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4. 마법 학술 대회(2)
수호문 내부의 납골당.
수천 명의 유골을 안치시킨 그곳에서, 강민혁이 한 여성의 사진이 걸린 납골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실 사진 속 여성과의 추억이 잘 기억나진 않았다. 어머니라고 불렀던 그녀는 강민혁이 아직 어렸을 시절에 죽음을 맞이했고, 그때부터 쭉 수호문의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강민혁으로서는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컸다.
8살부터 17살이 되기 전까지.
흐릿한 기억 속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목표 의식을 부여하는 수단이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창밖의 햇살이 노을로 물들어갈 즈음, 복도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네?”
밝은 목소리.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사내는, 정판수와 마찬가지로 수호문의 일급 제자인 하민성이었다.
강민혁이 대답하지 않자, 하민성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깽판 칠 이유가 있었냐? 사실 네가 고분고분하게만 나온다면, 수호문의 가신들도 딱히 너를 건드릴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매번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사건을 저지르고 다니니까, 가신들도 저 지랄을 떨지.”
강민혁이 떠나고.
축제 분위기였던 자리는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정판호는 강민혁을 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강덕철이 표정을 찌푸리자 자리는 금세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창술의 대가인 하동철의 아들 하민성의 걱정에,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민성아.”
“응.”
“내가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순간, 나로서는 확고하게 태도를 정할 필요성이 있었어. 후계 구도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후계자가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나는 엇나가야만 했어. 그게, 후계자의 의무를 포기한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이야. 만약 네 말대로 내가 조용히 있었다면, 또 그것대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의심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겠지”
“·········.”
강민혁이 하는 말.
하민성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사람들은 강민혁을 가문의 골칫거리라고 표현하지만, 강민혁은 가문을 위해 골칫거리가 되길 택했다.
마법 학과의 입학.
그것은 우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계획된 의도였다.
“하아.”
하민성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짜증이 났다.
만약 강민혁이 모두가 원하는 재능을 갖추었다면, 결코 이런 문제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항상 네 편이야. 옛날에도, 지금도. 그러니까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말해. 그게 정판수의 재수 없는 낯짝을 박살 내는 일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향이 있으니까.”
“말이라도 고맙네.”
“그나저나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건 어떻게 된 거야? 마법 학과 입학은 그냥 후계자의 자리를 완전히 내려놓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아니었어?”
“전에는 그랬지. 그런데 막상 배우다 보니까 마법이 내 적성에 맞더라고. 그래서 진심으로 해보려고.”
“·········정말이야?”
하민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심.
강민혁은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학술 대회 출전은 단순히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괜찮겠어? 내가 알기로는, 마법 학술 대회는 그래도 마법 학계에서 인정받은 실력자들만이 출전하는 자리라던데. 네가 무턱대고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마법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래도 한번 출전해보려고.”
“하긴.”
하민성이 웃었다.
사실 괜한 걱정이었다.
상대가 강민혁이라면, 나름 믿는 구석이 있을 터.
문득 예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대장이라면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겠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에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
마법 학술 대회 날이 밝았다.
이번 대회는 경기도에서 치러진다.
아침에 마법 학과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다 같이 마력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길에 옆에 앉은 김무열이 자꾸만 말을 걸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거야? 설마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 연구가 성공했을 리는 없잖아.”
김무열.
아직 졸업하지 못한 학과생에 불과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여러 마탑(魔塔)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실력자다.
그리고 2학년 때부터 이미혜 교수와 같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학과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마법 지식을 쌓았다. 그런 김무열으로서는 강민혁의 행보가 의문투성이였다. 겨우 1학년 학생이 신성한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문이었지만, 문제는 강민혁이 도전하는 형태 변화와 더블 캐스팅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마법 학계의 난제(難題).
그런데 강민혁이 포함된 조잡한 팀으로 대회에 참가한다고 하니, 김무열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
강민혁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마법 서적을 읽는 모습에, 김무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수호문의 독자라서 그런가. 싸가지가 없네.”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강민혁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지만, 비주류 학문을 익히는 김무열은 괜히 심술을 부렸다.
