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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9화 (29/197)

29화.  7. 마법사의 역할(4)

김성호의 제안은 의외였다.

사실 사냥을 진행하면서, 김성호가 일정 선을 긋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가 마법사라고 해도 예의는 지키지만, 굳이 친해지려는 노력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파티야.’

D급 파티.

겨우 몇 년 만에 이 정도 수준에 오른 것을 보면, 실력도 괜찮은 편이고 서로의 합도 뛰어나다. 무엇보다도 인성이 나쁘지 않았다. 임윤호와 정민철은 강민혁의 합류에도 불편한 기색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고, 김성호는 중재자의 역할로서 강민혁의 편의를 최대한 챙겨주었다.

마음에 들었다.

무력이 지배하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김성호 일행과 같은 파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수호문에 비하면 실력이 매우 떨어져.’

사람은 각자 보는 세상이 다르다.

강민혁은 수호문에서 자랐고, 김성호보다도 어린 정판수가 A급 몬스터를 토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예전에 강민혁과 같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은 모두 그와 같은 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김성호 일행의 실력은 감탄을 자아낼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괜찮은 정도.

현재 수호문의 후계자인 그 녀석과 비교하면, 이들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파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

김성호가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덩달아 시무룩해지는 임윤호와 정민철의 모습에, 강민혁이 말을 덧붙였다.

“사실 제가 사냥을 자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시간이 불규칙적이라,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파티에 합류하는 건 가능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연락처를 받아놓고 시간이 될 때 연락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김성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들의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강민혁은 김성호 일행이 마음에 들었고, 마침 정기적으로 같이 다닐 파티가 필요하기도 했다.

‘매번 새로운 파티를 구할 수는 없어.’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다.

만약 수호문의 친구들과 같이 사냥을 나섰다면, 수준 차이가 심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성호 일행은 딱 강민혁과 비슷한 걸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레벨이었고, 그들과 같이 사냥에 나서면 적절한 레벨대를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파티장인 김성호의 경우에는 마법사의 활용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과의 호흡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강민혁은 김성호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러자, 김성호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클리스만님.”

“예?”

“이번에 사냥을 같이 하면서 느꼈습니다. 클리스만님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희도 반드시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지금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저희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연함이 감도는 눈빛.

아마 그들에게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리라.

세상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있지만, 일반인이었던 일행이 동시에 헌터를 지망하는 것은 흔치 않다.

강민혁이 싱긋, 웃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강민혁은 파티 사냥으로 얻은 것이 있다.

일단 첫 번째.

‘마법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확신.

마법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강민혁은 2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을 10번 사용해서, 무려 50마리가 넘어가는 고블린을 처리했다. 비록 고블린이 F등급의 최하위 몬스터라지만, 마법사 한 명의 화력이 50마리의 고블린을 집어삼킨 것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경지가 낮아서 2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한계지만, 점점 성장해서 3서클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면 폭발력은 더 강해질 터.

그때는 혼자서 일당백(一當百)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강화 전사들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많은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마법사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게다가.

‘내 마법에는 한계가 없어.’

3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은 그래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들의 화력을 이용하는 것이 하나의 전술로 사용되는데, 문제는 A급 이상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부터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아무리 다수의 적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을지라도, 피해가 전혀 없으면 무용지물이니 말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배척되었다.

검사들은 오라 웨이브라는 기술을 발명하며, 차라리 마법사 없는 사냥을 추구하는 부류도 많다.

하지만 강민혁은 다르다.

클리스만의 세상은 아직 발명되지 않은 6서클 마법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마법들도 있다. 만약 강민혁이 A급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여기까지는 희망적인 생각.

이번 사냥이 마냥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강민혁은 마법의 위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현실이 아직 초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두 번째였다.

‘난 아직 약해.’

비슷한 등급의 마법사보다는 강하다.

하지만 수호문의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단언컨대 그들은 혼자만의 힘으로도, 강민혁이 애를 먹었던 70마리의 고블린을 학살해버렸을 것이다.

참 씁쓸했다.

고차원의 마법 문명을 얻고, 강민혁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분명히 마법 학계를 발칵 뒤엎을 정도로 대단한 성과이지만, 그게 강화 전사들과 비교하면 아직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발전한다.

맹수 우리였던 수호문에서는 항상 예민하고 성장에 목을 맸던 강민혁이, 마법 학과라는 다소 풀어진 환경에서 독기(毒氣)가 많이 옅어졌던 모양이다. 서클을 형성하는 정도에 기뻐하는 꼴이라니. 정말 성장을 바란다면, 비교 대상을 자신보다 밑이 아니라 위를 바라봐야만 한다.

꽉.

‘내가 잠시 자만했어. 난 지금 천천히 걸음을 내딛을 때가 아니라, 내 한계를 시험해야 할 때야.’

남들보다 스타트가 느리다.

