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33화 (33/197)

33화.  8. 몰락한 명가의 천재(4)

강민혁과 정상훈은 자리를 옮겼다.

마법 대련장의 경우에는 수업 시간 외에 사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최병호의 총애를 받고 있는 강민혁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없었다. 전화 한 통에, 단단하게 닫혀있었던 마법 대련장의 문이 열렸다.

마주 서는 두 사람.

정상훈이 말했다.

“궁금하지 않아? 내가 왜 너를 상대해보고 싶어 하는지.”

“별로.”

“이유도 모르고 날 상대해주겠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너는 동급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고, 그렇기 때문에 너와 대결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너와의 대결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상대를 인정했다.

하지만 정상훈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마치 동등한 위치인 것처럼 표현하는 말이, 자신의 실력을 우습게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 네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직접 확인해보지.”

삑-

대련장의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허공에 떠오른 카운트 다운에, 강민혁과 정상훈은 서로를 주시하며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삐익-

대련 시작.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강민혁과 정상훈은 동시에 캐스팅에 들어갔다.

화악-

허공에 흩뿌려지는 마나.

정상훈은 곧바로 더블 캐스팅에 들어갔다.

더블 캐스팅은 벌써부터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고, 정상훈과 같은 천재들은 이미 지식의 습득을 마친 상태였다.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기술이었던 것처럼, 정상훈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정상훈의 캐스팅 속도는 학과 내에서 탑 클래스다.

본인이 먼저 마법을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갑자기 강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디그(dig).”

“?!”

훅!

순간 정상훈이 위치한 땅이 폴싹 주저앉았다.

정상훈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디그라는 마법을 처음 접하기도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런 빠른 속도로 마법의 캐스팅을 끝냈단 말인가. 디그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휘청거리는 무게 중심에 정상훈의 캐스팅이 잠시 중단되었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

어렸을 시절.

강민혁은 그에 대해서 배웠다.

마법사를 손쉽게 제압하는 방법은, 힘과 힘의 대결이 아니라 힘을 애초에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더블 캐스팅은 매우 효율적인 스킬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 개의 마법을 형성함에 따라, 캐스팅 시간은 조금 더 걸릴 수밖에 없다. 시전자가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나의 기억이라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니 말이다.

강민혁은 그 점을 공략했다.

동시에 사용하는 두 개의 마법 중 하나를, 공격 마법이 아니라 상대의 캐스팅을 방해하는 것을 택했다.

미세한 차이.

그것만으로 강민혁은 우위를 점했다.

최상급의 마법과 강민혁의 계산 능력이 더해지자, 순식간에 공격 마법이 완료되었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치지직.

1서클 전기 계열 마법.

강한 스파크를 일으키는 밝은 불빛이, 그대로 정상훈을 덮쳤다.

만약 이 일격을 당한다면 승부는 끝이다.

겨우 1서클이지만, 강민혁이 라이트닝 볼트를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캐스팅도 결국 육체로 마법을 완성하는 행위. 라이트닝 볼트의 마비 효과가 정상훈이 정상적으로 캐스팅을 진행하지 못하게 만들 거야. 그 사이, 1서클 마법으로 정상훈을 끝낸다.’

일명 짤짤이었다.

마법사간의 대결.

오진영을 압도적으로 무너트리기 위해서 2서클 마법을 사용했지만,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마법사는 신체 스펙이 떨어진다.

1서클 마법만 효율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록(Rock).”

빡!

허공에 바위가 소환되었다.

그것은 정확히 라이트닝 볼트의 길목에 소환되었고, 라이트닝 볼트는 의도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재밌게 노네.”

정상훈의 표정이 굳었다.

땅바닥이 주저앉아 캐스팅이 중단된 순간, 그는 황급히 기존에 준비하던 마법의 캐스팅을 취소했다.

직감했다.

강민혁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래서 기본 원소 생성 마법을 사용하였고, 상대가 마법을 사용하는 타이밍에 맞추어서 바위를 소환하였다. 록은 파괴력이 없는 마법이다. 하지만 좌표 계산을 통해 마법의 길목에 소환하는 순간, 아무런 효과가 없는 록이 실드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뛰어난 마법 활용법.

정상훈이 ‘실드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더니, 말을 툭 내뱉었다.

“네가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어. 지금부터는 내 방식대로 너를 상대해주지.”

위험을 감수했다.

