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1화 (11/197)

11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2)

이학범은 연구를 진행하며 알았다.

수호문의 독자인 강민혁이, 사실은 마법의 천재라는 사실을.

‘내가 더블 캐스팅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도 벌써 2년.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연구가, 강민혁이 합류하자마자 급속도로 물살을 타고 있어. 처음에는 강민혁의 조언이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이 내게 옳은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연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때는, 모두 강민혁의 조언으로부터 비롯되었어.’

강민혁이 ‘우리 혁이’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수호문의 독자면서 마법 학과를 우습게 보는 건방진 녀석이었다면, 지금은 강민혁이 너무나도 예쁘게만 보였다. 수호문에서 마법을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변의 압박에도 끝까지 마법을 공부했을 강민혁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번 연구와는 별개로, 강민혁을 물심양면 도와주겠다고.

이대로 썩히기엔 강민혁의 재능은 특별했고, 강민혁의 스토리가 고지식한 이학범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강민혁을 빼가겠다니.

그것은 이학범을 분노케 하는, 아주 예민한 발언이었다.

“혁이는 더블 캐스팅 연구에 아주아주 중요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혁이를 강필두 교수의 연구에 합류시키겠다니요. 마법 학과에는 규칙과 예의가 있습니다. 학과 규칙으로 엄연히 학과생은 하나의 연구에만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먼저 연구를 진행하는 제가 있는 이상 강필두 교수는 제 연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고로, 학과장님의 요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학범 교수!”

최병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학범이 고지식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대쪽같은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때, 강필두가 말했다.

“교수님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더블 캐스팅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연구이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 형태 변화는 강민혁이 명확한 성과를 보여준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러니 딱 한 달, 한 달만 양보해주시면 강민혁을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윈윈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상당히 타당한 논리였으나, 이학범의 생각은 달랐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연구라니요! 혁이가 합류한 이후로 연구는 빠르게 성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혁이를 데려가는 한 달 동안 더블 캐스팅 연구는 정체될 텐데, 그런 부탁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혁이는 더블 캐스팅 연구의 핵심입니다. 제가 그간 연구에 바친 2년보다도, 혁이가 도와준 지난 보름의 시간이 더 가치가 있을 정도로 혁이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

단호했다.

이학범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최병호와 강필두는 당황해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학범이라는 사람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한번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없다.

‘대체 강민혁이 무슨 짓을 한 거야?’

최병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민혁.

분명히 마법 학과에 입학하지도 못할 스펙의 보유자가, 어떻게 연구의 핵심 자원이 되었단 말인가.

형태 변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블 캐스팅은 형태 변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가치 있는 연구다. 그런데 그러한 연구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니. 그간의 상식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상황에, 결국 최병호로서는 선택지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강민혁 학생을 불러서 결정하게 합시다. 본인이 어떤 연구를 진행하길 바라는지 말입니다.”

특단의 대책.

이학범이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지만, 최병호는 그것을 무시하고 강민혁을 불러들였다.

***

강민혁이 자리에 앉자마자 교수들의 유혹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이학범.

“혁아. 너는 이미 더블 캐스팅 연구의 일원이야. 우리가 했었던 대화를 기억하지? 나는 너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에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이 예의범절도 없는 인간이 하는 제안은 승낙하지 마라. 우리는 이미 더블 캐스팅 연구의 파트너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지금 네가 떠나면 연구는 중단될 확률이 높아.”

구구절절했다.

동시에 경쟁자를 깎아내리는 발언에, 강필두의 눈썹이 홱 올라갔다.

“예의범절도 없는 인간이라니요. 이건 학자로서 당연한 제안입니다. 강민혁 학생. 앞으로 한 달 뒤에 전 세계 마법사를 대상으로 마법 학술 대회가 열려. 더블 캐스팅 연구는 당장 성과를 거둘 수 없겠지만, 우리는 마법의 형태 변화만 증명하면 마법 학술 대회에서 충분히 우승을 넘볼 수 있어. 마법 학술 대회가 어떤 자리인지는 알지? 예전에 노벨상(Nobel Prize)이 있었다면, 마법 학계에서는 바로 마법 학술 대회가 있어. 그만큼 권위 있는 자리라는 뜻이지. 만약 네가 이 대회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너는 마법사로서 상당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어. 내가 장담하지.”

마법 학술 대회.

매력적인 단어였다.

마법이 비주류 학문으로 취급을 받는다지만, 그래도 마법 학술 대회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자리다.

그걸 알기 때문일까.

이학범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사람이 진짜!”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이학범 교수님도 제 입장이었다면, 이럴 수밖에 없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강민혁은 가만히 얘기를 들었다.