“너는 재미 삼아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것 같지만, 나는 마법 학술 대회에 사활을 걸었어.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가 뭔지 알아? 바로 윈드 붐(wind Bomb)과 인페르노(Inferno)의 융합이야. 3서클 마법과 4서클 마법의 융합으로, 우리는 5서클 마법의 위력을 내는 방법을 찾았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김무열은 그런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는 데 열을 올렸다.
“사실 마법을 개발하기까지 정말 어려웠어. 마법은 각자만의 체계가 있는데, 그게 서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융합시키는 것은 웬만한 마법사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작업이지. 그러나 난 달라. 이미혜 교수님과 2년 전부터 이번 연구에 매달렸고,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난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수상해서, 마법사로서 부와 명예를 얻을 거란 뜻이지.”
김무열이 히죽 웃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만약 이번 대회를 성공리에 마무리한다면, 학과생에 불과한 자신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때였다.
탁.
강민혁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김무열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응?”
“수호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 상대를 쓰러트릴 시간에, 검을 몇 번 더 휘둘러서 땀으로서 노력을 증명하라. 선배님의 망상을 계속 떠들 생각이라면, 결과를 낸 이후에 말씀해주십시오.”
김무열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강민혁은 시선을 돌리더니, 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듯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대화는 단절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 버스는 마법 학술 대회가 진행될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장소에 도착했다.
***
마법 학술 대회.
마법 학계의 축제라는 명성을 증명하듯, 전 세계 유명 마법 단체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프랑스 마법 협회다!”
“블러드 문(BloodMoon) 마탑에서도 나왔는데?”
“역시 마법 학술 대회답네. 알만한 마법 단체들에서 다 나왔어.”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대단한 단체들의 등장에, 김무열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사실 이 자리는 마법 아카데미에서 출전할 만한 자리는 아니다. 보통 한 나라를 대표하는 학회나 유명 마탑들이 출전하는데, 간혹 아카데미에서 출전하기도 한다. 그것도 정말 확실한 연구 성과를 얻은 한 팀 정도만 출전시키는데, 3팀을 출전시킨 최병호의 선택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김무열의 반응.
그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본인은 2년을 공들여 소중한 출전 기회를 얻었는데, 강민혁이 갑자기 나간다니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는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대회의 참가자들과 심사위원으로 초대된 유명한 명사(名士)들이 자리하자, 사회자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의 사회를 맡게 된 도날드 버틀러(Donald Butler)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기분이 상당히 좋네요.”
도날드 버틀러.
미국 마법 협회의 일원이며, 세계 마법 연합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이미 10년도 전에 5서클을 형성한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대마법사다.
그가 뿜어내는 강력한 전격 계열의 마법은, 강화 전사들조차도 그 위력을 인정한다고 들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처음 참가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법 학술 대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마법 학술 대회는 마법의 발전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마법은 상당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학문이니만큼, 서로의 학술을 공유하는 자리가 없다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구한 결과물을 공공재(公共財)로 발표하는 대가로, 전 세계 마법 단체들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수상작들.
그것은 심사위원의 평가에 따라, 합당한 가격이 책정된다.
3년 전에 미국 마법 협회에서 개발한 5서클 마법 썬더 캐논(Thunder Cannon)의 경우에는, 무려 85억을 대가로 받았다.
보상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수상자들에게는 B급 이상의 신분증을 지급합니다. B급의 신분증을 소유한 사람은 세계 마법 협회의 자료를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으며, 어느 나라든 귀빈의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A급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는 마탑을 이끌 자격이 부여됩니다. 아주 이례적이긴 하지만, 5서클 마법을 최초로 발견하셨던 벤 라이언스(Ben Lyons)님이 마법 학술 대회에서 A급 신분증을 받은 선례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보상들이 있다.
마법 학술 대회에서 증명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가치는 상승하고, 여러 단체에서 스카웃하려고 혈안이 된다. 마법사들에게는 그런 말이 있다. 마법은 지식의 학문이기 때문에, 대단한 대마법사를 보유하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학자가 있는 것이 그 단체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강필두의 말은 옳았다.
이곳은 수상만 한다면, 마법사에게 부와 명예가 부여되는 자리였다.
도날드 버틀러가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의 축제.
마법 학술 대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