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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2화 (12/197)

12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3)

시야가 흐릿했다.

등은 딱딱한 벽 같은 것에 기대어져 있었고, 땅바닥에서는 스멀스멀 한기가 올라왔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적응의 시간을 가진 강민혁은, 시야가 돌아오자 찬찬히 주변의 모습을 확인했다.

‘·········여기는?’

익숙했다.

이 공간이 익숙하다기보다는, 공간의 형태 자체가 익히 경험했던 것이다.

‘도서관이구나.’

강민혁이 기대고 있었던 것은 책장이었고, 주변은 온통 수많은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으로 가득했다. 여전히 이 공간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번처럼 클리스만의 메시지가 있나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탄생의 기원]

수많은 책 중 하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강민혁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책을 확인했다.

사락.

[2000년 1월 1일. 새로운 밀레니엄(millennium) 시대가 열리던 그 날, 한국에 몬스터들이 나타나며 재앙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몬스터들에게 학살되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순식간에 멸망 당했다. 곧바로 북한, 러시아로 뻗어 나가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결국 다수 국가의 결정에 따라 핵공격이 지시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재앙을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핵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더욱 강력해졌고·················· 결국 인간들로서는 화기(火器) 말고도 몬스터에 대항할 힘이 필요했다. 그렇게 인간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 마법이 탄생했고, 사람들은 한국에서부터 러시아까지를 ‘몬스터 랜드’라고 명명함과 동시에 마법의 탄생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공표하였다. 마법력 0년 1월 1일, 마법 문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법력 0년 1월 1일이라고?”

순간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0년 1월 1일.

클리스만의 일기를 읽었을 때, 클리스만은 현재가 2030년도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이 사는 세상보다 시간이 조금 뒤처졌다고 생각했는데, 진실은 전혀 달랐다.

[인간은 2천 년의 역사 동안 마법을 발전시켰다. 마나의 힘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이능의 힘이 발현되었지만, 몬스터들을 완전히 토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수천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장벽(障壁)을 세워 몬스터 랜드와 인간들의 세상을 분리하였고, 인간들은 몬스터와의 공존을 택했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몬스터 게이트.’ 오랜 시간 동안 몬스터 랜드에만 머물던 몬스터들이, 차원의 균열을 타고 인간 세상에 직접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클리스만의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 동급생은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 설마 몬스터 랜드(Monster Land)를 말하는 건가? 한국은 아주 오래전에 멸망한 국가야. 네가 왜 한국에 대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땅덩어리는 모두 몬스터들의 땅으로 변했어. 그러니 잠꼬대는 그만하고 수업 준비나 하시지? 또 혼날라.”

아주 오래 전.

당시에는 그게 단순히 몇십 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클리스만의 고향이 왜 몬스터들에게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차원의 마법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몬스터들과 공존했던 세상이라면 당연히 새로운 형태의 공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슷한 시간대에 흐르는 평행세계라고 생각했지만, 이쪽의 세상은 현실보다 무려 2천 년의 역사가 더 많았다.

‘내가 사는 세상의 역사는 약 100년 정도.’

강화 문명도 시작은 같다.

밀레니엄 시대에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되었지만, 침공의 형태부터는 완전히 달랐다.

한국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몬스터가 등장하였고, 강화 문명은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을 이루었다. 수호문과 같은 문파들이 등장하면서 목숨을 대가로 각자의 영토를 지켜냈고, 몬스터들과 투쟁하는 세상은 겨우 100년 만에 빠르게 체계를 갖추었다.

강화 문명.

사실, 마법 문명에 비하면 그 역사가 정말 짧았다.

하지만 원래 문명이라는 것은 위기의 상황에 빠르게 꽃을 피우는 것처럼, 마법 문명도 강화 문명과 비슷한 역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천 년이라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강민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마법은 정말 어려운 학문이야. 그래서 수많은 연구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마법에 특화된 인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그들은 마법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무려 2천 년의 시간 동안 마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우리보다 고차원의 문명을 갖출 수 있었어.’

시간이 뒤죽박죽 얽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강민혁은 탄생의 기원을 다 읽었다.

그리고 뭐에 홀린 듯이, 바로 옆에 꽂혀있었던 ‘마법의 기본’이라는 책을 집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윽고 책장을 넘긴 강민혁은, 마법의 기본을 전부 읽고 나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법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구나.”

2천 년의 역사.

