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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8화 (28/197)

28화.  7. 마법사의 역할(3)

캬악!

고블린들은 빨랐다.

순식간에 덮쳐오는 그들의 공격에, 임윤호와 정민철은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막아!”

“·········썅!”

이를 악물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블린들과 뒤얽히는 순간, 생사가 걸린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꺼져, 이 개새끼들아!”

서걱!

파랗게 일렁이는 정민철의 오라 소드가 고블린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깔끔한 일격에 가장 먼저 달려들던 고블린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동족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 사방에서 공격하는 고블린들! 패기 넘치게 나섰던 정민철은 곧바로 수세에 몰렸고, 임윤호도 마찬가지로 뒤로 물러나기 급급했다.

캉!

카카캉!

정신없는 공방이 이루어졌다.

왼쪽에서 시도되는 공격을 막으면 곧바로 오른쪽을 공격당했고, 오른쪽 공격을 간신히 막고 나면 또 다시 왼쪽에서 고블린이 덮쳤다. 동시에 정면에서도 이루어지는 공격. 아무리 지능이 높은 고블린이라지만, 그들의 합공은 김성호 일행을 당황시킬 정도로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들의 최후방.

홉 고블린의 지시가, 고블린의 합공을 완성시켰다.

키룩, 키루룩!

딸랑딸랑!

방울 소리에 고블린들이 더욱 격하게 반응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김성호도 결국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플랜 C!”

서걱!

고블린 하나를 베어버리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플랜 C.

공격이 아니라 서로의 포지션을 이용해서 최대한 수비적으로 맞받아치는 전술. 현재 김성호 일행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선택지기 때문에, 임윤호와 정민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성호의 지시를 따랐다. 악착같이 달라붙는 고블린들을 베어버리며 서로의 등을 맡겼고, 그나마 사각의 한 군데를 동료에게 의지한 채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사방에 흩뿌려진 고블린들의 피에 후각은 이미 마비된 상태였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곧 전멸이다.’

김성호의 속이 타들어 갔다.

나름 고블린들을 잘 상대하고 있었지만, 숫자가 너무 많은 바람에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실수였다.

탐사 정보의 정확도가 높다고는 하나, 조금 더 신중하게 확인했어야만 했다.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패밀리어로도 발견하지 못한 공간은 놓쳤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동생들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김성호로서는, 이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벼랑 끝.

이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마법사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겨우 2서클.

마법의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2서클 마법사가 낼 수 있는 화력에는 한계가 있다. 상대가 고블린이라서 화력이 어느 정도는 먹힌다고 해도, 마법사라는 직업은 결국 4~5번의 마법을 사용하고 나면 탈진에 빠진다. 그게 문제였다. 3서클 마법사라면 강민혁의 말처럼 무작정 수비에만 전념해보겠지만, 2서클 마법사이기 때문에 큰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캉!

고블린의 공격을 막았다.

사납게 찢어지는 그의 이빨에, 김성호는 고블린의 머리를 날려버리며 홉 고블린의 모습을 확인했다.

‘결국 도박을 해야만 한다.’

홉 고블린.

그만 처리한다면 상황은 반전된다.

구심점을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에, 김성호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그 순간.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마침 강민혁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작렬하는 불길.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어버리는 강력한 열기에, 앞으로 달려들려던 김성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콰앙!

화륵, 화르르륵!

“이, 이게 무슨·········?!”

순간 눈을 의심했다.

비명을 지르는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

겨우 2서클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강민혁이 발휘한 마법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정도로 충분히 강력했다.

더블 캐스팅.

강민혁은 곧바로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했다.

서클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모습에, 강민혁은 ‘마나 동화’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최대한 여러 번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상대의 숫자가 많다.

겨우 한두 번의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평균보다 많은 양의 마나를 보유한 강민혁으로서도 마나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나 동화는 캐스팅 상황에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기술. 일반적으로 마법 발현에 필요한 소모 마나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다소 과정이 복잡하더라도 마나 활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최상급 2서클 마법은, 그렇게 고블린들을 덮쳤다.

그런데.

콰앙!

화륵, 화르르륵!

“·········?!”

마법의 위력은 강민혁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화끈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고블린의 외피를 새까맣게 태워버렸고, 몇몇 고블린은 열기를 참지 못하고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이건 도저히 2서클 마법의 위력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얼추 3서클에 버금가는 수준. 자신이 만들어낸 화마(火魔)에, 강민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최상급 마법의 위력이라는 건가.’

최상급.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하급만 되더라도, 이쪽 세상보다 더 높은 퀄리티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도 보물로 취급하는 최상급 마법은, 마법의 위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민혁은 마나 룸 훈련으로 인해서 서클이 평범한 마법사들보다 강해졌다. 강한 서클로부터 비롯되는 역동적인 마나는, 최상급 마법을 만나서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심장에 형성된 서클은 두 개밖에 없었지만, 그 위력은 3서클에 버금갈 정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강민혁의 활약에, 김성호가 바락 소리쳤다.

