참한 말일 수도 있다.
좋게 돌려서 말했지만, 백동석은 강화 전사 없이는 마법사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게 현실이다.
마법 학과 수석의 정상훈도.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한 강민혁도.
검술 학과와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잠시 내려놓을 필요성이 있다.
백동석이 말했다.
“자, 그럼 E구역 사냥터로 이동하자.”
E구역.
학생들의 훈련을 위해서 던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냥터다.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숫자가 많아서 세 구역으로 학생을 나누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E구역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검술 학과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강화 전사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은 전부 검술 학과나 수호문 같은 곳에 보내기 때문에, 학과 전체를 통틀어도 백 오십 명을 간신히 채우는 마법 학과와는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마법 학과 애들 왔네.”
“그래?”
검술 학과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보는 것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마법 학과생들을 보았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검술 학과의 실전 교수인 김무진이 앞으로 나서더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조를 발표하도록 하겠다.”
조는 4인 1조.
강화 전사 세 명에, 마법사 한 명이 포함되는 일반적인 파티 배치였다.
[92조 검술 학과 이장후, 도재성, 장기용, 마법 학과 강민혁]
92조.
인원이 많다 보니, E구역에서 훈련할 조만 하더라도 100조가 넘어갔다.
강민혁은 ‘92조’라고 표시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곳에는 이미 자리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야, 진짜 강민혁이네?”
“강민혁을 이렇게 보네.”
그들은 강민혁을 알아보는 기색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강민혁과 동시대에서 강화 전사의 길을 걸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민혁의 행보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보니, 10대 후반의 아이들에게 강민혁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수호문의 후계자. 그가 마법 학과생으로 나타나니,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장후가 말했다.
“92조의 조장으로서 지금부터 던전에 대해서 설명할게. 아, 동갑이니까 말은 놓을게.”
강민혁의 반응은 살피지 않았다.
수호문의 후계자였다면 태도가 공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강민혁은 이제 후계자‘였던’ 사람에 불과하다.
“우리가 공략할 던전은 C급 던전이야. 던전 안에는 D급의 몬스터인 리자드맨(Lizardman)이 서식하고 있는데, 리자드맨 전사와 같이 상위 개체도 있어서 만만한 사냥터는 아니지. 그래도 뭐,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던전 공략은 나와 재성이가 선두를 맡고, 기용이가 후방. 그리고·········.”
시선이 강민혁에게 향했다.
이장후가 씰룩 웃었다.
“너는 알아서 해. 사실 마법사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거든.”
명백한 무시였다.
“그렇게 하지.”
하지만 강민혁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합동 수업에서 마법사가 어떤 위치인지, 그에 관한 소문에 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합동 수업? 그건 정말 마법사의 비참한 현실을 알려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어. 그래도 마법 학과생들끼리 지지고 볶고 할 때는 마법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검술 학과생들과 같이 수업을 나가는 순간 그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거든. 마법사의 힘이 없어도 강화 전사들은 충분히 강하다는 것. 그걸 확인하는 자리가 될 거야.”
김창수가 했던 말이다.
강민혁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괜히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92조는 곧바로 던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형성된 던전의 입구에, 이장후는 망설임 없이 내려갔다.
“웩.”
“냄새 봐.”
리자드맨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올라왔다.
썩어서 고인 냄새.
리자드맨의 서식지를 처음으로 접하는 모양인지, 이장후와 그 일행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일행은 금방 리자드맨과 조우했다.
키에에엑.
“리자드맨이다!”
“준비해!”
슥!
아른거리는 횃불 아래로, 마침내 리자드맨들이 나타났다.
그 숫자는 세 마리.
비늘로 번들거리는 피부에, 뱀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이족보행의 괴생명체가 곧바로 이장후 일행을 덮쳤다. 그들의 스피드는 매우 빨랐다. 마치 바닥에 미끄러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접근하였고, 날카롭게 뻗어 있는 손톱을 그대로 휘둘렀다.