마법 문명의 사람들은,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

예전에 상당한 실력의 검사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마법사의 단점이요? 정말 많죠. 일단 캐스팅이 오래 걸리는 데다, 마법 한 번에 소모되는 마나량도 많아서 몇 번 사용할 수도 없어요. 그렇다고 마나를 쌓는 과정이 쉬운 것도 아니고, 더블 캐스팅은 소수의 천재들에게나 허락되는 특권이에요. 대체 마법을 배우는 녀석들은 무슨 정신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런 단점을 모두 감안해도, 오라 소드(aura sword)보다 센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팩트였다.

실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마법은 배울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마법의 기본에서는, 검사가 말했었던 단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마법 입문자에게 필요한 네 개의 기본 과정]

첫 번째는 서클 형성.

‘내가 사는 세상에서 마나의 그릇인 서클을 형성하려면, 특수한 약물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마나를 인체에 주입해야 해. 그런데 이 세상은 달라. 마나를 심장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명상을 통해서 순도 높은 마나를 심장에 축적할 수 있어. 고로 우리보다 많은 양의 마나를, 그것도 순도 높은 마나로 서클을 형성한다는 거지. 이럴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횟수도 많을뿐더러, 마나의 질적인 향상으로 인해 마법의 위력도 강해져.’

두 번째는 마나 동화.

‘캐스팅할 때 체내의 마나를 사용함과 동시에 자연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방식. 사실 마법에 소모되는 마나의 양은 현실에서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이야. 그런데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본인의 마나와 자연의 마나를 적절하게 섞어서 적은 양의 마나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세 번째는 더블 캐스팅이고, 네 번째는 108가지의 1서클 마법에서 비롯된 마법 활용이었다.

이게 기초 단계다.

강화 문명에서는 곧바로 학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지식인데, 마법 문명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2천 년의 역사 동안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실험을 거듭했다. 핵공격으로 인해 강력해진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이라는 인류의 희망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대단했다.

강민혁이 살던 세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마법에, 강민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현실로 돌아가면 이것들을 실험해보자. 만약 현실에서도 서클 형성과 마법 동화를 성공시킨다면, 내가 걱정했던 마법사로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어.’

시간이 제법 흘렀다.

탄생의 기원과 마법의 기본을 읽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강민혁은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이곳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마법서 보관소]

아까부터 눈에 밟히던 공간.

사서의 옆으로 쭉 길게 뻗어 나간 공간에, 강민혁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 공간은 문자 그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법서 보관.

책장에는 다양한 서클의 마법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마법을 확인한 강민혁의 눈이 커졌다.

“·········이게 대체.”

마법은 다양했다.

1서클부터 무려 7서클까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마법들이,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마냥 책장에 고이 꽂혀있었다.

‘7서클 마법이라니.’

최병호는 5서클 마법이 보관된 마법 도서관 최상부 출입이, 마치 엄청 대단한 것처럼 굴었었다.

그런데 그건 실제로 대단한 게 맞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서 마법은 종류가 몇 가지 없다. 특히 5서클의 경우에는 겨우 5개밖에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가 천금(千金)과도 같다. 그러니 최병호는 최상부 출입을 고민했던 것이고,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마법서들을 마법 학과가 보유한 대단한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5서클 마법도 수십 가지가 넘어가는 데다, 6서클과 7서클 마법 또한 넘쳐났다.

‘현재 인류가 개발한 마법은 5서클이 한계야. 6서클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서 전 세계 마법 학회가 많은 돈과 인적 자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과가 없다고 들었어.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대단한 마법들이 흔하게 널려 있다니. 2천 년의 마법 역사가 이룬 성과라 이건가.’

몸이 떨렸다.

강민혁은 일생을 검사(劍士)로 살았지만, 그래도 이 물건들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안다.

마법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그럴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도 마법서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할 수도 있기에, 강민혁은 사서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마법서들을 읽어도 괜찮을까요?”

“예?”

사서가 고개를 들었다.

20대 초중반의 남성으로 보이는 그는, 강민혁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하급(下級) 마법서들이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마법서들로 괜찮으시겠어요? 이곳은 일반 시민들도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 매우 기본적인 마법서들 밖에 없거든요. 행색을 보아하니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인 것 같은데, 그럼 상급(上級)의 마법서를 무료 열람할 수 있지 않아요?”

하급.

사서는, 강민혁이 보물처럼 여기던 것을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마법서라고 표현했다.

강민혁은 약 보름간 마법 도서관 최상부에서 살다시피 하였고, 그곳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고로, 다시금 깨달았다.

‘·········두 세계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구나.’

현실에서 이룬 성과.

그건 정말, 이 세상에서는 티끌만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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