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2. 클리스만의 일기(5)
캬악!
고블린의 괴성.
위험하다고 외치는 김창수의 목소리.
그리고 또 다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사고에, 웅성거리기 시작한 사람들.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음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민혁은 차분하게 고블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보인다.’
고블린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몇 초 뒤에 자신을 덮칠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의 모양만으로, 강민혁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게 무조건 옳은 답은 아니다. 하지만 강민혁이 경험한 바로는, 그 상상은 오차 범위가 크지 않다.
강민혁의 어린 시절.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강민혁은 옥타곤 케이지 같은 곳에서 몬스터와 1대1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절대 어린아이의 싸움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혈전(血戰)이었다. 당시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던 강민혁으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피가 튀는 싸움을 케이지 밖에서 수많은 어른들이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현재.
겁에 질린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강민혁에게 고블린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짙은 피내음.
익숙한 향기에 오히려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고, 강민혁은 찰나의 순간에 상대의 움직임을 읽었다.
‘오른쪽.’
훅!
고블린의 손톱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주변에서 위험한 광경에 비명을 질러댔지만, 강민혁은 끝까지 고블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곧바로 이빨을 들이미는 고블린의 머리를 왼손으로 막더니, 오른팔을 쭉 뻗어 마나를 활성화시켰다.
“파이어(fire).”
화르륵!
1서클 원소 마법.
단순히 원소를 생성하기만 하는, 위력은 매우 떨어지는 기초 중에 기초.
하지만 강민혁이 생성한 파이어는 조금 달랐다.
[마법은 형태와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을 보인다. 108가지의 1서클 마법은 그로부터 비롯된 이론이다. 단순히 돌멩이를 소환하는 마법이라도, 바위의 크기로 허공에서 소환하면 아래에 있는 몬스터는 중력으로 인해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한 것처럼········· 파이어의 사용법은 다양하다. 특히 불의 원소는 모든 원소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속성인데, 형태의 변형만으로 파이어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의 압축. 마법은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는데, 파이어의 체계와는 다르게 형성된 마나는 불안정한 형태에 폭발을 일으킨다. 이러한 방법을 잘만 이용한다면 적은 마나로도 높은 화력을 낼 수 있다.]
형태의 변형.
교과서에 나온 내용대로, 마법의 체계를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정석은 횃불처럼 불길을 일으키는 정도라면, 강민혁이 사용한 파이어는 작은 구슬처럼 보였다.
화륵, 화르륵.
불의 구슬은 불안정했다.
폭발을 일으켜도 파이어 볼트와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기본 원소 마법인 만큼 캐스팅은 빨랐다.
문제는.
“저게 뭐지?”
“너무 위험한데?”
고블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불의 마법을 사용할 경우, 상대뿐만 아니라 시전자도 피해를 입는다.
더구나 마법의 형태도 불안정한 상황.
그래서 마법사들의 교본에는, 근거리에서 화염 마법을 자제하라는 매뉴얼이 포함되어 있다.
그 순간.
캬악!
고블린이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이번에는 강민혁을 집어삼킬 것처럼 저돌적으로 들이미는 얼굴에, 강민혁이 곧바로 손을 뻗었다.
화악!
불의 구슬.
그것이 정확히 고블린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강민혁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고, 형태의 불안정으로 인해 불의 구슬이 폭발했다.
퍼엉!
화륵, 화르르르륵!
끼에에엑!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식도를 태워버리는 강한 열기에, 고블린은 몸부림을 치다가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파이어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
그 이전에 쌓인 데미지도 상당했지만, 내부를 공격한 강민혁의 방식은 상상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파이어 볼!”
화르륵!
콰앙!
마침내 발휘된 이민호의 마법이 전장을 휩쓸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두 마리의 고블린은 불길에 잡아먹혔고, 그들도 몸부림을 치다 이내 쓰러졌다.
상황 종료.
그런데 이번 훈련의 주인공은 이민호가 아니었다.
결국 상황을 정리한 것은 이민호였지만, 훈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강민혁을 향했다.
“·········쟤 대체 뭘 한거야?”
충격과 공포.
사람들은 한동안, 강민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후욱, 후욱.”
숨소리가 거칠었다.
급박했던 상황에, 김창수는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강민혁의 모습을 보았다.
‘·········이게 강민혁이라고?’
충격적이었다.
강민혁이 어떤 녀석인가.
