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8. 몰락한 명가의 천재
강민혁은 학기 초기에, 교수로부터 이런 수업을 들었다.
“마법 학과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냐고요? 음········· 마법사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기 위함도 있지만, 결국 마법사 또한 헌터의 한 갈래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바깥세상에서 헌터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충분한 실전 경험과 실력을 갖추어야겠죠. 마법 학과에서는 그러한 과정들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교육 과정을 통해 도와드립니다. 아, 참고로 실력의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 번째 서클의 형성 여부입니다.”
교수는 3서클을 강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상 2서클 마법사는 헌터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다.
기나긴 캐스팅 끝에 마법을 사용해봤자 위력이 대단하지도 않은 데다, 마법 몇 번이면 마나가 고갈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러한 단점들이 3서클에 올라서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마법의 위력도 훨씬 강해질뿐더러, 3개의 서클에서 공급되는 마나의 양은 제법 많다.
그래서 3서클이 마법사의 기준점이 되었다.
학사모를 쓴 졸업생이 3서클 마법사라면 그를 반기는 가족과 수많은 단체들의 영입 제의를 받지만, 2서클 마법사의 경우에는 보통 헌터로서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다. 3서클 이후부터는 언제 다음 경지로 올라갈 수 있을지 미지수이나, 적어도 3서클까지는 평범한 재능과 노력으로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마법 학과 2학년이었던 학 학생이, 본인만의 힘으로 3서클 경지에 올라서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난리가 났었다.
유소년 과정을 거친다 할지라도, 보통은 4학년 졸업반 때 간신히 3서클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케이스다. 그런데 2학년에 진학하자마자 3서클을 형성한 천재의 이야기에, 수많은 단체들에서 영입 제의가 쇄도하였다. 그만큼 3서클의 기준은 상당히 대단한 것이고, 3서클을 얼마나 빨리 각성하느냐에 따라 4서클의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그 학생은 현재 4학년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3서클에서도 발군의 자질을 보여서 영입하려는 단체들이 줄을 섰다.
이러한 이유들로 3서클의 의미는 컸다.
그런데 지금, 마나 룸의 3단계 출력을 버텨낸 강민혁은 심장에 형성된 3개의 서클을 느낄 수 있었다.
“3서클이라니.”
사실 출력을 높인 것은 도박이었다.
2단계에 약간 적응한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강민혁은 3단계로 출력을 높였다.
수호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편안한 수련은 독이다.”
근력 훈련을 하더라도, 수호문에서는 항상 부담되는 수준의 무게를 들게 했다. 근육이 힘들어서 비명을 지르지만, 그래도 어떻게 버틸 수는 있는 수준. 그때의 기억이 강민혁에게 채찍질을 날렸다. 2단계에 더 익숙해지기 전에, 곧바로 3단계에 도전함으로써 발전하길 바랐다.
도박은 먹혔다.
수호문의 심법은 생사의 고비에서 강민혁의 정신을 유지 시켜주었고, 3서클이 그 결과였다.
‘이런 사례가 있던가.’
없다.
적어도 마법 학과에서는, 강민혁의 나이대에 3서클을 형성한 마법사는 없다고 들었다. 그러니 2학년 때 3서클을 형성한 것이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대마법사들이야 더 이른 나이에도 각성했다는 사례가 있으나, 그들과 강민혁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의 입문 시기.
강민혁은 유소년 과정 없이, 곧바로 마법 학과에 입학해서 3서클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것이었고, 강민혁도 자신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았다.
‘마나 룸의 효과가 컸어.’
성장 촉진.
마나 룸이 없었다면, 이런 빠른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갖추어진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성장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내가 마법에는 재능이 있구나.”
재능.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그것.
클리스만의 지식이 말했다.
지금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성장 속도는,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도 대단한 것이라고 말이다.
다음 날 오전.
마법 학과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마법서의 이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하만석 교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프랑스 마법 협회에서 3서클 마법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의 캐스팅을 간소화하는 연구에 성공했습니다. 캐스팅 시간이 무려 20초나 단축이 되었고, 마법의 위력 또한 소폭이나마 상승하였죠. 이처럼 마법은 변하지 않는 지식이 아닙니다. 더 효율적인 마법 체계를 찾아낸다면, 이전보다도 발전된 형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마법서.
마법의 체계를 기록한 책.
그건 인간이 하나의 책으로 엮어서 마법서라고 부르는 것이지, 체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강민혁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클리스만의 지식을 통해, 상중하로 나누어져 있는 여러 체계를 이미 공부하지 않았던가.
하만석이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조별 과제를 부여하겠습니다. 3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새로운 마법 체계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하십시오. 성공한 결과물을 제출하라는 게 아닙니다. 현재 고정되어있는 마법의 체계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마법사로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고의 유연성을 판단하고자 합니다. 시간은 딱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조별 과제.
학과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하만석 교수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학생들은 친한 친구들에게 다가가서 곧바로 조를 형성했다.
