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4)
사서의 말에, 강민혁은 단순한 의문이 들었다.
‘이 마법서들이 하급이라면 상급은 대체 뭐지?’
상급.
문자 그대로 더 높은 등급을 뜻할 텐데, 그렇다면 8서클 이상의 마법서를 상급이라고 하는 걸까?
“혹시 상급 마법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예.”
“나참,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왠지 절 놀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대답해드리죠. 마법서는 상중하(上中下)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제일 기본적인 하급 마법서의 경우에는, 캐스팅 속도와 위력이 매우 떨어지죠. 그러나 등급이 상승할수록 마법의 체계가 간단해지면서 캐스팅 속도가 빨라지고, 위력 또한 같은 마법이라 할지라도 차이가 심할 정도로 위력이 강해져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최상(最上)의 마법서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저와 같은 서민들은 평생 구경할 수도 없는 물건이겠죠.”
사서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의 설명 덕분에, 강민혁은 등급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게 다 하급 마법서란 말이지.’
책장을 둘러보았다.
현실 세계에서 보았던 마법서와 비교하기 위해서, 강민혁은 마법서 몇 개를 꺼내서 내용을 읽었다.
[3서클 마법]
[불속성]
[파이어 웨이브(Fire Wave)]
현실에서 있는 마법이다.
마법의 체계와 형태를 확인한 강민혁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게 하급이라고?”
하급.
사서는 분명히 하급이 제일 낮은 등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급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현실 세계에서 확인한 마법서보다 더 효율적이고 위력적인 체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등급을 매기자면 현실 세계의 마법서는 최하급(最下級) 정도. 최병호가 보물처럼 여기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두 마법서의 격차는 컸다.
‘설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클리스만을 통해서 익혔던 1서클 마법은 무엇이었을까.
강민혁은 곧바로 1서클 마법을 확인했다.
“내가 익힌 것과 달라.”
완전히 틀렸다.
하급 마법서의 점수가 10점 만점에 3점이라면, 자신이 익혔던 것은 거의 만점에 달하는 수준.
어쩌면 상급 이상의 마법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캐스팅 속도가 빨랐던 건가.’
사실 그간 의문이 있었다.
강민혁은 이제 막 마법에서 걸음마를 뗐다.
그런데 실전 수업 당시, 강민혁의 캐스팅 속도는 평균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빨랐다.
또한 마법의 위력도 강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히 ‘마나 폭발’의 위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원소를 생성하는 파이어 마법만으로 그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사서의 말처럼, 상급 마법서의 효과라고 생각한다면 실전 수업에서의 활약에서 의문이 남을 일은 없었다.
초심자조차 뛰어난 마법사로 만드는 상급 마법서의 위력.
클리스만의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들이 쌓아온 마법 문명은 엄청난 깊이를 자랑했다.
‘클리스만은 나를 단계별로 유도하고 있어.’
처음에는 더블 캐스팅.
두 번째는 108가지 1서클 마법.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에는, 이 세상의 배경과 마법의 기본을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탄생의 기원과 마법의 기본, 그리고 마법서 보관실이 눈에 보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차례대로.
마법 문외한인 자신을, 클리스만은 성장시키고 있었다.
‘일단은 2서클 마법을 확인해두자.’
6서클 이상의 마법들.
이 세상에서는 하급으로 분류되는 것이라지만,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엄청난 가치의 보물이다.
하지만 관심을 껐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언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민혁에게 필요한 것은 6서클 마법이 아니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2서클 마법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
여명이 밝아올 즈음.
강민혁은 눈을 떴다.
“돌아온 건가.”
담담했다.
나름 몇 차례 경험한 일이기에, 강민혁은 벌써부터 두 세계를 오가는 일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피로는 없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갔을 때 이쪽 세상의 몸은 숙면 상태일 텐데, 머리는 조금의 피곤함도 호소하지 않았다.
“수업 전까지 마법의 기본을 실험해보자.”
시간은 넉넉했다.
아직 아침 6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라, 3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강민혁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더니, 그 내용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시작했다.
[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의 마나를 느껴야 한다.]
마나.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강화 문명과 마법 문명을 발전시킨 새로운 에너지원.
강화 문명에서는 마나를 직접적으로 주입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마법 문명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책에 따르면, 보통 범인(凡人)들은 마법을 느끼기까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둔재라고 불리는 부류들은 그 기간이 무기한 연장이 되지만, 대략 평균을 따지면 그 정도가 걸린다.
기본.
