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6화 (16/197)

16화.  4. 마법 학술 대회(3)

시작은 프랑스 마법 협회였다.

회색의 머리를 멋스럽게 넘긴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프랑스 마법 협회라니.”

“알랭 코르노(Alain Corneau)가 발표할 모양인데?”

“와, 이번에 작정을 했나 보네.”

프랑스 마법 협회.

현재 미국, 영국과 더불어 세계 마법 연합의 중심이라 불리는 단체.

알랭 코르노는 그런 프랑스 마법 협회를 대표하는 5서클 대마법사다. 이미 마법 학술 대회에 여러 번 참여했으며, 그때마다 성공적인 결과물로 마법사들의 찬사를 받았다.

알랭 코르노가 말했다.

“오랜만에 이 무대에 다시 서게 되었네요. 저는 프랑스 마법 협회의 소속인 알랭 코르노라고 합니다. 사실 5년 전에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한 이후, 그간 새로운 마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마법 학계는 정체기를 맞이했습니다. 3년 전에 발표되었던 썬더 캐논 이후에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고, 6서클 마법의 단서는커녕 새로운 5서클 마법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얘기가 진행될수록, 소음이 잦아들며 알랭 코르노의 목소리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6서클 마법의 단서가 없다면, 기존에 발견한 5서클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연구는 결국 하나의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공개하겠습니다. 6번째 5서클 마법이자, 다른 마법들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새로운 형태의 마법! 그 이름은 바로 앨리먼트 필드(element field)입니다.”

“와.”

“새로운 5서클 마법이라고?”

알랭 코르노 뒤에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한 마법사가 캐스팅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앨리먼트 필드라는 시동어를 외치자 주변이 붉게 변했다.

“앨리먼트 필드는 일정 범위 안에서 원소 마법의 파괴력을 높이는 마법입니다. 영상에서는 화염 마법의 증폭 효과를 적용하였고, 그 결과는·········.”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영상에서 엄청난 불길이 타올랐다.

그것은 파이어 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1.5배는 더 커 보이는 형태였다.

위력은 대박이었다.

엄청난 폭발력에,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저게 파이어 볼이라고?”

“이건 혁명이야!”

크기만큼이나 파이어 볼의 위력은 확실히 강해졌다. 그것이 2서클 마법이 3서클 마법의 위력을 넘어설 정도로 극적인 효과는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버프 효과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주변에 사용되는 특정 원소의 공격력을 상승시킨다면, 마법의 효율은 더욱 상승한다.

대강당이 발칵 뒤집혔다.

시끄럽게 퍼져나가는 웅성거림에, 알랭 코르노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앨리먼트 필드의 범위는 넓지 않습니다. 약 10명 정도의 마법사를 범위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5서클 마법사가 포함된 파티가 50의 효율을 냈다면, 앨리먼트 필드를 익힌 5서클 마법사 한 명으로 인해 100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실험 결과 버프 효과로도 A급 몬스터에게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번 발견이 마의 벽을 넘어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법 강화.

그건 마법사들이 갈구하는 주제다.

고로.

“·········이상입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찬사를 보냈다.

짝짝짝!

“대박이다!”

“역시 프랑스 마법 학회야!”

“이번 학술 대회는 너희들이 우승이야! 이걸 넘어설 수 있는 연구는 최근 10년간 하나도 없었어!”

난리가 난 대강당.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알랭 코르노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

시작부터 임팩트가 너무 강했다.

다음 차례들도 제법 괜찮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앨리먼트 필드에 대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이대로 알랭 코르노가 우승하려나.”

“무조건이지. 최근 10년간 이것보다 대단했던 결과물은 없었잖아.”

점점 결과가 굳어지고 있을 즈음, 마침내 마법 학과의 차례가 되었다.

“다음 차례는 한국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의 소속인 이미혜 교수와 김무열 학생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호명되는 이름.

이미혜 교수 뒤에 서 있던 김무열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너무 떨려.’

쿵쿵.

심장이 뛰었다.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길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넘쳤던 김무열이지만, 앞선 차례들의 발표를 보고서 기가 확 죽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알랭 코르노. 좌중을 압도하며 ‘앨리먼트 필드’의 연구를 발표하는 그의 모습에, 김무열은 이곳이 왜 마법사들의 축제이자 미래라고 불리는지 알았다.

그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서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지고 말았고, 김무열은 최대한 떨림을 가라앉히며 이미혜 교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가 발표할 주제는 3서클 마법 윈드 붐과 4서클 마법 인페르노의 융합입니다. 아시다시피 바람 마법과 화염 마법의 조합은, 원소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조합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두 마법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살린 윈드 인페르노(wind inferno)의 개발에 들어갔고, 마나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발표는 이미혜 교수가 맡았다.

김무열의 포지션은 조수일 뿐이다.

