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6. 성장(3)
강민혁의 일상이 달라졌다.
마법 학과에서는 수업 프로그램에 따라 착실하게 공부하면서, 방과 후에는 매일 마나 룸 훈련을 진행했다. 처음에야 갑작스러운 압력에 당황했었지만,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점차 1단계의 압력에 적응할 수 있었다.
“후우, 후우.”
규칙적으로 내뱉는 호흡.
마나 심법의 구결에 따라 마나를 운용하니, 파도처럼 밀려들던 마나가 잠잠하게 강민혁의 뜻을 따랐다.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무아지경으로 심법에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끝나있었다.
‘벌써 끝났구나.’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파랗게 물들었던 공간이 원래의 상태로 변하자, 창고 방 특유의 칙칙한 회색 벽이 눈에 보였다.
“그래도 내 과거가 도움이 되네.”
수호문의 심법.
아마 강민혁이 살면서 가장 악착같이 매달렸던 공부일 것이다. 어떻게든 심법으로 성과를 보기 위해서,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하던 날까지 심법을 연마했다. 그래서 심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게 마법을 배움에 있어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1단계는 안정적인 상태.
앞으로 약 보름 정도 1단계를 유지하다가, 출력 2단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마나 룸 훈련을 매일 진행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서클을 올릴 수 있어. 그만큼 마나 룸 훈련의 효과는 대단해. 딱, 한 가지의 단점이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말이야.’
훈련으로서는 장점밖에 없다.
훈련의 과정이 다소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훈련으로 얻는 효과를 생각하면 충분히 참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이나 이쪽이나 동일하다. 바로 훈련을 진행할 때마다 상급의 마나석을 6개나 사용해야 한다는 것. 개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마나석 6개를 소모품으로 사용하다 보니, 현재의 시세를 따져보면 회당 1억이 넘어가는 황제식 훈련이었다.
강민혁은 3억 달러의 상금을 탔다.
그중 10퍼센트의 비율은 이학범에 넘겼으니, 현재 남은 금액은 한화로 약 3000억 정도.
아무리 재정적으로 넉넉한 강민혁이라 할지라도, 회당 1억의 훈련은 장기적으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붉은 마나석의 비밀을 알고 있어.’
그건 정말 천운이었다.
클리스만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민혁은 붉은 마나석의 비밀로 인해 마나석으로 소모되는 지출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붉은 마나석은 시장에 1~2만 원에 판매되는 물품. 파란 마나석에 비해 쓰레기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래도 마나가 함유되어있는 만큼 고정적인 수요층이 있다.
일단 붉은 마나석 확보가 중요하다.
문제는, 자신이 이미 마법 학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사람들이 주목할 확률이 높아. 내 이름으로 붉은 마나석을 다량으로 매수하면, 마법 학계의 사람들은 붉은 마나석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물론 그들의 기술력으로는 아직 붉은 마나석의 비밀을 알아낼 수 없겠지만, 붉은 마나석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시세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결국 자신의 일을 대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입이 무거우면서 실력이 있고, 가장 중요한 건 강민혁이 전적으로 신뢰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마침 강민혁은 그런 사람이 한 명 떠올랐다.
‘일단 고영철을 만나자.’
고영철.
의식 저편에 가라앉았던, 후계자 시절을 같이 보냈던 이의 이름이었다.
***
수호문은 소규모 집단이 아니다.
문주인 강덕철을 중심으로, 수호문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루는 여러 갈래들이 존재한다.
처음 수호문이 개문을 선포할 때부터 같이 고생했던 가신(家臣)의 가문들이 이에 포함되는데, 정판호를 비롯한 사람들은 수호문에 충성을 맹세했다. 지금 강민혁이 만나려는 고영철 또한, 정판수와 마찬가지로 가신의 아들이었다.
흑표범 고무진의 이남(二男).
헝클어진 검은 머리에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온 그를 바라보며, 강민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혹시 예전에 했었던 약속 지금도 유효해?”
“어떤 약속을 말하는 거지?”
“알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을 위해서는, 너의 힘이 반드시 필요해.”
“·········.”
고영철이 강민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영철의 아버지인 고무진은, 수호문 내에서 정보부대를 맡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수호문의 정보를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온갖 더러운 일 또한 처리한다.
어둠 속의 짐승.
그래서 흑표범이라고 불리는 고무진의 이남이 바로 고영철이다.
고영철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무진의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그로 인해 음지와 관련된 일에서는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고영철이 고무진의 후계자로 거론되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강민혁이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하던 날 고영철 또한 장남에게 승계권을 완전히 넘겼다.
그리고 현재.
고영철로서는, 강민혁의 얘기가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 네게 제안을 했었지. 만약 네가 후계자의 자리에 욕심이 있다면, 네 아버지를 쓰러트리는 한이 있어라도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넌 포기했잖아. 나와 친구들이 너를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말했지만, 너는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어. 그런데 지금에 와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음성은 차가웠다.
사나운 고양이처럼 잔뜩 날이 선 음성에, 강민혁이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고는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고영철과 마찬가지로 강민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알아, 내가 너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거. 하지만 수호문은 내 것이 아니야. 아버지가 성장시켰고, 그 이전 세대의 조상님들이 지금의 수호문을 이루기 위해서 피땀을 흘렸어. 그래서 수호문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 적어도 검문의 후계자로서, 나는 자격이 없는 것이 확실했으니까. 알잖아. 무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힘이 없는 지도자는 결국 지배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보다 더 좋은 후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 욕심으로 인해 수호문을 무너트릴 수 없었어.”