아직 뜨거운 열기가 모락모락 일어나는 차를 음미하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할까.’

강민혁이 이학범 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현실에서는 마법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학범 교수의 배경을 빌려서 성장하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연구 성과를 발표할 때 이학범의 이름값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 연구 바닥이라는 것이 그렇다. 아직 17살의 학과생이 하는 발언은 힘이 실릴 수 없기에, 중간에 연구 성과를 가로채기 당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학범의 이름값을 이용했다.

이학범의 공동 연구자 강민혁.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강민혁을 달리 보게 될 테고, 이후에 발표하는 성과는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

‘원래는 석 달 뒤에나 발표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꼈다.

더블 캐스팅이나 형태 변화.

이것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두 지식의 가치가 절정에 달한 지금, 최대한 활용해서 현실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고 싶었다.

강민혁의 아버지가 그랬었다.

수호문을 거대 문파로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무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의 힘이 컸다.

강민혁이 말했다.

“두 교수님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한 달 뒤에 저는 강필두 교수님과 학술 대회에 참여할 것이고, 그동안 두 연구에 모두 공평하게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만약 이게 싫으시거나, 학과생이 하나의 연구에만 참여할 수 있다는 규칙을 운운할 생각이면 그냥 연구에서 빠지겠습니다.”

“아, 아니.”

“·········크흠.”

두 교수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하나에 집중해서 성과를 보였으면 하는데, 강민혁의 입장이 확고해서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강민혁을 놓치긴 싫었다.

그만큼, 강민혁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학과장님.”

“그래.”

“사실 제가 학과생으로서 연구에서 성과를 내면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학과장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대가로 제게 ‘마법 도서관 최상부 출입증’을 지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입니다.”

“·········?!”

마법 도서관.

아래층은 모든 학과생들이 출입할 수 있지만, 최상부는 다르다.

마법 학과가 보유한 모든 마법서들.

그게 최상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최병호로서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입을 달싹였다.

망설이는 그의 모습에, 양쪽에서 교수들의 시선이 꽂혔다.

‘어서 승낙하세요!’

‘연구만 성공하면, 그게 대숩니까?’

이글거리는 눈빛.

그들의 압박에, 결국 최병호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연구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사실 강민혁에게 무엇을 주든 간에 최병호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알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거래 성사.

결국 세 사람의 야망으로 인해, 강민혁이 제일 큰 이득을 얻으면서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제안에 생각한 것이 있다.

‘몬스터의 토벌은 혼자만 강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결국, 나도 세력을 형성해야만 해.’

강화 문명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해진 사람들이 몬스터를 완전히 토벌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수많은 전투 끝에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기에, 사람들은 공존을 택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에 참여했다.

강민혁은, 연구 발표가 마법의 선구자(先驅者)가 되는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고차원의 마법 문명을 얻은 것은 엄청난 특권이야. 일단 선점한 지식으로 내가 먼저 성장한 이후에, 차례로 마법 지식을 발표한다면 나는 마법사로서 상당한 위치에 오를 수 있어. 그게 바로 시작이야. 내 세력을 이루는 것. 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힘이 필요해.’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호문의 선조가 맨주먹으로 수호문을 세운 것처럼, 강민혁도 자신만의 세력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연구 합류를 대가로 마법 도서관 최상부에 출입한 강민혁은, 매일 방과 후에 들려서 마법서를 살폈다.

‘클리스만의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지식이 필요해. 그래야 비교를 할 수 있어.’

마법 도서관 최상부.

그곳에는 현재 발견된 모든 마법서들이 있다.

1서클부터 5서클까지.

5서클의 경우에는 상당한 값어치를 자랑하지만, 최병호는 기꺼이 강민혁의 최상부 출입을 허락했다.

강민혁은 마법들을 살폈다.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수준이 얼마인지, 그리고 마법은 어디까지 개발했는지.

이것들을 모두 알고 나면, 클리스만의 세상을 경험했을 때 두 세계의 격차가 얼만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세상에 공개할 지식의 선을 정할 수 있어.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내가 그 세력을 강하게 움켜쥘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항상 공개되는 지식은 많은 사람들이 그 지식을 알게 되더라도, 내게 아무런 영향이 없을 때나 공개할 거야.’

강민혁은 성인(聖人)이 아니다.

자신이 얻은 특권을 아무런 생각 없이 퍼줄 만큼, 강민혁은 그간 호락호락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

항상 7할의 힘을 숨긴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강민혁은 철저하게 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보름 뒤.

“·········드디어 한달이 지났나.”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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