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5. 인생의 변곡점(2)
강덕철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오랜만에 둘이서 마주하는 자리이건만, 강덕철의 태도에서는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식은 들었다.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했다면서?”
“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넌 내 아들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17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너는 단 한 번도 마법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 네가 마법 학과에 입학하자마자 학술 대회에서 우승하다니. 나로서는 선뜻 납득이 되질 않아.”
순수한 의문이었다.
우승에 대한 기쁨이나, 아니면 우승 상금에 대한 탐욕과 같은 것이 일절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의문.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아들의 발전이, 강덕철에게는 의외였으니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대답은 짧았다.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이 뒷말을 자르는 강민혁의 모습에, 강덕철은 묘한 눈빛을 보냈다.
“·········마법에는 재능이 있다는 말인가?”
대단한 일이다.
만약 강민혁이 평범한 검문의 출신이었다면, 마법이라는 사실을 떠나 진심으로 축복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수호문이다.
강민혁의 아버지는 수호검이라 불리는 강덕철이고, 사람들은 그 아들의 행보를 주목한다.
탁!
“이걸 봐라.”
강민혁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강덕철이 던진 신문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었다.
[수호문의 낙오자,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하다!]
[강민혁이 마법을 택한 이유, 사실은 수호문 내부에 문제가 있다!]
[수호문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가문의 후계자였던 강민혁이, 마법을 택한 것이 그 증거다!]
온갖 유언비어(流言蜚語).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는 악의적인 소문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호문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마 우리를 견제하려는 세력에서 퍼트린 소문이겠지. 이게 바로 네 위치다. 네가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더라도, 네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수호문과 직결된다. 마법 학술 대회의 우승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고, 이번 일로 인해 네가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알겠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만 해. 수호문에서 태어났다면, 환경과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강민혁의 재능을 인정한다.
마법사로서 대성한다면, 충분히 쓸만한 헌터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미래에, 수호문의 낙오자라는 꼬리표가 끝까지 따라붙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법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 나는 마법의 힘을 인정하는 부류이지만, 나 또한 마법이라는 힘을 우리와 비슷한 눈높이에 두지 않는다. 그저 쓸만한 수단 중 하나. 도구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마법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다. 그게 바로 네가 가는 길이다. 그러니 포기해라. 지금에라도 다시 검을 잡겠다고 한다면, 후계자의 신분은 아닐지라도 밑에서부터 다시 너를 훈련 시켜주겠다. 그게, 후계자였던 네가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강민혁은 참 매력적인 가십거리다.
모든 행동이 기사화되고, 그건 강민혁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수호문을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강민혁도 안다.
그래서 마법 학술 대회에 참석한 것이고, 그렇기에 아버지의 부름을 허락했다.
이 자리.
이건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통보하기 위함이었다.
“저는 이제 마법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수호문에서는 보지 못했던 빛을, 이 마법에서 보았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온 겁니다. 더 이상 제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로 저는 수호문과 연을 끊을 것이고, 짐도 모두 챙겨서 나가겠습니다. 수호문에 누가 되는 수많은 사고를 저지를 제가 못마땅하시다면, 지금 당장 친한 기자들에게 연락해서 이렇게 기사를 쓰라고 전하십시오. 강민혁을 수호문에서 제명하며, 그는 이제부터 수호문의 일원이 아니라고.”
“·········.”
강덕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가 말할 시간은 주지 않았다.
이건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천륜(天倫)을 끊었다.
마지막으로, 강민혁이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 기일에 진행될 토벌에는 참여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리고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제 도리는 하지 못하겠지만,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만큼은 불효자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이제 자의로, 아니 타의로도 이 방을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
학과장 최병호는 요새 기분이 좋았다.
“으흐흐흐, 애물단지인 줄 알았던 녀석이 이런 복덩이였을 줄이야.”
강민혁.
수호문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그의 입학은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강민혁의 입학으로 주변 지인들이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였었다. 수호문이라서 받아주는 것은 이해하지만, 혹시 그로 인해서 마법 학과가 부정적인 논란에 휩싸이지 않겠느냐고.
이해한다.
그래서 제발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게 웬걸?
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그것도 긍정적인 사고를 말이다.
‘참 대단한 녀석이기는 해. 수호문의 독자라는 애가,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하다니. 보통 유전자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민혁이를 어떻게 계속 학과에 붙잡고 있지? 우승자를 배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민혁이가 오랫동안 학과에 남았으면 하는데·········.’
우승 직후.
여러 기업과 단체들에서 연락이 왔다.
마법 물품을 스폰해주겠다는 기업부터 시작해서, 강민혁과 다리를 놔달라는 마법 단체까지.
특히 한국 마법 연합의 경우에는, 앞으로 마법 학과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강민혁을 연결시켜달라고 말했다.
전자는 수락했다.
스폰은 받겠다고 했으나, 후자는 단칼에 거절했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남에게 넘길 만큼, 최병호는 계산이 느린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세계 마법 연합에서도 민혁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거지.”