이미혜의 발표가 진행될수록 김무열의 표정은 안정을 되찾았고, 점점 수상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다.

‘우리는 무조건 수상할 수 있어.’

윈드 인페르노.

마법의 위력은 5서클에 버금가는 수준.

융합 마법은 서클 분류에서 논외로 치지만, 마법의 파괴력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긴장되었지만, 지금은 발표가 끝났을 때 사람들이 보일 찬사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실제로 관중들이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고, 분위기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어라?’

마법의 체계를 설명할 때부터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영국 마법 협회의 대마법사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가 끝나자마자, 존 웨슬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혹시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예, 말씀하세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영국 마법 협회에서 이와 똑같은 연구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람 마법과 화염 마법의 융합은 누구나 파괴력을 기대할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에, 방금 발표한 마법의 형태와 동일한 체계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윈드 인페르노’를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왜인 줄 아십니까?”

“·········.”

이미혜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건 김무열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발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무려 8년 전에 개발되었던 것이라니.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 답변을 미루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존 웨슬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식을 완성하고, 마법 실험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백 번 정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윈드 인페르노는 단 한 번의 문제도·········.”

쾅!

존 웨슬리가 책상을 내리쳤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은, 그의 분노를 비추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마법은 매우 위험한 학문입니다. 조금이라도 형태가 벗어나면, 언제 마나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죠. 그런데 겨우 백번의 실험을 해놓고서, 대단한 결과물인 것마냥 발표할 생각을 하다니. 저희는 8년 전에 무려 만 번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도는 모두 성공하였지만, 딱 한 번. 마지막 실험에서 윈드 인페르노는 마나의 불안정으로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이미혜와 김무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제야 문제점을 알았다.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한 적이 있는 마법의 체계는, 대단한 결과물이 아니라 위험한 폭발물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신 모양이군요. 마법 연구는 단 하나의 완벽한 답을 찾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작업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마법은 엄청난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당장 이 무대에서 내려가세요. 두 분은 지금, 이 대회장을 더럽히는 아주 멍청한 실수를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미혜와 김무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답할 말도, 대답할 지식도 없었으니까.

잔뜩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존 웨슬리는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병신 새끼들.”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는, 이 무대에 설 수 없도록 조치하기 위해서 말이다.

***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존 웨슬리 옆에 앉은 독일 마법 협회 소속 마르코 도슨(Marco Dawson)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아니, 대체 언제부터 마법 학술 대회가 아카데미 출신들의 놀이터가 됐습니까? 이래서 지원자들의 자격을 평가해서 입구에서부터 거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덜떨어진 녀석들. 겨우 백번의 실험에서 이상이 없었다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신나서 마법 학술 대회에 참석하다니.”

“옳습니다. 이 자리는 검증된 사람들만 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동조했다.

사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새로운 발명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격만 충족하면 된다는 원칙에, 못마땅하지만 마법 학과의 참여를 허락했다. 마법 학과 또한 ‘세계 마법 연합’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단체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3팀이나 참가시켰다는 사실에 불만이 상당했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첫 번째 타자인 이미혜의 팀이 제대로 일을 망쳤다.

험악해진 분위기.

다음 차례 또한 마법 학과라는 사실에, 한 심사위원이 말했다.

“그냥 마법 학과의 발표는 취소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발표가 대회의 격을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러시죠. 애초에 그들을 참가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마법 학술 대회는 학자들이 자신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인데, 겨우 학과생들을 데리고 진행한 연구가 이 대회와 어울릴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시죠. 강필두 교수와 강민혁 학생의 발표 주제가 바로 마법의 형태 변화랍니다. 겨우 1학년 학과생을 데리고, 이 위험한 연구를 성공시켰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불만이 팽배해졌다.

당장에라도 실격 처리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존 웨슬리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도 발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 이번 대회까지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마법 학과의 출신들이 앞선 차례와 비슷한 실수를 범한다면, 다음부터는 마법 학과에 한해서는 참가를 제한하겠습니다. 그 정도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심사위원들도 급이 있다.

영국 마법 협회 소속인 존 웨슬리의 말에, 불만을 제기하던 심사위원들이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하시죠.”

“일단 들어보기라도 합시다. 또 어떤 황당한 말을 할지.”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존 웨슬리는 일단 다음 차례에게 기회를 부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표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형태 변화는 매우 어려운 연구야. 성공할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회는 주어야겠지.’

팔짱을 꼈다.

못마땅하지만, 앞선 차례가 문제라고 해서 기껏 대회에 참석한 이들의 자격을 박탈할 수는 없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조금의 문제라도 있다면, 이번만큼은 잔인할 정도로 발표를 난도질할 것이다.

그런 그들의 적의 어린 시선에, 마침내 무대 위로 걸음을 옮기는 강필두와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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