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2. 클리스만의 일기(3)
옛날에는 서울숲이라 불리던 땅.
A급 몬스터 샐러맨더(salamander)에 의해 숲이 모두 불타버린 뒤에, 사람들은 폐허가 된 땅에 헌터 아카데미를 건설하였다. 인근 부지도 포함해서 무려 수만 평이 넘어가는 땅에 인류의 희망이 시작되었고, 매년 교육 과정을 이수한 젊은 전사들이 몬스터들로부터 한국을 수호한다.
아카데미 마법 훈련장.
전체 부지에서 겨우 몇백 평 되지 않는 그곳에, 백동석을 포함한 마법 학과의 학생들이 도착했다.
마법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전사 학과의 경우에는 훈련장 부지만 해도 수천 평이 넘어가는데, 마법 학과는 그에 절반도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서 모든 교육 과정을 이수한다. 실제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학생 중 90% 이상이 전사 학과의 소속이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초라한 현실이었다.
마법 학과 1반 학생은 약 50명 정도.
모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백동석 교수는, 간략하게 지금부터 진행될 훈련에 대해 설명했다.
“오늘 너희들이 상대하게 될 몬스터는 바로 고블린(Goblin)이다. 몬스터 백과사전 내용에 의하면, 고블린은 겨우 100cm도 되지 않는 작은 몬스터로서 특별한 능력은 없다. 공격력과 방어력도 매우 약한 편이라, F등급으로 분류되는 최하위 몬스터지.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F급.
백동석의 말대로 정말 약한 몬스터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제압이 가능한 수준.
하지만 마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근접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그렇게 만만히 볼 문제가 아니다.
“한 조에 4명씩, 너희들은 동시에 세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한다. 처음에 50M의 간격을 떨어트려서 전투가 시작되며, 고블린 세 마리를 모두 전멸시켜야만 훈련이 종료된다. 너희들도 실전 훈련의 악명은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마법으로만 고블린을 쓰러트려야만 하는 이 훈련에서, 작년에 무려 2개 조나 출혈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웅성웅성.
학생들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출혈.
어쩌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이 백동석을 향했다.
이것은 엄연히 훈련이기 때문에, 그들은 백동석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설치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억해라. 유소년 아카데미에서는 헌터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 과정을 가르친다면, 이곳 헌터 아카데미는 본격적으로 실재하는 적에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헌터는 몬스터들의 위험으로부터 이 땅을 지켜내는 수호자다. 그러니 위험을 받아들여라. 헌터의 길을 걷는 이상, 몬스터와 목숨이 걸린 싸움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관문이다.”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다.
현실.
어린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뒹구는 학교가 아니라, 언제고 죽어 나갈 수 있는 전사 훈련소.
“지금부터 30분의 전술 회의 시간을 부여하겠다. 이 훈련에서 아무런 출혈 없이 살아남고 싶다면, 그간 너희들이 배웠던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아, 만약 포기할 학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제 역할도 못 하는 얼빠진 녀석이 있다면, 괜히 팀원들이 피해를 보게 될 테니까.”
실전 수업.
학생들로부터 악명(惡名) 높은 훈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강민혁의 조는 다섯 번째에 배치되었다.
전술 회의는 30분.
조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황에, 조장인 김창수가 적극적으로 회의를 주도했다.
“작년에 출혈이 일어난 사건 기록을 확인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고블린의 재빠른 몸놀림 때문이더라고. 고블린은 강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빠른 발을 이용한 일격은 우리와 같은 마법사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해. 고로 중요한 포인트는 적의 접근을 막아내는 거야.”
슥슥.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세 마리의 고블린과 네 명의 인간.
김창수가 조원들을 보았다.
“2서클 마법의 캐스팅은 3분 정도가 걸려. 그러니 일단 민호가 2서클 마법을 캐스팅하는 사이에, 나와 정민이가 1서클 마법으로 고블린을 일차적으로 타격할게. 이때 나와 정민이는 시간차로 1서클 마법을 사용해야 해. 그래야 효율적으로 고블린의 전진을 막아낼 수 있어.”
이민호와 김정민.
조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김창수는, 힐끗 강민혁을 보았다.
‘그나저나 이 녀석을 어떻게 하지?’
암담했다.
강민혁은 이제 막 마법에 입문했기 때문에, 그가 아는 마법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강민혁은 기본도 모르는 녀석이다. 아마 1서클 마법 중에서 원소 생성이나 겨우 할 수 있는 수준일 테니, 강민혁의 역할을 바라고 계획을 구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만약 1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강민혁 같은 초짜는 1서클 마법의 캐스팅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쓸모없는 자원.
이래서 동급생들이 강민혁을 기피한 것이다.
남들과는 다르게 기본기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민혁.”
“어.”
“1서클 공격 마법 사용할 수 있는 거 있어?”
“많지.”
김창수가 피식, 웃었다.
