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 1교시(2)
살짝 휑한 정수리에 도수 높은 동그란 안경.
한눈에 보아도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이학범이,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강민혁.”
“예.”
“네가 마법 학과에 입학한지 얼마나 됐지?”
“·········일주일 됐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다.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전공한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너는 17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마법에 대해서 공부한 경력이 있나? 헌터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것을 제외한, 단 하루라도 말이야.”
말문이 막혔다.
17살.
몬스터의 침공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강민혁의 나이면 이미 조기 교육을 끝내고 헌터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입소한다. 지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는 동급생들의 경우에는,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이미 마법의 기초를 다진 부류들. 그에 반해 강민혁의 사정은 달랐다.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돌토돌하게 박힌 손바닥의 굳은살이, 강민혁의 신경을 간질였다.
“없습니다.”
“그래, 없지. 네가 마법에 입문해서 한 것이라고는 서클을 형성하고, 겨우 몇 가지의 원소 마법을 배운 게 전부야. 그런데 대체 무슨 배짱이지? 진로를 마법으로 택했다면, 벌써 2서클 마법을 터득하고 있는 동급생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옳은 말이다.
강민혁의 시작은 늦었다.
그렇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이학범의 말이 맞지만, 강민혁은 사실 마법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어차피 마법은·········.’
“설마 검술 명가인 수호문(守護門)의 장남이라서 이따위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나도 네 심정은 이해하겠어. 수호문에서 보고 자란 것이 있으니, 비주류 학문인 마법은 성에 차지 않겠지. 하지만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마법 학과를 택했다면 당장 자퇴하는 게 좋을 거야. 마법이라는 학문이 비록 효율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는 배울 수 없어.”
이학범.
마법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현실에서 마법은 비주류 학문이다.
위력도 약하고, 딜레이도 오래 걸리며, 마나 소모가 커서 지속성도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등급이 낮은 몬스터를 토벌하는 경우가 아니면, 마법사는 서포터의 역할 정도만을 맡는다.
그래서 이학범은 강민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호문의 독자(獨子).
사실상 무력이 권력으로 직결되는 이 세상에서, 강민혁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떨어져서 낙오되고 말았고, 그 도피처로 마법 학과의 입학을 택했다.
‘마법이 도피처라니.’
이학범의 신경을 건드린 부분이었다.
만약 다른 학생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사건이었지만, 상대가 강민혁이라 유독 까다롭게 굴었다.
“죄송합니다.”
곧바로 사죄했다.
수업이 지루했고, 옆에서 자고 있는 다른 동급생들은 건드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강민혁은 본인이 잘못한 상황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만큼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스타일은 아니다. 이학범의 말처럼 명백히 본인이 잘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강민혁은 괜히 토를 달아 분노를 돋구지 않았다.
하지만.
“죄송하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지. 만약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래도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었음을 인정해서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너에게 벌점 3점을 부여하겠다. 잘 알고 있지? 벌점 10점은, 곧 마법 학과에서의 퇴학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학범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반박할 여지도 없이 쏘아붙이는 이학범의 모습에, 강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처벌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내가 수업 도중에 말했던 더블 캐스팅. 그것에 대해 설명해봐.”
공교롭게도,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너무 쉬운 문제를 제시했다.
***
불과 몇 시간 전.
아니,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을 것을 보면 몇 분 전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상한 세상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강민혁은 이학범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블 캐스팅이라면·········.’
초등 교과서.
그것을 통해 더블 캐스팅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읽었다.
그래서 당장에라도 대답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 정보의 진위성이었다.
‘어차피 나는 더블 캐스팅에 대해 아예 몰라. 일단 말하고, 틀린 정보라면 처벌을 받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학범의 시선에, 강민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블 캐스팅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보통 일반 마법사들은 두 개의 작업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가끔 두뇌 능력이 빠른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더블 캐스팅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후천(後天)이 아닌, 전적으로 선천(先天)의 능력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대답.
여기까지는 주워들은 지식과, 초등 교과서의 내용을 적절하게 혼합한 것이다.
이학범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강민혁은 보다 확실하게 정보의 진위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교수님은 후천적으로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법이라는 것은 결국 정형화된 체계를 형성함에 따라, 마나를 마법으로 바꾸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이론에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마법사들이 더블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동시에 두 개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고난이도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간략하게 생략하는 ‘또 다른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블 캐스팅은 선천의 영역으로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끝났다.
그런데 이학범의 표정이 이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더블 캐스팅.
선천적인 재능에게만 허락된 능력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가능케 만드는 것이, 이학범의 숙원(宿願)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허황에 찬 꿈이라고.
그런데 강민혁이, 그것도 마법이라고는 쥐뿔도 모를 것 같은 그가 해박한 지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지지해주자 이학범으로서는 감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강민혁은 마법을 우습게 보는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면, 지금의 대답으로 그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예.”
“통과.”
이학범이 웃었다.
하나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사로서,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감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네 설명은 매우 훌륭했다. 더블 캐스팅에 대해 사전에 조사하지 않았다면 방금과 같은 대답은 할 수 없었겠지. 내가 널 잘못 본 모양이로군. 넌, 적어도 내게 마법을 배울 자격이 있어.”
그렇게 해프닝은 끝났다.
이학범은 언제 소란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수업을 진행했지만, 강민혁은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초등 교과서의 지식이 통했어.’
쿵쿵 뛰는 심장.
강민혁의 심장은, 수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진정되지 않았다.
***
수업이 끝난 직후.
강민혁은 더블 캐스팅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더블 캐스팅은 소수의 마법사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능력이다. 상위 1%만이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흔히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5서클 마법사들은 모두 더블 캐스팅 능력자에 해당한다. 더블 캐스팅의 능력 여부에 따라 마법사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더블 캐스팅으로 인해 마법의 위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융합(融合)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마법사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불리는 딜레이 또한 어느 정도 보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간략하게 정리한 정보였다.
더블 캐스팅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결코 ‘초등 과정’으로 평가받을 이론이 아님을 알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강민혁은 마법의 문외한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만 보더라도, 더블 캐스팅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클리스만이라는 사람의 세상에서 더블 캐스팅은 정말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처럼 하찮은 취급을 받았고, 초등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 또한 너무나도 손쉬운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과연 가능할까.
더블 캐스팅에 대한 생각에, 강민혁은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집중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애꿎은 책상만 계속 두드렸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확인해보자.’
이세계의 지식.
이학범 교수를 상대로 설명이 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실제하는 지식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결국 자식이 직접 지식이 가르치는 대로 해서 결과를 얻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궁금했다.
무료하기만 했던 일상에, 이세계의 지식은 파문을 일으켰다.
‘교과서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자.’
강민혁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마법으로의 전향을 택한 이후 무료하게 살아가던 강민혁이, 방과 후에는 항상 훈련에 몰두했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
그것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인 훈련 방법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뒤.
화르르륵!
물컹!
허공에 형성된 불꽃과 물방울.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강민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진짜 되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의 지식은 정말 ‘살아있는 지식’이었다.