클리스만의 지식을 얻었다고, 늦장을 부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빨리 강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자신의 목표를 이룰 지름길을 알고 있었다.

‘마나 룸.’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나 룸을 세팅한 강민혁은, 1단계 아니라 2단계로 출력을 맞추었다.

‘마나 룸의 압력은 서클을 성장시키는 지름길. 내게 1단계에 충분히 적응할 시간적인 여유는 없어. 앞으로 1년 동안 최대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해. 내가 수호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호문에서는 강민혁을 독종이라 불렀다.

노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하루의 모든 일과를 수련에만 매진하는 독종 중에 독종.

마법 학과에 입학하면서 잠시 자신의 모습을 잃었던 강민혁이, 이제야 본래의 모습을 조금 찾았다.

‘시작하자.’

마나를 일으키는 강민혁.

마나가 마법진을 따라 마나석에 닿는 순간, 공간이 새파랗게 변하며 강한 압력이 강민혁을 덮쳤다.

우우웅!

“크윽.”

마나 룸 2단계.

목숨을 건 훈련이 시작되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마나가 일으키는 강력한 압력에, 식도를 자극하는 역한 기운을 당장 내뱉어내고 싶었다.

‘안 돼. 참아야 해.’

억지로 역한 기운을 억눌렀다.

이미 훈련은 시작되었다.

마나의 충돌이 잠잠해지기 전에 중심을 잃는다면, 이대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지도 모른다.

강민혁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운용했다.

1단계를 사용할 때는 수호문의 구결에 따라 마나가 얌전하게 따라주었지만, 거친 파도처럼 변한 2단계의 마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혈관 곳곳에서 강력한 충격이 일었다. 체내의 마나와 마나석의 마나, 그리고 자연의 마나가 엎치락 뒷치락하며 강민혁의 몸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쿵쿵!

몸이 부르르 떨렸다.

코에서는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강민혁은 온전히 마나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수호문.

그곳에서 강민혁은 혹독한 훈련을 경험했다.

몸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엄동설한에 밖에서 생활한 적도 있고, 정도 이상의 강화액을 투입하는 바람에 주화입마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강민혁은 불굴의 의지로 버텨냈다. 마나는 무형(無形)의 힘.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위기에도 강민혁은 결국 목적을 이루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8살의 어린 나이에도 고된 훈련을 경험했던 자신이, 고작 마나의 압력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드득.

이빨이 부서졌다.

서클이 열리며, 주변의 마나를 빠르게 빨아들였다.

수호문의 심법.

수천, 수만 번을 반복했던 그것을 되뇌임에 따라, 노도와도 같았던 마나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결국.

“하아.”

성공했다.

충격에 떨리던 몸이 안정되며, 2단계의 마나가 불안정하지만 강민혁의 의지를 따르기 시작했다. 강민혁은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나를 운용해서 혈관 곳곳에 고여있는 불순물들을 제거하였고, 순도 높은 마나를 서클에 채워넣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르는 산소에 머리에서 현기증이 일었지만, 강민혁의 정신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나석이 빛을 잃어감에 따라, 강민혁을 압박하는 마나의 힘도 사라졌다.

화악.

“후욱, 후욱.”

끝났다.

강민혁이 털썩 고개를 떨구며,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었다.

머리는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된지 오래였지만, 서클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에 표정만큼은 밝았다.

“·········성공했어.”

2단계 출력.

아마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4단계 정도의 출력으로 추정된다. 그쪽 세상에서도 수년 간을 훈련한 학생에게도 추천하지 않았던 단계를, 강민혁은 기어코 성공해냈다. 확실히 2단계는 1단계와 효과가 완전히 달랐다. 서클은 더욱 단단해졌고, 안에 저장되어 있는 마나의 양도 많아졌다.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그대로 땅바닥에 드러눕더니, 회색빛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클리스만. 넌 대체 왜 날 선택한 거니?”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법을 전혀 모르는 자신이 아니라, 존 웨슬리와 같은 대마법사가 클리스만의 지식을 얻었다면 벌써 6서클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영국 마법 협회라는 대단한 배경을 이용해서 세력을 형성했을 것이고, 자신과는 다르게 벌써부터 마법사의 인식을 바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강민혁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제 겨우 2서클을 형성하고, 이제 겨우 2단계의 출력을 견뎌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계단들이 많기에, 클리스만의 선택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왜 나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건 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강해지고 싶지만 강해질 수 없었던 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생겼어. 목숨을 걸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활짝 웃었다.

행복했다.

원하는 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강민혁에게는 너무나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강민혁은 그 날부터 매일 2단계 출력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을 정도로 출력의 강도는 강했지만, 강민혁은 성장을 위해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보름 뒤.

마나 룸 출력 3단계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긴 강민혁은, 심장에 세 번째 서클을 형성하였다.

마법에 입문한지 겨우 몇 개월 만에 벌어진 사건.

그건, 마법 학계의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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