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31화 (31/197)

31화.  8. 몰락한 명가의 천재(2)

파이어 볼트의 캐스팅 간소화.

말로는 쉽지만, 사실 그건 마법 학과 1학년생이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이 아니다.

‘천재라 이건가.’

천재.

마치 특별하지 않은 결과물인 것처럼 말하는 정상훈의 모습에서, 강민혁은 천재의 자신감을 보았다.

확실히 소문대로였다.

강민혁은 마탑 건설을 계획한 이후로, 마법 학과에 재학 중인 인재들에 대해서 조사했다. 나중에 마탑으로 영입할 옥석(玉石)을 가려내기 위한 사전 준비. 그러한 과정에서 정상훈은 강민혁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마법 학과 수석이라는 타이틀만 하더라도, 그는 알아볼 가치가 있었다.

‘어떻게 할까.’

정상훈의 눈치를 살폈다.

격정적인 리액션을 바라는 표정에, 강민혁은 속으로 웃었다.

천재를 길들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가 바라는 것을 충족해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대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

미래의 인재.

정상훈의 영입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할 필요성이 있었다.

“대단하네.”

“그래? 사실 연구하면서 조금 고생하기는 했어. 파이어 볼트야 워낙 잘 만들어진 마법이라, 기존의 체계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

정상훈이 신나서 떠들었다.

살짝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강민혁이 자신을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강민혁이 분위기를 깼다.

강민혁은 그의 자료에 적혀진 체계에 볼펜으로 줄을 긋더니, 새로운 체계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네 자료를 보니깐 불필요한 과정이 있는 것 같아. 바로 이 부분. 파이어 볼트의 마나를 분배하는 부분에서, 다소 복잡한 과정 때문에 시간이 지체돼. 이걸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고, 속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도 체계를 조금 다르게 진행할 필요성이 있어.”

슥슥-

강민혁의 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자료 위에 새로운 공식이 덧붙여지는 모습에, 정상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너 설마·········.”

정상훈의 발견.

김창수가 놀란 것처럼, 그건 분명히 대단한 것이었다.

정상훈의 아버지도 연구의 결과를 보고는, 정상훈이야말로 새로운 미래를 열 인재라고 말했다.

그런 대단한 발견임에도 정상훈은 굳이 강민혁에게 공개하는 것을 택했다. 자신의 역작(力作)이,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에 비해서는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렇게라도 강민혁 앞에서 자신의 재능이 진짜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천재의 자존심에서부터 비롯된 행동임과 동시에,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가 보여줄 수 있는 치기 어린 호승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강민혁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점점 완성되어가는 강민혁의 마법 체계를 보면서, 정상훈의 눈동자에서 번지는 파문이 점점 커져갔다.

“··················이렇게 몇 가지를 바꾸면 더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아직 실험을 거치지 않은 예상이지만, 이 정도의 체계면 기존의 마법보다 20초 정도의 캐스팅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화(火) 속성도 조금 더 부여했기 때문에, 위력도 강해질 테고 말이야.”

탁.

펜을 놓았다.

강민혁이 제시한 마법 체계는 중급 마법서의 것.

너무 놀란 나머지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정상훈을 대신해서, 옆에 있던 김창수가 자료를 확인했다.

“와.”

그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재능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도 마법 학과 내에서는 제법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러니 적어도 마법을 알아보는 안목 정도는 있었다. 마법의 체계를 꼼꼼하게 확인해본 결과, 그는 강민혁이 제시한 마법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거 미쳤는데?! 상훈이가 말한 것보다 캐스팅 시간을 10초나 더 줄였어!”

쿵!

정상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급히 김창수의 손에 있는 자료를 낚아챈 그는, 안에 내용을 확인하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떴다.

“너·········.”

범인(凡人)은 천재들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천재라고 불리는 정상훈의 세상에서도, 강민혁이 해낸 일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강민혁 앞에서는 겨우 몇 주 만에 완성한 결과물처럼 말했지만, 하급 공식을 알아내는 데만 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결과물이었다. 사람들이 정상훈을 천재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정상훈 또한 자신의 결과물을 보며 본인이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마법의 체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

그건 보통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김창수가, 둘을 번갈아 보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고 말이다.

“너네 진짜 미쳤어.”

김창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은 기분에, 정상훈은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이, 이걸 어, 어떻게 알아낸 거야? 원래부터 연구하고 있었던 거야?”

속으로 빌었다.

제발.

자신과 마찬가지로 몇 년의 시간을 투자했기를.

만약 그런 경우라면, 강민혁의 재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따라잡지 못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니. 방금 네 자료를 보는데 보완점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걸 수정한 거야. 이게 가능한 이론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실험할 가치는 있을 것 같지 않아?”

