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7화 (27/197)

27화.  7. 마법사의 역할(2)

김성호는 전투 내내 동생들의 상황을 살폈다.

혹시라도 그들이 위험에 빠진다면, 김성호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동생들부터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위험한 상황마다, 강민혁의 마법이 적절하게 작렬했다.

“록 애로우.”

퍽!

마법의 정확도가 정말 예술이었다. 몬스터와 한데 뒤엉켜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강민혁의 마법은 정확히 고블린의 머리를 노렸다. 아무리 1서클 마법이라 할지라도 급소를 타격하는 공격이다. 외피가 단단하지 않은 고블린으로서는,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강민혁의 지원.

임윤호, 정민철뿐만 아니라, 자신도 적절하게 지원해주는 상황에 김성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보통 실력자가 아니야.’

김성호는 그간 많은 마법사들을 보았다.

그렇기에 강민혁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마법을 적중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거기다 강민혁의 캐스팅은 정말 빨랐다. 전투는 결국 10분 내외로 결판이 나는 싸움인데, 2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강민혁이 그동안 10번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1서클 마법의 캐스팅을 평균적으로 1분 안에 끝낸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일부러 록 애로우를 사용하고 있어. 적과 아군이 혼잡하게 뒤얽혀 있는 상황에서, 범위 공격 마법을 사용하면 아군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감안한 선택이겠지. 대단해. 이런 마법사는 처음이야.’

그렇게 전투가 끝났다.

마지막 고블린을 마무리한 김성호는, 한숨 돌리더니 강민혁에게 다가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클리스만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큰 위기에 빠질 뻔했습니다.”

“아니에요. 그게 제 역할인걸요.”

강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실제로 지원만 해주었을 뿐, 고블린을 직접 처리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김성호는 강민혁의 공을 크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웬만한 마법사들은 지원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클리스만님의 생각은 다르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는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던전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은 것 같아서, 이번 사냥이 끝날 때까지는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성호의 시선이 동생들을 향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에, 멀뚱히 서 있던 임윤호와 정민철도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치지 않고 고블린들을 처리할 수 있었어요.”

편견을 버렸다.

실제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한 강민혁을 무시할 만큼, 그들은 멍청한 부류가 아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그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고, 동생들의 진심에 김성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

이해한다.

그간 여러 마법사들을 경험하면서, 김성호 일행은 수준 이하의 마법사를 너무 많이 보았다. 그런데도 마법사를 파티에 합류시키겠다는 김성호의 의견에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서클이 낮은 마법사의 경우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던전 사냥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무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김성호의 판단은 옳았다.

만약 강민혁이 없었더라면, 최악의 결과는 아닐지라도 부상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강민혁이 마주 웃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제법 많은 전투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강민혁의 예상대로였다.

던전 사냥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처음에 김성호의 동생들은 D급 던전이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던전에 진입한 지 벌써 1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본인이 얼마나 자만했는지를 깨달았다.

“에이 씨!”

“또 고블린이야!”

끼룩, 끼룩.

휴식을 제대로 취할 시간도 없었다.

방금도 무려 20마리의 고블린을 처리했는데, 얼마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블린의 소리가 들렸다. 도망칠 방법은 없다. 고블린은 후각이 매우 예민하고 추격에 능한 몬스터이기 때문에, 고블린에게 뒤를 내주는 것은 상책(上策)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더욱 높이는 일임을 알기에, 김성호는 피로를 회복하는 약물을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삭-

“준비해!”

전투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던전 공략을 포기할 법도 하건만, 김성호 일행은 믿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치지지직.

후방에서 발휘되는 마법에, 김성호 일행의 사각지대를 노리던 고블린 한 마리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라이트닝 볼트는 1서클 마법이나 마비 효과를 동반하는 마법이다. 고블린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전투를 속행하지 못했고, 덕분에 김성호는 가볍게 고블린을 처리할 수 있었다.

강민혁.

그가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김성호 일행의 사냥법은 변했다.

처음에는 다소 수비적인 모습으로 전투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의 약점은 노출하였다. 고블린의 공격을 허용 당하면 매우 치명적이겠지만, 그들은 그 정도의 허점은 강민혁이 커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록 애로우!”

퍽!

“나이스!”

이번에도 강민혁의 마법이 적절하게 고블린의 머리를 강타했다. 정민철은 주먹을 불끈 쥐는 것으로 강민혁의 마법에 찬사를 보내며, 곧바로 고블린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확실히 김성호 일행은 기본기가 뛰어난 편이었다. 그들은 안정적인 공수 능력을 보여주며, 차례로 고블린을 처리했다.

벌써 수차례 진행된 전투.

강민혁으로 인해 훨씬 안정적으로 변한 양상에, 임윤호와 정민철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었다.

“진짜 성호형이 이번에 제대로 구했네.”

“그런데 저 사람 마법 정말 잘 쓰지 않아? 뭔가 우리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마법을 사용해주잖아. 솔직히 전투를 치르면서 소름이 돋더라.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야.”

공수(攻守)의 타이밍.

강민혁은 그 찰나의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김성호 일행이 공격을 시도할 때는 기다렸다가, 수비가 필요한 상황에만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전투가 편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15마리 내에서 고블린 무리를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20마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보니 강민혁의 영입은 신의 한 수였다. 1의 비율을 아까워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제 역할을 완벽하게 해주었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는 그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강민혁의 마법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강민혁의 안목은 일반 마법사들과는 달랐다.

‘무리하게 공격적인 마법을 사용하지 말자. 보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득을 볼 수 있어.’

수호문의 후계자.

