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3. 알고 보니 마법 천재?!
마법 학과에서 2학년 심화 과정을 맡고 있는 강필두 교수는, 학생들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1반 실전 수업 소문 들었어? 강민혁이 하드 캐리했다던데.”
“그게 말이 되나? 강민혁은 1서클 마법사잖아. 1반 애들 말로는 1서클 마법을 기가 막히게 활용해서 고블린의 발을 묶었다는데,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 특히 마지막에 파이어 마법으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는 건, 그냥 소문이 와전된 것 같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
“하긴 그렇겠지?”
강민혁의 활약상은 빠르게 퍼졌다.
문제는 강민혁에 대한 인식 때문에 소문이 와전되었고, 그 소문이 강필두 교수의 귀까지 들어왔다.
‘파이어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고?’
파이어.
1서클 기본 원소 마법.
단순히 화(火) 속성의 마나를 생성하는 아주 기본적인 마법으로, 사실상 공격 용도의 마법이 아니다. 그래서 보통 파이어를 사용하는 상황은 장작에 불을 붙일 때나, 아니면 어두운 공간에서 적은 마나로 주변을 밝힐 때다. 솔직히 후자의 상황은 웬만해서 빛 속성의 라이트(light) 마법을 사용하다 보니, 전자의 상황이 아니라면 파이어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파이어로 폭발을 일으켰다니.
이건 상식을 파괴하는, 교수의 지식으로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침 강필두가 가르치는 심화 과정이 이와 관련된 영역이다 보니, 그는 백동석 교수를 찾아갔다.
“백동석 교수님.”
“예, 무슨 일이시죠.”
“이번에 1반 실전 수업에서, 강민혁이 파이어 마법으로 폭발을 일으켰다면서요? 그게 사실이에요?”
“아, 그거요?”
백동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시원하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사실 이번 일은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파이어 마법을 사용한 건 맞는데, 어떤 원리로 그런 폭발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어요. 아, 강필두 교수님이라면 잘 아시겠네요. 당시 수업을 촬영한 영상이 있는데, 한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예.”
실전 수업에서 현장 촬영은 필수다.
사고가 벌어질 경우 해명이 필요하기에, 백동석은 항상 수업의 영상을 촬영해두었다.
이윽고 영상이 재생되었다.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당시의 상황에, 강필두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오호.’
제법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5조가 위험에 빠졌는데, 순간적으로 1서클 마법을 활용하는 강민혁의 능력은 상당히 대단했다.
‘2학년에도 이 정도의 능력자는 거의 없는데.’
강민혁이 달리 보였다.
처음 그가 입학할 당시에, 유소년 아카데미도 이수하지 않은 수호문의 낙오자가 부당한 방법으로 마법 학과에 입학한다고 논란이 많았었다. 아무리 마법 학과가 비주류 학문이라지만, 마법에 ‘마’자도 모르는 사람을 입학시키는 것은 학과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영상 속의 강민혁은 완벽한 마법사였다.
마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어떤 학생보다 마법사다운 훌륭한 전투 능력을 보여주었다.
영상은 어느새 끝을 향했다.
고블린의 공격을 피해서 파이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에, 강필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순간 눈을 의심했다.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은 파이어가 맞다.
처음에 불길이 일렁이는 모습이 정확히 일치했지만, 이후에 마법의 형태가 알던 것과 전혀 달랐다.
붉은 구슬의 형태.
이것은 분명히.
“설마 마법의 형태 변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급히 영상을 다시 뒤로 돌려보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이건 마법의 형태 변화가 분명했다.
백동석이 말했다.
“예, 제 생각에도 마법의 형태 변화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가, 강필두 교수님?”
강필두는 백동석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흥분으로 잔뜩 달아오른 강필두의 얼굴은, 지금 백동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1학년 1반이라고 했지.’
강민혁.
당장 그를 만나야만 했다.
***
강민혁을 찾아간 강필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형태 변화를 한 마법이 곧바로 터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거지?”
형태 변화.
그것은 마법사들이 그간 도전하지 않았던 과제가 아니다.
캐스팅이라는 것은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마나를, 일정한 체계에 따라 마법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필요한 마나의 양과 체계에 따라 마법의 종류와 위력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렇게 발명한 마법을 선구자(先驅者)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서클을 정하고 마법의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 중에 하나.
형태를 정하는 체계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길을 따라 마나를 움직였을 경우 폭발을 일으킨다.
연구자들이 애를 먹었던 부분이다.
다양한 형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형태 변화에 도전해야 하는데, 불안정한 마나 때문에 곧바로 폭발을 일으키면서 많은 마법사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마법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5서클을 통틀어 채 50개도 되지 않는 수준이고, 그렇게 발명한 마법들의 경우에도 몇몇 선구자들의 희생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민혁은 파이어로 형태 변화를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강민혁이 사용한 형태 변화의 경우에는 3초 이상 구슬의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 안전한 형태 변화.