캉!
카캉!
손톱과 검이 부딪치며 스파크가 일었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리자드맨이 당장 이장후 일행을 쓰러트릴 기세였으나, 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이런 버러지 새끼가.”
화악!
이장후의 검에서 파란빛이 일었다.
오라.
그 강렬한 힘이 리자드맨의 손톱을 동강 내더니, 재빠른 검술로 가슴팍을 베어버렸다.
팍!
피가 튀었다.
짙은 녹색의 피가 얼굴에 튀자, 이장후는 고개를 틀어 피했다. 리자드맨의 피에는 마비 효과가 있다. 치명적인 독은 아닐지라도 맞아줄 이유는 없었다. 이장후는 곧바로 리자드맨의 가슴팍을 걷어찼고,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지는 리자드맨의 모습에 곧바로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서걱!
가슴팍이 완전히 열렸다.
속살을 훤히 드러낸 리자드맨은, 바닥에 쓰러지더니 꿈틀거렸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모양인지, 애처로운 손길로 이장후를 공격하려고 날카로운 이빨을 힘없이 보였다.
“끈질긴 새끼.”
퍽!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장후를 시작으로 도재성과 장기용은 차례로 리자드맨을 마무리하였다. D급의 몬스터인 리자드맨은 2서클 마법사들이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다. 그런데 검술 학과의 학생들은 큰 무리 없이 리자드맨을 처리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마법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었던 현실이었다.
정말로 필요하지 않았다.
마법사의 지원이 없더라도, 그들은 D급의 리자드맨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가자.”
휴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걸음을 옮기는 이장후의 모습에, 강민혁은 속으로 웃었다.
‘재밌네.’
이장후는 지금 강민혁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마법사가 없어도, C급 던전의 공략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실제로 무력으로 증명하는 상황에, 강민혁은 김창수가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마법사의 기를 죽이려는 건가.’
소문으로는 들었다.
검술 학과의 학생들이, 이번 수업을 통해 마법사를 길들인다고 말이다.
만약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리자드맨을 도륙하는 그들의 모습에 당연히 기가 죽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강민혁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실제로 이후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그들은 강민혁의 도움 없이 리자드맨을 처리했다.
그러다 사고가 발생했다.
여섯 마리의 리자드맨과 싸우는 상황에서, 리자드맨 한 마리가 뒤에 있는 강민혁에게 달려들었다.
이장후 일행은 그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리자드맨의 움직임을 막지 않았고, 리자드맨은 어느새 강민혁을 덮쳤다.
일촉즉발의 상황.
강민혁의 손에서 화끈한 불길이 일었다.
“파이어 볼.”
펑!
화르르르륵.
강력한 화염이 리자드맨을 덮쳤다.
그러나 리자드맨은 화염을 뚫고, 괴성을 지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끼에에엑.
그 순간.
확!
강민혁이 리자드맨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꺼내든 단검으로 리자드맨의 목 뒷부분을 힘껏 찔렀다.
푹!
리자드맨의 눈이 풀렸다.
이장후 일행의 공격에는 끈질기게 저항하던 리자드맨이, 단 한 방에 무너져 내렸다.
털썩!
너무나도 가볍게 처리한 상황.
이장후 일행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강민혁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자드맨의 외피에 있는 점액질은 물리 피해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어. 그래서 화염 계열의 마법으로 점액질을 태우고, 리자드맨의 급소라고 할 수 있는 목 뒷부분을 통해 뇌를 노리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 너희들처럼 가슴팍을 베고, 육체를 완전히 난도질하는 무식한 방법으로는 리자드맨을 상대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야.”
툭 내뱉은 말.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이장후 일행은 웃을 수 없었다.
강민혁의 말처럼 리자드맨을 난도질해서 처리한 그들은, 강민혁 발밑에 쓰러진 리자드맨의 모습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