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2화 (22/197)

22화.  5. 인생의 변곡점(3)

서울의 한 카페.

강민혁과 간단하게 안부인사를 주고 받은 존 웨슬리는,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제가 이렇게 시간을 내달라고 한 이유는, 예상하셨겠지만 강민혁님을 영국 마법 협회로 모시기 위함입니다.”

칭호가 바뀌었다.

심사위원석에서는 강민혁 학생이라고 부르던 존 웨슬리가, 강민혁에 대한 존경심을 보였다.

“저희는 강민혁님의 연구 방식에 진심으로 반했습니다. 마나의 기억, 형태 변화 등 창의적인 시선으로 연구에 접근하는 방식을 들으며, 강민혁님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저희가 제시하는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의 미사여구는 붙이지 않았다.

대회 직후부터 귀가 닳도록 칭찬을 들었을 강민혁에겐, 입에 발린 칭찬보다는 실질적인 이득이 중요하다.

존 웨슬리가 서류를 하나 꺼내 넘겼다.

“계약서입니다. 강민혁님이 영국 마법 협회의 연구자로서 입회하실 경우, 저희는 연간 1000만 파운드(149억)의 연봉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국 마법 협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최상부의 자료들도 열람할 수 있으며, 강민혁님 밑으로 최소 5명 이상의 연구원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협회 내에서 강민혁님의 등급은 골드 클래스로, 저와 마찬가지로 협회장님 외에는 터치할 수 없는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영국 마법 협회는 무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세력이다.

그곳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데, 존 웨슬리는 무려 골드 클래스를 제안했다.

골드 클래스.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영국 마법 협회에서 골드 클래스는 존 웨슬리를 포함해 겨우 3명밖에 되지 않는다. 권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리를 내줄 만큼, 그들은 강민혁의 중요성을 알았다.

하지만 강민혁의 반응은 덤덤했다.

계약서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모습에, 존 웨슬리가 말을 덧붙였다.

“1서클 마법사라고 들었습니다. 만약 강민혁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마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사제(師弟)의 연.

영국 마법 협회가 택한 초강수였다.

존 웨슬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마법사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핑크빛의 미래를 뜻한다. 5서클 대마법사로 향하는 탄탄대로. 만약 마법에 욕심이 있다면, 지금의 조건을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존 웨슬리.

그 이름은, 그만한 힘이 있었다.

“좋은 조건이네요.”

강민혁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2000년의 마법 문명을 얻은 강민혁에겐 큰 감흥을 선사하지 못한다.

고로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강민혁은 최소한의 예의로 제안을 모두 들은 뒤에,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어디에도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혹시 다른 곳과 이미 얘기가 끝나신 겁니까?”

“아니요. 당분간은 마법 학과에 계속 다닐 생각입니다. 제 연구와 성장은 모두 마법 학과로부터 비롯되었고, 섣불리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는 기반을 다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마법 협회가 정말 좋은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당장 제게 그러한 혜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돈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고, 1서클 마법사에게는 마법 학과라는 배경만으로도 성장은 충분하거든요.”

존 웨슬리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제자가 없다.

그런 자신이 제안한 파격적인 제안이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강민혁이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계속 말씀하시죠.”

“예.”

강민혁은 곰곰이 고민했었다.

애매한 포지션.

선택을 강요받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호의를 가진 마법 세력들을 상대로 어떻게 이득을 취할까.

오랜 고민 끝에, 답을 생각해냈다.

“영국 마법 협회는 일 년에도 수십, 수백 개의 연구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협약을 맺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영국 마법 협회의 힘으로 불가능한 연구가 있을 경우, 제가 참여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바라는 대가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영국 마법 협회와 상생(相生)하는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조건.

이건 다른 마법 세력들에게도 똑같이 제안할 것이다.

그것으로 강민혁이 얻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난제라 불리는 연구들을 성공시킴으로써 명성을 얻는다면, 그 세력의 인물들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그렇게 존재감을 퍼트린다.

그리고 1년 뒤에 마탑을 건설할 경우, 자신에게 매료된 사람들을 포섭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먼 미래를 위한 계획.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존 웨슬리로서는, 강민혁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 또한 강민혁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만큼, 강민혁님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억해주십시오. 1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언제까지나 영국 마법 협회의 제안은 유효하며, 필요하다면 이 이상의 조건도 제시할 의향이 있다는 사실을요.”

거래 성사.

그때부터는,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

한동안 바쁘게 지냈다.

다른 곳들과도 영국 마법 협회와 비슷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강민혁은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1년간은 무조건 마법 학과에 남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 이전에는 거취와 관련된 사항을 얘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럴 경우, 제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하지만 강민혁의 단호한 태도에도, 상대들은 표정을 찌푸리기는커녕 모두 알겠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갑(甲)의 위치.

모두가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풀어낸 순간, 강민혁은 단시간에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사이, 학과 내에서 강민혁의 위상은 달라졌다.

“강민혁은 진짜 천재가 아닐까?”

“당연히 천재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겠어?”

