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4화 (4/197)

4화.  1. 1교시(3)

한쪽에는 파이어.

또 다른 한쪽에는 아쿠아.

1서클 마법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기본적인 원소 마법이지만, 두 마법은 분명히 동시에 발현되었다.

“후욱, 후욱.”

강민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실제로 발현되니 심장이 뛰었다.

‘이건 혁명이야.’

더블 캐스팅.

재앙의 날로부터 무려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 더블 캐스팅은 천재들에게만 허락되는 고등 스킬이다. 그런데 강민혁은 매우 손쉽게 더블 캐스팅의 영역에 들어섰다. 훈련 과정은 단순하게 파이어와 아쿠아의 체계를 반복하는 행위였는데, 여기에 이세계만의 팁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나의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

강민혁이 사는 세상에서는, 캐스팅 당시 철저하게 마나를 통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서클을 인위적으로 생성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면 마나가 제멋대로 날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쯤은 옳은 말이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나를 통제하지 못하면 마나 폭주로 이어지지만, 사실 그건 잘만 활용한다면 ‘오토 캐스팅’의 이론으로 직결된다. 체내에 축적된 마나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마나의 흐름을 기억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을 폭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절한 자율성을 허락하면 자연스럽게 계산 없이 마법의 체계를 완성한다.

참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겨우 원소를 생성하는 마법을 기억시키는 것만으로도 1주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한다면, 클리스만의 문명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확인된 사실’로 만들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왜 내게 이런 특권이 생겼지?’

세상에는 마법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소수이기는 하나, 이학범과 같은 사람들은 평생의 삶을 마법에 바쳤다.

그런데 마법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자신에게, 왜 이러한 신문명의 기술이 전달되었단 말인가.

끼익.

의자에 몸을 기댔다.

천장을 바라보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했다.

‘클리스만의 세상은 고차원(高次元)의 마법 문명을 형성했어.’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강민혁이 사는 강화 문명에서는, 마법이라는 학문은 절대 주류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캐스팅이라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시간적인 소모에도 불구하고 파괴력이 그렇게 대단하지가 않다. 그래도 자잘한 몬스터들을 학살할 때는 육체적인 전투보다는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마법은 분명히 절대 넘어서지 못하는 선 같은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A급의 몬스터. 그들의 단단한 외피는 마법이 통하지 않지.’

엄청난 재앙(災殃)으로 분류되는 A급 이상의 몬스터가, 마법의 가치를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러나 클리스만의 세상은 다르다.

그들은 마법만 있다면, 다른 육체적인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나는 그들의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아.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그들의 마법은 매우 강력하다는 거야. 이 세상에는 마법은 일정 이상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그들은 미지(未知)의 6서클 이상의 영역을 개척했어.’

6서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

학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지만, 그간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5서클 마법 몇 가지뿐.

만약 더 많은 이세계의 지식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은 마법의 대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이번 경험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심장이 계속 뛰었다.

강민혁이 마법에 흥미가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한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상황이 다르다.

‘내게도 내 가치를 증명할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몰라.’

가능성.

그 단어가, 계속해서 강민혁의 심장을 두드렸다.

***

강민혁의 일상이 바뀌었다.

마법 학과에 입학할 때만 할지라도 학업에 의욕을 보이지 않던 그가, 충실하게 수업에 임했다.

확실히 배움의 의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랐다.

강민혁은 차근차근 기본적인 마법 지식을 쌓아갔지만, 클리스만의 세상을 경험했던 날로부터 무려 보름이 지났음에도 일상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단발성의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무렵, 학업을 마치고 귀가한 강민혁을 크나큰 현판이 맞이했다.

[수호문]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검문(劍門).

수천 평이 넘어가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자리 잡은 그 건물로 들어서자, 일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나!”

훅!

“둘!”

훅!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가장 앞에서 소리치고 있는 한 사내의 지시에 따라 검을 휘둘렀다. 저들은 모두 수호문의 제자들이다. 수호문의 강력함에 반해, 먼저 검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사람들. 강민혁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풍경에, 강민혁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혁아.”