한때 검을 쥐었던 사람으로서, 강민혁은 몬스터와 직접 싸워본 경험이 많다. 그래서 강민혁의 눈에는 김성호 일행이 원하는 공수의 타이밍이 보였다. 언제 공격을 시도하고, 언제 방어를 하는지. 근육의 움직임만 보더라도 대강 다음 동작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강민혁은 한발 먼저 그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마법을 사용해주었다.

과거의 경험.

그것이 여러모로 강민혁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마법사이면서도 검사였던 강민혁이기에, 김성호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보조가 가능했다.

D급 던전.

예상보다 던전의 난이도는 높았다.

하지만.

서걱!

마지막 고블린을 마무리하는 김성호.

마치 순풍(順風)을 탄 배처럼, 이번 던전 사냥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

목표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 휴식을 지시한 김성호가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이제는 홉 고블린이 위치한 마지막 구역만 정리하면 끝이에요.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약 130마리의 고블린을 처리했으니, 탐사 정보만 정확하다면 마지막 구역에는 홉 고블린과 20마리 내외의 고블린 정도가 남았을 거예요. 그러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구역을 공략하죠.”

전략은 체계적이었다.

정확히 탐사 정보를 토대로 진행하는 것이었지만, 강민혁은 의문이 있었다.

“탐사 정보는 정확한 건가요? 우리가 상대한 고블린들은 무장도 잘 갖추어져 있었고, 머릿수를 앞세워서 합공(合攻)을 할 정도로 영리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렇다면 홉 고블린의 지능이 생각보다 높다는 뜻인데,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린다는 게 뭔가 찝찝해요.”

“음, 일리가 있네요.”

김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강민혁의 발언에 힘이 생긴 것도 있지만, 충분히 타당한 의견으로 보였다.

“탐사 정보가 항상 정확한 것만은 아니니까, 제가 몰래 마지막 구역을 확인해볼게요. 저희가 예상한 대로 20마리 내외의 고블린이 있다면, 정면으로 부딪친다고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그렇게 하죠.”

금방 타협을 보았다.

충분한 휴식 뒤에 김성호는 정찰에 나섰고, 한 20분 뒤에 오더니 밝은 얼굴로 말했다.

“탐사 정보에 나온 것과 동일해요. 홉 고블린과 20마리 정도의 고블린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혹시 변수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나, 마지막 구역을 확인한 이상 이 사냥의 끝을 봐야만 한다. 일행은 무장을 챙기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우둘투둘한 땅을 지나 안쪽에 형성된 넓은 공간에 발을 딛자, 김성호가 말했던 대로 홉 고블린을 비롯한 20마리 정도의 고블린이 보였다.

탁.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가 동굴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홉 고블린의 매서운 눈빛이 김성호 일행을 향했다.

캬아아아악!

“전투 준비해!”

마지막 전투.

일제히 달려드는 고블린들의 모습에, 김성호 일행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이제 20마리 정도의 고블린을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D급의 몬스터인 홉 고블린만 조심하면 되기에, 강민혁은 이전과 같은 패턴의 마법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홉 고블린을 경계했다. 혹시라도 홉 고블린이 전투에 참여한다면, 곧바로 마법을 사용해서 시간을 벌어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툭!

딸랑딸랑!

‘·········뭐지?’

홉 고블린의 행동이 이상했다.

그는 들고 있던 해골 지팡이를 바닥에 두드리는 행위를 반복하더니, 묘한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설마 주술?’

황급히 고블린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다행히도 주술은 아니었다.

광란(狂亂) 같은 주술은 휘하 몬스터들의 위력을 상승시키는데, 그러한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까.

강민혁의 감각이 예민하게 돋아오른 그때, 홉 고블린의 뒤로 이상한 그림자들이 보였다.

키엑, 키이이엑!

키에에엑!

바로 뒤편.

동굴의 끝이라고 예상되었던 밑부분에서, 어디에 공간이 있었는지 고블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얼추 50마리 정도 되는 고블린들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에, 김성호의 안생이 창백해졌다.

“제길!”

탐사 정보.

보통 탐사는 마법사의 패밀리어(familiar) 마법을 사용한다.

마법사가 계약을 맺은 패밀리어를 던전 안에 보내서, 던전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를 얼추 파악한다. 그러한 탐사 정보를 토대로 던전의 등급이 정해지는데, 이번 던전의 경우에는 홉 고블린 뒤편에 숨겨진 공간이 패밀리어에게 발각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김성호로서는 정찰과 기존 정보를 토대로 20마리의 고블린을 예상했으나, 그보다 많은 숫자가 버티고 있었다.

키르르륵.

홉 고블린이 사납게 웃었다.

마치 그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더욱 격하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키에에엑!

캬아악!

고블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눈에 보아도 감당할 수 없는 숫자에, 항상 침착하던 김성호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씨발.”

도망은 불가능하다.

이미 던전 깊숙이 들어왔기에, 이대로 뒤를 보였다간 오히려 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정면 대결도 힘들다.

3~40마리라면 어떻게 해결하겠지만, 약 70마리에 버금가는 숫자에다가 홉 고블린도 있다.

이건 승산이 없는 싸움.

김성호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그때.

“파티장님!”

“·········?”

“지금부터 파티의 화력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러니 역할을 바꿔서, 최대한 저를 지켜주세요.”

“아, 아니 그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김성호는 2서클 마법사인 강민혁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강민혁은 귀를 닫았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다수의 적을 쓰러트릴, 강력한 화력이 필요할 터.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화력을 실험해본다.’

최상급 2서클 마법.

더블 캐스팅.

형태 변화 등등.

강민혁의 머릿속에 온갖 마법 지식이 떠오르더니, 적들을 휩쓸어버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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