유소년 아카데미에서부터 착실하게 마법사로서 훈련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강민혁은 수호문의 낙오자로 찍혀 마법 학과로 진학한 케이스다. 마법은 쥐뿔도 모르는 녀석이라 당연히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훈련에서는 그가 없었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아직도 몸이 떨렸다.
동시에 뜨문뜨문, 강민혁의 활약상이 떠올랐다.
‘정말 대단했어.’
마법의 활용법이 기가 막혔다.
겨우 1서클 원소 생성 마법이지만, 그것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함에 따라 고블린의 발을 묶었다.
특히 첫 공격.
하늘에서 바위를 소환해서 고블린의 머리에 떨어트린 것은, 정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절대 쉬운 마법이 아니다.
고블린이 이동하는 경로에 마법을 생성하는 좌표 계산만으로도 정말 어려운 작업인데, 강민혁은 고블린이 이동하는 속도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바위를 떨어트렸다. 사실 눈으로 보고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겼다면 실패로 돌아갔을 텐데, 강민혁의 모습에서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은 뭐지?’
처음에는 파이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슬의 형태로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에, 자신이 알던 상식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확실한 사실은 강민혁은 정말 대단했다는 것이다.
고블린이 자신을 덮치는 상황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고, 공격을 피한 뒤에 정확하게 반격을 가했다. 원리는 이해할 수 없으나, 강민혁이 처리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 덕분에 이민호는 캐스팅을 마칠 시간을 벌었고, 2서클 마법의 발현으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강민혁.
이제 그의 이름이 달리 보였다.
처음에는 강민혁의 합류에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강민혁을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새카맣게 타버린 고블린의 신체를 바라보며, 강민혁은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검을 사용하면 쉬웠을 텐데.’
고블린.
F등급의 몬스터.
강민혁이 아주 어렸을 때도, 고블린 정도는 손쉽게 처리했었다.
그런데 마법사로서는 이렇게 고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마법사의 현실이 느껴졌다.
‘보호받지 못하는 마법사는 정말 약하구나.’
사람들은 말한다.
마법사는 온실 속의 화초라고.
지켜주는 사람이 없다면, 마법사는 캐스팅은커녕 고블린과 같은 약한 몬스터에게도 당할 수 있다.
만약 클리스만의 지식을 얻지 못했다면.
강민혁은 이러한 현실에 자괴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보았기에, 강민혁은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5조 끝. 6조 앞으로.”
계속되는 훈련.
그렇게 한참을 진행하고서야, 마침내 마지막 조까지 훈련을 끝낼 수 있었다.
***
훈련 종료.
백동석 교수가 결과를 발표하였다.
“1조의 점수는 B+다. 순간적인 화력으로 고블린을 제압한 것은 좋았으나, 4명이라는 인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만약 변수가 발생했다면, 너희들의 선택은 양날의 검이 되어 크나큰 위험으로 직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의 위력이나 캐스팅 속도, 정확도 면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차례로 결과를 말했다.
이윽고 5조의 차례.
백동석 교수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5조의 점수는 D다. 시간차 공격을 이용해서 고블린의 발을 묶는 전략은 좋았으나, 마법사로서 상대를 놓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다. 마법사에게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 마법을 준비하는 캐스팅 시간도 마법사의 약점이 되는 상황에서, 마법마저 빗나가버린다면 사실상 마법사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나마 끝까지 고블린을 모두 정리한 점을 감안해서, D를 부여하도록 하겠다.”
D.
참담한 점수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조장인 김창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백동석 교수는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민혁.”
“예.”
“네가 실전에서 보여준 마법들은 아직 마법 학과에서 가르치지 않은 영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할 생각을 했지? 특히 마지막에 파이어 마법을 다르게 사용한 것은, 교수인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강민혁의 마법에 감탄한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백동석 교수도 강민혁을 달리 보게 되었고, 특히 마법의 활용은 1학년의 능력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파이어의 형태 변형은, 교수인 백동석에게조차 미지(未知)의 영역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사람들은 강민혁이 살았던 삶에 대해 안다.
마법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오로지 검에 매달려서 살았음을.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의문을 드러내는 백동석의 모습에, 강민혁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었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많이 찾아올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해서는 계산을 끝냈다.
방법은 간단하다.
강민혁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일명 전교 1등 컨셉.
납득하기 싫지만, 납득해야만 하는 그런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