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4화 (14/197)

14화.  4. 마법 학술 대회

이학범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더블 캐스팅의 원리를 알아냈다니.

강민혁이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심장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마법 학계의 혁명이야.’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이학범은 마법의 현실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다.

마법 또한 매력적인 학문인데, 사람들은 어째서 마법을 천대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이학범은 마법이 비주류 학문일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법은 한계가 정해져 있는 학문이야. 세상에 공개된 마법은 5서클이 한계고, A급 이상의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러니 마법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매년 줄어들 수밖에. 직업을 정할 때 해당 직업의 전망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차츰 마법을 외면하게 되었어. 강화라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마법을 택할 이유는 없는 거지.’

그렇다면 마법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딱 하나 있다.

원거리에서 많은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처음에는 마법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반짝인기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강화 인간은 체내의 마나를 뿜어내서 다수의 적을 공격하는 오라 웨이브(aura Wave)를 사용할 수 있어. 마법사가 낮은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마법사의 능력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 차선(次善)조차 되지 않는 선택지. 이대로 있다가는, 마법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장되어버릴 거야.’

그때부터였다.

이학범은 더블 캐스팅에 매달렸다.

동시에 두 가지의 마법을 사용하는 행위.

만약 더블 캐스팅의 대중화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낮은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로는 마법사들이 확고한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 강화 전사들이 아무리 강한 무력을 뿜어낸다 할지라도, 후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강력한 마법들은 활용 가치가 충분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학범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강민혁이 하는 말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정말이니? 더블 캐스팅을 실현시킬 방법을 알아냈다는 게?”

“예.”

“하아.”

숨을 크게 내뱉었다.

떨리는 마음에, 이렇게라도 진정시키지 않으면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더블 캐스팅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성공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던 학문이야. 그만큼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는 뜻이지. 만약 네가 말하는 이론이 정말 현실성이 있는 것이라면, 넌 마법의 선구자가 될 수 있어.”

이학범.

그는 진정한 학자였다.

더블 캐스팅 발견으로 인한 본인의 성공보다는, 마법의 발전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래서 강민혁은 이학범을 택했다.

강필두를 경험해본 결과, 이학범이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상에 가장 부합했다.

고지식하고, 깐깐하고, 가끔은 편견을 보이는 사람이지만, 마법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짜였다.

“일단 더블 캐스팅의 원리를 말씀드리기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이건 거래다.

강민혁은 자신에게 큰 가치가 없는 지식을 내어주는 대가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낼 것이다.

학술 대회는 그중 하나.

그리고 강민혁이 바라는 또 다른 목표는.

“이학범 교수님, 교수님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먼 미래.

그때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

***

마법 학술 대회를 열흘 정도 앞두었을 때, 마법 학과에서 공지문을 올렸다.

[제 82회차,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할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1조는 강필두 교수와 강민혁 학생, 2조는 이학범 교수와 강민혁 학생, 3조는 이미혜 교수와 김무열 학생이 출전할 예정입니다. 마법 학과의 이름을 빛내러 갈 그들을 위해, 학과생들은 진심으로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명단 발표.

그런데 이게,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강민혁이라고?”

“아니, 1학년생인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까지 나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학범 교수의 연구에 참여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교수와 커넥션이 있는 거 아냐?”

당연한 반응이었다.

3조인 이미혜 교수와 김무열의 경우에는, 김무열이 2학년일 때부터 같이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4학년 졸업반에 해당하는 김무열은 모두가 인정하는 마법 엘리트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마법 학술 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아니다.

겨우 1서클 밖에 되지 않은, 마법을 제대로 아는지도 의심되는 녀석이 학술 대회에 나가다니.

이건 확실히 부당했다.

마법 학술 대회가 어떤 무대인가.

마법의 길을 걷는 학생이라면, 평생 딱 한 번이라도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지 않은가.

만약 그곳에서 성적이라도 내는 날에는, 사실상 그 사람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결정이야.”

“그래, 강민혁이 출전할 수는 있어. 그의 마법 실력이 별로라고 해도, 연구원의 자격으로 출전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동시에 두 개의 주제로 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엄연히 규칙에 위반되는 행위야.”

“수호문의 장남이라고 특혜를 주는 모양이네. 사실 강민혁의 실력으로 연구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도 어이없는 일이잖아. 그래도 이학범 교수는 마법 학과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번 일은 실망이다.”

