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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36화 (36/197)

36화.  9. 변화(3)

사실 마나 심법을 전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강민혁이 먼저 길을 닦고, 클리스만이 그 흔적을 따라 마나를 운용하면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강민혁은 글로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은 선의라고 생각해서 행한 행동이, 혹시라도 클리스만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권을 넘겼다.

클리스만 본인이 마나 심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자신이 마법 지식을 터득한 것처럼 그도 스스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카데미에서는 최상급 3서클 마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마나 심법을 이어서 완성했다. 정말 바쁜 나날이었다. 타인의 몸을 빌린다고 생각하니, 클리스만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한때는 자신이 빙의하는 동안 클리스만의 의식이 어떻게 되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겨우 며칠.

클리스만으로서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강민혁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그게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대박이네. 어떻게 제임스 패거리를 혼자 쓰러트릴 수 있었지? 클리스만은 1서클 마법사잖아.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대표적인 열등생이 그랬다고 하니까, 도무지 믿기지 않네.”

강민혁을 보며 속닥거리는 학생들.

그들은 이제 ‘클리스만’의 외형을 한 강민혁을 섣불리 건드리지 못했다. 그만큼 제임스 패거리와의 싸움은 임팩트가 대단했다. 2000년의 마법 문명이 발달한 이 세상에서,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보통은 제대로 접근하기도 전에 마법사에게 박살이 나는데, 강민혁은 절묘한 몸놀림으로 제임스 패거리를 완전히 제압해버렸다.

경악.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충격적이었던 그때의 사건을 널리 퍼트렸다.

문제는 직접 목격한 학생들도 눈을 의심할 정도의 사건이다 보니, 소문의 진위를 의심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게 상식적인 반응이기는 했다. 강화 문명에서야 강화 전사 한 명이 마법사 세 명을 쓰러트리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일이나, 이곳은 그곳과 반대로 문명이 형성된 세계다.

그리고 상대가 제임스 체스터다.

체스터 가문의 장남이 다쳤음에도 강민혁이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헛소문이라는 가설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건드리지 말자.’

만일의 가능성.

예전에만 하더라도 클리스만이 출신이 불분명한 열등생이었다면, 이제는 괜히 꺼림칙한 마음에 클리스만을 건드리지 않았다. 덕분에 강민혁은 편하게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었다. 제임스 패거리도 강민혁과 마주할 때면 적의 어린 시선을 보일 뿐,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진 않았다.

‘좋은 현상이네.’

다행이었다.

우발적인 행동이 혹시라도 클리스만에계 폐를 끼칠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이상적인 결과인 것 같았다.

“·········이것으로 오늘 수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수업이 끝났다.

삼삼오오 모여 하교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강민혁이 마치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강민혁으로서는 익숙했다. 강민혁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상황이 아니라, 애초에 클리스만의 학교 생활이 이랬다.

방과 후.

강민혁은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예전에는 정해진 틀에 맞추어 움직였다면,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제임스 패거리와의 사건.

그것은 강민혁을 가두었던 틀을 깨부쉈다.

이전에는 항상 클리스만이 전달해주는 지식을 기계적으로 습득했다면, 지금은 본인이 직접 판단했다.

‘그들이 사용했던 스킬이 궁금해.’

제임스 패거리와의 싸움은 상당히 신선했다.

마법사가 무빙 캐스팅을 사용하는 데다, 캐스팅 속도도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최상급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으나, 그건 아무리 봐도 현실성이 떨어졌다. 싸움을 지켜보던 학생들. 그들은 제임스 패거리의 기술을 익숙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최상급 마법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도 보물로 취급하는 것이기에, 만약 자신의 가설대로라면 학생들은 분명히 놀라는 반응을 보였어야만 한다.

고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킬일 거야.’

확신이 들었다.

더블 캐스팅과 마나 동화가 이쪽 세상에서는 일반적인 것처럼, 그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마법 도서관으로 향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마법 도서관은 아카데미생들만 열람 자격이 부여되는데, 그 찬란한 명성만큼이나 양질의 자료들이 많았다. 강민혁은 그중에서 원하는 서적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가치가 그렇게 높은 자료가 아닌 모양인지, 기초 서적들이 모인 곳에 위치 해있었다.

[무빙 캐스팅]

[서클의 상관관계]

일단 무빙 캐스팅을 먼저 확인했다.

[무빙 캐스팅(Moving Casting)]

[무빙 캐스팅의 탄생은 ‘마법사는 언제나 서서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캐스팅을 시전하는 상황에서, 육체적인 움직임은 마나의 체계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법은 무조건 서서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으나, 무빙 캐스팅의 기반이 되는 마나 컨트롤 방법이 생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무빙 캐스팅의 문제점은 마나의 불안정함이다. 마법사가 마나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그 변화무쌍한 마나를 컨트롤할 능력이 있다면 무빙 캐스팅의 실현이 가능하다. 그 방법으로는·········.]

방법은 복잡하면서도 간단했다.

보통은 1의 방법으로 캐스팅을 한다면, 움직임에 따라 2로 변하는 체계를 미리 예상해서 대응하는 것이다. 웬만한 머리로는 사용할 수 없는 스킬. 하지만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무빙 캐스팅’ 정도는 기본 소양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마법에 재능이 있기 때문에 입학을 허가받은 것이니 말이다.

제임스의 자부심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본인이 선택받은 존재임을 알기에, 근본도 모르는 클리스만을 배척하고 따돌리려고 했다.

다음은 서클의 상관관계.

