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4. 마법 학술 대회(4)
강필두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앞에서 이미혜가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자신은 그와 다른 결과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괜히 긴장할 필요 없어.’
마법 학술 대회.
처음에는 순수하게 학술을 발표하는 무대였다면, 최근 10년 전부터는 경연의 성향이 매우 강해졌다.
대회의 수상 기록은 마법 단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잣대다. 그래서 보통 출전 권한을 부여받은 단체들은 신중하게 참가팀을 선정하는데, 많은 수상팀을 배출하는 단체는 마법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현재 세계 마법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영국, 미국, 프랑스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그들은 대회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수상자를 배출하는 단체였고, 그들은 그간의 연구 자료와 명성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마법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듣기로는 현역 아카데미 출신의 수상은 거의 없다고 했다.
보통은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 출전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강필두의 출전은 그 의미가 컸다.
‘우리의 연구는 완벽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 선 강필두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가 연구한 주제는 바로 ‘마법의 형태 변화’입니다. 세상에 알려진 모든 마법에는 일정한 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마법사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값진 결과이며, 형태의 체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나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형태 변화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마법의 형태는 다양한데, 왜 하나의 마법에는 하나의 형태만이 고정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어쩌면 같은 마나와 체계로 다른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발표는 강필두가 맡았다.
강민혁 덕분에 연구를 성공할 수 있었지만, 강필두는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뒤에 홀로그램을 보십시오.”
영상이 떠올랐다.
형태 변화의 체계를 설명함과 동시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영상이 재생되었다.
“마법의 형태를 변형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존과는 다른 형태 체계를 입력하면 됩니다. 이때, 마법은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저희는 마나의 폭주를 안정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방법은 간단했다.
캐스팅.
허공에 흩뿌려진 마나를 일정 체계로 형성하는 과정에서, 마법사는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새로운 체계를 동시에 형성하였다. 더블 캐스팅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더블 캐스팅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이라면, 이건 하나의 마법에서 두 개의 체계를 입력했다.
하나는 마법 형성, 하나는 마나의 안정화.
그런 과정 끝에 캐스팅을 마치자, 놀랍게도 마법사의 손에서 구슬 형태의 파이어가 형성되었다.
“허!”
“어떻게 이런 일이.”
관중석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불신 어린 시선을 보이던 사람들이, 강필두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발표는 계속되었다.
강필두의 설명에 따라 영상은 각기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점차 발표에 빠져들었다.
“이렇듯 동시에 마나를 안정만 시킨다면 형태 변화는 불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아직 연구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 형태 변화를 유지하는 것은 5초가 한계지만, 마법의 형태를 변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연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은 형태만으로 어떤 종류의 마법인지가 노출이 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형태 변화를 통해서 속임수를 섞을 수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완벽했다.
심사위원들마저도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에, 강필두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애써 억눌렀다.
이제 잘 마무리만 하면 된다.
이번 발표가 끝나면, 강필두는 아카데미라는 환경에서도 엄청난 연구를 성공시킨 인재로 보일 터. 최병호가 크게 포상하는 것은 물론이며, 어쩌면 세계적인 마법 단체들에서 영입 제의를 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상황.
그렇게 사람들의 찬사를 기대하며 발표를 끝낸 강필두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탁.
“질문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
그가, 흥분에 젖지 않은 표정으로 강필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
매우 흥미로운 발표였다.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새로운 체계는 정말 대단한 발견이지만, 존 웨슬리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좋은 발표를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마법의 형태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캐스팅과 동시에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체계를 입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체계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오차가 생길 경우, 형태 변화가 진행된 마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민한 문제였다.
만에 하나.
마법사는 그 하나를 대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할 경우, 그것은 곧바로 마법사의 생명으로 직결된다.
강필두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마나가 불안정해지는 순간 형태 변화가 진행된 마법은 곧바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충분한 숙달이 필요합니다. 저는 수없이 많이 형태 변화를 시도하였고, 숙련되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발견해낸 공식대로만 체계를 입력한다면,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할 일은 절대 없다고 확신합니다.”
연구 자료가 첨부되었다.
얼마나 많은 연구를 반복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강필두는 자신의 말에 힘을 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마법사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흩트려졌다간, 마법이 취소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투가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마나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생긴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사고로 직결될 확률이 높습니다. 강필두 교수님의 발표는 매우 훌륭합니다. 새로운 발견을 해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최소한의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마법의 형태 변화’는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혹시 생각해두신 안전망은 없으십니까?”