불만은 급속도로 퍼졌다.

학과생 대표가 정식으로 항의를 했고, 그들은 이번 문제가 금방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반발을 뿌리치고 이번 일을 진행할 만큼, 강민혁의 비중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병호 학과장입니다. 이번 마법 학술 대회 문제로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과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강민혁 학생이 출전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이학범 교수와 강필두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더블 캐스팅과 형태 변화에서, 강민혁 학생은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민혁 학생이 빠지면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 부득이하게 동시 출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진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불만 제기는 받지 않겠습니다.]

확고한 태도.

최병호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학과생들과의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강민혁을 무조건 출전시키겠다는 입장이었다.

“대체 그렇게까지 강민혁을 출전시킬 이유가 있나?”

“진짜 학과 이름에 먹칠을 하기만 해봐.”

학생들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대회 당일까지도 강민혁과 관련된 논란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한참 아카데미가 시끄러울 그 시각.

수호문에서는 경사가 있었다.

바로 일급 제자인 정판수가, 성동구에서 나타난 A급 몬스터를 혼자만의 힘으로 처리한 것이다.

A급 몬스터.

그들을 처리할 수 있느냐는 헌터의 능력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고, 이번 일로 정판수는 기사(騎士)의 작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을 충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호문의 가신이자 정판수의 아버지인 정판호는 잔치를 열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정판수가 구석에 앉아있는 강민혁의 얘기를 꺼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혁이가 이번에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한다면서요? 벌써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강민혁이, 마법 학과를 대표해서 무려 두 개의 종목으로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문이.”

“그게 정말이냐?”

정판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화 전사들은 대체로 마법을 우습게 보지만, 그래도 마법 학술 대회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마법의 꽃.

아무리 비주류 학문이라지만, 마법 학술 대회는 어중이떠중이가 참가할 수 있는 그런 대회가 아니다.

그런데 강민혁이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간다니.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민혁아, 판수의 말이 사실이냐?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간다는 것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억지로 자리에 참석했던 강민혁은, 갑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도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이런.”

정판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래도 한때는 검사를 꿈꾸었던 강민혁이, 그것도 수호문의 독자가 마법 대회에 나가는 게 못마땅했다.

“대체 왜? 네가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갈 이유가 없잖아. 네가 진정으로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가서 수상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라면 나 또한 응원해주겠지만, 넌 17살이 되기 전까지 마법은 쳐다도 보지 않았던 녀석이야. 설마 반항하는 거냐?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거에 대해?”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자리에 참석한 가신들은 힐끗 문주인 강덕철의 눈치를 살폈지만, 강덕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덤덤히 차를 마시는 강덕철.

그것을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인 정판호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네가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했다고 해서 네가 강씨 가문의 독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행보를 주목할 테고, 당연히 마법 학술 대회 출전 소식에 관심을 가지겠지. 그러니 괜히 어쭙잖게 도전할 생각이라면 당장 그만두거라. 네가 수호문의 독자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것까지는 넘어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호문의 이름을 먹칠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마법 학과에 입학했을 때도, 정판호를 필두로 가문의 가신들은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건 수호문의 치욕이라면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던 그 사람들이, 지금도 똑같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강민혁은 강덕철을 보았다.

자신은 쳐다도 보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상했던 결과야.’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하던 그 날.

강덕철의 호통에도 강민혁은 본인의 선택을 무르지 않았고, 그때부터 강민혁은 내놓은 자식이 되었다.

그나마 하는 역할이라고는 얼굴 마담 정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상황에서도, 강덕철은 아버지로서 보호해주지 않았다.

뭐, 상관은 없었다.

자신에게 기대를 품었던 어린 시절에도, 강덕철은 자상한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강민혁이 말했다.

“제 인생이니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뭐라고?”

“제가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은 건, 앞으로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 된 도리로서 가문의 경사가 있을 때는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저를 핍박하신다면 아예 집을 나가겠습니다. 제가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가든,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를 하든. 이건 제 문제지, 가문의 어르신들이 참견할 바가 아닙니다.”

“이 녀석이!”

정판호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당장에라도 식탁을 엎어버릴 것 같은 기세에, 강민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인 강덕철에게 간단한 목례도 하지 않은 것이, 부자의 사이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짜증 나.’

뒤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이면 마법 학술 대회구나.’

낙오한 후계자의 삶.

이건 이제, 강민혁으로서는 적응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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