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8화 (18/197)

18화.  4. 마법 학술 대회(5)

그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만약 강필두가 안전망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존 웨슬리의 질문에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완벽한 답변은 가산점이 되었을 텐데, 강필두는 분명히 길을 잃은 사람의 눈빛을 보였다.

“·········.”

강필두가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강민혁 덕분에 연구의 가치를 높인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이로써 자신이 받을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게 생겼다. 하지만 그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말았고, 여기에서 현명한 대처법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강민혁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강필두의 신호를 기다리던 강민혁이 속으로 웃었다.

‘역시.’

예상했다.

강필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가 명예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명예에 눈이 멀어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기다렸던 것이다. 존 웨슬리의 기습적인 질문에 답변한 것은 위기를 넘기기 위한 강민혁의 대처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본인의 생각이라고 곧바로 답변했다면 강필두는 좋지 않은 시선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신호를 기다리는 인위적인 제츠처를 보여줌으로써, 강필두는 그래도 강민혁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문에서 배운 처세술.

강민혁은 기쁨을 안에 숨기며 말했다.

“예, 교수님의 연구를 도와주면서 생각하게 된 방법입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올해 17살입니다.”

“허.”

감탄으로 물드는 존 웨슬리의 표정처럼, 다른 심사위원들과 관중들도 감탄사를 터트렸다.

17살.

이제 막 마법에 걸음마를 뗄 나이다. 아직은 마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대로 학습할 나이일 텐데, 강민혁은 벌써 연구에 참여해서 결과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주제가 아니다. 마법의 형태 변화의 경우에는, 위험성이 대단해서 노련한 마법사들도 기피하는 주제다. 그런데 그런 주제를 가지고,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는 17살의 학생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웅성웅성.

대강당이 시끄러워졌다.

강민혁에 대한 말들로,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제가 17살의 나이일 때는 2서클 마법을 배우기 바빴던 것 같은데, 강민혁 학생은 벌써 그 정도의 마법 지식을 쌓으시다니. 마법 학과가 정말 대단한 인재를 키웠습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존 웨슬리의 말에, 강필두가 얼른 나섰다.

“강민혁 학생은 정말 뛰어난 인재입니다. 사실 17살 학생을 연구에 포함시키는 결정으로 인해 학과 내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저는 강민혁 학생의 재능을 믿었습니다. 연구에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숟가락이라도 얹어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존 웨슬리는 강필두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발표를 마무리했다.

“마법 학술 대회는 세계 마법 연합에서 인정한 단체의 일원이라면 참가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각 단체가 자체적으로 선별해서, 마법 학술 대회의 출전 의사를 밝히게 되어있죠. 사실 이로 인해서 그간 말이 많았습니다. 무분별한 출전은 마법 학술 대회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요. 하지만 강민혁 학생이 저희가 전통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10년에 한 번이라도 강민혁 학생과 같은 인재가 나타난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인고의 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발표는 끝났다.

처음에는 적의 어린 시선을 받으며 무대 위에 올라갔지만, 무대에서 내려갈 때는 반응이 달랐다.

짝짝짝!

짝짝짝!

격하게 터져나오는 박수 소리.

첫 번째 발표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

다음 차례.

이름을 호명하려던 도날드 버틀러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이거 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방금 마법 형태 변화로 훌륭한 발표를 보여주었던 강민혁 학생이, 이번 조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학범 교수와 강민혁 학생,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뭐라고?”

“강민혁이 또 나와?”

난리가 났다.

강민혁.

방금 발표로 엄청난 임팩트를 보인 강민혁이 또다시 발표한다니.

서로 강민혁에 대한 칭찬을 하던 심사위원들은, 화들짝 놀라서 참가 명단을 황급히 확인하였다.

“정말인데요? 강민혁이 명단에 있어요.”

“대체 얘 뭐야?”

보통 참가 명단은 연구 대표자의 이름 정도만 확인한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의 머릿속에는 강필두와 이학범의 이름은 있어도, 강민혁은 기억할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제는 강민혁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를 알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어라?!”

“뭐야?”

“왜 강민혁이 마이크를 잡아?”

분위기가 묘했다.

당연히 조수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강민혁이,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준비했다.

그러자 도날드 버틀러가 물었다.

“혹시 강민혁 학생이 발표할 생각이십니까?”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발표자는 연구의 대표자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민혁이 발표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하다.

의문에 찬 시선들.

이학범이 앞으로 나섰다.

“예. 이번에 발표할 더블 캐스팅 연구는 제가 대표자로서 진행했지만, 사실 90퍼센트 이상 강민혁 학생에 의해 연구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발표자는 연구에 해박한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습니까? 비록 교수와 학생의 입장이지만, 이번 발표는 제가 보조를 맡을 생각입니다.”

