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20화 (20/197)

20화.  5. 인생의 변곡점

대회가 끝난 직후.

독일 마법 협회의 소속이자 심사위원이었던 마르코 도슨은, 협회로부터 특명을 받았다.

“이건 정말 엄청난 기회야. 겨우 17살의 나이에 마법의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 연구를 성공시킬 정도라면, 강민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야해.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강민혁의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영입해.”

협회장의 명령이었다.

마법 학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 명의 대마법사는 전장에서 일당백(一當百)의 위력을 발휘하지만, 한 명의 뛰어난 연구자는 수십 명의 대마법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마법의 경지와 학문의 발전은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마법사는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반면, 어떤 마법사는 전장에서의 존재감은 떨어질지라도 연구소에서 값진 발견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로 마법 연합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뛰어난 연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탑을 제외한, 세계 마법 연합의 3대 세력.

미국, 영국, 프랑스.

그들이 바로 뛰어난 학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케이스였다.

마법 학술 대회에서 꾸준히 수상함으로써 단단하게 기반을 갖추었고, 그런 명성과 연구 자료에 이끌린 마법사들이 현재의 3대 세력을 형성하였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후발주자들도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부던히도 노력했지만, 선점한 세력과의 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강민혁을 반드시 확보해야 해.’

꽉.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번에 마법 학술 대회를 진행하면서, 마르코 도슨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모두가 인정하는 대마법사인데, 같은 심사위원임에도 불구하고 급이 나누어진 것 같은 분위기가 정말 싫었다.

특히 존 웨슬리.

아직도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발표자들을 열심히 평가하다가도, 그가 말하면 마르코 도슨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영국보다는 빨리 움직여야 해. 그래도 영국은 나름 체면을 차리는 녀석들이니까, 강민혁이 직접 연락하기 전까지는 상황을 주시하겠지. 그러니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있어. 특히 상대가 17살의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17살.

재능은 어떨지 몰라도, 아직 세상 물정은 모를 나이다.

그래서 마르코 도슨은 강민혁이 아니라, 강민혁의 부모님을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국 공통이겠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부모님의 입김이 심하다고 하지 않던가.

빠르게 서울로 이동했다.

강민혁이 아카데미로 복귀하던 그 시각, 마르코 도슨은 강민혁의 주소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

순간 당황했다.

주소지의 현판.

한국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수호문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수호문이라고?”

눈을 비볐다.

참가서에 기록되어 있는 주소지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현판을 확인했다.

맞다.

분명히 강민혁의 주소지는 바로 수호문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당혹스러웠다.

강민혁이 어째서 수호문에서 거주한단 말인가.

수호문은 한국에서만 명성을 떨치는 세력이 아니다. 한국의 4대 세력으로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다른 세력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해외 파병을 나가기도 한다. 특히 가주인 수호검의 명성은 워낙 대단하다 보니, 수호문의 이름을 모를 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법 협회를 발칵 뒤집은 마법 천재가, 수호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선뜻 납득이 되질 않았다.

강화 전사.

그들은 마법을 하찮게 보지 않던가.

사실 이는 마법 학술 대회 원칙으로 인한 해프닝이었다. 대회 참가서에는, 간단한 신상 정보만 기록한다. 수호문의 독자와 같은 구구절절한 얘기들은 심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발표자가 어느 소속의 누구인지 정도만 알고 심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

수호문 앞까지 와서, 마르코 도슨은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부딪치자.’

마법 학술 대회 우승.

무려 3억 달러의 상금 소식을 전한다면, 아무리 수호문 소속의 부모님이라도 말이 통할 터.

그렇게 한참의 고민 끝에 수호문으로 들어간 마르코 도슨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수호문의 이급(二級) 제자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마법 학술 대회는 그래도 마법 학계에서는 엄청난 대회라면서요. 그런데 마법을 배운지 겨우 3개월도 되지 않은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했다니. 설마 요새 유행하는 신종 사기법인가?”

“·········예?”

마르코 도슨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강민혁이 17살의 천재라는 사실을 떠나, 애초에 마법에 입문한지 겨우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니.

“그, 그게 사실입니까?!!!”

수호문에서 알게 된 진실은, 평생 마법을 익힌 마르코 도슨을 충격와 공포에 빠트렸다.

***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강민혁의 영입을 준비하던 마법 협회들은, 강민혁의 신분에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강민혁이 수호문의 독자라니.”

그것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강민혁이 마법을 배운 기간이었다.

겨우 3개월이란다.

사실상 아직 마법의 기초를 배울 단계인데, 강민혁은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을 차지하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17살의 천재가 더블 캐스팅의 연구를 성공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정도를 넘어섰다.

하지만 결국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호문의 독자라는 위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이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수호검, 득남하다!]

[수호문의 후계자 강민혁, 12세 이하 검술 대회에서 우승!]

[수호문의 미래는 밝다!]

수많은 기사들.