솔직하게 말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직도 차가운 기색을 보이는 고영철을 바라보며, 강민혁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온전히 내가 만드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세력을 만들고자 해. 그때와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한계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뒤로 물러나지 않아. 수호문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지만, 지금 하는 모든 일은 내가 책임져야만 하는 일일 테니까.”
시작이 달랐다.
수호문.
대한민국의 4대 세력이라는 거대한 문파를 물려받기엔, 강민혁은 태생 하나밖에 내세울 게 없었다.
그래서 싫었다.
고영철과 하민성 같은 가신의 아들들이 강민혁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강민혁은 오히려 그들의 확고한 태도를 보인 시기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만큼 강민혁이 겪었던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재능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던 강민혁이, 그 날의 사건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힘.
수호문의 가주가 되기엔, 강민혁에겐 가장 중요한 게 없었다.
“하.”
고영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이 짜증이 나는 모양인지, 머리를 잔뜩 헝클였다.
“진짜 개같은 새끼.”
열이 받았다.
만약 강민혁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이해한다.
강민혁이 어떤 생각이었고, 강민혁의 선택으로 인해 수호문은 더 올바른 길로 나아갔다. 고영철 또한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먼 미래를 위해서는 강민혁이 내려오는 게 맞았다.
참담했다.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린 그는,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딱 하나만 약속해. 그때는 내게 부탁하지 않았기에, 네가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 하지만 내게 손을 내미는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이제 자의로 포기할 수 없어. 끝을 보기 전까지는, 네 몸이 부서져라 노력해야 한다고. 이 하나를 내게 약속할 수 있어?”
고영철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그는 고무진을 똑 빼닮았다.
정보전에 타고난 천재였지만, 강민혁이 아니라면 수호문을 위해서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가문을 한바탕 뒤엎었던 그가, 지금 새로운 미래를 보고 있었다.
“약속할게.”
고영철이 피식, 웃었다.
약속.
이 대답을 듣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던가.
강민혁과 지냈던 시간은 정말 즐거웠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재능을 수호문이 아니라 강민혁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뭐부터 하면 되지?”
이제는 멈출 수 없다.
고영철을 얻은 지금 이 순간부터는, 강민혁도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일단 내가 자본을 대줄 테니, 너만의 독자적인 정보 세력을 만들어. 그리고 사람들 모르게 최대한 많은 양의 붉은 마나석을 확보해. 그게, 네게 처음으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야.”
“아니.”
고영철이 헝클어진 머리를 넘겼다.
음영(陰影)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이제는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해야지. 대장의 명령은 잘 받았어.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할 테니, 나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제 대장의 역할에 충실해. 나는 그거면 충분하니까.”
고영철.
강민혁이, 아주 뛰어난 그림자를 얻는 순간이었다.
***
강민혁은 고영철에게 곧바로 100억의 자금을 주었다.
그가 하는 일은 돈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그에게 자신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고영철은 100억이라는 돈에도 놀라지 않았다.
수호문의 정보부대에서 일하다 보면 억 단위의 돈은 심심치 않게 보다 보니,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고영철과 헤어진 뒤에, 강민혁은 며칠 내내 훈련에 매달렸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내가 현재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
그것은 싸움을 치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현실을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문제는 마법 학과에서 진행하는 실전 훈련으로는 강민혁이 원하는 바를 충족할 수 없었다. 나중에 검술 학과와 같이 진행하는 합동 훈련 정도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린 애 장난과 같은 실전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동급생들은 그것만으로도 벌벌 떨었지만, 강민혁은 그들과 달랐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다.
‘던전 사냥이 괜찮을 것 같은데.’
현재 몬스터의 출몰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갑작스럽게 공간의 균열이 일어나는 랜덤 게이트와, 통로는 개방되었지만 몬스터가 밖으로 출몰하지 않는 던전 형태의 게이트.
강민혁이 택한 것은 후자였다.
던전은 보통 탐색을 통해 등급을 책정하기 때문에, 사냥의 권한만 확보하면 무리 없이 사냥을 진행할 수 있다.
사냥터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본인이 직접 헌터 협회에서 사냥터의 권한을 확보해도 되고, 아니면 이미 권한이 있는 다른 파티에 합류하는 방법도 있다. 강민혁의 경우에는 전자보다는 파티가 있는 것이 마법사의 능력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식으로 운영하는 헌터 사이트에서 구인 글을 확인했다.
파티원을 구하는 글은 많았다.
다만 검색어에 마법사를 입력하면 그 수가 대폭으로 줄어들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D급 던전 파티에 참여할 마법사 구합니다.]
[현재 파티원은 세 명이 모인 상태고, 예전부터 호흡을 맞춘 파티입니다. 최소 2서클 이상의 마법사만 지원받으며, 저희가 마법사님에게 바라는 것은 보조적인 역할입니다. 주도적으로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전투의 밸런스를 유지해주시면 됩니다. 보상의 분배는 3:3:3:1의 비율로 진행할 생각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본문에 적힌 메신저로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급 던전.
2서클 마법을 실험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구인 글의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쓴 사람은 마법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보상의 분배 또한 업계 표준치를 따랐다. 마법사는 보통 1의 비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4서클 이상의 마법사부터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구인 조건은 2서클로 명시되어 있기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고로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강민혁은 곧바로 파티장에게 연락했고, 간단하게 조건을 확인한 뒤에 약속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 날.
“·········혹시 클리스만님?”
“안녕하세요.”
강민혁은 가명(假名)으로 파티원들을 만났다.
그것이, 강민혁이 마법사로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파티 사냥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