고정된 위치는 실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상대에게 고정된 좌표를 노출하게 된다.

그래서 안전망을 버렸다.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정상훈은, 빠른 계산으로 두 개의 마법을 캐스팅했다.

“파이어(Fire), 아쿠아(aqua).”

팍!

푸으으으.

두 원소의 조합.

아주 빠르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두 개의 원소를 부딪치자 시야를 가리는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 안으로 사라지는 정상훈.

둘의 대결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정상훈은 천재였다.

1서클 하급 마법을 개발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마법사가 싸우는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좌표를 노출하지 않겠다 이건가.’

좌표 계산.

마법사가 캐스팅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이유다.

그런데 정상훈은 자신의 안전을 포기함으로써, 강민혁이 자신을 쉽게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파이어 볼.”

콰앙!

화르르르르르륵!

정상훈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정상훈은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기에, 강력한 범위 마법을 예상 위치에 떨어트렸다.

강민혁이 안전지대를 벗어나도 상관없다.

안전지대에 있다면 공격을 당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파이어 볼의 범위 데미지는 강민혁에게 어떻게든 피해를 입힐 것이다. 그래서 본인의 위치를 숨기고, 범위 데미지로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다.

정상훈의 머리 회전은 빨랐다.

그러나 강민혁도 그와 마찬가지로, 안전지대를 버린 지 오래였다.

‘제법이네.’

순간적인 마법 활용은 감탄이 나왔다.

마법사로서 고고한 자존심을 가진 그가, 강민혁의 짤짤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감각의 대결은 내게 유리하다.’

시야가 가려진 상태.

청각이 필요한 지금 이 시점에서, 강민혁은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스톤 볼(Stone Ball).”

타다닥!

보통의 스톤 볼과는 달랐다.

사람 머리만 한 바위를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마치 크레모아 같았다.

강민혁은 자신의 귀에 마나를 집중시켰고, 예민한 감각으로 돌멩이에 걸리는 소리를 포착했다.

팍.

몸에 닿는 소리.

강민혁의 눈이 번뜩였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빠르게 시도된 공격.

타오르는 화염에 시야가 걷히면서, 당황으로 얼룩진 정상훈의 표정이 보였다.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수증기로 시야를 가려놓았더니, 청각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찾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상식 밖.

강민혁은 마법사처럼 싸우지 않았다.

마법을 활용하되, 그 생각은 마법사와 검사의 경계선에 있었다.

“제길.”

정상훈이 이를 악물었다.

파이어 볼트라도 직접 허용 당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는 준비하던 마법을 취소하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이미 도박은 시작되었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이 싸움은 마법을 한 번이라도 맞는 순간 게임이 끝날 것이다.

정상훈의 서클이 마나를 강하게 뿜어냈다.

정상훈의 머리가 열리며, 정말 빠른 속도로 마법이 캐스팅되었다.

더블 캐스팅은 포기했다.

지금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는, 두 가지의 마법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빠르게 끝내야만 한다.

“윈드 피스트(Wind Fist).”

화악!

바람이 불었다.

수증기가 걷히며, 거대한 바람의 주먹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의 캐스팅 속도는 정말 빨랐다.

강민혁처럼 최상급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는 2서클 마법을 마치 1서클처럼 사용했다.

최상위의 재능.

정상훈이 자신의 재능을 여실히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만약 강민혁이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정상훈의 반격에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힘으로 찍어누른다.’

정상훈이 확보한 시간적인 여유.

그것은 강민혁이 허락한 것이었다.

정상훈의 대응은 빠르고 신속하였으나, 강민혁은 그것을 넘어서는 힘이 있었다.

“파이어 랜스(Fire Lance).”

화르륵!

쾅!

화염의 창.

그것이 윈드 피스트를 집어삼키더니, 정상훈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작렬하였다.

정상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까지도 열을 올리며 전투에 임하던 그가, 지금만큼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너·········.”

파이어 랜스.

파이어 볼의 상위 마법으로서, 현재 마법서에 등록된 파이어 랜스의 등급은 3서클.

고로.

“3서클 마법사였던 거야?”

상식이 다시 한번 와르르 무너졌다.

그건, 정상훈으로서는 완벽히 굴복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였다.

대련은 끝났다.

승리를 자신했던 정상훈은, 허망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졌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냥 진 게 아니다.

