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6화 (26/197)

26화.  7. 마법사의 역할

며칠 전.

파티장인 김성호가 마법사 구인 글을 올리겠다는 말에, 같은 파티의 동생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굳이 마법사를 구할 필요가 있어요?”

“제 생각도 윤호와 같아요. 우리가 가려는 D급 던전의 특성상 마법사가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2서클 마법을 몇 번 사용하고 나면 빌빌거릴 게 뻔하잖아요. 분명히 마법사 하나 때문에 사냥 속도가 엄청 늦어질 텐데, 굳이 비율을 나누면서까지 구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순하게 생긴 임윤호와 각진 얼굴의 정민철.

이제 막 스무 살 혈기왕성한 녀석들의 의견에, 김성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탐색 정보에 의하면, 우리 세 명으로도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인 건 맞아. 하지만 탐색 정보가 항상 정확하지만은 않아. 생사(生死)가 걸린 싸움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는 죽음으로 직결될 텐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건 좋은 일이잖아? 겨우 1의 비율로, 우리가 변수를 대비할 수 있는 거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해.”

“하지만·········.”

“윤호야.”

김성호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동생들의 입장은 이해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반인에 불과했던 세 사람은, 한날한시에 헌터가 되기를 결심했다.

셋이서 같이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고생했고, 지금은 D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들이 얼마나 부족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강화액을 사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싶은데, 한 푼이 아까운 상황에서 1의 비율을 나누자니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RPG 게임처럼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김성호는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들의 맏형.

그리고 파티장으로서 말이다.

“우리가 몇 년간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시체를 수도 없이 봤어.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들의 죽음을 예상했다고 생각해? 천만에. 그들 모두 자신들의 수준에서는 충분히 공략 가능한 던전에 진입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예상치도 못한 변수에 죽고 말았어. 던전 곳곳에 널브러진 해골들이, 방심의 대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증명한다고. 너희들도 그렇게 되고 싶어?”

“·········아니요.”

“하지만 마법사를 영입한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잖아요.”

고개를 숙이는 임윤호와는 다르게, 정민철은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김성호의 시선이 정민철을 향했다.

“알아. 3서클도 아니고 2서클 마법사는, 던전 사냥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내가 마법사에게 바라는 것은 강력한 마법으로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게 아니야. 애초에 2서클 마법으로는 가능한 일도 아니고. 다만, 2서클 마법의 위력이라면 몬스터의 어그로를 분산시키는 정도는 가능해. 우리가 앞에서 싸우는 동안, 혹시 한쪽이 위험에 처하면 마법사의 마법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거지.”

김성호의 판단은 항상 옳다.

동생들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만 어린 표정을 드러내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구인 글을 올렸다.

김성호는 신중하게 마법사를 구했다. 마법사는 어중이떠중이가 정말 많은 직업이니만큼, 본인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20명 정도 되는 마법사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 김성호는, 클리스만이라는 사람이 보낸 메시지에 눈길이 갔다.

[·········말씀하신 역할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앞에서 세 사람이 전투를 하는 상황에서, 혹시 한쪽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그쪽을 지원 사격해달라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무조건 화력 위주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마법을 섞는 방향으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역할을 묻는 간단한 테스트.

클리스만은 가장 이상적인 답변을 해주었고, 김성호는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이 그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예정된 장소에 클리스만이 나타났다.

“·········혹시 클리스만님?”

“안녕하세요.”

그때까지도 동생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의 비율.

그걸 마법사에게 투자할 생각을 하니, 괜히 아까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래도 예의가 있는 모양인지, 동생들은 못마땅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소개가 끝나고.

김성호가 말했다.

“탐색 정보를 말씀드릴게요. 저희가 공략할 던전은 D등급이 책정되었고, 보스 몬스터로는 홉 고블린(Hobgoblins)이 서식하고 있어요. 예상 고블린의 숫자는 150마리 내외인데, 문제는 홉 고블린으로 인해 F등급의 고블린이 E등급으로 상향되었어요. 그래도 웬만해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머릿수에서 밀리는 상황이 온다면 적절하게 지원을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고블린.

몬스터들 중에 최하위 등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지만, D등급 몬스터인 홉 고블린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홉 고블린은 고블린의 머리다. 홉 고블린의 명령에 따라 무리를 형성하고, 무장을 갖추기 때문에 F등급이었던 고블린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다. 잘만 공략한다면 김성호의 말대로 크게 위험할 요소는 없겠지만, 홉 고블린의 지능 수준에 따라 언제든 변수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파티가 정비를 마쳤다.

곧바로 동굴의 입구처럼 형성된 차원의 균열로 들어갔고, 그러자 회색 빛깔을 띠는 동굴이 눈앞에 펼쳐졌다.

숨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멀리서 고블린들의 소리가 들렸다.

끼룩, 끼룩.

끼룩, 끼룩.

“준비해!”

“예!”

김성호의 외침에, 임윤호와 정민철은 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전방을 주시했다.

고블린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5마리의 고블린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인간을 발견하자마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캬아아악!

전투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지척에 도달한 고블린이 단검을 찔러넣으려는 순간, 김성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검에서 파란색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바로 체내의 마나를 공격적으로 발현시킨 오라(aura). 번개같이 휘두른 김성호의 검이, 그대로 고블린의 목을 갈랐다.

