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8. 몰락한 명가의 천재(3)
1학년 학생들은 입식 대련이 처음이었다.
그간의 교육 과정은 대부분 이론을 공부하거나, 아니면 몬스터를 상대로 한 실전 수업이 전부였다. 인간을 상대로 마법을 사용해본 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백동석 교수의 모습에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백동석이 말했다.
“입식(立式) 대련은 단어 그대로 서 있는 상태에서 서로의 마법을 겨루는 행위를 말한다. 몸을 움직여서 마법을 피하거나, 아니면 물리적인 데미지를 입히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공방의 모든 과정을 마법을 통해 진행해야 하며, 룰을 어길 경우 그 학생의 점수는 이유를 불문하고 F등급을 부여하겠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
“그러다 마법에 맞아서 심하게 다치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한 질문이었다.
현재 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마법으로 인한 데미지였다.
실전 수업이야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피해를 입을 일이 없지만, 마법사간의 대결은 조금 다르다. 둘 중 한 명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 그렇다면 연약한 마법사의 몸으로 마법의 화력을 버텨내야만 한다. 강화 전사야 피부가 단단해서 괜찮다지만, 마법사에게 그것은 곧 치명상을 의미한다.
백동석이 웃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대련장 바닥에는 일정 위력의 마법을 자동으로 보호하는 실드(shield) 마법이 설치되어 있다.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위험 지역에 마법이 접근하는 순간 자동으로 실드가 발휘되는 것이지. 그러니 입식의 룰을 지키는 건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염두해야 할 부분이다.”
“예.”
학생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이해한다.
이들이 마법사의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지만, 아직 10대 후반에 불과한 아이들이다. 경험이 결여된 그들의 상상력은 두려움을 낳기에, 백동석 교수는 그들을 헌터로 단련시킬 의무가 있다.
마법 학과의 역할.
100년의 역사가, 아카데미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번 대련에서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 그리고 언제 마법에 당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얼마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대련의 패배가 무조건적으로 낮은 점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마법사답게, 마법사다운 전투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설명이 끝났다.
백동석이 한발 물러서며, 두 학생을 지목했다.
“1번 2번, 앞으로.”
대련이 진행되었다.
1번과 2번은 엇비슷한 실력자였고, 둘은 화끈한 화력 대결을 펼치더니 결국 1번의 승리로 끝났다.
백동석의 말대로 사고는 없었다.
1번이 사용한 윈드 커터(Wind Cuttur)가 2번의 육체를 난도질하기 직전, 바닥에서 파란빛이 일어나며 실드가 형성되었다. 2번 학생은 화들짝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사고가 일어나는 불상사는 없었다.
“방금 2번은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분명히 윈드 커더를 막을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늦었다는 생각에 결국 도중에 캐스팅을 포기했다. 그건 마법사로서 실격이다. 마법에 적중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찰나의 시간 동안 집중력을 잃어선 안 된다.”
박한 평가였다.
2번의 고개가 푹 숙여지는 것을 시작으로, 차례로 다음 대련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련이 진행되는 상황에, 13번을 배정받은 오진영은 힐끗 강민혁의 모습을 확인하며 친구에게 말했다.
“내 상대는 강민혁이겠지?”
“아마도. 번호대로 진행한다면, 13번인 네가 14번인 강민혁과 붙겠지.”
“재밌게 됐네.”
오진영이 피식 웃었다.
사실 그는 강민혁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민혁이라는 사람보다는, 그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 정확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직 어린아이였던 오진영은, 아버지를 따라 수호문의 입문 테스트를 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오진영에게 수호문의 입문은 꿈이었고, 그렇기에 어린 나이에 정말 열심히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강화 전사로서 진영이의 재능은 전무합니다. 그러니 헌터의 길은 포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최소한의 재능도 타고나지 못했다면, 일반인의 삶이 진영이를 위한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문전박대.
오진영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수호문에 입단하던 그때, 오진영은 그 문턱마저도 넘어갈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다행히도 마법에는 재능이 있어서 마법사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수호문이라는 단어는 오진영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강민혁이 싫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강민혁이 수호문의 후계자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하여튼 가진 게 많은 녀석들은 개념이 없어. 수호문의 후계자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리인데, 그걸 제 손으로 포기하다니. 배가 부른 거지. 누구는 아예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는데, 강민혁은 마법 학과에 입학하고서 마법이 마치 별거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
짜증이 났다.
현재 마법 학과에는 오진영과 같은 부류가 많다.
수호문이라는 주류의 배경을 타고난 강민혁이, 마법 학과에서 엄청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것.
그게 심기를 건드렸다.
주류에게 비주류의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용납되질 않았다.
“강민혁이 1서클이라고 했던가.”