전투의 순수한 의미에서도, 그리고 마법사로서도 그는 강민혁에게 완벽히 패배했다.

‘강민혁의 마법 활용 능력은 대단했어. 캐스팅 속도 또한, 나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 않았어.’

게다가.

‘3서클 마법사였다니. 2서클인 것도 충격적인데, 대체 어떻게 3서클을 형성한 거지?’

마법사는 서클로 말한다.

강민혁이 자신이 3서클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순간, 정상훈은 강민혁을 받아들이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의 의도는 먹혔다.

강민혁은 견제를 통해 충분한 시간을 벌고, 일부러 3서클 마법을 사용하였다. 전에 마법서 보관서에 들렸을 때, 강민혁은 양쪽 세계의 마법을 비교하기 위해 마법서 몇 개를 확인했었다. 그중에 파이어 랜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급의 등급이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캐스팅을 끝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쪽 세상에서 사용하는 마법보다는 캐스팅 속도가 빨랐다.

3서클.

강민혁의 선택은 정상훈을 굴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의도대로, 정상훈은 백기를 들었다.

“사실대로 말해줘. 언제 3서클을 형성한 거야?”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자신도 이루지 못한 경지에 올라섰다는 사실이, 정상훈으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학문에서는 자신이 밀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마법적인 능력조차도 상대가 우위라는 사실은, 정상훈이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결말이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며칠 전에 성과가 있었어.”

“·········내가 알기로는 넌 마법 학과에 입학하고서 마법을 익혔다고 들었어. 그게 사실이야?”

“그래.”

“미치겠네. 평생을 마법에 바친 나도 아직 2서클인데, 넌 겨우 몇 개월 만에 3서클에 오르다니.”

압도적인 재능.

정상훈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강민혁의 능력은 대단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심해(深海)처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강민혁은 그런 정상훈을 보았다.

정상훈에 대한 평가.

‘그는 마법사로서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어.’

완벽했다.

뛰어난 마법 활용법.

사고의 유연함.

특히 워 메이지(War Mage)로서의 재능을 보이는 모습에, 정상훈이 생각 이상의 천재임을 알았다.

자신은 클리스만의 지식이라는 혜택을 받았다.

만약 그러한 이점이 없었더라면, 솔직히 말해서 이번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씨 가문의 후손. 그가 바라는 건, 마법사로서의 성공과 가문의 부흥.’

상대는 바라는 게 명확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은 그에게 말했다.

“상훈아.”

정상훈이 탐났다.

그는 투자한 만큼, 탐스러운 꽃을 피울 재능이다.

“내가 짧은 시간에 3서클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야. 그건 너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고, 그 외에도 나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여러 지식을 알고 있어. 그래서 네게 제안을 하나 할게. 아니, 이건 거래야.”

“거래?”

정상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법적인 성장.

그건, 마법사라면 물 수밖에 없는 미끼였다.

강민혁은 탐스러운 미끼를 정상훈의 눈앞에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목적을 말했다.

“그래, 거래. 내가 너의 성장을 약속하는 대신에·········.”

1년.

그 시간 동안 차근차근 기초를 쌓는다.

나중에 마탑을 건설할 때, 그 뼈대가 될 기초를.

“나와 사제(師弟)의 연을 맺겠다고 약속해. 네가 날 스승으로 모신다면, 내가 너를 옳은 길로 인도해줄 테니까.”

사제의 연.

정상훈을 강하게 옭아맬 수 있는 수단임과 동시에, 천재를 제자로 둘 경우 얻는 이득은 많다.

실질적인 이득뿐만 아니라, 명예까지도.

“이런 미친.”

정상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민혁은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였지만, 이번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아무리 강민혁의 능력을 인정한다지만, 자존심이 강한 정상훈은 강민혁의 거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거절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뒤.

“할게. 마법사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마저도 네게 바칠게.”

그는 결국 미끼를 물었다.

강민혁이 보여준 모습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사제의 연이라는 제안은 뿌리칠 수 없는 강한 유혹이었다.

마법 학술 대회 우승.

뛰어난 지식과 마법적인 능력마저 갖춘 사람.

스승으로서의 강민혁은, 나이를 제외하고는 뭐 하나 모자랄 게 없는 대단한 존재였다.

그렇게, 강민혁은 이학범에 이어 마탑에 영입할 새로운 사람을 얻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인가.’

클리스만과 약속한 날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빙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