정상훈의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하늘 위의 하늘.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목격했다는 사실에,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사실 강민혁은 정상훈을 배려한 말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자신도 조사하고 있었고, 네가 연구한 결과 덕분에 새로운 공식을 생각해낼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강민혁의 아버지는, 후계자 수업을 가르치며 항상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이 쥐고 있는 것의 가치를 절대 떨어트리지 마라. 네가 1을 가지고 있다면 2처럼 보이게 하고, 2를 가지고 있다면 4처럼 보이게 하라. 만약 상황이 너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면, 그게 우연이든 아니면 네가 만들어낸 필연이든. 그걸 활용하는 것 또한 네 실력이다.”

동의한다.

정상훈에게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한 이상, 어중간한 태도는 계획을 망칠 뿐이다.

“하, 하하······.”

정상훈이 허탈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말에도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이, 지금은 강제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은 진짜 천재였어.’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사실 그건 대마법사들도 이루지 못할 엄청난 업적이다. 그래서 강민혁의 발표 영상을 확인하며, 정상훈은 강민혁의 업적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같은 나이. 당연히 또래에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정상훈으로서는, 강민혁이라는 존재는 상식을 모두 무너트렸다.

그래서 발악했다.

꼭꼭 숨겨 두었던 자신의 역작을 공개하면서까지, 자신의 재능을 강민혁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강민혁은 ‘천재의 세상’에서도 상식적이지 않은 녀석이었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어.’

그의 아버지는 정상훈을 잘 안다.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타고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정상훈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럼에도 강민혁 옆에 있으라고 말했다.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척척 발명해낸 천재의 옆에 머문다면, 그에게서 떨어지는 작은 콩고물조차도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기연이 된다.

정상훈이 말했다.

“충분히 실험할 가치가 있는 것 같아. 그럼 이걸로 발표하자.”

강민혁을 인정했다.

하지만,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강민혁을 주시하자.’

정상훈.

그로서는, 강민혁이라는 상식 외의 존재를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감시 1일차.

정상훈은 교수들의 질문이 대부분 강민혁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서클 화염 마법 파이어 웨이브(Fire Wave)의 체계를 설명해볼 사람? 강민혁, 네가 한번 말해봐.”

“더블 캐스팅의 원리는 마나의 기억으로부터········· 이거 참, 더블 캐스팅을 연구해낸 사람 앞에서 설명하려니 민망하구나. 민혁아, 네가 친구들을 위해 직접 더블 캐스팅에 대해 설명해주겠니?”

과한 관심.

그중에는, 노골적인 의도가 드러나는 질문도 있었다.

“얼마 전에 내가 실험 도중에 그라운드 웨이브(Ground Wave)의 특이점을 발견했어. 땅을 뒤흔드는 체계에, 다른 마법을 융합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 만약 이게 성공한다면 그라운드 웨이브는 정말 강력한 공격 마법이 되겠지. 혹시 민혁아. 이에 대해서 네 생각은 어떻니? 그라운드 웨이브에 융합할 만한 마법은 있는지, 또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했으면 좋을 것 같니?”

그건 수업을 빙자한 연구였다.

이학범과 강필두가 강민혁과 같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교수들의 관심이 상당히 커졌다.

그런데 대단한 건 그때마다 강민혁의 답변에는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강민혁은 연구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말해주진 않았지만, 그 외에는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일반 학생의 지식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 오히려 교수들도 모르는 지식을 말함으로써, 교수와 학생의 입장이 뒤바뀌는 경우도 번번이 벌어졌다.

감시 2일차.

1일차와 상황은 비슷했다.

강민혁은 완벽한 수업 태도를 보여주었고, 교수들은 강민혁을 학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대했다.

그리고.

“블러드 문 마탑에서 캐비넷 세트를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영국 마법 협회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간식을 지원해주었습니다.”

“프랑스 마법 협회·········.”

여러 마법 단체들의 물량 공세.

그게 강민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

학교를 떠나 외부의 반응만 보더라도, 강민혁의 재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감시 3일차.

밝게 빛나는 강민혁의 모습에, 정상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는 인정했다.

강민혁은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서는 강민혁을 따라잡을 수 없어. 그건 나뿐만 아니라, 이 학교 전체에 해당해.’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강민혁은 그 행적이 언론에 드러난 사람이다.

17살까지 검을 수련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법 학과에 입학하자마자 보이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도피성 입학인 줄 알았던 강민혁은 실제로 마법의 천재였고, 그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기 위해서 마법 학과의 교수들과 세계적인 마법 단체들이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임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정상훈은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지식과 실력은 별개야.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마법사로서의 실력은 떨어질 수 있어.’

실전 수업에서의 활약은 보았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강민혁의 경지는 1서클.

그렇다면 결국 강민혁의 마법적인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상훈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강민혁이라는 사람 앞에서 자존심을 완전히 버리기 위해서는, 강민혁의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실력을 확인하지?’

다행히도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며칠 뒤.

실전 수업의 교수인 백동석 교수가, 1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식 대련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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