“클리스만님을 지켜!”

“네!”

상황이 변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민혁의 마법은 충분히 강하다.

버티면 고블린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다는 확신에, 김성호 일행이 강민혁의 앞을 겹겹이 막았다.

그러자 홉 고블린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키에에엑!

딸랑, 딸랑!

고블린들이 더욱 거칠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수비는 김성호 일행에게 맡긴 채, 마법 캐스팅에만 집중했다.

고블린은 화염 마법에 약하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다른 마법을 섞는 것이 아니라, 더블 캐스팅으로 파이어 볼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

보통 사람들은 마법의 위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D급을 상대로는 3서클.

C급을 상대로는 4서클.

B급을 상대로는 5서클.

A급을 상대로는 마법사는 하등 필요가 없다고.

2서클 마법사가 활약하기에는 D급 던전은 난이도가 높은 무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블린은 2서클 마법에도 큰 충격을 받는 몬스터라는 것. 실제로 실전 수업에서도, 1서클 마법은 버텨내던 고블린이 마지막에 사용된 파이어 볼에 죽음을 맞이했다. 게다가 강민혁의 마법은 3서클의 위력을 발휘하다 보니, 마법이 발현되는 순간마다 고블린들은 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콰앙!

화르르르르르륵!

또 한 번의 재앙이 고블린들을 덮쳤다.

벌써 네 번의 마법.

그러나 강민혁은 캐스팅을 멈추지 않았다. 마나는 아직 충분했고, 70마리의 고블린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는 한두 번의 마법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계속되는 강민혁의 마법. 캐스팅은 빨랐으며,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강민혁은 평범한 2서클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마법을 사용했다.

마력이 폭발했다.

마법이 작렬할 때마다, 고블린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10번의 마법을 사용하고 나자, 강민혁으로서도 마나 고갈로 인한 현기증이 일었다.

핑-

‘이런.’

짜증이 났다.

마법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러나 이 정도 마법을 사용하고도, 고블린을 모두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먼저 앞섰다.

만약 검사였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이, 검 하나로 이들을 처리했을 것이다.

상식보다 강한 위력.

그것조차도 전투를 끝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강민혁의 활약에, 승산이 없던 싸움의 양상이 변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김성호였다.

강민혁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던 고블린을 처리하더니, 그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고블린의 숫자는 한 자리수.

패색(敗色)이 짙었던 김성호의 표정이, 지금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격렬했던 전투가 끝났다.

결국 김성호 일행의 합공에 홉 고블린이 쓰러지며, 목숨을 위협하던 마지막 적마저 처리했다.

그러자.

털썩!

“후욱, 후욱!”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은 임윤호와 정민철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들의 얼굴은, 방금의 전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강민혁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70마리의 고블린이라는 변수에 이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방금의 전투.

강민혁이 뿜어내던, 강력한 화력이 말이다.

‘2서클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방금 보여준 화력은 대체 뭐지?’

그들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2서클.

정해진 등급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화력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강민혁의 모습은 상식을 넘어섰다.

그건 단순히 화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성호 일행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강민혁이 무려 10번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돼.’

마법사.

그들은 강화액을 체내에 주입해서, 심장 주변에 강제로 서클을 형성한다. 심장은 아주 예민한 부위이기 때문에 많은 마나를 축적할 수 없고, 그렇기에 보통 2서클 마법사들은 4~5번 마법을 사용하고 나면 탈진하기 마련이다. 단언컨대 강민혁처럼 10번 이상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다. 4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모르겠지만, 그 이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강민혁의 활약상에는 항상 의문이 붙었다.

강민혁은 완벽한 지원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전투에서는 그가 승리의 주역이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죽었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성호는 동생들과 짧게 의견을 주고받은 뒤에, 강민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클리스만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결국 홉 고블린을 마무리한 건 제가 아닌걸요. 저도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요. 이번 던전은 C급을 책정받아도 무방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동생들과 얘기해서 클리스만님의 비율을 절반인 5로 높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희만의 힘으로는 클리어할 수 없었던 던전이라서, 그만한 대우를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들과 상의한 내용이었다.

강민혁의 비율을 높이자는 말에, 임윤호와 정민철은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덧붙인 말이 있었다.

그들은 은근슬쩍, 김성호가 하나의 제안을 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사실 이런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김성호라 할지라도 마법사에게는 편견이 있었고, 같이 다닐 동료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일회성 관계만 맺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탐나.’

강민혁.

그의 능력은 일반적인 마법사와는 다르다.

1대1 능력은 자신들이 앞설지는 모르나, 강민혁 하나로 인한 시너지는 그 폭발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말했다.

“·········혹시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파티 제안.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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