강민혁의 삶이 그 안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화 전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강민혁은,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검사로서 명성을 떨쳤다. 실제로 그때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단단했다. 어떠한 이유로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사의 내용만 보더라도 강민혁이 마법에 뒤늦게 입문했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강민혁이 우승했던 대회들.

기라성(綺羅星) 같은 천재들이 참여하는 무대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결론은 이랬다.

영국 마법 협회장과의 자리에서, 존 웨슬리는 정보팀이 알아낸 사실을 읽었다.

“··················강민혁이 17살 이전에는 마법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수호문 사람들의 증언도 이와 동일하며, 현재 그들은 마법 학술 대회 우승으로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그들의 말로는 강민혁의 마법 학과 입학은,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음으로써 도피처로 택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거 참, 제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해지는데요? 이 정보대로라면, 강민혁은 17살에 마법에 입문하고 겨우 몇 개월 만에 더블 캐스팅의 연구를 성공시킨 겁니다.”

황당했다.

존 웨슬리.

마법 학계가 인정하는 대마법사인 그도, 더블 캐스팅에 관해서는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었다.

강민혁의 경악스러운 행보로 인해, 현재 마법 학계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 마법 협회장, 웨인 번즈(Wayne Burns)가 말했다.

“현재 모든 마법 협회가 적극적으로 강민혁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어. 17살이라는 나이만으로도 대단한데, 이번에 밝혀진 사실로 인해서 강민혁의 가치는 더욱 상승했지. 그러니 우리도 상황을 관망할 수만은 없겠어. 만약 강민혁의 재능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짜라면, 그 한 명으로 인해 마법 학계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할 테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어째서 희대의 마법 천재가, 하필이면 수호문의 독자로 태어났을까.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수호문으로서는 강민혁의 성적을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을 확률이 높다.

마법의 평판이 그렇다.

그들 또한 ‘힘’을 가진 세력이지만, 강화 전사들에 비해서는 차가운 대우를 받는다.

“그렇다면·········?”

“존 웨슬리, 네가 나서라. 강민혁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이번 일은 체면을 차릴 일이 아니야. 다른 협회에서도 이름 있는 녀석들이 나설 테니, 우리는 그들과의 차이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지. 너의 이름값과 실력이라면, 그 방법으로 매우 적절할 테고.”

존 웨슬리가 씨익, 웃었다.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궁금했다.

강민혁이 어떤 사람인지.

그렇기에, 영국 마법 협회의 거물급 인사인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울행 비행기를 택했다.

***

그 시각.

정판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문주인 강덕철에게 말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민혁이가 마법 학과에 입학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법 학술 대회에서 우승을 하다니. 그래도 마법 학술 대회는 제법 명망 있는 대회지 않습니까? 마법 협회가 난리를 피우는 꼴을 보면 사실인 것 같기는 한데, 도통 믿기지가 않습니다.”

현재 수호문은 난리가 났다.

강민혁의 우승.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호문의 사람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대단한 업적이기 때문에 가문의 경사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수호문은 마법을 익히는 문파가 아니다.

더구나 강민혁은 낙오된 후계자.

강민혁의 업적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하여튼 민혁이 그 녀석의 독기는 옛날부터 알아봤습니다. 어린 애가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더니, 본인이 생각한 목표가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냈지 않습니까? 어휴, 이를 어찌해야 하나. 마법 학과에 입학할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이번 일로 언론이 또 난리를 피우겠네.”

걱정부터 앞섰다.

학술 대회 우승이 마법 학계에서는 대단한 일이라지만, 수호문으로서는 크게 체감이 되지 않는다.

한계가 있는 학문.

그곳에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루든, 수호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강덕철은 정판호의 호들갑에도 조용히 차를 마시며, 예전에 강민혁과 있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는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날.

강민혁은 손아귀에 피를 철철 흘리며 강덕철을 찾았다.

당시 강민혁에게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강민혁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는 후계자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의 태도는 단호했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에 강민혁은 마법 학과의 입학을 택했다.

그래서 그를 외면했다.

자신의 인생을 택했기에, 더 이상은 참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술 대회 우승이라니.

정판호는 마법의 문외한이라 그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강덕철은 잘 알고 있었다.

‘겨우 3개월 만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마법.

현재 세계에서 비주류 학문이다.

헌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90퍼센트가 강화 전사라면, 나머지 10퍼센트 정도가 마법사다.

10퍼센트는 전체에 비해 무척이나 낮은 수치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10퍼센트.

숫자로 따지면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

그들이 백년간 쌓아올린 마법이라는 문명은, 3개월의 지식 수준으로는 무너트릴 수 없다.

그리고 강덕철은 마법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효율이 매우 낮은 학문이지만, 그래도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위력은 확실히 쓸모가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강민혁이 어떻게, 학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는지를.

강덕철이 말했다.

“민혁이에게 연락해. 수업이 끝나거든, 나를 찾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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