예상했던 상황이기는 하다.
우승이 아니라 일반상 하나를 수상했더라도, 강민혁은 여러 단체들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강민혁의 우승으로 기분은 좋으나, 강민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동시에 들었다.
“민혁이를 어떻게 붙잡지?”
사실 답이 나오진 않았다.
강민혁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학과에서 제시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장학금과 교수직 정도인데, 사실 그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강민혁으로 인해 얻은 명성으로 웃다가도, 곧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도껏 활약했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과한 결과를 내는 바람에 강민혁이 마법 학과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고 말았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때.
강민혁이 만남을 청했다.
“오, 우리 민혁이 왔어?”
“안녕하세요.”
강민혁의 방문.
최병호는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자리로 안내하더니, 상석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았다.
강민혁을 바라보는 흐뭇한 눈빛.
최병호가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실 거라도 내줄까? 출출하면 밥 먹으러 나가도 되고.”
“곧 수업 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 학과장이야. 내가 교수에게 잘 말할 테니까, 그런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액션이 과했다.
하지만 그게 최병호만의 방식이었다.
계산이 빠른 사람이니만큼, 본인에게 이득이 될 것 같으면 간과 쓸개를 다 내줄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강민혁은 최병호를 보길 원했다.
“학과장님.”
“왜, 설마 벌써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건 아니지?”
“아니요. 오히려 저는 마법 학과에 남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왔어요.”
“정말?!”
학과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마치 세상이라도 다 가진 것마냥 기뻐하는 그를 바라보며, 강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
클리스만.
그의 도움은 대가성 거래다.
마법 문명의 지식을 얻는 대신에, 강민혁은 이 세상에서 몬스터를 토벌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그간 고민이 많았다.
수호문이라는 배경을 떼버리면 겨우 17살 학과생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수많은 무력 단체들도 실패한 업적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결국 강민혁으로서는, 자신이 쥐고 있는 2000년의 마법 문명이라는 강력한 이점을 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큰 그림을 그렸다.
앞으로의 미래.
그 첫 번째는 바로 마탑의 건설이었다.
‘나만의 세력이 필요해. 나와 같이 몬스터 토벌에 앞장설 사람들.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나와 같은 목표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는, 내 마탑의 특별함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어. 그리고 2000년의 마법 지식이라면, 후발주자라 할지라도 마법 학계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문제가 아니야.’
이학범의 영입.
마법 학술 대회의 출전.
이 모든 것은 마탑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기상조다.
강민혁에게는 마탑을 건설할 만한 부와 명예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졌다.
‘내가 힘을 갖추어야 한다.’
두 번째.
바로 본인이 강해지는 것.
남들과는 다른 이점을 확보했지만, 강민혁은 아직 1서클 마법사에 불과하다.
수호문을 한국 최고의 세력으로 만들어낸 강덕철은, 차가운 어투로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세력을 형성함에 있어 소속감은 매우 중요하다. 수호문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수호문을 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가주의 역할이지만, 힘없는 인정(人情)은 의미가 없는 법이다. 민혁아. 무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약한 사람이 머리 위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옳은 말이다.
강민혁이 아무리 대단한 마법 지식을 선보인다고 한들, 본인이 약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마법 학과에 1년간 남아서, 자신의 힘을 키울 시간을 확보하겠다고 말이다.
“제가 바라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제가 마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마법 학과의 이름으로 모두 구해주십시오. 그리고 출석의 자유를 보장해주십시오. 좋은 점수를 달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인 이유로 자리를 비우게 되더라도, 퇴학 처리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조건을 말하고.
“대신 앞으로 1년간 마법 학과에 남을 거고, 그동안 제가 이루는 모든 업적들은 마법 학과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사용하셔도 됩니다. 당장 이번 마법 학술 대회의 우승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법 학과의 가르침이 좋았다고 말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제시하는 조건입니다.”
곧바로 대가를 말했다.
최병호가 환하게 웃었다.
강민혁이 말한 조건들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그런 수준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우리 민혁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못 해주겠어? 그것 외에도 말 만해. 네가 아카데미를 다님에 있어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이 학과장이 그게 무엇이든 개선해줄 테니까.”
거래가 성사되었다.
이로써 강민혁은 1년의 시간을 얻었다.
‘현재 나는 수많은 세력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어. 그런데 학업을 목적으로 마법 학과에 남는다고 말한다면, 세력들의 호의를 받으면서도 선택은 회피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겠지.’
성장할 시간.
그동안 남들의 호의를 거절할 생각은 없다.
강민혁이 선택한 애매한 포지션은, 졸업만 하면 강민혁을 영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부여할 터.
강민혁은 계산이 빨랐다.
후계자로서 17년을 살아온 그에게, 현실 직시와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은 단번에 보였다.
거절의 명분은 확보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명함의 주인들을 차례로 만날 차례야.’
때마침.
[존 웨슬리입니다.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가장 매력적인 먹잇감이, 먼저 연락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