“어쩌면 조작된 결과일지도 몰라. 강민혁의 집안이 수호문이잖아. 그 정도 배경이면 뭐든 할 수 있지 않나?”

“에이, 그건 아니다. 수호문에서 강민혁은 낙오한 후계자잖아.”

강민혁의 업적에 감탄하는 사람들.

그 업적을 시기 질투해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사람들.

예전에는 조금 유명한 학과생1 정도의 위상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학과생이 강민혁을 주시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의 수상 이후, 마법 학과에는 ‘강민혁 클래스’가 개설되었다. 그건 강민혁이 직접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학범과 강필두가 연구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마법의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은 필수 과목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고, 학년을 가리지 않고 강민혁 클래스를 배우기 위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특이한 변화는 하나 더 있었다.

끼익, 끼익.

“의자가 불편하네.”

무의식 중에 툭 뱉은 말이었다.

강민혁은 수업을 충실하게 받았는데, 아무래도 마법 학과는 지원이 많지 않다 보니 시설이 매우 노후되어 있었다. 딱 보아도 오래된 의자와 책상. 인체를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아무 생각 없이 말했는데, 다음 날 수업에 참석하자 강민혁은 기적을 목격할 수 있었다.

“헐.”

“이게 뭐지?”

“책상이랑 의자가 싹 바뀌었네?”

의자와 책상이 모두 새것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하나에 몇백만 원이나 하는 고급형이었는데, 강민혁은 이 변화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학과장 최병호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찾아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에 대대적으로 책상과 의자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독일 마법 협회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토로한다는 말을 듣고, 무상으로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강민혁 학생, 의자는 괜찮죠?”

그때, 확신했다.

‘내 호감을 얻으려는 의도인가?’

1년.

강민혁이 말한 시간을, 독일 마법 협회를 비롯한 사람들은 경쟁의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강민혁의 마음을 최대한 회유해야만, 강민혁이 자유가 되었을 때 쟁취할 수 있다고 말이다.

굳이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다.

이건 강민혁이 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한 것이니까.

달라진 위치.

달라진 환경.

강민혁은 마법 학술 대회의 기쁨은 이제 털어내고, 마법적인 성장에 몰두했다.

***

며칠 뒤.

기다리던 그 날이 찾아왔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울렁거림이 가라앉은 이후,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눈을 떴다.

‘·········교실인가?’

기억에 있는 공간이었다.

처음 클리스만의 몸에 빙의되었을 때, 강민혁은 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주변을 살피지 못했지만,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 쉬는 시간인가 보네.’

동급생들의 자리가 드문드문 비어있었다.

쉬는 시간인 모양인지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는데, 강민혁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이 강민혁에게는 편했다. 딱히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강민혁은 시선을 옮겨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을 보았다.

[2서클 마법]

그건 마법서였다.

책장을 넘기자, 안에는 강민혁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체계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건?’

확실했다.

강민혁은 지난번 꿈에서 하급의 마법을 익혔는데, 이건 상급 이상의 마법으로 추정되었다.

캐스팅의 체계는 매우 간결하였고, 마법의 수식만 보더라도 위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클리스만의 의도가 보였다.

이걸 익히라는 뜻일 터.

강민혁은 이곳이 교실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한동안 푹 빠져서 마법서를 탐독하였다. 그동안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마법서의 내용을 숙지했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마법서의 글자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당황해서 주변을 확인했는데, 교수를 포함해서 동급생들은 그런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

저번에 익혔던 것은 하급이다.

그때 사서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출신들은 상급 마법서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동급생들조차 이 마법서의 내용을 보면 안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유추할 수 있는 가설이 있다.

비록 동급생들이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2서클 마법이지만, 이건 최상급(最上級)일 확률이 높다.

얼떨떨했다.

최상급은 매우 귀한 자료다.

이곳 세상에서도 보물로 취급하는 자료인데, 클리스만은 대체 어떻게 얻은 것일까?

복잡해진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어느새 수업이 끝난 모양인지 한 학생이 말했다.

“다음 수업은 개별 훈련실로 모이래.”

“아씨.”

“또 마나 룸(Mana room)이야?”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강민혁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옆에 있는 동급생에게 물어보았다.

“마나 룸이라는 게 뭐야?”

“뭐?”

동급생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강민혁을 마치 벌레 쳐다보는 듯이 바라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진짜 가지가지 해라.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출신이 마나 룸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아니, 도대체 너는 어떻게 여기에 입학한 거냐? 씨발, 진짜 수준 떨어져서 수업이고 뭐고 받기도 싫네.”

강민혁이 원하는 답은 없었다.

그는 짜증만 내고는 떠나가 버렸고, 결국 강민혁은 교과서에서 마나 룸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마나 룸]

[마나로 구성한 공간. 이 안에서 훈련하면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으며, 마나 룸이 개발된 이후로 서클의 업그레이드 기간이 대폭으로 줄어들었다. 마나 룸을 개발해낸 알렉산드르 도브첸코(Aleksandr Dovzhenko)는, 마법 학계의 혁명을 일으킨 대마법사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성장 촉진이라고?’

마법적인 성장을 바라는 지금.

클리스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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