마법의 첫걸음이라고 해서 마냥 쉬운 것이 아니었다.
강민혁은 첫술에 배부르길 바라지 않는다.
오늘부터 인내심을 가지고 마나에 적응한다면, 한 달 안에는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품었다.
그런데.
‘·········어?’
1시간 뒤.
강민혁은 묘한 감각을 느꼈다.
어떤 때는 따뜻하고, 어떤 때는 서늘하고.
책의 설명대로라면, 이건 분명히 마나였다.
‘벌써 마나를 느끼다니.’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서클을 형성하는 것은 마나를 느끼기까지가 오래 걸리는 것이지, 그 이후 단계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강민혁은 전신의 구멍으로 빨려들어 오는 마나를 심장으로 인도하였다. 강민혁의 심장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서클이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마나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사실 이미 서클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 마나를 받아들이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는 강민혁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확인해야만 하는 문제였고,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강민혁의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헉.’
쿠르르르.
서클이 요동쳤다.
약물을 주입해서 만들어낸 서클이 점점 허물어지더니, 자연의 마나가 새로운 형태의 서클을 형성했다.
더 단단하고, 더 순도 높은 서클.
처음 가부좌를 틀었을 때부터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강민혁의 심장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서클이 형성되었다.
확!
안광이 빛을 발했다.
강민혁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서클을 형성하다니.”
서클.
이로써 강민혁은 남들과는 다른 이점을 확보했다.
약물 주입이 아니더라도 양질의 마나를 확보할 수 있으며, 순도 높은 마나는 마나 동화에 유리하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법의 기본에서는, 분명히 서클 형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들은 보통 서클 형성에 하루의 시간이 걸린다. 8서클 이상의 대마법사들의 경우에는 무려 3시간 만에 서클을 형성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마법의 재능은 태생에서부터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마법 문명.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서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만이 서클 형성에 하루의 시간이 걸린다.
대마법사의 경우에는 3시간.
그런데 강민혁은 겨우 2시간 만에 서클을 완성시켰다.
“·········내가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건가?”
재능.
정말 원망스러웠던 그 단어가, 오늘만큼은 다르게 느껴지는 강민혁이었다.
***
강민혁의 일상은 바빴다.
학과 수업을 충실하게 들으면서 방과 후에는 연구에 참여했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얻었던 지식을 복습했다. 처음 마법 학과에 입학할 때와는 다르게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이었지만, 강민혁은 오히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특히.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상황에, 강민혁은 마법에 푹 빠지고 말았다.
검술과는 달랐다.
한때는 인생을 바쳤던 일이었지만,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의 한계 때문에 강민혁은 검을 버렸다.
그런데 마법은 달랐다.
서클을 2시간 만에 형성하였고, 며칠 뒤에는 마나 동화에도 성공했다. 1서클 마법의 활용법은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데다, 이번에 공부한 2서클 마법에 대한 지식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학범과 연구를 진행하는 도중, 강민혁이 말했다.
“교수님.”
“왜?”
“저희도 이번 마법 학술 대회에 참가하는 게 어떠십니까?”
멈칫.
이학범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법 학술 대회.
학자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이학범 또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너도 잘 알잖아. 현재 연구 상황으로는 마법 학술 대회까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거. 네 도움 덕분에 연구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지만, 조급한 마음에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이번에 강필두 교수와 마법 학술 대회에 출전하는 일로 마음이 걸리는 모양인데, 나는 괜찮아. 네가 정말 뛰어난 인재이기 때문에 다른 연구에도 참여하는 것이고, 사실 강필두 교수의 말대로 형태 변화는 한 달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잖아. 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이학범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로는 애써 강민혁을 다독이고 있지만, 학자의 욕심이라는 게 표정을 쉽게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출전하자는 겁니다.”
“뭐라고?”
“마법 학술 대회 전까지만 연구를 끝내면 되는 거지 않습니까?”
“말이야 쉽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더블 캐스팅 연구가 미제(謎題)라고 불리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지금 당장은 형태 변화 연구에만 집중해. 그것이 네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순간 이학범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눈이 커다래지면서,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설마?!”
강민혁이 웃었다.
이제 확신이 생겼다.
어느 정도의 선까지 지식을 공개할지, 그리고 그 지식들로 어떤 이득을 취할 것인지.
이번 마법 학술 대회는, 강민혁이 앞으로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아주 단단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예. 아무래도 제가 더블 캐스팅을 실현시킬 방법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교수님.”
설마 했던 생각.
이학범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