“당연히 1서클이겠지. 강민혁이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마법 학과에 입학한 지 겨우 몇 개월 만에 2서클을 형성했을 리는 없잖아. 사실상 1반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가 바로 강민혁이야.”
“그렇지?”
오진영의 웃음이 짙어졌다.
1서클과 2서클의 대결.
결과는 뻔했다.
서클의 차이는 대단하기에, 오진영은 강민혁을 압살할 자신이 있었다.
“이번 대련에서 저 건방진 강민혁을 아주 작살 내버려야겠어. 마법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마법사는 결국 실력으로 말하는 법이야.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은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지.”
몸이 달아올랐다.
강민혁과의 대결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건, 한편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정상훈도 마찬가지였다.
‘오진영과 강민혁이라.’
괜찮은 매치업이었다.
오진영은 마법사로서 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강민혁이 상대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강민혁의 실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강민혁의 패배는 확정적이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얼마나 마법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마법사로서도 재능을 보인다면, 정상훈은 아버지의 말대로 강민혁의 곁에 머물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마법적인 성장을 위해서,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마침내 시작된 대련.
그런데 그것은, 기다렸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파이어 볼.”
콰앙!
화르르르륵!
강력하게 타오르는 화염 마법에, 실드의 보호를 받은 오진영은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모두가 당황했다.
강민혁의 승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민혁이 2서클 마법을 사용한다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 마법 학과의 학생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게 있다.
학문의 재능을 타고나서 마법에 입문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보고도 믿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학문의 영역이란 그렇다. 그 학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느냐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재능에 따라 학문을 해석하는 수준의 차이는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민혁을 인정했다.
강민혁이 마법을 배운 시간은 짧지만, 그래도 연구자로서의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강민혁이 2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강민혁. 설마 2서클을 형성했나?”
백동석이었다.
그조차도 믿기지 않는 모양인지, 당황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간결한 대답.
그에 학생들이 당황했다.
파이어 볼을 직접 목격했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대답으로 듣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게 말이 돼?’
동시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2서클.
그건 육체적인 성장이었다.
초등학생이 대학생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초등학생이 육체적인 성장으로 대학생을 능가하는 것은 지적인 성장보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강민혁은 해냈다. 분명히 마법에 입문한 시기를 따져보면 아직 초등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벌써 2서클을 형성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안다.
2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동안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닥에 주저앉은 오진영은, 전의를 잃은 채 멍하니 강민혁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마법의 천재라 이건가.’
학술 대회 우승으로 지식의 수준은 증명했다.
그런데 지금 이 대련으로, 강민혁은 본인의 마법적인 재능도 심상치 않음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여주었다.
백동석이 말했다.
“·········오진영을 제압한 강민혁의 방법은 매우 훌륭했다. 상대가 미처 방어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것. 이게 실전이었다면, 오진영은 단 일격에 죽었을 것이다.”
대련이 끝났다.
대련장에서 내려오는 강민혁의 모습에, 1반 학생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깨달았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민혁은 더한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정상훈은 대련에서 깔끔하게 승리했다.
마법 학과 수석다운 실력이었지만, 그는 입식 대련이 진행되는 내내 강민혁의 모습을 머릿속에 떨쳐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강민혁이 2서클을 형성한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정상훈을 충격에 빠트린 것은, 2서클을 형성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마법의 캐스팅 시간 때문이었다.
오진영은 방심하지 않았다.
강민혁을 이기겠다는 열의가 있었고, 그래서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런데 마법을 먼저 완성한 것은 강민혁이었다.
순식간에 마법을 완성해낸 강민혁의 모습에, 오진영은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전의를 잃었다.
‘빨라도 너무 빨랐어.’
순간 자기와 비교를 해보았다.
만약 강민혁과 자신이 동시에 마법을 사용한다면, 자신의 실력으로 강민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마법 명가의 출신이며, 어렸을 때부터 마법을 수련한 자신조차도, 강민혁보다 캐스팅을 빠르게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을 선사하였다. 이번 입식 대련이 강민혁의 실력을 확인할 기회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한 의문에 빠지고 말았다.
이제 강민혁이 대단한 건 알겠다.
학문적인 부분이며, 마법적인 재능 모두 뛰어나다.
그러나, 이 의문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정상훈은 무턱대고 강민혁을 찾아갔다.
강민혁을 직접 상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강민혁. 나랑 한번 붙자.”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마법 학과의 수석이고, 1대1 대결만 따지자면 마법 학과 1학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강민혁의 반응은 이번에도 예상과 달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민혁이 웃었다.
“그래.”
그의 예상은 맞았다.
강민혁은 기다리고 있었다.
오진영을 압도적으로 무너트리면 정상훈이 보일 반응.
정상훈은 자신의 선택이 자의라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선택은 강민혁의 의도에서부터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