그런데 강민혁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마법 학술 대회의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높은 점수를 받는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강민혁이라면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급생들은 강민혁에게 섣불리 접근할 수 없었다. 그건, 애매한 위치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강민혁.
수호문의 장남이라, 학기 초기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존재.
그가 마법적으로 성공하면서, 동급생들은 감탄과 동시에 강민혁을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삼았다.
대체 왜?
수호문의 장남이 자신들보다도 마법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것일까.
그래서 강민혁과 친해지는 것은 주변의 눈치가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유소년 아카데미에서부터 관계를 맺어왔던 사이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를 무시하면서까지 강민혁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강민혁이라는 존재가 탐나서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지만, 무리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듯 제일 먼저 총대를 메려는 강심장은 없었다.
그때였다.
한 학생이, 강민혁에게 다가갔다.
“혹시 따로 생각해둔 사람 없으면 나랑 할래?”
그는 바로 김창수였다.
실전 수업에서 강민혁의 조장이었던 그는, 그날의 사건 이후로 강민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강민혁은 개쩌는 녀석이야!’
강민혁의 카리스마.
강민혁의 마법적인 능력.
아직도 그때의 순간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의 시선을 외면하면서까지, 강민혁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성적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그래.”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수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나, 조원으로 누가 들어오든 간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
김창수가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일까.
곧바로 한 학생이 나섰다.
“나도 같이 껴도 될까?”
“헉.”
“쟤가 왜?”
“정상훈이 강민혁이랑 한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김창수 때와는 반응이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상훈이라는 이름의 그는 강민혁과 마찬가지로 입학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었다.
이제는 몰락해버린 마법 명가(名家)의 자식.
그리고, 마법 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사람이 바로 정상훈이었다.
정상훈.
그의 가문인 ‘정씨 가문’은 백 년 전만 하더라도 마법의 명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만큼 마법의 발견은 대단한 것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마법이야말로 인간의 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정씨 가문의 위세는 약해졌다.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강화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마법의 도태였다. 마법은 어느 순간부터 대세에서 밀려버렸고, 명가라는 말도 옛말이 되어 정씨 가문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시대의 흐름에 정씨 가문은 이제 ‘몰락해버린 과거의 명가’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정상훈의 아버지다.
어렸을 때부터 마법사로서의 훈련을 받은 정상훈은, 최근에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너와 같은 반에 강민혁이 있다고 들었다. 강민혁이 연구해내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는 마법 학계의 혁명이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최대한 강민혁과 친해지거라. 그런 천재의 곁에 머문다는 사실만으로도, 네가 마법적으로 얻는 게 많을 것이다.”
아버지의 신신당부.
사실 그 말에 짜증이 조금 일었다.
아무리 정씨 가문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나, 그래도 마법의 명가다.
그런데 반대되는 세력인 수호문의 장남에게 빌붙으라는 말이, 정상훈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난 아버지와 달라.’
정상훈의 아버지는 실패했다.
명가로서의 기반을 모두 잃었고, 과거의 위세를 되찾기는커녕 그의 세대에서 이룬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정상훈은 본인이 마법의 천재임을 안다. 발전하는 속도가 남들과 달랐고, 마법 학과에 입학할 당시에도 당당하게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강민혁의 도움이 없더라도, 자신의 힘이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강민혁의 동의에 정상훈은 조별 과제에 합류하였다.
그날 오후, 조별 과제를 위해 조가 한자리에 모인 상황에 정상훈은 곧바로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사실 이번 주제는 내가 관심 있게 공부하던 주제라, 이미 완성한 결과물이 있어.”
“정말?”
김창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에 반해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강민혁의 모습에, 정상훈은 속으로 웃었다.
‘어디 계속 그럴 수 있나 보나.’
“어. 내가 연구한 마법은 파이어 볼트인데, 파이어 볼트의 체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더 간략하게 캐스팅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얼마 전에 실험해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파이어 볼트보다 캐스팅 시간을 무려 10초나 줄일 수 있었어. 사실 원래는 개인적으로 발표할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과제를 받았으니 이걸 주제로 발표하는 게 어때?”
“헐.”
김창수가 입을 떡 벌렸다.
말이 10초지, 그 정도의 캐스팅 시간을 줄인 것은 대박이다.
1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트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김창수는 얼른 정상훈이 제시한 자료를 확인했다.
“대박, 진짜 되겠는데?”
자료에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김창수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수석 입학이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의 모습에, 강민혁도 자료를 넘겨받았다.
‘진짜네.’
정상훈의 설명대로였다.
그가 제시한 자료의 내용대로 마법을 캐스팅한다면, 최소 10초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건 정상훈은 알 수 없는, 강민혁만 알고 있는 문제였다.
‘하급 마법서의 체계와 동일해.’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에서 읽었던 하급의 파이어 볼트가, 딱 이런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강민혁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정상훈으로서는, 의기양양해 보이는 표정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어때?”
리액션을 바라는 물음.
지금 이 순간, 정상훈은 자신의 자료가 부족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