[서클이 향상될수록, 높은 서클의 마법사는 낮은 서클의 마법을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보통 1서클 마법을 캐스팅할 때는 한 개의 서클만을 사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2서클 마법을 캐스팅할 때는 두 개의 서클. 그런데 1서클 마법을 캐스팅할 때 두 개의 서클을 사용해서 마나를 운용한다면, 캐스팅 시간이 대폭 감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황당할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상식이었고,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제임스 패거리는 빠르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방법에는 마나 소모량이 많아진다는 단점이 있으나,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는 기술이었다.

무빙 캐스팅으로 강민혁의 공격을 피했으며, 3서클보다 낮은 1서클 마법의 캐스팅을 빠르게 마쳤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든 그들의 전투가, 기초적인 지식을 익힘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건 혁명이야.”

강화 문명.

그곳에서 마법사의 약점은 무엇인가.

움직이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고, 캐스팅 시간이 매우 느리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읽은 책들은 그러한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해주었다.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가 마법사의 강점을 극대화 시켜주는 방법들이라면, 이번 것은 마법사의 단점을 보완해주었다.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무빙 캐스팅과 서클의 상관관계만 잘 이용한다면, 전사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다만.

‘이건 나만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야.’

서클의 상관관계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바로 직접 생성한 서클이어야 한다는 것.

약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나약한 서클로는, 강하게 몰아치는 마나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무빙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무빙 캐스팅은 쉬운 기술인 것처럼 서술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강민혁도 현실에서 직접 확인해보지 않는 한, 자신이 무빙 캐스팅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을 다시 읽었다.

혹시라도 놓친 것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였고, 새로운 지식들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았다.

그리고 며칠 뒤.

3서클 마법을 모두 익힌 강민혁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현실.

익숙한 감각이 살아났다.

강민혁으로서 눈을 뜬 그는, 곧바로 마법 연무장을 빌렸다.

‘무빙 캐스팅과 서클의 상관관계를 확인하자.’

일단 서클의 상관관계.

3개의 서클을 이용해서 최상급 1서클 마법을 사용하자, 정말 빠른 속도로 마법이 완성되었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한 5초 정도 걸렸을까?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로 캐스팅 속도가 빨랐다.

최상급 마법과 서클의 상관관계를 이용한 콜라보는, 이쪽 세상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이건 작은 성과가 아니야. 만약 내가 4번째 서클을 형성한다면, 1서클 마법을 거의 캐스팅 시간 없이 사용할 수 있어. 그 말인즉, 빠르게 접근하는 상대를 막아낼 수단이 생긴다는 거지. 보통 근접 전투는 5서클의 메모라이즈(Memorize)를 익힌 대마법사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데, 서클의 상관관계를 이용할 경우 상황이 달라져. 거기다 무빙 캐스팅만 사용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정말로 전장 한복판에서 활약하는, 워 메이지의 탄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강민혁은 곧바로 무빙 캐스팅을 실험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결코 단순한 기술이 아니기에, 실현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화악-

허공에 마나가 흩뿌려졌다.

강민혁은 옆으로 뛰면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나를 ‘무빙 캐스팅’의 방법에 따라 체계를 형성했다.

드드드드.

마나가 요동쳤다.

시전자의 의지가 아니라 제멋대로 흩어지려는 모습에, 강민혁은 그것에 맞추어 캐스팅을 이어나갔다.

동시에.

‘수호문의 마나 심법으로 마나를 안정시키자.’

그건 즉흥적인 방법이었다.

마나 심법은 강력한 공격 기술이 아니라, 마나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말한다.

마나 룸에서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혹시라도 이번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이 운용했다.

그 결과.

“·········?!”

강민혁의 눈이 커졌다.

수호문의 마나 심법.

그 운용법에 따라 마나를 다스리자,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마나가 안정을 되찾았다. 덕분에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체계를 어렵지 않게 완성할 수 있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했던가.

마나 심법은 마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나, ‘마나’라는 틀 안에서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손에서 피어나는 불길.

강민혁은 제 자리에 멈추어서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 불길을 바라보았다.

“·········성공하다니.”

기뻤다.

아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성공에 대한 쾌감이 생겨남과 동시에, 강민혁의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이렇게 쉬운 거였어? 마나라는 게, 내가 원하는 대로 손쉽게 움직여주는 그런 거였냐고.”

지난 과거.

강민혁은 마나로 인해 절망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무빙 캐스팅은 보통 몇 주는 훈련해야 익숙해지는 기술인데, 마나 심법을 활용한 강민혁은 너무나도 손쉽게 성공시켰다. 평범한 성과가 아니다. 강화 전사로 훈련했었던 지난 시간이 강민혁의 밑거름이 되었고, 전에는 알지 못했었던 마법적인 재능이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었다.

“하, 하하.”

웃겼다.

검사로서 포기하며 인생이 무너져 내렸던 강민혁으로서는, 이 편안한 성취감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3서클.

최상급 마법.

더블 캐스팅과 무빙 캐스팅.

그 외에 여러기술들.

자신은 마법사로서 완성되었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아직 부족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상에서는 충분히 대단한 경지에 올랐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

재능에 절망하던 과거는 끝났다.

현재의 자신은 이룬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있다.

‘며칠 뒤에 검술 학과와 합동 수업이 있다고 했지.’

검술 학과.

그들과의 합동 수업은 마법 학과의 학생들이 기피하는 일정이다.

그들과 비교되고 겨루는 상황에서, 마법사들은 애써 외면하던 ‘비주류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강민혁은 다르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가진 힘을 시험해볼 수 있겠어.’

검술 학과의 엘리트들.

그들은 평가의 잣대로 삼기에 매우 좋은 상대다.

강민혁은 검술 학과와의 수업이 매우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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