비록 파이어는 1서클 마법에 불과하지만, 강민혁은 파이어의 새로운 형태 변화 방법을 찾아냈다.
“형태 변화요?”
“그래. 네가 고블린을 처리한 방법을 우리는 ‘형태 변화’라고 불러. 모든 마법들은 각자의 마법 형태가 있는데, 보통은 그 형태를 벗어날 경우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지. 그런데 네가 사용한 형태 변화는, 그래도 3초 이상 형태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
강필두의 얼굴은 잔뜩 달아올랐다.
학자로서, 강민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너무나도 흥분이 되었다.
‘형태 변화라.’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것이 형태 변화라는 사실을.
하지만 강필두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로, 그것이 이 세상에서 대단한 지식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형태를 변화시키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어. 내가 사용하는 형태 변화는 그중에 하나고, 형태 변화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야. 안정적으로 파이어의 새로운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불안정하게 자극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새로운 활용법이지.’
이것을 그쪽 세상에서는 ‘마나 폭발’이라고 한다.
108가지의 1서클 마법에서 나온 하나의 활용법이고, 이것 말고도 여러 활용법들이 있었다.
약 3초.
그 정도의 시간 동안 파이어를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필두는 잔뜩 흥분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라고 해야할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줄줄이 설명할 수 없었기에, 결국 강민혁은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그냥 교과서에 나온 내용대로 했어요.”
“·········뭐라고?”
“얼마 전에 형태 변화와 관련된 교과서를 읽었어요. 마법의 형태를 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체계를 입력하면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데, 저는 이 상태가 오히려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완전히 안정적으로 만들 방법은 생각나지 않아서, 실험 끝에 3초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다예요.”
교과서.
만능의 답에, 강필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이야? 교과서에서 배운 것만으로, 네가 파이어의 새로운 형태 체계를 찾아냈다는 것이?”
“예.”
당돌한 대답.
뻔뻔함을 두른 강민혁의 표정에, 강필두가 경악했다.
“너 천재구나?!”
천재.
그 단어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
그날 오후, 강필두는 곧바로 마법 학과 학과장인 최병호를 찾아갔다.
“··················그러니까, 강민혁의 천재성이라면 ‘형태 변화’의 연구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 강민혁의 재능은 진짜입니다. 겨우 교과서에 적힌 형태 변화의 이론만을 가지고, 직접 파이어의 형태 변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학과장님. 이는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강민혁의 재능을 잘만 살려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전 세계 마법 학회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될 겁니다.”
“허어.”
최병호의 표정에 불신이 떠올랐다.
강민혁.
잘 알고 있는 학생이다.
애초에 마법 학과에 입학하기에는 자격 미달인 학생. 만약 수호문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학과장의 재량으로 떨어트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녀석이었는데, 그런 강민혁이 형태 변화를 성공시켰다니.
선뜻 믿기지 않았다.
이건,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이었다.
‘만약 강필두 교수의 말대로 우리 학과생이 형태 변화를 증명해낸다면·········.’
대박이다.
세상이 마법 학과를 주목할 것이고, 학과장인 자신의 위상 또한 덩달아 상승할 것이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마법 학과는 항상 찬밥 대우야. 검술 학과의 교수들은, 학과장인 나를 보고도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지. 하지만 이번 일로 마법 학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물을 제시한다면, 아카데미 내에서의 평판도 달라질 터. 이건 매우 좋은 기회야.’
최병호.
그는 야심가다.
항상 높은 자리를 바라지만, 마법이 비주류 학문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까이고 다니기 일쑤였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성공한다는 전제면, 얼마를 투자해도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성공할 자신은 있는 거지?”
“예. 정 믿기지 않으시다면, 지금 당장 백동석 교수를 불러서 실전 수업 영상을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강민혁은 파이어의 형태 변화를 성공시켰습니다. 단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만, 모두 추측으로만 말하던 이론이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원을 해줘야지. 하지만 문제가 있어.”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뒤늦게 생각났다.
최병호에게, 예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강민혁은 이미 이학범 교수의 ‘더블 캐스팅’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 그리고 원칙적으로 두 가지의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그러니 강민혁을 ‘형태 변화’ 연구에 참여시킬 생각이라면, 이학범 교수의 동의가 필요해.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당장 이학범 교수를 부르시죠. 더블 캐스팅이야 사실상 실현 가망이 없는 이론이지만, 형태 변화는 당장 한 달 안에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습니까? 이학범 교수가 아무리 꽉 막힌 학자 스타일의 사람이라지만, 알아 듣게 잘 말한다면 청을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최병호가 씨익, 웃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강필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1시간 뒤.
“거절하겠습니다. ‘우리 혁이’를 데려가겠다니요. 그건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이학범.
이건 논의할 가치도 없었다.
지난 보름의 시간.
강민혁은 이미, 그에게 평범한 학생 이상의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