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6화 (6/197)

6화.  2. 클리스만의 일기(2)

처음에 이학범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지난 수업으로 강민혁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블 캐스팅 연구에 참여하고 싶다고?”

“예.”

“왜지? 그때 훌륭한 답변이라고 해서, 갑자기 내 연구에 관심이라도 생겼나?”

이학범의 눈빛이 변했다.

콧대 높은 학자에게, 본인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행위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면, 당시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을 겁니다.”

타당한 말.

이학범의 표정이 누그러지자, 강민혁이 말을 덧붙였다.

“사실 사람들의 소문과는 다르게 저는 예전부터 마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수호문에 소속되어 있는 입장이라 직접 마법을 터득할 수는 없었으나, 이론적으로는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더블 캐스팅’에 눈길이 가더군요. 이학범 교수님이 발표하신 논문에 따르면, 더블 캐스팅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낮은 관심도만큼이나 연구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적고, 그동안 이학범 교수님이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연구가 빠르게 진척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저라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말에 살을 붙였다.

애초에 마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강민혁은 있는 그대로 말할 만큼 계산이 느린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수호문의 낙오자라고 생각한다.’

낙오자.

검술에 재능이 없어, 마법 학과로 도망친 얼간이.

하지만 그 이전에 마법에 관심이 있었다는 스토리를 붙이면, 그러한 소문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배경 때문에 억지로 검술을 익혔던 수호문의 후계자. 이제는 낙오자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마법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동료로 보이겠지. 이학범 교수와 같은 학자 스타일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방법이 먹힌다.’

예상대로였다.

이학범이 관심을 보였다.

“말이라도 고맙군. 네 말대로 연구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아직 2서클도 되지 못한 너의 도움을 만큼 절박하지는 않아. 그러니 딱 10분을 주지. 그 안에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그는 고고했다.

비주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러나 강민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학범을 만나러 가기 직전까지, 강민혁은 이상적인 결과를 위해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건 거래입니다. 교수님과 저와의 거래.”

“거래?”

“예.”

“그게 무슨 뜻이지? 연구에 참여하겠다는 너의 요청이 거래라니?”

연구.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하여 협력해서 달려나가는 행위는, 사실 강민혁에게 큰 의미가 없다.

왜냐고?

이미 정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당장 지금이라도, 강민혁은 자신의 선례를 통해서 더블 캐스팅이 가능한 이론임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학범과 거래하는 이유는 본인이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연구에 참여하는 대가로 교수님에게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일단 저의 연구 참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연구 성과에 크게 기여를 한다면, 이 결과에 교수님뿐만 아니라 저의 업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강민혁은 이학범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

당장 연구 성과를 뱉어낼 생각은 아니나, 날름 결과물을 낚아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재하진 않았다.

그리고.

“저는 뒤늦게 마법을 시작한 만큼 경지가 낮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저를 직접적으로 가르치셔도 좋고, 마법과 관련된 서적들을 구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 당돌한 발언이었다.

학생이 연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파격적일 정도로 본인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말했다.

그렇다면 나오는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화를 내거나.

아니면.

“네가 그 정도 자신감을 보일 정도라면, 내가 너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어디 한번 보여줘 봐. 시간은 이제 8분 남았다.”

판이 깔렸다.

강민혁은 이학범이 보이는 의문에, 간략하게 정리한 자료를 건넸다.

“이 안에 제 가치가 있습니다.”

자료는 완벽한 결과가 아니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얻은 지식과 현실의 지식을 섞어서 애매하게 풀어낸 결과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학범의 반응은 정해졌다.

더블 캐스팅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이학범이 생각하기에도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터.

“·········좋아. 네 거래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내일부터는 매일 방과 후에 내 연구실로 찾아오도록.”

퍼펙트.

강민혁이 조력자를 얻는 순간이었다.

***

밤새 마법 문명의 지식을 공부하면서, 강민혁은 매우 강한 확신이 생겼다.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야.’

더블 캐스팅.

108가지 1서클 마법.

사실 더블 캐스팅만으로도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지만,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그것들은 매우 기초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검을 처음 휘두르는 사람이 단순히 베기 동작을 반복하는 것처럼, 앞에서 배운 두 가지 지식의 가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고로.