서걱!

피슈슉!

피가 튀었다.

확 올라오는 역겨운 기운에도, 김성호의 시선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네 마리.

빠르게 주변을 확인하자, 이미 임윤호와 정민철도 각자 눈앞에 있는 고블린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호흡은 매우 뛰어났다. 가장 먼저 고블린을 처리한 김성호가 임윤호와 정민철의 사각지대를 커버하였고, 덕분에 둘은 안정적으로 고블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서로의 위치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공수에 고블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정말 순식간에 전멸을 당했다.

털썩.

마지막 한 마리.

고블린이 쓰러지는 모습에, 정민철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후아.”

인상적이었다.

헌터에 입문한 지 겨우 몇 년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기엔, 확실히 전투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괜히 비교가 되네.’

강민혁은 문득 실전 수업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름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착실하게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이, 2서클의 경지임에도 불구하고 고블린을 상대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은 벌써부터 능숙하게 고블린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차이였다. 마법사는 오랜 시간 캐스팅을 해도 고블린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데, 이들은 개개인이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고블린을 단번에 절단하는 힘.

검에서 일렁이는 오라가, 마법사를 주류에서 배척시켰다.

“일단 부산물부터 확보해.”

“예.”

정비는 금방 끝났다.

사냥은 계속되었고, 중간에 마주치는 고블린들은 김성호 일행이 모두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강민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할 게 없었다.

사실 이 정도의 페이스라면, 김성호 일행만으로 던전을 공략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역시 마법사는 괜히 불렀어.’

‘D급 던전 정도는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네.’

동생들의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강민혁에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어차피 본인들의 힘만으로도 고블린을 충분히 처리하다 보니, 강민혁과 말을 섞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강민혁의 생각은 달랐다.

던전 깊숙이 이동할수록, 강민혁의 예민한 감각이 말했다.

‘아무래도 홉 고블린의 지능이 평균치를 웃도는 것 같아. 고블린들의 무장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공격할 때 일정한 체계가 있어. 뛰어난 지도자 밑에서 잘 훈련된 고블린들이 보통 그런 성향을 보이지. 지금까지는 10마리 이하의 무리를 만나서 큰 문제 없이 고블린들을 처리했지만, 그 숫자가 많아지면 고블린들의 위력은 지금보다 강해질 거야.’

고블린은 많아질수록 강해지는 몬스터다.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대는 경고음에, 강민혁은 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최대한 주변을 경계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파티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

갑자기 고블린의 숫자가 확 늘었다.

얼추 보아도 20마리 정도 되는 고블린의 습격에, 자신감이 넘쳤던 정민철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런.’

캬악!

훅!

기습적으로 창을 찔러넣는 고블린의 공격에, 정민철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그에게 달려드는 고블린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다. 정민철로서는 결국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사방에서 쇄도하는 공격에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캉!

카캉!

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래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정민철은 차분하게 대응했고, 어떻게든 틈을 포착해서 고블린에게 일격을 먹었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물. 동족의 죽음에 고블린들이 격하게 흥분하였고,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기세로 달려드는 그들의 공격에 정민철이 그만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훅!

“·········?!”

고블린 한 마리를 놓쳤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고블린이 그대로 정민철을 덮치려는 순간, 고블린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퍽!

“록 애로우(Rock Arrow).”

‘마법?’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아, 마법사가 있었지.’

잠시 잊고 있었다.

하도 존재감이 없었던지라, 그는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정민철은 강민혁이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록 애로우에 맞은 고블린을 곧바로 처리했다.

전투는 치열했다.

각자 최소 7~8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아무리 나름 숙련된 파티라 할지라도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의 계획은 고블린 무리를 조금씩 빼내서 상대하는 것. 20마리나 넘는 고블린 무리를 한 번에 사냥하는 것은, 그들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치열한 접전.

그런데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강민혁의 마법이 적절하게 작렬했다.

“록 애로우.”

퍽!

처음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정민철의 표정이 변했다.

‘제법인데?’

마법의 타이밍이 완벽했다.

웬만한 상황에는 개입하지 않다가, 정확히 위기라고 판단되는 상황에만 마법이 작렬했다.

덕분에 정민철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혹시라도 공격을 당하면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에 최대한 수비적으로 상대했는데, 강민혁의 커버에 수비가 한결 편해졌다. 강민혁의 마법이 강해서 고블린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시간을 버는 정도만으로도, 정민철을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분위기가 편해졌다.

분명히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성호 파티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번에도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강민혁의 마법에, 정민철은 결국 강민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해.’

2서클.

높은 경지가 아니다.

3서클 정도는 돼야 화력 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데, 강민혁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마법사가 달리 보일 정도였다.

마법사 하나로 이 정도의 안정감을 부여할 수 있다면, 정민철과 임윤호는 절대 강민혁의 합류를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사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밸런스를 적절하게 맞춘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존재감이 없었던 강민혁의 가치가 급부상했다.

승기를 잡았다.

강민혁의 지원을 받으며 차례로 고블린을 쓰러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고블린을 처리했다.

서걱!

마침내 쓰러지는 고블린.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 김성호 일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강민혁을 보았다.

그의 지원.

그 덕을 본 사람은, 정민철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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