존 웨슬리는 침착했다.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학술 대회는 검증된 발표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계적인 마법사들의 힘을 빌려 문제점을 파악하는 자리기도 한만큼, 존 웨슬리는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 그게········· 음·········.”
강필두가 당황했다.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발표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존 웨슬리의 질문이 정곡을 찔렀다.
옳은 말이다.
위험한 기술은 사용할 가치가 없다.
더욱이 형태 변화는 대단한 위력으로 직결되는 기술도 아니기에, 위험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강필두가 쩔쩔매는 모습에, 존 웨슬리는 이만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발표였어.’
새로운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미혜를 신랄하게 깎아내렸던 것과는 달리, 강필두를 상대로는 예의를 지켰다.
그때였다.
“혹시 제가 답변해도 되겠습니까?”
강필두의 바로 뒤.
홀로그램 영상을 조작하며 보조를 맡던 강민혁이 앞으로 나섰다.
***
이번 발표.
강필두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 소스는 모두 강민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강민혁은 애초에 완벽한 이론을 말해주지 않았다. 5초 정도 형태 변화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발견이기 때문에, 강필두에게 말해준 것은 정말 일부의 지식이었다. 108가지 1서클 마법에서 나온 내용처럼, 형태 변화를 매우 변칙적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마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존 웨슬리의 모습에, 강민혁이 나섰다.
‘미완성의 이론만으로는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건가.’
이번 대회.
강민혁은 출전에 의의를 두지 않았다.
반드시 수상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 만큼,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키고 싶었다.
“직접 설명하겠다고요?”
“예.”
존 웨슬리의 눈빛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누가 봐도 조수의 역할로 보이는 강민혁이 나서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연구 책임자는 강필두다.
그런데 책임자조차 대답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수가 무슨 설명을 한단 말인가.
웃긴 것은 강필두가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강민혁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 같은 모습에, 존 웨슬리의 눈빛이 변했다.
‘이것 봐라.’
흥미가 돌았다.
이런 상황이 되니, 설명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설명해보시죠.”
판이 깔렸다.
수많은 시선들이 강민혁에게 향했지만, 강민혁은 전혀 떨지 않았다.
다수의 관심.
그건, 수호문의 독자였던 강민혁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형태 변화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아직 연구 중에 있습니다. 실험을 충분히 진행하지 못한 상태라서 이번 발표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저희는 이미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둔 상태입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을 캐스팅하는 과정을 역순으로 진행하는 겁니다.”
“역순으로요?”
“예. 현재 개발된 마법들은 모두 각자의 원소를 가지고 있고, 처음에 원소를 부여하는 것에서부터 마법의 캐스팅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원소가 바로 마나 폭발의 원인입니다. 순수한 마나가 인위적으로 특정 원소를 받아들임으로써 폭발력이 생기고, 우리 마법사들은 이 폭발력을 이용해서 몬스터를 처리합니다. 그런데 만약 원소를 생성하는 과정을 맨 뒤로 배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확히는 역순이 아니라 원소 생성만 뒤에 배치하는 것이지만, 이 간단한 변화가 형태 변화의 불안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들은 많은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민혁이 말하는 바를 바로 머릿속에 떠올렸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계산했다.
나쁘지 않았다.
만약 오차가 생긴다 할지라도, 마법은 곧바로 폭발하지 않을 것이다.
“곧바로 폭발하는 것과 조금의 여유가 있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원소를 제일 마지막에 생성함으로써 마나에 적은 자극을 부여한다면, 마나를 안정화시키는 체계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처음과는 다르게 큰 위험부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안전망을 가지고도 실수를 저지를 마법사라면, 사실 전투에 큰 쓸모가 없는 새가슴일 테니까요.”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었다.
심사위원들도 모두 납득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상황에, 강필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발표를 망칠뻔했다.
물론 존 웨슬리의 반응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완벽한 발표를 바랐다.
그런데.
“강민혁 학생.”
존 웨슬리는 아직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한 마음을 표정에 드러내면서, 마음 깊숙이부터 올라오는 궁금증을 말했다.
“설마 그 안전망을 본인이 생각하신 겁니까?”
강필두의 반응.
강민혁의 자신감.
종합적으로 상황을 따져보았을 때, 존 웨슬리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