이동하는 길에 한 사내를 맞닥트렸다.

거대한 체격에 일급(一級) 제자를 뜻하는 문양(방패를 가로지르는 한 자루의 칼)을 가슴에 새긴 그가, 강민혁을 바라보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마법 학과는 다닐만 해?”

“그럭저럭.”

“요새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열심히 학업에 임한다며?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긴 하겠어? 어차피 마법은 백날 훈련해서 절정의 경지에 올라봤자, A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사내의 이름은 정판수.

의도는 뻔했다.

일부러 속을 박박 긁어대는 발언에, 강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명색이 수호문의 장남인데, 비전투 자원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

“·········뭐, 맞는 말이기는 하네. 그래도 네가 마법을 익히는 모습이 영 낯설어서. 지금이라도 다시 검술에 정진하는 것이 어때? 나름 열심히 노력하면, 마법보다는 밥값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비아냥은 계속되었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강민혁은 말을 짧게 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런 강민혁의 뒤통수로, 뒷담화라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선명한 음성들이 박혔다.

“쟤도 어쩌다 저런 신세가 됐냐.”

“웃기지 않냐? 수호문의 장남이라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녀석이, 17살이라는 나이에 뒤늦게 마법을 익히는 모습이. 참 불쌍하기도 해. 수호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검술에 재능이 없다니.”

“좀 안쓰럽기까지 하네. 아무리 그래도, 검을 버리고 마법에 매달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현실을 직시시키는 말들.

강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지만,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발끈하는 것은, 오히려 추하기만 할 테니까.

***

수호문.

강민혁의 집은 검술의 명가다.

그렇기에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검술을 익혔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강민혁은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포기했다. 후계자의 신분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정판수는 강민혁을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마법 학과에 입학한 직후부터는 방금처럼 비아냥거리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강민혁은 하늘이 버린 재능이다.”

“수호문의 독자로 태어나는 축복을 누렸지만, 검술에 재능이 없어 그의 삶은 비극이 되어버렸다.”

“수호문의 문주가, 강민혁이 아닌 가신(家臣)의 아들을 후계자로 택했다.”

수호문과 관련된 말들.

자신을 더욱 초리하게 만드는 말들을 떠올린 강민혁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씨발.”

미운 오리 새끼가 이러할까.

검술을 버린 강민혁은 수호문에서 낙오자 취급을 받았고, 마법 아카데미에서는 주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호문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학범만 해도 그렇다. 더블 캐스팅을 설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히 강민혁을 싫어했다.

화가 났다.

강민혁도 당연히 이러한 현실이 싫었다.

‘내게 아버지를 충족시킬 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의미 없는 후회다.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분명히 자신에게 실망했다.

후계자의 재능이라고는 매우 떨어지는, 볼품없는 자신의 재능에 말이다.

“비참하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오랜만에 올라오는 울렁이는 기분에, 잠시 속을 진정시키던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세상을 떠올렸다.

‘그들의 마법은 특별해.’

클리스만의 동급생이 했었던 말이 있다.

“8서클 이상의 마법이 어떤 경지냐고?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한 녀석이 왜 그딴 거를 물어봐? 그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8서클 이상의 마법은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어. 하늘에서 벼락 다발이 내리치고, 땅을 뒤집으며,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수천 명의 사람을 학살할 수 있지.”

강민혁이 아는 마법과는 다르다.

만약 마법이 저런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이 세상에서도 마법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마법을 배우고 싶어.’

검술로는 길이 없다.

강민혁은 자의로 검을 놓았지만, 사실상 그건 타의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마법에 모든 것을 걸기엔, 강민혁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의 지식이 내게 필요해.’

간절했다.

정판수 때문인지, 오늘따라 마음이 들끓었다.

그런데 그러한 바람을 하늘이 들어주기라도 한 걸까.

그날 저녁.

‘아.’

강민혁은 눈을 떴다.

강민혁이 아니라, 바로 클리스만의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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