‘허세 부리긴.’
많아봤자 1서클이다.
현재 알려진 1서클 마법이라고는 10개 정도. 이제 겨우 1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주제에, 2서클 마법사인 자신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많다고 말하는 것이 참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는 알아서 고블린들을 견제해줘. 만약 전투 도중에 틈이 생기면, 그때 네가 나서는 걸로.”
“알겠어.”
김창수는 계획을 되새겼다.
자신은 어떤 마법을 사용해야 할까.
빠르면서도 최대한 강한 일격을 먹이기 위해서는, 1서클 중에서 파이어 볼트가 가장 적절해 보였다.
“내가 선공으로 파이어 볼트(Fire Bolt)를 사용하고, 정민이는 내 마법을 맞고도 근처로 접근해오는 고블린에게 한 방을 먹여 그리고 민호는 최대한 빨리 파이어 볼(Fire Ball)의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절대 무섭다고 덜덜 떨어서는 안 돼. 마법사는 평정심을 잃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렇게 할게.”
“나도 최대한 빨리 캐스팅을 끝낼게.”
김창수는 제법 괜찮은 리더였다.
조원들을 다독이면서, 그래도 고블린을 쓰러트릴 그럴싸한 계획을 완성하였다.
문제는.
“아악!”
“·········제길!”
“의료팀! 의료팀!”
그로부터 30분 뒤.
세 번째 조가 훈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
그건 사고였다.
고블린을 모두 처리했다고 방심하던 3조의 학생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고블린에게 공격을 당했다.
“아악! 으아악!”
학생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다행히도 팔이 긁히는 수준에서 끝난 공격이었지만, 피가 철철 흐르는 상황에 3조 학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너무나도 생소한 고통. 의료팀이 달라붙어서 황급히 진통 효과가 있는 포션을 부을 때까지, 3조 학생의 비명 소리는 훈련장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사고를 목격하자, 단순히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공포가 학생들을 덮쳤다.
“·········씨발.”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니야?”
“아, 불안한데.”
공포가 전염되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땅바닥을 뒹굴던 3조 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박혔다.
혹시 이로 인해 훈련이 종료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지만, 백동석은 오히려 화를 냈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이건 훈련이자, 실전이다. 언제 어떻게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블린이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다니. 멍청한 녀석. 사고가 벌어졌다고 해서 훈련은 끝나지 않는다. 너희들은 3조의 멍청함을 똑똑히 머리에 새겨넣고,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도록.”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이어서 4조의 훈련이 진행되는 상황에, 방금까지만 해도 리더십이 넘치던 김창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아.’
몸이 벌벌 떨렸다.
피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장면이, 김창수의 눈에 아른거렸다.
‘씨발, 진짜라니. 이건 진짜로 몬스터에게 죽을 수도 있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헌터가 어떤 직업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아직 그 사명감을 받아들이기에 김창수는 너무 어렸다.
이제 겨우 17살이다.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쌓은 지식들은 방구석 지식에 불과하고, 김창수는 헌터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어린티가 보이는 소년이었다. 나름 5조를 잘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리더십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막상 현실을 확인하자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코를 간질이는 피비린내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화악.
“·········?!”
등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났다.
황급히 옆을 돌아보니, 강민혁이 김창수의 등에 손을 대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골라.”
“뭐, 뭐라고?”
“공포에 잠식되지 말라고. 아까 너도 말했잖아. 마법사는 평정심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러니 숨을 고르면서 평정심을 되찾아. 4조가 끝나면, 곧바로 우리가 나설 차례잖아.”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김창수는 일단 강민혁이 하라는 대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3조의 사고는 실수였어. 여유롭게 고블린들을 제압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블린이 죽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바람에 사고를 당한 거야. 그러니 그런 실수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리고 알다시피 고블린은 집단을 이룰수록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몬스터지, 겨우 3마리로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수 없어.”
강민혁의 음성은 침착했다.
안정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해주는 모습에, 김창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가 옅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강민혁 덕분에, 자신이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넌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 거야? 방금 3조 애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너도 봤잖아.”
궁금했다.
말이 헌터지, 마법 학과의 학생들은 아직 어린애다.
그런데 전력 외라고 생각했던 강민혁이 보여주는 모습에, 김창수는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달리 보였다.
“글쎄.”
강민혁이 쓰게 웃었다.
김창수를 비롯한 학생들은 이게 낯선 광경이겠지만, 강민혁은 아니다.
“마법에 늦게 입문했다고 해서, 헌터로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아니야.”
이들은 모른다.
겨우 8살.
남들은 아직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피울 나이에, 강민혁은 검을 쥐고 고블린의 목을 쑤셨었다.
굳이 밝힐 필요 없는 과거.
강민혁이 입을 다물자, 김창수는 한동안 묘한 눈빛으로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분 뒤.
“4조 훈련 종료. 5조 앞으로.”
5조.
드디어 강민혁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