‘더블 캐스팅을 대가로 많은 것을 얻는다.’

클리스만은 말했다.

마법사로서 성장해서 이쪽 세상의 몬스터를 토벌하라고.

그렇다면 강민혁은 스스로 강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세력을 형성할 만큼의 힘과 명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구를 택했다.

이학범과 같은 학자들이 있는 한, 언제고 더블 캐스팅의 이론은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가치가 높을 때, 강민혁은 연구에 합류해서 자신의 값어치를 높일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학범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확실하게 얻고, 나중에 더블 캐스팅의 이론을 세상에 공개한다면 수호문의 낙오자라 불리던 자신이 마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된다.

기간은 약 석 달 정도.

클리스만의 세상을 세 번 더 다녀오면, 그때는 미련 없이 더블 캐스팅의 이론을 공개할 생각이었다.

거래가 성사된 날.

강민혁은 곧바로 연구에 합류하였다.

처음에는 잡무의 처리를 도와주는 정도였으나, 중간중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발언들을 내뱉었다.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하는 행위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더블 캐스팅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직접 캐스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캐스팅을 대체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음, 마법의 체계를 도구에 저장하는 행위는 아티팩트(artefact)와 별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저희는 쉬운 길을 가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마법사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툭툭 던지는 말들.

그럴 때마다, 이학범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수 정도의 역할로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동등한 위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너의 역할을 인정하마.”

생각보다 이학범은 수긍이 빠른 사람이었다.

고지식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학범은 곧바로 마법 학회에 강민혁을 공동 연구자로 등록하였다. 단순히 조수가 아니라, 이학범과 같은 지분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동등한 입장이라고 말이다.

덕분에 강민혁이 얻는 것들이 있었다.

이학범의 가르침을 통해 마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고, 이학범의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힘으로는 구하기 어려웠던 마법 서적들을 얻었다. 마법 문명의 지식이 있다고는 하나, 강민혁은 마법의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문외한에 불과하다. 클리스만에게서 얻은 지식을 보다 가치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에 대한 이해도와 마법의 경지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필요성이 있었다.

이학범과의 거래.

그것을 통해, 강민혁은 그렇게 착실하게 마법사로서 성장해나갔다.

***

연구에 합류한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실전 마법의 교수인 백동석이 말했다.

“지난번에 예고했다시피 오늘을 실제 사냥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법은 결국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한 수단이고, 그간의 노력이 방구석 지식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실전 능력을 길러야만 한다. 15분 뒤에 훈련장으로 이동할 생각이니, 지금부터 4명씩 한 조를 형성하도록.”

실전.

그 단어에, 아직 초보 마법사에 불과한 학생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조를 형성하였고, 되도록 뛰어난 동료를 얻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수야, 우리 조에 들어와.”

“이 정도면 아무런 문제 없겠는데?”

“긴장된다, 진짜.”

조는 빠르게 형성되었다.

미리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학생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금세 4명의 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특이점이 있었다.

바로 강민혁.

그 누구도, 강민혁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

‘실전 사냥은 인명 피해도 종종 발생하는 위험한 과제야. 그러니, 강민혁은 무조건 걸러야 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강민혁이 누구인가?

17살의 나이에 마법에 처음 입문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1서클 마법사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미 2서클 마법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조별 사냥에서 강민혁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들 강민혁은 애초에 배제하고 조를 형성하였다. 괜히 강민혁을 조에 포함 시켰다가는, 1인분도 하지 못하는 강민혁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김창수도 대세와 다르지 않았다.

강민혁은 애초에 배제하고 조를 구성하던 그는, 한 명이 모자란 상황에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조로 와라.”

“아니, 저번에 우리랑 하기로 했었잖아. 그런데 이렇게 다른 조로 가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해?”

“벌써 조가 있다고?”

1명.

딱 1명만 구하면 되는데, 미리 언질을 주고받았던 학생들이 다들 고개를 저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말을 거는 족족 조가 있다고 말하는 상황에, 결국 김창수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맞닥트렸다.

유일한 선택지.

강민혁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에, 김창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씨발, 좆됐다.’

모두가 기피하던 폭탄.

강민혁을 바라보며, 김창수는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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