강민혁과 대화를 나누었던 그 날.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나중에 저는 마탑을 건설할 생각입니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처럼 아직 사람들이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세계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마탑. 저는 이학범 교수님이 마탑의 일원으로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에는 마법의 발전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리고 제가 마탑을 운영함에 있어 도움을 줄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말뿐인 제안이 아니다.

강민혁은 하나의 자료를 건넸고, 그 자료 안에 담긴 ‘마나 동화’라는 기술에 이학범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확신했다.

강민혁은 천재라고.

수호문의 독자인 강민혁이, 어쩌면 마법의 선구자가 될 재능일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자료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학범은 몸이 부르르 떨렸고, 강민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학자로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다니. 그런 일이라면, 내 남은 삶을 네게 바칠 것을 약속하지.”

그렇게 거래는 성사되었고, 이학범은 발표자의 권한을 넘겼다.

강민혁의 요구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번 연구는 강민혁의 것이라 생각했고, 이게 미래를 위해서라도 옳은 일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이학범이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은 발표를 앞둔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

대회 전날.

심사위원들이 가장 의구심을 가지던 주제가 있었다.

“이번 발표에 더블 캐스팅도 있는데요?”

“으흠, 그냥 비슷한 주제의 다른 내용이지 않을까요? 진짜 더블 캐스팅을 성공했을 리는 없잖아요.”

더블 캐스팅.

그건 보통의 난제가 아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갈구했지만, 수십 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던 주제.

만약 프랑스 마법 협회 같은 이름 있는 단체에서 발표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디 이름도 모를 마법 학과 출신 교수의 발표가 성공하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연구팀 구성도 매우 초라하지 않은가. 17살의 학생이 포함된, 이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조합이었다.

그리고 현재.

심사위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이전 발표의 임팩트가 가라앉지 않은 지금, 그들로서는 강민혁이 단순히 17살 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더블 캐스팅 연구를 진행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블 캐스팅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물건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해결책은 마법사 본인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연구 사례에 의하면, 마법의 체계를 간소화하고 최대한 비슷한 형태의 체계를 만들어서, 다소 복잡하더라도 동시에 캐스팅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하지만 이건 더블 캐스팅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냥, 우리가 바라는 염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동시에 두 가지의 마법을 계산하는 단순노동 작업일 뿐이니까요.”

강민혁이 무대 위를 걸었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었지만, 그는 마치 알랭 코르노처럼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수호문의 독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익숙한 자리다.

그런 그에게, 무대의 압박감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메모라이즈(Memorize) 마법과 같이 간단한 방법으로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저는 한 가지의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팟.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더블 캐스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이니만큼,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마나의 기억력’이라고 부르는데, 약물 주사를 통해서 체내에 흡수된 마나는 해당 마법사의 몸을 본인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나를 모두 소모하더라도, 다시 소모한 만큼의 마나가 서클에서 회복되지요. 그런데 이 마나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마나 회복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영상이 재생되었다.

홀로그램의 마법사가, 한 가지의 마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마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행위. 이 과정에서 마나는 마법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나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마나의 기억력으로 인해 서클에는 동일한 성질의 마나가 회복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서클에 쌓인 마나는 이제껏 형성한 마법의 형태를 기억할까요, 기억하지 못할까요?”

답변을 바란 건 아니다.

깊게 내려앉은 침묵을 바라보며, 강민혁은 웃었다.

“마나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그리고 마법의 형태를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더블 캐스팅의 시작입니다.”

확!

화면이 커졌다.

그 화면은 오랜 과정을 담았다.

한 마법사가 반복적으로 마법을 사용하였고, 이윽고 캐스팅을 하지 않더라도 마나가 저절로 마법의 형태를 이루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에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홀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악.

대강당이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침묵에 휩쌓인 그 공간에서, 강민혁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지금부터 보여드린 것은 더블 캐스팅의 성공 사례입니다.”

명확한 증거.

어떤 체계로 마법을 사용했으며, 어떤 마법들을 성공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경우 마법의 캐스팅이 평균보다 느려지지만, 그래도 2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더블 캐스팅의 이론을 부정하던 사람들도, 강민혁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새 끝에 달한 설명.

강민혁이 마침내 발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것으로 더블 캐스팅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발표가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

‘더블 캐스팅이 정말로 실현되다니.’

연구가 성공했다.

난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이건 기적이었다.

그것도 마법 학계에 한 획을 그을 기적.

심사위원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경악 어린 눈빛으로 강민혁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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